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굳세어라. 강사들!

글 입력 2021.09.02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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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의 시작은 사소하다. 나는 휴학생 신분으로, 그저 아르바이트를 구하다가 ‘영어 보조 강사’ 구인 글을 보고 영어학원에 지원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보조강사’라는 말에 부담을 가지지 않고 간 면접에서 얼떨결에 ‘강사’로 채용되어버렸다. 내가 과연 학생들을 잘 끌어낼 수 있을지 걱정했던 날들이 지나 이젠 익숙해졌다고 말하고 싶으나, 나는 오늘도 가슴 속 사표를 품고 퇴근했다. 아, 그만두고 싶다.

 

 

 

고용주를 향한 외침


 

저는 일개의 강사일 뿐입니다.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오늘도 겨우 참았다. 나의 인내심에 박수를 보낸다. 학원 발전에 열정을 쏟기엔 학원 수입이 내 수입으로 직결되지 않는다. 학생 한 명이 늘어난다고 한들 내 월급이 오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모든 고용주는 애사심을 바란다. 학원의 발전이 나의 발전이길 바란다. 분명 보조 강사로 지원한 내가 왜 학원에 발전에 힘쓰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을’의 입장에서 어쨌든 월급을 받으니 최선을 다하고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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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든 상사를 잘 만나야 한다. 불행히도 나는 운이 좋지 않았다. 나는 그만둔 이전 선생님을 대신해 인수인계 하나 없이 수업에 들어가야만 했다. 나를 제외하고는 영어 선생님이 아무도 없는 상태였다. 게다가 변덕이 심한 나의 고용주는 일주일에 한 번꼴로 커리큘럼을 바꾸었다.

 

심지어 이게 무슨 일인가.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모두 책이 다르고 수업 시간도 달랐다. 나는 연구용 책이나 교사용 책조차 없는 맨몸의 상태로 영어 문제집을 보자마자 뚝딱 답이 나오는 기계가 되어야만 했다. 개인별 학습은 아이들에게 좋지만, 강사에겐 잔인하다. 학생이 서른 명이라면 난 서른 가지의 수업 준비를 해야 했다. 연구용 책 없이 말이다.

 

원장님. 강사 한 명 더 뽑자던 제 말이 들렸나요?

 

 

 

목소리를 잃은 거북이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 고통은 대부분 함께 온다. 이들은 서로 섞이며 수많은 고통을 만들어낸다. 강사 일을 하면서 거북목이 점점 심해졌다. 아이들이 제대로 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숙여야만 했기 때문이다. 거북이와 마찬가지인 목 상태가 되면서 어느 순간 내 자리에 나 대신 거북이를 앉히고 싶었다. 아마 지능도 비슷하겠지. 거북이가 영어를 배워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보다 차라리 내가 바다로 돌아가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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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와 혼연일체가 된 사이에 성대도 상하기 시작했다. 이미 강사로 일하고 있는 주변인들의 조언대로 물을 자주 마셨어도 목에 무리가 갔다. 수업할수록 목소리가 커질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주에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뻐끔거리기만 하며 수업을 마쳤다. 따끔거리는 목을 부여잡고 퇴근하면서는 서러워졌다. 아이들은 숙제가 많다고 투덜거리는데 나는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몸이 상할 때까지 수업하고 있는지 말이다. 오늘도 꿀물을 타 마시면서 쓰린 목을 달랜다.

 

 

 

아이들은 그럴 수 있다. : 어른은 말고


 

일을 하면서 가장 당혹스러운 건 아이들의 언행이다. 나는 왼손잡이라는 이유로, 한 아이에게 “선생님 왼손잡이는 장애인이래요.”라는 말을 들었다. 어디서 그런 말을 듣고 말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나도 모르게 상처받고 말았다.

 

아이에게는 죄가 없다. 그는 분명 부모나 주변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그대로 따라 했을 게 분명하다. 그러나 아이에게 죄가 없어도 나는 상처를 받는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탓할 수 없다. 나는 그저 그것이 잘못된 말이라며 지적해야만 한다.

 

차라리 비속어를 썼다면 부모에게 지도 요청을 해도 괜찮지만, “선생님 왼손잡이는 장애인이래요.” 같은 말을 지도하기가 더 어렵다. 부모에게 알린다고 한들 부모도 비슷한 사고를 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너무 힘들 때면 부글거리는 속을 맥주 한 캔으로 식히면서 비출산을 다짐한다.

 

 

 

이런 학원, 도망치세요!


 

너무 불평불만만 나열해서 강사가 되고 싶은 분들에게는 실례일지도 모른다. 대신, 학원 아르바이트를 희망하는 분들에게 마지막 조언을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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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을 강조하는 원장: 한국인은 ‘정’이라는 말을 믿지 말기를 바란다. 물론 마음씨 좋은 원장님이 직원 복지를 위해 잘 챙겨주는 건 제외한다. 여기에서 ‘정’은 학원 운영이 커지면서 분명 강사를 더 뽑아야 하지만, ‘가성비’를 위해 강사 개인에게 일을 몰아주고 간식이나 밥을 사주는 경우를 바란다. 당신들의 귀한 노동은 간식거리나 기프티콘으로 퉁 치면 안 된다. 차라리 간식은 없어도 시급을 더 주는 곳으로 가라.

 

사라진 체계: 체계 없는 학원은 강사만 고생한다. 학생들 개별 진도와 개별 교재에 심지어 마치는 시간까지 다 다르다면 차라리 과외로 혼자 학생을 봐주는 게 육체적으로도 금전적으로도 낫다. 심지어 이런 경우 인수인계가 있어도 무용지물이며 인수인계도 없다면 당신은 내내 고생할 확률이 높다.

 

여러분의 조금이나마 편안한 근무환경을 꿈꾸며 모두 힘내기를 바란다.

 

 

[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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