[Opinion] 아무튼, 여름 그리고 가을 [문화 전반]

여름을 추억하나 그리워하지 않는 것
글 입력 2021.09.11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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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낮과 밤의 기온 차가 제법 난다. 아직은 낮 동안 제법 습한데, 밤에는 에어컨을 켜놓고 있으면 팔에 차가운 온도가 스며드는 게 꽤 빨리 느껴진다. 밤까지 열심히 울어대던 매미는 어디로 갔을까. 이제는 작은 구슬이 또르르 굴러가듯, 이름 모를 풀벌레들이 울고 있다. 시간이 열심히 흘러간다. 또 여름이 지나가는 중이다. 그리고 아무튼 가을이 온다.


본격적 더위가 오기 전인 6월, 습한 날씨를 견디지 못한 채로 방바닥에 내 몸을 누이고, 에어컨만 쐬며 견뎠다. 너무 더울 것 같던 여름을(그리고 실제로 매우 습하고 더웠다.) 조금은 슬기롭게 견디기 위해 한 책을 읽었다. 자신이 열렬히 좋아하는 이가 써낸 ‘아무튼 시리즈’ 중 ‘아무튼, 여름’. 여름을 사랑하며 이 계절의 추억이 많은 작가의 이야기인데, 작가가 지향하는바 역시 여름 같은 사람이다.

 

 

여름은 담대하고, 뜨겁고, 즉흥적이고, 빠르고,

그러면서도 느긋하고 너그럽게 나를 지켜봐 준다. 그래서 좋다.

마냥 아이 같다가도 결국은 어른스러운 계절.

내가 되고 싶은 사람도 여름 같은 사람이다.

 

<아무튼, 여름> 중에서

 


책은 여름에 잠깐 맛볼 수 있는 초당 옥수수나, 여름의 영화, 짧은 연애, 해외여행, 여름밤의 맥주, 호캉스 등 다양한 여름의 모양을 말한다. 작가가 여름의 추억을 내밀며 이 계절을 사랑할 수밖에 없음을 증명한다. 여름의 시작과 끝, 두 번을 읽어보니 여름을 맞이하던 시점에서 읽을 때보다 이번 연도 여름의 마지막 시점에서 이 책에 더욱 공감했다. 나만의 여름 추억이 생겨서일까. 그저 땀이 나고 덥기에 싫어하던 계절이었는데, 이 계절을 사랑하는 사람의 섬세한 이야기라니. 어쩌면 여름이 조금 좋아지려 한다.


나의 아무튼, 여름을 사랑하는 이유로, 우선 매년 연례행사처럼 먹는 수박을 좋아한다. 큰 수박 한 통을 절반으로 쩍 소리 나게 잘라서 한쪽은 삼각형 모양으로 잘라서 먹는다. 나머지 반 통은 숟가락으로 퍼먹는데, 잘라먹는 수박과는 맛이 확연히 다르다. 나에게 단연 최고의 여름 과일은 수박이다.


그리고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를 하나 더 보태보자면, 아니 이번 여름을 추억할 이야기를 풀어보자면, 매우 많은 책을 읽었다. 원래 책을 즐기지 않아 평생 이럴 것이라 느꼈는데, 책을 좋아하던 마음을 넘어 직접 한 권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온전한 동경의 마음이 생긴다.


그러니 이 계절에 관한 책을 읽었다는 수식어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책의 주제와는 상관없이 이번 여름을 책으로 기억하고 훗날 추억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여러 작품을 접하며, 그중 여름을 대변할 만한 작품으로서 시의 한 구절을 보태본다.

 

 

여름밤은 아름답구나.

짧은 여름밤이 다 가기 전에(그래, 아름다운 것은 짧은 법!)

뜬눈으로

눈이 빨개지도록 아름다움을 보자.

 

이준관, <여름밤> 중

 

 

그렇다. 사계절 중 낮은 가장 기나, 가장 짧은 밤은 여름이라는 계절. 명확히 뜬눈으로 아름다움을 지켜본 책의 한 장 한 장을 올해 여름으로 기억하지 않을까. 돌이켜보니 여름은 감사함으로 가득하다. 여름이 지나며, 이제는 다가오는 가을 역시 사랑해볼까 한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인 만큼, 각 계절을 찬미하기에 모든 계절은 짧은 시간이니.




아무튼, 가을



며칠 전, 절기상으로 백로가 지났다. 백로는 본격적으로 가을을 시작하는 시점이다. 적당히 시원하고 청명한 하늘 덕에 좋아하는 계절이다. 내가 가을을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 작성해볼까 한다.


