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배려는 기만이다: 캠프 엑스레이 [영화]

카페에서 영화 마시기, 네 번째 잔.
글 입력 2021.08.16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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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여럿이 모인 사회에는 갈등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작게는 개인 대 개인의 갈등부터 크게는 종교 대 종교, 국가 대 국가까지 그 크기는 다양하다. 갈등은 사람에게 정신적인 상처 또는 육체적인 상처를 동반한다. 전쟁은 사람의 목숨을 쉬이 앗아가고, 종교 박해는 수많은 사람을 좁은 우리 속에 가둔다.

 

이러한 세계에서 인류는 어떻게 갈등을 해결할 수 있을까? 사실 필자는 '세계 평화'란 불가능한 종류의 목표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하나다. 하지만 그런 필자도 가끔씩은 세계에 평화가 찾아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게 되는 순간이 있다. 바로 살아가면서 생판 다른 사람과 '교감'하는 경험을 할 때다.

 

 

 

영화 <캠프 엑스레이(Camp X-ray)>


 

*

경고! 

영화 <캠프 엑스레이>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캠프 엑스레이>는 해외의 한 캠프*에서 미군 내의 분위기와 갈등, 미군과 억류자(detainee)들 간의 갈등과 화해를 다룬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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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감옥 겸 군 기지, 영화상에서 한 개의 작은 기지는 캠프라고 불린다.

 

이병 에이미 콜은 여군으로, 입대 직후 캠프 델타에 배치된다. 에이미는 첫날부터 용감하게 초기대응단에 자원해서 진압 도중 발버둥치는 억류자에게 입가를 얻어맞는가 하면, 감시를 서는 도중 자신을 ‘금발머리(blondie)’라고 부르는 무슬림 억류자 알리에게 ‘칵테일(=오물을 담은 컵)’을 맞고 억류자들에게 비웃음을 사기도 한다.


험난한 신고식을 치른 에이미는 다행히 주변의 친절한 남자 동료들과 상관 덕에 위기를 잘 극복하는 듯 했으나, 군인들의 파티 도중 발령 초부터 추파를 던지던 상관에게 성추행을 당할 위기에 놓인다. 그녀는 상관을 거부한 뒤 미운털이 박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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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에이미에게 칵테일을 던진 억류자 알리는 이틀간 잠을 자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방을 옮기는 벌을 받는다. 에이미는 알리를 지켜보며 측은지심을 느끼고 그에게 눈길을 주기 시작하는데, 근근이 대화를 이어나가던 둘은 조금씩 서로에게 인간적인 차원에서 마음을 열게 된다.


그러나 파티 이후 그녀를 아니꼽게 여기던 상관이 그녀로 하여금 알리의 샤워를 감시하도록 명령해 둘에게 모욕감을 준다. 에이미는 여군이 남성 억류자의 샤워를 감독하는 것은 규정 위반이라며 항변했지만 결국 상관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고 불편한 분위기에서 샤워 감독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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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난 콜은 그날 밤 결국 군 기지 책임자인 대령에게 보고서(=일종의 불만제기)를 올리고, 얼마 후 대령의 사무실에서 그 상관과 함께 불려오게 된다. 그런데 사무실에서 명령에 불쾌함을 느꼈냐는 대령의 질문에 그녀는 본인의 감정은 언급하지 않은 채 ‘억류자가 불쾌해했다’는 의외의 답변을 한다. 그러자 대령은 억류자 때문에 전우를 고발한 것이냐며 에이미를 질책한 후, 업무 강도가 높은 야간 감시조에 에이미를 배정한다. 그 결과 에이미는 알리와 대화를 하지 못하게 된다.

 

 

 

배려는 기만이다



이 영화는 소위 ‘오픈 마인드’를 가졌다는 미국의 이미지와 상반되는 군 문화와 인종 차별 등의 실태를 밝힌 영화이다. 필자는 여기서 '여군'의 부대 내 위치에 대해 잠시 고찰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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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은 현재 전체 군인의 15%가 여군이며, 영화에도 주인공 콜 외 몇 명의 여군이 등장한다. 그들은 남자 군인들과 함께 행군하고, 억류자들을 함께 관리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들은 절대 평등해질 수 없다.

 

가령 에이미가 칵테일을 맞는 장면을 보면, 에이미가 공격을 당하는 즉시 남성 동료들이 달려들어 그녀를 돕는다. 그들은 에이미의 상태를 걱정하고, 사태를 수습해 주며 다정하게 안부를 묻는다. 심지어 그녀에게 호의적이었던 남성 상관은 콜에게 칵테일을 던진 알리에게 심한 벌까지 준다. 이렇게 '과한' 다정은 정말 이들의 진심어린 마음이었을까?

 

글쎄, 동료들은 순수한 의도였을지 몰라도, 상관은 아니었다. 에이미를 특별히 신경써주는 듯 하던 상관은 결국 군인들의 파티에서 본색을 드러낸다. 그는 화장실에 숨은 에이미를 찾아내 성추행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에이미는 처음에는 받아주는 듯 하다가 결국 스킨십을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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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부터 상관의 호의는 온갖 방해 공작으로 바뀐다. 에이미를 바라보는 상관의 눈빛을 보면, "여군 이등병 주제에. 배려해줘도 난리야."라고 소리치는 듯하다.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목소리 아닌가? 개발 도상국에 원조를 제공하면서 '우리가 너네 도와줬잖아'라며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선진국들. 여성들에게 '내가 이만큼 잘해줬으니 너는 나를 좋아해야 해'라며 성적인 보상을 요구하는 남성들. 자식들에게 '내가 너한테 들인 돈이 얼만데'라며 자식의 진로를 좌우하려는 부모들.

