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아이의 신명나는 발 걸음 - 줄 타는 아이와 아프리카도마뱀

글 입력 2021.08.30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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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심정으로 시놉시스를 처음 마주했을 때 걱정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아동극에 등장하기엔 미혼모/자살이라는 요소가 너무 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조바심이 머릿속을 가득 맴돌았다. 첨언된 창작자의 의도는 분명 이해가 갔지만, 그럼에도 소재로 인한 작품의 자극 농도가 높아지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은 조명이 꺼지는 순간까지 이어졌다.


물론, 이 모든 걱정은 시기 상조였다는 걸 깨닫기까지 얼마 안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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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가 일곱 달 만에 탯줄을 끊고 세상에 나왔다. 칠삭둥이로 태어난 아이는 야속하게도 탄생의 축복을 함께할 부모의 부재를 겪는다. 하지만, 아이의 텅 빈 부모의 자리를 대신할 존재가 등장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아프리카 도마뱀?! 아프리카로 돌아가려는 도마뱀의 꼬리를 똑 떼어낸 아이는 엄마 아빠를 찾아주면 꼬리를 돌려주겠다고 생떼를 부린다. 그렇게 아이와 도마뱀의 기상천외한 줄타기 여정이 시작된다.


각자의 일터에서 하루하루를 벌어먹기 바쁜 여자씨와 남자씨가 어느 날 우연한 기회로 만남을 가지며 서로를 향한 연정을 가득 품는다. 하지만, 애정의 결과로 말미암은 여자씨의 출산 소식은 남자씨를 당황시키며 여자씨의 곁을 떠나게 만든다.

 

갈수록 불러오는 배를 감추며 마음 졸이던 여자씨는 결국 아이를 낳자마자 강물에 첨벙 뛰어든다. 누가 들어도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작품은 결코 우울한 정서를 내포하지 않는다. 텍스트로 접했을 때와 공연을 관람했을 때 완벽한 차이가 있는 작품이다.


앞선 조바심과 무관할 정도로, <줄타는 아이와 아프리카 도마뱀>은 남녀노소 모두가 쉽게 관람할 수 있는 창작 연희극이다. 우리의 인생을 환기시키는 줄타기를 메인 모티브 삼아 세상의 다층적 면모들을 익살스러운 분위기로 해석한다.

 

창작연희단체 '광대생각'의 유쾌한 퍼포먼스는 흥겨움을 돋우는 국악 사운드에 맞춰 기쁨과 슬픔이 수시로 오가는 인생을 해학적으로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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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사뭇 어둡다. 아무런 준비도 안 된 채 아이를 갖게 된 여자씨는 졸인 마음을 끝내 극복하지 못한 채 아이를 낳자마자 한강으로 투신한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강렬하게 상기시키는 인트로는 그 자체로 슬픈 정서를 내포하지만, 아이의 탄생과 동시에 이어지는 광대들의 퍼포먼스를 통해 분위기는 금세 반전된다.

 

상모와 꽃천으로 한껏 꾸민 광대들의 연희는 흥겨운 가락에 발맞춰 역동적이면서도 익살스러운 기운을 고조시킨다. 백미를 장식하는 아프리카도마뱀의 연희는 어른 아이 가릴 것 없이 관객들을 무장해제 시키며 광대들의 신나는 무대 속으로 자연스레 진입하게끔 유도한다.


작품의 메인 모티브인 줄타기는 그 자체로 관객을 즐겁게 해주는 퍼포먼스이자,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연緣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다. 줄타기 특유의 아슬아슬함은 그 자체로 박복한 우리네 일상을 묘사한다.

 

과제와, 서류 마감, 그리고 통장 잔고에 매일 쫓기면서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티는 박복한 일상은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내딛는 줄타기의 그것과 상당히 유사하다. 그렇게 팽팽한 줄 위에서 나 홀로 줄타기를 벌이는 누군가의 일상에 또 다른 줄이 묶인다. 인연이라는 이름하에 시작된 두 갈래 줄로 하나로 묶이기 시작한다.


