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코로나 종식 이후에 우리가 꿈꿔야 할 세상 [도서/문학]

<코로나 인문학>: 인문학적 관점으로 통찰하는 2020년
글 입력 2021.09.05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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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현재, 우리는 역사적 사건과 함께하고 있다. 예상보다 장기화된 코로나바이러스가 세계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될 것임은 호연해 보인다. 게다가 지금의 상황을 의학적 관점에서만 고찰하기에는 바이러스가 초래한 변화의 양상이 너무나 다각적이며, 기술 발전에 힘입어 가능해진 비대면 소통이라는 대안은 예기치 못한 위난 상황을 불러오기도 했다. 말 그대로 접촉의 위기를 맞이한 우리는 앞으로의 미래를 어떻게 대비하고 상상해야 할까.

 

필자는 이 질문에 대해 현 상황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되돌아보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답하고 싶다. 우리가 처한 현실을 명쾌하게 진단한 뒤에야 앞으로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인문학자 겸 영화평론가인 안치용의 저서 <코로나 인문학>(2021, 김영사)의 제목은 꽤 직관적이다.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은 바이러스가 만든 새로운 세상을 인문학적 관점으로 성찰하고, 나아가 포스트 펜데믹 시대에서 지속 가능한 삶은 무엇인지를 제안한다. 올 2월에 출간된 도서인 만큼, 혼란을 겪었던 2020년을 분석하는 데 가장 앞장선 도서 중 하나이리라 짐작해 본다.

 

<코로나 인문학>은 감염병의 역사를 훑는 1부와 코로나 시대를 고찰하는 2부로 구성된다. 1부에서는 역사의 변곡점이 된 흑사병을 자본주의의 시작과 인간의 탐욕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2부에서는 마스크 착용이나 트럼프 정부의 탈세계화 전략, 인포데믹이나 기후 위기 등 2020년의 문제의식을 정치학·사회심리학적으로 논한다. 그 내용 중 일부를 살펴보자.

 

코로나 이전의 범세계적 펜데믹을 대표하는 흑사병은 근대적 패러다임의 시작이기도 했다. 유럽 사회는 14세기의 2차 흑사병 대유행 이후로 자본주의 사회로 서서히 전환되었는데, 학계는 그 원인을 노동력이 줄어들어 노동자의 임금이 상승함에 따라 임금노동 체계가 마련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나 의미심장한 것은, 이렇게 등장한 자본주의 구조가 또다시 유럽을 감염병의 늪에 빠뜨렸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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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화가 미셸 세레(1658-1733)가 그린 마르세유 페스트

 

 

‘마르세유 페스트’는 1720년 5월 25일, 고가의 비단을 싣고 마르세유에 도착한 배 ‘그랑생앙투안’호가 하역하며 시작되었다. 배의 승무원은 이미 흑사병에 감염된 상태였으나 그랑생앙투안호는 검안 의사의 소견을 조작해 40일간의 격리를 피했다. 이는 비단의 수취인이었던 마르세유의 부시장 ‘에스텔’이 권력을 이용해 압력을 행사했기 때문이었다. ‘마르세유 페스트는 인간의 탐욕이 초래한 전형적인 인재人災’였다는 저자의 문장에 공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개인의 욕망과 권력이 합당한 체제를 한순간에 무너뜨린 이 사건은 코로나 펜데믹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뼈 있는 시사점을 남긴다.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과거를 되짚으며 미래를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현재의 우리 사회가 펜데믹의 선례를 반면교사 삼아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는가?

 

2부에서 저자는 미국의 트럼프 정부의 백신 독점이 신자유주의의 맹점이라고 지적하며, 전 인류가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도 자국의 이익만을 우선시한 행동으로 본다. 시장이 존재한다면 돈으로 사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시장만능주의는 지금의 시대정신을 씁쓸히 반영한다. 2020년의 펜데믹은 의학적 측면에서는 과거에 비할 수 없지만, 사회적 부조리의 측면에서는 퇴보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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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저자는 마스크 착용을 둘러싼 대립을 기호학적, 정치학적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우리의 시각에서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는 미국인들은 무지해 보일 뿐이다. 그러나 이는 미국의 역사적 맥락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온 반응일 수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에서는 보건용 마스크뿐만 아니라 복면까지도 ‘mask’라고 통칭하며, 마스크는 흑인 대상 혐오범죄를 저지르는 백인우월주의 집단 ‘KKK단’의 흰 복면으로 인식되어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반면 우리는 중국발 미세먼지나 황사 등으로 보건용 마스크 착용이 이미 상용화되어 있으며 마스크의 기표와 기의 역시 일치한다. 게다가 특유의 공동체 중심적 사고에서 기인한, 타인의 시선을 과하게 의식하는 우리 정서는 마스크 착용에 있어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결국 각국의 사회문화적 맥락과 그 차이를 인지해야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미국의 미비한 방역대책과 시민의식은 이해보다는 수정의 대상이지만, 그들을 이해하려는 태도 없이는 어떤 해결책도 내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저자는 바이러스가 촉발한 사회현상을 다각적으로 분석하면서 ‘고립된 나’가 아닌 ‘고립하는 나’를 꾸준히 강조한다. 단순한 접미사의 차이에 불과해 보이지만, 저자에 따르면 전자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대표되는 강제적인 격리를 의미하는 반면 후자는 타자와의 공존을 위해 기꺼이 선택하는 고립을 뜻한다. 이에 따라 ‘언택트’ 역시도 긍정적인 가능성을 내포해야 한다. 풀어서 말하자면 언택트는, 그것으로 인해 차단된 물리적 접촉 이상으로 많은 연결을 만들어내야 한다.

 

 

“언택트의 핵심은 인간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최악의 상황에서도 인간의 연결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 안치용, <코로나 인문학>, p.206 中

 

 

마지막으로 저자는 결론부에서 자본전체주의가 통제하는 시장이 아닌, 사회주의 이념이 접목된 시장을 통해 국민 전체의 행복을 추구하는 더 나은 국가상을 목표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글을 마무리 짓는다.

 

위 주장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어떤 이데올로기가 맞는지를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결국 이 책이 강조하는 것은 더 선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토론이다. 커다란 변화는 개인의 목소리에서 시작하기 마련이니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동시대의 모순과 부조리를 다양한 관점에서 훑어보고 그 원인을 들여다보기에 <코로나 인문학>은 더없이 훌륭한 길잡이 역할을 해줄 것이다.

 

*

 

책의 목차를 살피고 책장을 차근차근 넘기다 보면, 자연히 동시대를 살피는 시야가 한층 넓어지고 풍부해질 것임은 분명하다. 많은 이들이 코로나바이러스로부터 자유로워질 시점을 내년으로 어림잡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시점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이 그러한 기다림의 시간을 가치 있게 채워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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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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