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향, 기억, 행복: 슬리핑 듀(Sleeping dew)

행복했던 순간이 떠오르는 향
글 입력 2021.09.01 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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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향수를 몸에 뿌리면 얼마 지나지 않아 컨디션이 나빠지는 기분이 드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처음에 분사할 때는 그나마 괜찮지만, 이후 체취가 더해진 잔향이 내 기준에서 부담스럽지 않은 선까지 은은해지기를 가만히 기다리기 버겁다. 많은 경우에 속이 울렁거리고 두통이 동반되기 때문에. 따라서 나는 평소에 직접적으로 신체에 닿는 향수를 선호하지 않으며 향을 입고 싶은 순간에는 차라리 다소 옅은 향이 오래 지속되는 샤워젤이나 샴푸ㆍ린스를 택하는 편이다.


슬리핑 듀는 오브뮤트라는 향 전문 브랜드가 제작한 '멀티 퍼퓸’으로 이슬 맺힌 민트와 은방울꽃 향이 특징이다. 나처럼 후각적 자극에 몹시 민감하다면 이 제품을 사용해보면 어떨까. 오브뮤트 제품군의 최대 장점은 합성 혹은 천연향료의 비율이 섬세하게 조정된 덕분에 시중에 나와있는 완성형 향들에 비해 인위적인 느낌이 덜하다는 점이다.
 
또한 몸을 제외한 모든 곳, 가령 섬유, 침구, 사물 등에 자유롭게 적용하면 되며 혹시 모를 부작용에 대한 염려를 내려놓아도 된다. 지속시간만 숙지하고 있다면 충분히 취향에 따라 잔향의 정도를 조절할 수 있기에.

슬리핑 듀에 대한 구체적인 향 설명은 다음과 같다. 우선, 탑노트는 민트, 소나무, 각종 허브이다. 그리고 미들노트는 은방울꽃, 아침 이슬이며 마지막은 시더우드와 살결 같은 머스크로 마무리된다. 은방울꽃의 유래에 등장하는 님프의 수면을 방해하지 않을 만큼 자연을 닮았으며 편안한 향이라 이해하면 쉽다. 하지만 동일한 향이라도 가변성이 짙은 주관적인 요인들에 따라 상이하게 체감될 수 있으므로 직접 맡아보는 게 제일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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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나는 제품을 받고 나서 제일 먼저 섬유에 시도했는데, 최소한의 잔향을 좋아하므로 미들노트는 과감히 생략하고 라스트노트에 주력하였다.
 
방법은 간단하다. 섬유에서의 일반적인 지속시간이 3-5시간이라면, 2시간 반에서 3시간 전에 미리 향수를 뿌린 뒤 시간이 경과되면 그제야 옷을 착용하면 된다. 다행히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탑노트에서 미들노트, 그리고 미들노트에서 라스트노트로 순차적으로 넘어가지 않더라도 어찌보면 희미한 잔향만으로 왜 기꺼웠을까.

슬리핑 듀는 나로 하여금 전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그래서 더 아련한 초등학교 입학 이전을 떠올리게 한다. 이게 바로 프루스트 효과겠지. 누군가 내게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언제냐 묻는다면 7살때라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영어유치원을 졸업했는데 7살때 만난 원어민 담임선생님이 유난히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항상 날 무릎에 앉히고 토닥이며 내 감정을 가족만큼 세심히 돌보고 자주 웃게한 좋은 사람. 슬리핑 듀는 그분이 입버릇처럼 하신 말이 문득 연상되는 향이다. "Don’t be sad. Always be happy!"

향은 자기표현의 수단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감정과 관련하여 강력한 힘을 지닌다. 우리를 대단히 기쁘게 만들수도, 한없이 처지게 만들수도 있는 향. 그래서인지 호시절에 대한 향수와 함께 행복의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향에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끌리기 마련이다. 내가 머스크향을 상당히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예외적으로 슬리핑듀의 라스트노트가 괜찮았던 것처럼.

누군가는 행복이 사실 찰나와 같기에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해서 좌절하지 말고 묵묵히 받아들이라 말한다. 하지만 인생이 고통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내 안에 잠들어있던 행복의 파편들이 후각적 자극을 통해서라도 하나둘씩 합쳐져 완전한 모양이 된다면 반영구적 행복 상태에 가닿는 중이라 믿어도 되지 않을까.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드는 향이 많을수록 누군가가 한 말을 부정하는 셈이다. 포기하지 말고 향을 통해 행복해져요, 우리.
 
     
[신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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