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헤어 나올 수 없는 기억의 우로보로스 - 햄릿의 비극

글 입력 2021.09.04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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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해체는 참여진 모두에게 실로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제목만 얼핏 들어본 작품이면 모를까, 결말까지 익히 알려질 정도로 저명한 작품을 현시점에 맞게 재해석한다는 건 말 그대로 High Risk - Hig Return을 담보하고 있다. 잘해도 본전, 못하면 쪽박인 도박에 승부수를 건 또 다른 예술가들의 모험을 대학로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작품은 다름 아닌,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한 편, 햄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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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이란 말이 쓸데없을 만큼, 누구나 다 아는 고전으로서 햄릿의 재해석작이 8/28(토) 대학로 알과핵 소극장에서 열렸다. 극단 '적'의 야심찬 시도가 무대 위에서 말 그대로 폭발했던 해당 공연은 기존의 복수 서사 대신, 휘말리고 싶지 않은 운명으로부터 휘둘리는 인간들의 내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햄릿을 향한 또 다른 프리즘을 통해 원작에 제시되는 죽음을 애도되지 못한 형태로 묘사한 공연은 이를 통해 흡사 자신들의 욕망으로부터 희생당한 원작 인물들의 넋을 가리는 무대 위의 위령제를 상기시킨다.


햄릿의 야심찬 재해석 시도들은 시각적으로 두드러진 요소들을 통해 관객들의 뇌리에 강하게 인식시킨다. 각 인물들의 의상은 저마다 지닌 욕망의 특징을 색상으로 표출하는 듯한 인상을 다분히 풍긴다.

 

그 자체로 순수하면서도, 그로 인해 제때 행동을 실천 못하는 햄릿의 성격은 하얀색으로 드러나며, 자신의 남편을 살해했음에도 아내의 자리를 차지한 거트루드의 성욕은 빨간색, 그리고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음흉하기 짝이 없는 폴로니어스는 우울함이 감도는 파란색 옷을 장착함으로써 욕망이라는 관념을 직접 의인화 시킨 뉘앙스를 강렬하게 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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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상과 더불어 관객의 시각을 강탈하는 배우들의 전위적인 행위들은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 내면의 시간이 엉키고만 인물들의 혼란스러움을 대변하는 몸짓이다.

 

셰익스피어의 원작 대사만으로 재구성한 이번 작품은 긴 호흡이 필요한 기존의 대사들을 등장시키면서도, 현대적으로 새롭게 구성한 요소들을 통해 고전 서사의 독특한 해체를 주도한다.

 

원작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햄릿'과 '레어티즈'의 살벌한 펜싱 대결은 목숨이 오가는 분위기에 따른 긴장이 고조되는 씬이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탁구의 랠리를 통해 새롭게 묘사된다.

 

이를 암시라도 하듯, 무대 양옆에 위치한 '햄릿'과 '레어티즈'가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를 연상시키듯 관객들에게 죽음을 기억하라는 대사와 동시에 엄청난 양의 탁구공을 무대를 향해 투척한다.

 

대사를 제외한 원작의 빈틈없는 재구성은 단순히 무대를 향한 관객의 일방향적 시선을 방해하며 작품을 향한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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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의 기나긴 고난의 역사는 야심한 밤 성벽 위에서 맞이한 햄릿 왕의 영혼이 내뱉는 소리에서 비롯된다. 공기를 떠도는 유령의 한이 가득한 목소리는 '햄릿'에게 그날의 기억을 각인시키며 죽음과 인생 사이의 끊임없는 고뇌 속으로 그를 끌어당긴다.

 

<햄릿의 비극> 역시 이 같은 청각적 요소들을 적극 차용하면서도 '햄릿' 뿐만이 아닌, 욕망을 추구함에 따른 자기혐오와 죄책감, 그리고 분노로 이어지는 '거트루드'와 '클로디우스'의 파멸을 유도하는 수준으로 활용 범위를 넓혔다. 인물의 내면을 끊임없이 휘젓는 죽은 자의 기억은 그 자체로 혐오와 공포의 대상으로서 청각적 형태로 다가온다. 작품은 스피커를 통해서 소리가 유발하는 인물의 혼란을 관객이 직접 체험하게 만드는 듯한 효과를 발휘한다.


관객의 시청각을 자극하는 대담한 원작의 재구성은 관객의 상상과 연상을 통해 완성된다. 욕망의 희생자들을 미처 넋을 기리지 못한 채 이승을 떠돌며 인물의 귓가를 수시로 배회한다. 애도의 타이밍을 놓쳐버린 욕망의 연루자들은 그로 인한 고통에 몸부림치며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이들을 끊임없이 소환한다. 그 과정에서 기억의 서사는 인물의 무의식을 기반으로 하듯, 순서가 뒤바뀐 파편처럼 부지 부식 간에 무대 위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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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정연한 순서에 철저히 어긋나는 인물들의 혼란은 그 자체로 관객에게 혼란을 선사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들을 연민의 시선에서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싶다는 동정 어린 행위를 또한 유도한다. 그 과정에서 각자의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괴로운 기억을 인물이 회고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배우들의 열연은 이를 주도적으로 유도하는 대목이다.


대사를 중심으로 시청각적 요소를 복합적으로 활용한 <햄릿의 비극>은 작품이 끝나는 순간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시작된다. 인물들의 무질서한 기억은 어디서부터 이들을 바라봐야 하는지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내포하고 있다.

 

결국, 죽음으로 시작해서 다시 한번 죽음으로 끝나는 작품의 시작과 끝은 흡사 그리스 신화의 우로보로스를 상기시키는 참혹한 운명의 굴레를 연상시킨 채 형언하기 힘든 참담함을 부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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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을 제때 기리기도 전에 또 다른 이의 넋이 등장하며, 슬픔은 희석되기도 전에 또 다른 슬픔이 앞서가기라도 하듯 서둘러 등장한다. 욕망이 촉발시킨 잔인한 운명의 굴레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물들의 처지를 은유하는 햄릿과 거트루드의 자조 섞인 대사를 통해 관객의 폐부를 파고든다.


"슬픔이 또 다른 슬픔의 뒤꿈치를 밟아버렸네"

 

결국, <햄릿의 비극>은 기억하는 자들의 고통이라는 관념을 형상화 한 것에 다름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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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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