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 오래 울려 주기로 해 - 도서 '아트인사이트 Vol.1'

글 입력 2021.08.24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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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영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넷플릭스 드라마 <좋아하는 울리는>을 보면서 궁금했던 것. '좋아함'이라는 감정 혹은 느낌은 도대체 무엇일까?

 

누군가를 좋아하면 앱 '좋알람'의 알림의 울리는 드라마 속 세상은 '좋아함'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감정을 눈앞에 가시화하며 '좋아함'이 가진 모호함을 0과 1의 세계에서 측정하고, 알림이라는 기호로 간단하게 축약해 버린다.

 

작품의 장르가 로맨스인 까닭에 분명 그 '좋아함'이란 에로스적 사랑에 다름 아닐 테지만, '좋아하면 (알람이) 울리는' 세상을 상상했을 때는 이런 질문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면 어떨까? 알람을 울릴만한 수적인 정량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그것을 채우지 못했을 때는 '좋아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아니 애초에 '좋아함'이라는 것이 계량할 수 있는 것일까?

 

만약 드라마 속 세상의 '좋아함'이 에로스적 사랑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면, 또 그 대상 역시 사람에 한정되지 않았다면, 앱의 알람은 귀가 따갑도록 쉴새 없이 울려 댔을 것이라 확신한다. '좋아함'은 어쩌면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우리의 일상 속에서 무수한 소리로 존재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있는 38개의 목소리도 그 수많은 가운데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파동이었을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방식'이라는 주제로 '좋아함' 그 자체와 그를 '좋아하는' 자신에 관해서 탐구한 38인의 목소리는 좋아함이 가진 모호함을 실체화하고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좋아하면 울리는 소리'에 다름 아니다.


*

 

책은 좋아하는 대상과 좋아하는 방식, 그리고 그것이 내 삶에 주는 의미를 각자의 시선으로 담아낸 글로 이루어져 있다. '좋아함'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내밀할 수밖에 없기에 사유와 언어는 당연히 글쓴이 고유의 것들이다. 저마다의 삶 속에 있는 '좋아함'과 방식, 그리고 나 자신을 연결하려 한 흔적들이 엿보인다.

 

그중에서도 대상에 상관없이 좋아하는 방식이 자세하고 진솔할수록 글이 재미있게 느껴진 것은 고유한 경험이 만드는 힘 덕분이다. 내가 알만한 것을 좋아하더라도 빤한 드라마가 아닌, 예사롭지 않은 이야기로 다가오는 것. 이는 경험의 디테일이 만들지 않나 생각한다.

 

 

어떤 것을 좋아한다는 것. 그리고 어떤 것을 좋아한다고 기록하는 것은 틀림없이 누군가의 삶을 지탱한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말이다.

 

(조현정, 「좋아함의 기록」 中)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 이다혜 작가의 지적대로 "듣기보다 말하고 싶어 하고, 읽기보다 쓰고 싶어 하는"(이다혜,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위즈덤하우스, 22p) 오늘에 남이 좋아하는 것과 그 방식, 그것도 마흔 개에 가까운 각자의 '좋아함'을 한꺼번에 듣는 것은 다소 힘들 수 있겠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쉬지 않고 듣는 것도 적잖은 에너지를 요구하니 말이다.

 

다만 일상 속에서 우리도 모르는 채 사라져가는 작은 파동들.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 그것을 좋아하는 방식, 그리고 그것이 내 삶과 관계를 맺는 방법을 듣지 못하고 살아가는 '좋알람' 없는 세상 속에서 이 저마다의 좋아함에 대한 기록들은 그 파동을 잡을 주파수가 되어 주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책 속 어느 글쓴이의 말처럼 좋아한다는 것과 그것을 기록하는 방식이 누군가의 삶을 지탱해 준다고 했을 때, 책을 읽는 누군가 역시 그 타인의 좋아함을 읽으며 삶의 일부분을 지탱할 수 있지 않을까. 듣는 사람이 소리에 지치지 않도록, 말하는 사람이 좋아함을 포기하지 않도록 바라는 사람으로서 주제넘은(?)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이것이다.

 

가능한 천천히 읽어 주시길, 그리고 부디 오래 울려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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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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