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소중한 영화를 꺼내 먹었습니다 [영화]

'환상의 빛' 리뷰
글 입력 2021.09.03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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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초콜릿 상자를 선물로 받은 적이 있다.

 

산 골짜기 촌 동네에서 미제 초콜릿을 먹어본 사람은 드물었다. 그런 선물을 받게 되면 정말 아껴먹게 된다. 냉장고를 열었다가 한 번 쳐다보면서 먹고 싶은 마음을 시각적으로만 채운 뒤 다시 문을 닫는다. 작은 초콜릿들에 불과하지만 너무 소중해서 함부로 먹지 않았다. 아끼는 초콜릿을 대하는 이런 마음이 지금은 영화로 옮겨졌다.

 

초콜릿처럼 두고두고 아끼다가 가끔씩 꺼내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들이 그렇다.그의 작품들은 대게 특정 관점이나 시선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저 관조적인 시선으로 영화를 진행할 뿐이다. 그의 장편영화 데뷔작 ‘환상의 빛(1995)’에서는 롱샷이 자주 이용되면서 이러한 특징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영화


 

유미코(에스미 마키코)는 동네 친구였던 이쿠오(아사노 타다노부)와 결혼해 3개월 된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 그녀는 집안 곳곳에 곰팡이가 있고 요란한 기차소리가 항상 들리는 작은 집에서 넉넉지는 않아도 그의 가족과 행복하게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 이쿠오가 이유 모를 자살을 한다. 유미코는 3개월 된 아이와 자신을 두고 남편이 왜 자살을 했을지 생각해 보지만 답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게 어릴 적 행방불명 된 할머니에 이어 그녀는 가까운 또 한 명의 사람을 잃게 된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유미코는 재혼을 해 간사이 지방에 사는 새로운 남편 타미오(나이토 타카시)의 집으로 이사를 한다. 그렇게 타미오와 그의 아버지, 그리고 자식들과 함께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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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불안정함


 

영화를 보는 내내 왠지 모를 축축함이 전해진다. 집안의 곰팡이 때문일 수도 있고 바닷가라는 환경 때문일 수도 있겠다.

 

유미코가 이쿠오와 살던 집이나 타미오와 살고 있는 지금의 집 모두 기차 소리와 바다 소리라는, 그녀가 원치 않을 수도 있는 소리들이 지속적으로 난다. 장소가 변해도 축축함과 소음은 유미코와 늘 함께 한다는 점이 그녀의 처지를 더욱 안타깝게 만든다.

 

거센 바닷바람에 쉽게 흔들리는 집 안 전구처럼 그녀는 환하게 빛을 낼 수 있지만 바람이 더 세게 불어온다면 떨어져 깨져버릴 존재처럼 보인다. 그러한 ‘불안정함’은 유미코뿐만 아니라 자살을 한 이쿠오 또한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까지 대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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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빛


 

영화는 일본의 순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미야모토 테루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환상의 빛’ 뿐만 아니라 ‘밤 벚꽃’, ‘박쥐’, ‘침대차’ 등의 작품에서도 나타나듯 미야모토 테루는 그의 소설에서 ‘죽음’에 대해 자주 다룬다.

 

당시 다큐멘터리 연출가이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다큐멘터리 <그러나... : 복지를 버리는 시대로> 또한 자살로 남편을 잃은 여자의 치유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러한 상황적 맥락에서 고레에다 감독이 미야모토 테루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을 수도 있겠다.

 

영화 ‘환상의 빛’은 베니스 국제영화제 촬영상을 비롯해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 및 초청을 받으며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데뷔작’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영화는 동명의 소설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는 감정과 분위기를 잘 재현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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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소설 모두 누군가의 죽음에 함부로 시선과 생각을 담지 않는다.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작품을 다 본 이후에도 왜 유미코의 남편이 자살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유미코와 그의 남편의 마음을 헤아려보면서 이를 마주하고 있는 우리가 그들과 어딘가 닮아있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을 할 뿐이다.

 

롱샷과 롱테이크가 관객들에게 관조적인 시선을 부여하는 동시에 딴 생각을 할 수 있는 틈을 내주기도 한다. 물론 이는 오롯이 관객의 몫이지만 말이다. 때문에 소설을 먼저 읽어보고 영화를 본다면 보다 인물들의 감정선을 이해하기 좋아 다른 생각의 방해를 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이미 봤다면 책을 읽으면서 그 인물들의 감정과 심리를 상세히 알아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요지는 영화와 소설 모두를 통해 ‘환상의 빛’을 자세히 보기 바란다는 것이다. 다크 초콜릿처럼 씁쓸하고도 묘한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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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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