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는 반쪽짜리 진실만 볼 수 있나요? [영화]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 여덟 살 양양의 이야기
글 입력 2021.08.24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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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이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느꼈던 것은 청동으로 조각된 인체를 처음 보았을 때였다. 전시장의 조명 아래 조각은 울퉁불퉁 불규칙적인 근육을 노출하고 있었다.


생각에 잠겨 있었던 조각은 심오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그렇다면 분명 이 얼굴이 더 많은 말을 하고 있어야 할 듯 싶은데 그 조각은 그렇지 않았다. 심오한 얼굴보다는 곡선을 이루며 굽어 있는 등, 뼈 모양을 따라 살가죽이 덧대어져 있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 등이 더 많은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날 이후로 조각을 보게 되면 얼굴보다 등을 더 오래 보았고 그 ‘반쪽’이 하는 말들을 읽으려고 했다. 한 가지 면만 본 것으로 이 조각에 대해 알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 영화 <하나 그리고 둘>에도 앞면을 보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는 반쪽 짜리 진실을 궁금해하는 여덟 살 양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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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각자의 눈에는 보이는 게 서로에게는 안 보이나 봐요. 두 사람 다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NJ: 그건 생각 안 해 봤는데… 카메라로 찍어 보렴

양양: 우리는 반쪽짜리 진실만 볼 수 있나요?

NJ: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양양: 앞만 보고 뒤를 못 보잖아요, 반쪽짜리 진실만 보는 거죠


 

‘나이에 맞지 않게’ 성숙한 대사들을 뱉는 듯 보이는 이 아이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진실에 관심을 갖는다. 조금만 방향을 틀어 살피면 될 것 같은데 사람들은 방향을 틀지 못하고 각자의 눈에 보이는 것만 본다. 양양이 궁금해하는 것은 결국 그런 것이다. 왜 우리는 앞면과 뒷면, 그 모든 면을 보지 못하고 엇나가나요.


영화에서 양양이 하는 일은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그 반쪽 짜리 진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양양은 아빠인 NJ에게 선물 받은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쏘다니며 사람들의 뒷모습을 찍고 그 뒷모습을 인화해 선물한다.

 

사실 양양이 사진을 주는 것은 볼 수 없는 모습을 선물하는 것이라기보단 놓치기 쉬운 것들을 놓지 않도록 돕는 행위에 가깝다. 이런 양양에게 앞과 앞이 만나는 것은 충분히 서로를 ‘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반쪽 짜리 진실들이 맺는 관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하필 조각의 등이고, 왜 하필 사람들의 뒷모습일까. 결국 앞이 아닌 뒤를 보겠다는 선택을 하고야 마는 것은 매일매일 얼굴(앞)을 마주한다 할지라도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양양은 더 알고 싶어 하고, 무언가를 행동으로 옮겨 보려 한다.

 

양양은 별말 않고 뒷모습을 촬영해 보여 주지만 볼 수 없는 ‘반쪽 짜리 진실’을 본인에게 직접 보여 준다는 것은, ‘이번에는 직접 당신이 나에게 당신의 볼 수 없는 반쪽을 말해 달라’고 바라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사진으로 남기면 당신은 스스로의 얼굴과 동그란 뒤통수를 모두 볼 수 있게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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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안에서 일상적으로 삶을 꾸려 가는 인물들을 그린다. 이때 양양은 영화에 등장하는 등장 인물이자 다른 인물들을 직접적으로 관찰하는 위치에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성숙한 기질을 갖고 있는 어린 아이가 관객들에게 툭 던지듯 커다란 울림을 주는 메시지 전달 방식은 이제 와서는 참신할 것이 없지만 그럼에도 양양의 행동과 말은 와닿고야 마는 것이 사실이다.


양양이 찍어 둔 사람들의 뒷 모습을 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등은 등일 뿐인데도 나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 같다. 또는 두터운 얼굴 아래 겨우 숨겨 둔 반쪽 짜리 진실들을 차마 등은 숨기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때로 사람들의 등은 얼굴보다 솔직하다.

 

 

사람들에게

그들이 모르는 걸 알려 주고

그들이 볼 수 없는 걸 보여 주고 싶어요.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의 장례식장에서 양양은 할머니에게 말한다. 그들이 모르는 걸 알려 주고, 그들이 볼 수 없는 걸 보여 주고 싶다고.

 

양양 같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것 같아서 닮고 싶어지고 또 만나고 싶어진다. 닮고 싶었다가 만나고 싶어지는 이 마음은 결국 누군가의 반쪽을 읽어 주고자 하는 마음과 누군가 나의 반쪽을 읽어 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모두 연결되어 있다.


다시 양양처럼 물어본다. 우리는 반쪽짜리 진실만 볼 수 있나요. NJ는 얼버무렸지만 양양을 보다 보면 그 물음에 어떤 대답을 해 줘야 할지 알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낀다. 반쪽짜리 진실도 겨우 알까 말까 한 하루들 사이에서도 남은 진실을 주우려 하는 사람들은 있다. 지금처럼 등을 읽고 셔터를 누르다 보면 반쪽짜리 진실에서 끝나지 않을 이야기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나 그리고 둘>에서 양양이 전하는 희망은 그런 것이 아닐까.

 

 

[박이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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