아이의 순수함은 기쁨과 슬픔의 개념으로부터 아이를 자유롭게 한다. 이미 감정의 개념을 습득한 어른들의 입장에서는 어미 없이 자라게 될 아이의 처지를 슬퍼하지만, 아이는 그저 자연스러운 상황일 뿐이다. 작품의 기획의도에서 드러나듯, 아이들에게 삶과 죽음은 그저 발생한 일 그 자체일 뿐이다. 저마다의 상황에 따른 감정의 메커니즘을 배우지 못한 아이에게 이 모든 일은 자연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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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줄타는 아이와 아프리카 도마뱀>은 감정을 터득함으로써 육체적 독립에 이어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는 아이의 성장극으로 바라볼 수 있다. 도마뱀과 함께하며 자신의 부모님이 겪은 사연을 알게 된 아이는 죽음이라는 사건을 이해하게 된다.

 

곁을 지켜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은 어쩔 수 없이 수긍할 수밖에 없지만, 용왕과 삼신할미가 등장하는 클라이맥스를 통해 죽음을 넘어선 연의 가치를 부각시킨다. 연이라는 이름의 줄로 서로가 묶여있는 이상, 결코 나 혼자의 삶이 아니라는 것. 익살스러움은 아이들을 미소 짓게 하지만, 종국에 이르러 등장하는 교훈은 되려 어른 관객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든다.


미셸 공드리의 <키딩>에서 주인공 '제프'는 밝고 희망찬 내용으로 한정된 아이들 교육 프로그램은 결코 유익하지 않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개인적인 비극으로 인해 주인공의 극적인 심경변화에 따른 주장이라고 주변인들은 치부하지만, 죽음을 비롯한 인생의 어둡고 슬픈 면을 아이들에게 일부러 보여주지 않으려는 것 또 다른 의미에서 기만이라는 걸 주인공의 주장은 상기시킨다. 이는, 광대생각이 이번 연희극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기획의도와 맥을 같이 한다.

 

아이들이 결코 죽음을 모르지 않다는 점, 그리고 설령 죽음이 어둡고 슬픈 대상이라 하더라도 인간인 누구나 다 맞이할 수밖에 없는 생의 자연스런 순리를 이야기한다. 극 중 아이는 어머니의 부재를 통해 죽음을 실감한다. 죽음을 통해 아이는 되려 우울해지기는커녕, 죽음이 또 다른 탄생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순리를 깨달으며 정신적 성숙으로 나아가게 된다. 연희극은 누구나 맞이할 자연스러운 통과의례를 인생을 상기시키는 줄의 이미지를 통해 웃음과 감동이 공존하는 교훈극을 탄생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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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하게 걷다, 엉켰다, 꼬였다 등 인생을 수식할 수 있는 표현들 가운데 줄과 연관된 것들이 상당수다. 인생과 줄타기의 교접이라는 광대들의 재치 있는 발상은 그 자체로 재미난 퍼포먼스를 만들어낸다. 동시에, 줄에서 내려와 두 발로 바닥을 걷는 행위는 아이의 성숙을 환기시키는 또 다른 이미지다. 친절한 아프리카 도마뱀의 도움 덕분에 태어나면서 지닌 줄에서 내려와 바닥을 향해 발을 내딛는 아이의 이미지는 세상을 향한 누군가의 발돋움과 같다.

 

가야금과 해금을 기반으로 한 현악의 선율은 전통연희라는 장르에 기대할 수 있는 흥겨움이 돋보인다. 더불어, 젬베, 카혼 등 아프리카 민속 악기를 활용한 토속적인 사운드는 아프리카도마뱀의 코믹한 캐릭터성을 더욱 부각시키며 국악 사운드와도 절묘한 시너지를 발휘한다. 신명나는 사운드와 익살을 잃지 않는 광대들의 연희가 한데 어우러진 줄타기 한 마당은, 철이 든 어른부터 아직 보고 배울게 많은 아이 관객 모두의 마음을 완벽히 사로잡는다.


긴말 할 것 없이 관객석에서 흘러나오는 아이들의 구김살 없는 웃음소리가 이를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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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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