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모르는 이의 이면을 듣다 - 편집자의 세계 [도서]

글 입력 2021.08.1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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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의 할 일은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 일”

 

 

본격적 여름이 시작되기 전, 광화문에 방문하며 교보빌딩에 위치한 현판을 읽었다. 푸른 색감의 현판과 ‘그늘’이란 단어는 내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기 알맞았다. 무더위가 찾아오고, 잠깐만 걷더라도 땀이 나고, 매미가 엄청나게 울어대기 시작하며 이 글이 마음 한구석을 들쑤셨다. 누군가의 이면에 무뎌진 나에게, 내 기분이 우선인 나에게, 모르는 것의 그늘을 읽는 일이 조금씩 스며들었다.


엄청난 더위가 한 층 꺾이고, 여름의 끝자락에서 나의 여름을 돌아본다면 외면하지 않기 위해 애써본 여름이었다. 이에 대한 약간의 증거를 덧붙여본다.


첫 번째로 비판과 비난에 대해 다시 뒤돌아본 여름이었다. 누군가가 잘못한 일에 대하여 내 의견을 덧붙일 때 비판 대신 종종 비난과 조롱을 하곤 했다. 비판과 비난을 헷갈리지 말 것이라는 구절을 책에서 읽었는데, 무지하던 나의 모습을 떠올리며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매미에 대한 생각을 떠올려본 여름이었다. 나는 매미를 싫어했는데, 매미가 배를 드러내 놓고 죽어있는 모습이 징그러웠고 매미가 우는 소리는 시끄러웠기 때문이다. 매미의 생을 가만히 살펴보자면 매미는 오랜 기간 땅에 머물다가 성충이 된 이후에는 한 달 남짓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 일생의 대부분이 유년기인, 성충의 과정은 매우 짧은 매미의 생을 공감하다 보니 더는 거슬리지 않았다. 나무에서 주차장으로 떨어진 매미를 풀숲에 옮겨주며 모두 생의 목적을 이루기를, 조금은 편안한 죽음에 이르기를 바랬다.


마지막으로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 여름이었다. 이는 두 권의 책으로 접했는데, 한 권은 특수청소부의 에세이인 ‘죽은 자의 집 청소’와 의사로 근무하며 더 나은 죽음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쓴 ‘삶의 마지막까지, 눈이 부시게’이다. 죽음과  연관된 두 직종에서 바라본 죽음의 의미와 나의 죽음에 대해서도 유의미하게 생각해보는 기회였다.


이번 여름의 마침표가 될, 이면을 듣는 일의 끝은 ‘편집자의 세계’이다. 기고를 시작하며 책을 읽는 것이 취미가 됐다. 소설, 에세이, 전문 서적 등 여러 분야를 읽는다. 그런데 정작 그 책들의 공통점이었을, 책을 출판하기 위해 필수인력인 편집자의 역할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알던 것은 책의 교열과 교정을 하는 극소수의 일이다. 편집자는 책을 만들며 어떤 마음가짐을 가질까, 이 책을 통해 앞으로 읽을 책의 가치가 더 높아지지 않을까, 여러 기대를 머금으며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편집자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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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책은 미국문화를 이끈 15명의 편집자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출판사에서 활자매체를 다룬 편집자를 소개한 책이다. 작가는 편집자를 “화려한 무대 뒤에 숨은 이름 없는 별들”이라고 한다. 이 이름 없는 별들을 “이 세상에서 다시 없을 보람 있고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말한다. 작가가 편집자를 매력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이유 역시 작가도 편집자였기 때문이다.


고정기 작가는 한국 출판의 편집자 1세대이다. 그의 첫 직장은 월간 여성잡지 <여원>이며, 이후 <월간중앙>, <여성중앙>, <주부생활>에서 편집자로 활약했다. 본 책은 작가의 정체성이던 편집자를 소개하며 미국 편집자의 이야기를 함께 담아낸 책이다.


책은 편집자의 다양한 역할을 소개하며 교정과 교열의 업무만을 생각했던 편협한 시각을 일깨워줬다. 특히 편집자의 생을 중심으로 일화를 소개하는데, 출판뿐이 아니라 인생에 있어 어떤 태도를 갖췄는가를 알 수 있다. 이에 집중해 본 글에서는 일부분만을 소개했으나, 책에는 더욱 다양한 편집자의 세계가 수록되어 있다.


*


나는 대인 관계에 있어 관심이 적은 사람이다. 곁에 사람이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고, 예전에는 주는 만큼 나에게 돌아와야 한다는 부끄러운 관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리고 미숙한 태도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죄책감을 가져다주었다. 이러한 생각은 타인에 대한 관심을 줄어들게 했다.