 

필자는 '배려'란 대가를 바라는 순간 가치를 잃는 자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 대가를 바라지 않는 배려는 매우 드물다. 따라서 남성, 부모, 상사 등 세계에서 힘의 우위를 점한 강자들이 여성, 자식, 후임 등의 약자에게 베푸는 배려는 대부분 '기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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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여자친구한테 그러지 않는데?' '나는 내 자식한테 그러지 않는데?' 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당신에게 당신의 '여자친구', '자식'은 어떤 존재인가? '당신보다 힘이 약하고 모자라서 당신이 보호해야만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당신의 진심을 판별하는 기준은 간단하다. 우월 의식에서 온 배려는 약간의 동기만 주어져도 급변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배려를 행하기 전에 대상자에게 그것이 필요한지 물어보는가? 그리고 대상자가 그 배려가 필요없다고 거절했을 때 '꽁한 감정'을 전혀 느끼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물론 필자가 세상의 모든 인간 유형을 아는 것은 아니기에 확언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한국 사회 내에서 대부분의 강자들은 이 질문에 해당사항이 없을 것이다.

 

 

 

시럽 추가: "교감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 영화에는 또 다른 주제가 있는데, 바로 ‘인종차별’이다. (사실 필자는 영화 내내 드러나는 이 소재가 ‘테러리즘의 잘못된 억제’에 의한 차별인지 ‘아시아계와 유럽계’에 대한 인종차별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여기서는 ‘인종차별’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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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등장하는 피지배 인물들은 다소 특이한 호칭으로 불린다. 일명 ‘억류자(detainee)’로 칭해지는 이들은 ‘수감자(prisoner)’의 개념과는 다르다. 바로 ‘제네바 협약’의 적용을 받지 않는 대상들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풀려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이때 이들의 모든 생활을, 심지어 자살시도까지도 감시하고 감독하는 사람들은 미국인, 억류자들은 독일에서 테러리즘에 얽혀 잡혀 온 아랍인이다.


에이미를 포함한 미군은 기지에 발령받자마자 억류자들을 짐승 취급한다. 말도 섞지 않고, 직접 닿지 않으려 애쓴다. 억류자들도 미군에게 거세게 저항한다. 그 중에서도 알리는 모범수가 되면 호의를 베풀겠다는 제의를 단칼에 거절할 정도로 공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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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알리에게 조금씩 다가가는 에이미는 미군들 중에서도 조금 독특한 사람이다. 그녀는 알리를 구슬리는 대신, 천천히 이해해보기로 한다. 알리와 에이미는 서로 자주 대화를 나누고, 천천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대학 생활부터, 출신지까지.


그리고 절망감이 절정에 다다른 알리가 자살을 시도하려고 할 때, 에이미는 미군으로서는 억류자에게 알려주어서는 안 되는, 자신의 풀 네임 ‘에이미 콜(Amy Cole)’을 알려준다. 신분을, 인종을 뛰어 넘어 개인 대 개인으로 소통하려는 의지가 드러난 것이다. 에이미는 그 장면에서 더 이상 미군이 아니었다. 그저 조금 다르게 생긴 친구를 둔 플로리다의 한 시골 소녀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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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는 결국 캠프 델타에 남지 않고 떠났지만, 그녀는 캠프를 떠나면서 알리가 그렇게 보고 싶어하던 해리포터 마지막 권을 구해 남겨준다. 그리고 “스네이프 교수는 모르겠지만, 당신은 내게 좋은 사람이에요.”라는 말을 전했다. 이로써 한 군인과 한 억류자의 갈등이 완전한 화해로 끝난다.

 

조금 급작스럽지만, 필자는 여기서 세계 평화의 가능성을 보았다. 세계 평화는 강자가 약자에게 베푸는 '배려'의 형태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 다시 말해 '미군'이 '억류자'에게 베푸는 배려로는 평화를 확보할 수 없다. 평화는 서로 다른 집단에 속한 개인과 개인이 '교감'하는 형태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에이미 콜'이 '알리'에게 손을 내밀고 교감할 때 비로소 평화의 실마리가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교감'에는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하다.

 

다른 생각과 문화를 가진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을 숨기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사회. 그리고 더 다양한 개인들과 편견 없이 대화하고자 하는 개인. 이 두 요소만 갖추어진다면 갈등으로 들끓는 세계도 언젠가는 평화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전 세계 몇 억 명의 사람들이 만나본 적도 없는 한국의 아이돌 가수들에게 호감을 가지고 나아가 '한국인'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추세라고 하니, 세계 평화도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닌 듯 싶다.

 

 

**P.S.

 

개인적으로는 에필로그가 있어서 에이미와 알리의 미래를 보여줬으면 했지만, 아무리 크레딧을 오래 쳐다봐도 부가 영상은 없었다. 또한 군대라는 설정상 배경이 다채로울 수는 없겠지만, 앵글에 너무나 규칙적, 반복적으로 잡히는 배경이 솔직히 조금 지루하기는 했다. '교도관과 죄수의 금지된 교감'이라는 점에서 전체적인 스토리가 조금 전형적이었다는 아쉬움도 든다. 그러나 배우들이 감정을 잘 전달해주었고, 그 점에서 재미와 감동은 충분했다. 군 문제와 포로 수용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볼 만한 영화임에 틀림없다.

 

 

[백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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