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코로나 시대의 안부 묻기

글 입력 2021.08.24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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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나갈 때면 언제나 마스크를 챙긴 지도 1년 반이 넘어가고 있다. 마스크 없이 다니던 날이 마스크와 함께한 날보다 아직은 훨씬 긴데도 그 날들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일상을 되찾기를 바라던 시간을 지나 점점 코로나19와 함께하는 것이 새로운 일상이 되어가는 2021년 한중간에 안부를 묻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또 어떻게 가능할까.

 

 

여덟 편의 안부 인사 앞표지.jpg

 

 

『여덟 편의 안부 인사』는 하명희, 조해진, 임솔아, 이승은, 오수연, 박서련, 권여선, 강영숙 여덟 작가의 소설을 엮은 책이다. 보통 여러 작가의 작품을 모아 책을 낼 때면 으레 작품들을 묶는 테마가 있기 마련인데, 이 책은 그런 테마가 없다는 게 특징이다. 머리말에 따르면 테마는 정하지 않고 작품을 엮었고, 소설의 상상력이 빚어내는 참신한 이야기들이 어려운 시기를 보내는 독자들에게 따뜻한 안부 인사가 되기를 바란다고. 여덟 편의 소설이 안부 인사를 건네는 방법은 제각각이지만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여서일까, 자연스레 이어지고 공유하는 정서가 있었다.

 

첫 번째로 실린 소설, 하명희 작가의 「십일월이 오면」은 어머니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화자는 어머니를 잃고 어머니의 비밀을 얻었다. 한 사람의 삶은 종종 그 삶의 주인이 죽은 후에야 다른 사람에게 보다 온전하게 드러난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은 또 다른 시작이다. 일부러 그렇게 엮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마지막에 실린 강영숙 작가의 「남산식물원」도 죽음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십일월이 오면」의 죽음이 죽은 사람의 비밀을 알게 되는 단서였다면, 「남산식물원」의 죽음은 제대로 무르는 것투성이라 계속 덮어두었던 상처에 가깝다. 화자는 친구의 죽음으로부터 10년이 지난 다음에야 용기를 내 그 실마리를 찾아보려 한다.

 

한 사람의 죽음이 중심이 되는 처음과 끝의 두 소설 사이에는 지금 이 시대를 치열하고 생생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특히 조해진, 임솔아, 박서련 작가는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담아낸다.

 

조해진 작가의 「혜영의 안부 인사」는 일을 하는 사회초년생이라면 공감할 만한 이야기이다. 대학생때 가지고 있던 이상은 현실에 부딛혀 조금씩 색이 바랜다. 자기 자신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을 할 뿐인데 오히려 그 일이 자신을 갉아 먹어 원치 않는 모습으로 변해가는 인물들의 모습이 절절하게 와닿는다. 임솔아 작가의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에도 비슷한 또래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조해진 작가의 작품이 일을 중점에 두었다면 임솔아 작가는 변해가는 인간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우리는 계속 변하는 존재이기에 이전의 관계가 동일하게 지속될 수 없다. 그런 당연한 것을 깨닫는 순간은 때론 갑작스럽게 들이닥친다. 앞의 두 작품이 다소 정적인 분위기였다면, 박서련 작가의 「A Queen Sized Hole」은 상대적으로 유쾌한 톤으로 이 시대 청춘의 삶을 그려낸다. 박서련 작가 작품 특유의 분위기를 좋아한다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오수연 작가의 「솥」은 독특한 소설이다. 영생을 꿈꾸던, 알려지지 않은 군주 '장광제'를 주인공 삼은 괴이한 이야기를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와 병치시킨다. 한편, 코로나19라는 특수 상황을 잘 녹여낸 소설도 두 편 있다. 이승은 작가의 「피서본능」과 권여선 작가의 「기억의 왈츠」이다.

  

특히 「피서본능」은 시작부터 '비오는 날 산등성이에 있는 국도에서 차가 고장 난 3인 가족'이라는 흥미로운 설정으로 주의를 집중시킨다. 여기에 팬데믹이라는 상황까지 더해져 갈등이 심화된다. 비가 쏟아지는 날 외진 산속 도로에서 차가 고장 나 오도 가도 못 할 때 마침 다른 차 한 대가 지나가는데, 그 차 안에 막 요양병원에서 퇴원한 듯한 할머니가 타고 있는 식이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는 있지만 서로 눈치를 보게 된다. 다른 때라면 별 문제 없을 상황도 이런 시국에는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권여선 작가의 「기억의 왈츠」는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던 화자의 과거와, 그런 과거에 화자와 어긋나버린 사람의 이야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풀어놓는다. 화자가 자신의 과거를 그렇게 세세하게 기억해낼 수 있었던 까닭은 다름이 아니라 그가 은퇴 후 코로나 상황을 맞이해 다른 때보다 긴 시간 동안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여덟 편의 작품 중 지금의 팬데믹 상황이 반영된 것은 두 편이었지만, 읽으면서 다른 작품에도 지금의 상황을 대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전개되기 어려운 작품들도 있어 보인다. 지금의 상황이 더 오래 계속된다면 어떤 소설이 등장할까. 몇 달 전에 작가님이 진행하는 소설 수업을 들었는데, 그때 작가님이 새로 쓰는 소설에 지금 상황을 반영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고 하셨던 기억이 떠오른다. 소설은 언제나 현실을 반영하므로 팬데믹 상황이 기본값이 된 작품들이 늘어날지도 모르겠다. 코로나19와 함께하는 날이 길어질수록 그 이전의 소설들, 특히 축제를 배경으로 하거나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는 이야기들이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을까?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기억들이 놀이터의 흙바닥 위로 우당탕탕 쏟아졌다. 그리고 흔적도 없이 깔끔하게 휘발됐다. 그때의 아란과 문경은 이제 사라졌다. 

 

-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 임솔아, 96쪽

 


작품들 속 인물들은 팬데믹을 경험하고 있지는 않지만 모두 무언가를 잃어버렸다. 가까운 사람이 죽거나 오래된 사람들과 연락하는 것이 어색해지고 꿈과도 멀어졌다. 나 하나를 책임지며 살아가는 것도 버거운 날들이다. 그래도 절망하지만은 않는 이들의 모습은 희망을 준다. 무언가가 나아지거나 좋아져서 오는 희망이 아니라, 여기까지 왔는데 다음을 못 버티랴 하는 데에서 오는 희망이다.

 

 

아직 희망은 있다. 내가 팔십오 세까지 산다면 육십 년마다 돌아오는 진정한 왈츠의 날을 다시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 어둠이 내리고 잿빛 삼베 거미줄이 내 위에 수의처럼 덮여도 나는 더는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기억이 나를 타인처럼, 관객처럼 만든 게 아니라 비로소 나를 제자리에 돌려놓았다는 걸 아니까.

 

- 「기억의 왈츠」, 권여선, 242-243쪽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면서 살아가는 것은 현실의 우리나 소설 속 인물들이나 마찬가지다. 어느 시대에나 어떤 상황이나 나름의 어려움이 있으니. 소설 속 그들이 우리에게 안부를 묻는다면 그래도 괜찮게 지낸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전염병을 견디는 이 시간도 소설로만 남기를, 지금 닥친 현실이 아니라 멀리서 회상할 수 있는 시기가 되기를 마음속으로 바라 본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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