나에게 다시 대인 관계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던, ‘파스칼 코비치’의 이야기다. 그는 존 스타인벡의 편집자로서, 스타인벡은 그를 아버지이자 어머니이며, 교사이자 악마 그리고 신, 나의 합작자이자 양심이었다고 말한다.


파스칼 코비치는 출판 편집자로서, 작가들과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특히 스타인벡에게는 정신적 지주의 역할을 했다. 스타인벡이 상업적으로 실패하던 시절에 그의 작품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했으며, 이후 코비치가 다른 출판사로 옮기더라도 자신에 대한 믿음과 지지로 인해 그는 코비치와 계속 함께한다. 이를 증명하듯 ‘에덴의 동쪽’은 코비치와 합작으로 쓴 소설로, 그들의 우정의 증표이다.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 이 정도로 유일무이한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직면하니 이들의 관계를 동경하는 마음도 들었으나, 그 마음도 잠시 나를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지지했는가. 그 전에 누군가에게 지지할 사람도 아니었던 나였다.


자신이 좋은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되면 좋은 사람이 되는 과정에 한 걸음 가까워진다고 한다. 이 말의 힘을 이 책과 더불어 깊이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좋은 사람이 함께하도록,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마음가짐을 해본다.


*


이번에는  <마드모아젤> 잡지의 편집장이었던 ‘벳시 블랙웰’이다. <마드모아젤>은 지적인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패션과 멋, 단편 소설, 재치있는 광고를 실은 잡지이다. 고정기 작가 역시 여성을 타깃으로 잡지를 출간했으니, 이 대목에 더욱 정성을 쏟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벳시 블랙웰은 잡지를 출간하며 참신한 시도를 이루었는데, 여성의 직업과 여성의 교육이나 대학 문제, 출산, 육아에 이르기까지 젊은 여성이 직면한 문제에 해답을 제시하며 당시 여성들의 안내자가 되기 위해 힘썼다.


 

“우리들은 지적인 젊은 여성을 위해서 모든 면에 걸친 안내자가 됩시다. 그녀들의 철학자가 되고 그녀들의 친구가 됩시다. … 생활의 모든 분야에 있어서 고상한 취미를 그녀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벳시 블랙웰은 사회상을 통찰하고, 이를 잡지에 빠르게 반영하며 독자들의 요구를 충족했다. 지금으로서는 사회상을 읽는 일이 당연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당시에 선구자로서 앞서가는 역할을 자처하면서도, 이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추구하며 사회를 이끌었다.


*


마지막으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윌리엄 타그’의 대목이다. 편집자를 꿈꾸는, 혹은 편집자를 꿈꾸지 않더라도 인상깊게 읽을것이다. ‘윌리엄 타그’는 유능한 출판인으로 어릴 적부터 책에 대한 관심이 높았으며, 이러한 관심은 성인에 이르러 그를 편집자로 이끈다. 마치 그의 일생을 따라가듯, 아침부터 잠들기 전까지의 일상이 자세히 수록되어 있다. 그의 일상 중에서 다음은 나에게 가장 인상 깊던, 그리고 공감이 깊던 문장이다.


 

“잠들기 전에 오늘 하루를 반성하고 내일 아침의 편집 회의를 생각한다.”

 


요즘 ‘미라클 모닝’의 유행에 따라 일찍 일어나지는 못하더라도, 다음 날 일을 전날 미리 계획하는 마음가짐이 다음 날의 성공으로 이끄는 데 수월하다고 하여 이를 실천하고 있다. 오늘 하루를 반성하고, 내일을 계획하는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끈다. 좀 더 나은 내가 되길 바라는 것은 그저 공허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반성을 토대로 다시 계획하는 작은 실천만으로도 다음 날의 나는 좀 더 나은 내가 된다.


이외에도 편집자가 하는 일과 주의해야 할 점, 에티켓에 대해 자세히 저술되어 있다. 그는 편집자의 주요한 자격을 ‘주선하는 능력’에 있다고 말한다. 편집자의 역할을 총망라하며, 매개자의 역할을 더욱 충실히 수행하며, 인간관계를 보다 원만히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편집자는 원고의 교정과 교열의 업무만을 수행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원고뿐 아니라 책과 출판사와 작가, 인간관계 등 모든 방면에 있어 수리하고 고치는 일을 행하는 이들이었다.


편집자의 세계를 알아가기 위한 시작이었으나, 책이라는 매체에 대한 나의 마음가짐도 다시 할 수 있었다. 활자로서 기록된 것은 절제돼 보이지만, 내 안에서 다시 곱씹으며 읽어가므로 어쩌면 가장 살아있는 매체 같다. 이렇게 황홀한 세계를 만들어가는 이들을 칭송하며, 편집자의 세계가 더욱 넓어지길 바라본다.

 

 

[임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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