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인생'이라는 이름의 놀이동산 - 빛과 그림자의 판타지 展

글 입력 2021.08.20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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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7살이었던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산타 모자를 쓰고 놀이동산에 다녀왔다. 그리고 2021년 여름이 떠나고 가을이 오는 길목, 서른 중반의 나는 또 한 번 부모님과 놀이동산에 다녀오게 되었다. 그곳은 바로 '동양의 디즈니'라 불리는 세계 유일의 98세 카게에(그림자 회화) 거장 '후지시로 세이지' 전이었다.

 

"카게에 제작은 모든 것에 빛을 비추고 생명을 불어넣는 수작업이다. - 후지시로 세이지"

 

에도의 우키요에는 유럽의 많은 인상파 작가들을 매료시키며 모네, 르누아르, 드가, 그리고 고흐의 작품 속에서도 등장한다. 19세기 중/후반 유럽 미술사조에 영향을 미친 자포니즘은 서양 예술가들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동양 미술의 환상이자 피조물이었다. 그리고 21세기, 지금 일본에는 한 세기를 향해 진보하고 있는 광영(光影)의 회화, 광채(光彩)의 회화 '카게에'가 있고, 세계 유일의 카게에 거장, 걸작 작가로 남을 후지시로 세이지가 있다.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는 장르인 '카게에(かげえ)'는 '그림자 그림, 그림자놀이'라는 뜻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잘라 셀로판지를 붙이고, 조명을 스크린에 비추어 색감과 그림자로 표현하는 독특한 장르의 작품을 말한다. 카게에는 라이팅 간판의 효시이며, 버스 정류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라이팅 광고 매체의 모티브라고 할 수 있다.

 

 

 

환상과 모험의 나라로 다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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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전경)

 

 

"여기 예술의전당은 근처 도로변에서 운전은 많이 했지. 내가 안에 들어와서 본 것은 처음이네. 우리 딸 덕분에"

 

올해 환갑이신 나의 아버지께서는 전시 관람은 처음이라고 하셨다. 집을 나서면서 부터 어떤 옷을 입고 가야 하는지 살짝 긴장한 모습을 보이시기도 했다. 마치 이전의 놀이동산 경험에서 내가 그랬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부모님 두 분의 얼굴에서 약간의 기대감이 엿보였다.


전시장에 도착하니 희망, 사랑, 공생을 주제로 한 동심 가득한 작품들과 성화를 포함한 160여 점의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다섯 군데에 설치된 수조와 모니터를 통해 끝없이 펼쳐지는 환상 세계는 마치 다시금 부모님 손을 잡고 놀이동산을 뛰어다니는 '꼬마 은미'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실제로도 그만큼 전시 구성과 전시 관람 동선이 아주 친절하게 안내되어 있었다. 작품 감상에 있어서 남녀노소 누구든 방해받지 않고 쾌적하게 작품 감상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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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전시장 입구)

 

 

 

'아름다움'에 대하여 묻다



"아름다움은 내 안에 있는 자신감의 표현이야!"

 

전시장을 향하는 차 안에서 부모님께 문득 여쭤보고 싶었다. 이어진 부모님의 말씀에 나도 동의한다.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우리가 모두 가지고 있다. 하지만 때때로 "나는 전시가 뭔지 몰라, 그림은 어떻게 보는 거야?"라는 질문을 받곤한다.

 

나는 그럴 때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대답한다. "작품을 보고 느끼는 방법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그 앞에 서 있는 본인의 몸과 마음에 집중해보시겠어요? 어떤 생각과 느낌이 드시나요. '작품'이라는 것은 그저 우리 내면에 있는 요소들을 발견하는 '촉진제'의 역할이랍니다."


1924년 도쿄 출생의 후지시로 세이지의 일상에는 늘 인형극 주제와 그것을 세상에 표현하는 영사기가 함께 했다. 10대부터 남다른 재능으로 일본의 독립미술협회전, 국화회전, 춘양회전, 신제작파전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은 바 있다. 1949년 요미우리신문사가 주최한 [일본 앙데팡당전] 첫 회부터 몇 차례 출품을 한 실력가였으나, 그는 홀로 걷는 길을 택했고 이후 카게에에 전념하며 그 방면에 독보적인 존재로 거듭났다.