첫 번째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겉옷인, 트렌치코트를 마음껏 입는 계절이다. 트렌치코트는 바지나 치마를 입고, 그 위에 반팔이나 긴 팔을 입고 폭 쌓이는 트렌치를 입는 만큼 편하며 은근히 멋 부릴 수 있는 옷이다. 그러나, 트렌치코트를 입을 시기는 매우 짧다. 알맞은 계절은 봄과 가을인데, 더워지는 봄이나 추워지는 가을에 접어들면 트렌치코트는 다시 옷장 저 깊이 들어가야 한다. 일 년에 한 달에서 두 달이 안 되게 짧은 기간 동안 입는다. 그런데도 내 옷장 속 가장 많은 옷은 트렌치코트다. 그런데도 며칠 전에 검은 트렌치코트를 새로 구매했다. 바람에 휘날리는 트렌치의 느낌이 좋다. 기온이 더 내려간다면 새로운 트렌치와 이 계절의 시작을 맞이해야겠다.


그리고 가을이 찾아오면 이제 푸릇푸릇했던 이파리들이 색을 바꾸려 하는데, 보통 황토색에서 고동색의 계열을 고르곤 한다. 시기가 지나면 이파리들이 땅에 떨어진다. 낙엽을 발로 밟으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점차 양이 많아져 쌓이면, 이파리들이 한곳에 모여 푹신한 쿠션을 밟는 듯한 부드러운 느낌이 있다. 그리고 가을의 나무가 군집하면, 푸릇푸릇한 청년의 느낌에서, 제법 어른스러워진 산의 모습도 보인다.


가을이 되면 하늘이 높아진다. 요즘 하늘은 확연히 높아진 듯, 하늘이 청명하게 더 멀리 위치한다. 계절이 바뀜을 온몸으로 느끼며, 가을의 새로운 계획을 세워본다. 가을에는 집 근처에 위치한 호수에 가서 산책해보고 너무 추워지기 전에 돗자리를 깔아놓고 잠깐의 소풍을 새롭게 즐겨볼 예정이다.


가을을 즐기기 위해 나무가 있는 어느 장소든 방문한다. 삼청동이나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돌담길이라던가. 모두 사랑하는 장소다. 아직 본격적으로 찾아오지도 않았는데도 벌써 가을이 기다려진다.


그 전에 다가오는 계절을 맞이하며 ‘아무튼, 여름’의 작가가 그랬듯 가을 하면 생각나는 영화를 볼까 싶다. 가을은 최신의 영화보다는 여러 번 시청해서 이제 주인공보다 조연들, 주인공의 친구들을 보기 위해서라던가, 혹은 좋아하는 장면을 보기 위해 다시 꺼내 보는 영화가 생각나는 계절이다. ‘노팅힐’이나 ‘라라랜드’나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같은 이야기들. 얼른 이 그리움의 계절이 기대되며 맞이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리움의 계절



이파리들의 소리를 좋아하나, 가을이 물들어 가면 빈 나뭇가지로 바뀌고, 나무들은 점점 헐벗는다. 바람에 낙엽이 굴러다니면 한편으로 쓸쓸해지곤 한다.


가을은 추억과 그리움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전에 인연이 닿았던 사람들이 문득 생각난다. 그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려고 있으려나. 예전의 미숙함이 생각나 부끄럽고, 괜히 사과하고 싶은 맘이 들기도 한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님을 알아채는 것이 첫 시작이라고 하는데, 다음 가을을 맞이할 때는 조금은 좋은 사람이 되어 있길 소망한다.


후회하는 이 계절이 지난 후에는 더 나은 좋은 사람이 되길 바라며, 그리움에 문학만큼 온전히 표현해낼 존재는 없기에, 짧은 시 한 편을 적어본다.

 

 

가을의 소원

_안도현



적막의 포로가 되는 것

궁금한 게 없이 게을러지는 것

아무 이유 없이 걷는 것

햇빛이 슬어놓은 나락 냄새 맡는 것

마른풀처럼 더이상 뻗지 않는 것

가끔 소낙비 흠씬 맞는 것

혼자 우는 것

울다가 잠자리처럼 임종하는 것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

 

 

가득했던 이번 여름을 마무리하며, 여름을 추억하더라도 그리워하지 않도록. 온전한 가을이 기대된다. 이번 가을의 끝에서 지금을 바라보면 어떨까. 트렌치와 휘날리며 쏘다닌 추억으로 기억될까. 가을의 새로움을 찾은 내가 있을까. 적막할까. 아무튼, 가을이 찾아오고, 이 계절이 지나 겨울이 다가온 후 이 계절을 추억한다면, 가을의 쓸쓸함까지 온전히 받아들인 내가 있길 바래본다.

 

 

[임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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