 

그의 작품은 NHK 방송 개국 시험 방송에서부터 방송 콘텐츠의 큰 역할을 담당하며 대중에게 깊이 스며들었고 수많은 기업에도 사랑을 받아왔다. 수차례의 국가 훈장과 명성 높은 예술문학상을 받았으며 98세인 지금도 폭넓은 작품 활동으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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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와 아기토끼와 고양이1 (사진_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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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내부_양파와아기토끼와 고양이 (사진_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98세의 후지시로 세이지가 가장 자신 있었던 것은 '빛'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게 하는 '그림자' 또한 그렇다. 그가 평생 가장 자신 있는 매체를 통해 '삶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했다. 아이들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은 늘 사람들 곁에 머무르며 기쁨과 즐거움, 공감과 위로의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이러한 그의 작품은 나에게 '내가 가장 자신 있는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했다. 지금 생각하기에 그것은 바로 '사람과의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고민하고 연구한다. "가장 나를 나답게 표현할 수 있는 매체, 방법은 어떤 것일까?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감정을 주고받고 싶다. 삶이 허락하는 날까지는 이처럼 아름답고 풍요로운 삶을 함께 나누고 싶다."

 

 

 

빛과 그림자는 인생 그 자체, 우주 그 자체



"나는 빛과 그림자로 자연의 아름다움, 생명의 존엄함을 그려가고 동시에 인생을 그려가고 있다. - 후지시로 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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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내부_캐로용 (사진_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이번 전시회는 원래 작년에 선보일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취소되어 올해 개최되었다고 한다. 후지시로 세이지가 '생애 마지막 전시'로 여기며 하루 7시간 이상 작품 제작에 열정을 쏟아 온 힘을 기울여 준비했으며, 특히 한국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잠자는 숲>을 만나볼 수 있었다.


'모노크롬'의 실루엣에서 찬란한 색채의 향연으로 이어지는 빛의 축제. 마치 후지시로 세이지의 인생이, 그리고 우리의 현재 삶을 빛내고 있는 듯한 그의 '카게에 향연'을 뒤로하고 부모님과 나는 다시 일상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나는 그림 같은 것 볼 줄 모르는 사람이야. 그런데 내 마음에 정말 귀한 작품이란 것은 느껴져! 그동안 인생을 살아오면서 엄청 대단한 것을 봤어, 내가. 그것도 우리 가족과 함께 말이야."

 

작품의 향연을 뒤로한 채 아버지를 모시고 문득 출구로 향하기 전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카게에 작품 앞에 나란히 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부녀의 모습을 멀리서 흐뭇하게 보시는 어머니의 오랜 시선이 느껴졌다.


약 30여년 만에 부모님과 함께한 '후지시로 세이지의 카게에 놀이동산'. 내가 어린아이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매 순간 나를 비추던 빛이 있다. 가족과 함께했던 아름다운 일상의 기억들이 이제는 나를 단단히 감싸고 있다. 이제는 부모님 손을 잡고 놀이동산에 갈 수 있는 나이는 지났지만 나는 또 한 번 그날의 빛을 기억할 것이다. 때때로 살아가면서 또다시 어둠 속에 정체되어 있을지라도 그림자가 있다는 것은 어딘 가 빛 또한 있다는 의미이기에.

 


 

늘 함께 했지만 다시금 비추는 '빛', 그리고 '그림자'


 

"내가 살아 생전에 일본에 가족과 함께 다시 가 볼 수 있을까."


부모님은 4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 오사카로 떠났던 첫 가족 여행을 때때로 웃음 지으며 떠올리곤 하신다. 훗날 부모님과 함께 일본 도쿄 도치기현에 있는 '후지시로 세이지 미술관'에 함께 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아빠, 우리 같이 카게에 그림 함께 봐요. 그리고 엄마, 도치기현 특산품이 딸기래요. 가장 좋아하는 과일을 입에 꼭 넣어 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그때도 저는 여전히 건강한 두 분의 웃음을 다시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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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의꿈 (사진_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후지시로 세이지의 카게에 놀이동산의 빛은 어린 시절 부모님과 늘 함께하고 싶었던 나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꺼지지 않고 빛날 것이다. 여전히 꼬마 은미는 항상의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었던 아빠의 목마에 올라타고 있음은 지금도 변함없지만, 동시에 이제는 성인이 된 나와 함께 손잡고 세상이라는 놀이동산으로도 힘차게 나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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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0여년 만에 '인생'이라는 이름의 놀이동산 티켓을 다시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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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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