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빛과 그림자의 상응 - 앨리스 달튼 브라운 [전시]

글 입력 2021.08.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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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있어야 그림자가 있다.

 

그림자는 물체가 빛을 가려서 물체의 뒷면에 드리우는 그늘이다. 세상에 빛이 없다면 어둠으로 가득하여 그림자는 없을 것이다. 빛에 의지하는 존재로 그려지는 그림자는 빛의 뒷면을 받쳐주는 역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빛은 희망과 영광과 같은 긍정적 의미로 쓰인다. 반면 그림자는 불행이나 우울함과 같은 부정적 의미로 주로 사용되곤 한다. 빛이 있어야 그림자가 있다는 말을 희망과 영광이 있어야 불행이 있다는 말로 사용한다면, 그 누가 이 말을 흔히 사용할 수 있을까. 빛과 그림자가 함께 한다는 말은 결코 쉽게 쓰이는 듯하다.


빛과 그림자는 양면성으로서 함께 언급되지만, 미술 작품만큼은 그림자의 긍정적인 면을 드리운다. 그림자는 단순히 빛을 받쳐주는 역할이 아니다. 사물을 그릴 때 그림자가 있어야 사실감이 있고, 그림이 생생히 살아난다. 빛과 더불어 그림자는 작품을 더욱 아름답게 한다.


<앨리스 달튼 브라운, 빛이 머무는 자리> 전에서는 빛과 그림자를 그려낸 작가의 아름다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는 마이아트뮤지엄에서 2021년 7월 24일부터 10월 24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




작가의 예술 실험


 

보통 작가의 개인전에 방문하게 되면, 작가의 화풍과 노력의 과정을 살펴보게 된다. 어떠한 이야기를 가지고 무엇을 확립하려 했을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작가의 초기작을 보는 것이 가장 알맞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후기작보다 더욱 실험하는 태도를 가져 복잡해 보일 수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로 귀결되는 작가의 이야기가 있다.


‘앨리스 달튼 브라운’전에 처음으로 들어가 마주하게 되는 작품 역시 작가의 초기작이었다. 작가는 장난감 블록을 쌓아 만들어진 그림자를 그려냈다. 이는 혼자 미술을 독학하며 책에서 얻은 지식을 담아낸 작품이다. 육아를 병행하면서 작업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쏟은 열정을 증명한다. 육면체의 장난감을 그리며 그가 열심히 실험한 결과물이다.

 

 

1) 나무 그림자와 계단, Tree Shadow with Stairs.jpg
나무 그림자와 계단, Tree Shadow with Stairs ©Alice Dalton Brown

 


작가의 이러한 관찰과 실험은 나무와 건물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한다. 두 요소가 어우러져 그림자가 비친 벽면을 그린 작품이 있다. 나무의 그림자가 나타나지만, 나무는 작품에서 드러나지 않아 관람객을 작품으로 이끈다. 관람객의 시야는 그 앞을 바라보고 있어 뒤에 머물러 있는 나무를 상상하게 한다. 뒤에 나무와 따듯한 햇빛이 물씬 느껴진다.


 

 

작품의 이면



3) 어룽거리는 분홍빛, My Dappled Pink.jpg
어룽거리는 분홍빛, My Dappled Pink ©Alice Dalton Brown

 


내 발길이 더욱 머물렀던 두 번째 섹션이다. 자연물과 주택을 소재로 하여 공간감을 담아낸다. 여러 장소에 머무르며 작품 활동을 지속한 작가의 작품을 엿볼 수 있다. 이번에는 자연물의 그림자와 자연의 모습이 일부 노출된다.


주택에 자연 풍경이 합쳐지고, 주택의 모퉁이를 돌아서 어떤 공간이 있을까 궁금해진다. 그곳은 어떻게 생겼을까, 내가 보고 있는 것처럼 문도 하얀색일까. 혹은 저 문을 열면 내부는 어떤 느낌일까. 저 모퉁이에서 누군가 불쑥 튀어나와 나에게 이리 오라고 하면 홀린 듯 따라가지 않을까.


대형 회화 작품 앞에서 압도된다. 아름다움에 휩싸인다. 내가 보고 있는 작품을 넘어서 아름다움이 더욱 펼쳐질 것 같다. 작품에 개입하도록 이끄는 것뿐 아니라, 작품의 이면을 상상하게 하는 작품이다. 이러한 감정을 관람객에게 전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 감히 단정할 수도 없었다.




황홀함의 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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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에 물든 날, Long Golden Day ©Alice Dalton Brown

 


작가의 대표작인 3부의 여름 바람 시리즈다. 이전에는 집의 외부에서 보는 모습을 주로 담았으나 적극적으로 집 내부로 들어가 창문을 열고 바깥 풍경을 바라본다. 바람에 커튼이 휘날리고, 커튼은 빛으로 인해 따듯한 색채를 띤다. 바다는 푸른 색감이고, 빛을 받은 바다는 반짝거리며 눈부시다.


환상의 세계란 이런 것이 아니겠냐는 생각이 든다. 이런 풍경을 실제로 맞이할 수 있을까. 어딜 가더라도 이런 풍경은 만나지 못할 듯하다. 그만큼 황홀하다. 절정의 황홀함이다. 그림으로 이토록 누군가에게 황홀함을 주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이제 알게 됐다.


더욱더 힘차게 움직이는 커튼과 파도이다. 역동적인 풍경의 한순간을 포착했다. 아름다운 한순간이 너무나 역동적이어서, 조금 있으면 사라질 거 같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 순간이 지나더라도 나는 아름다움의 감정을 기억하니, 이어질 장면들도 실망스럽지 않을 것이다.

 

바람이 더욱더 세차게 분다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혹시 더 아름다울까 기대감도 든다.



11) 느지막이 부는 바람, Late Breeze.jpg
느지막이 부는 바람, Late Breeze ©Alice Dalton Brown

 

 

 

동적인 아름다움


  

12) 나무와 두 개의 창문 (AAR) #16, Tree with Two Windows, Rome #16.jpg
나무와 두 개의 창문 (AAR) #16, Tree with Two Windows, Rome #16 ©Alice Dalton Brown

 


4부는 창문과 문을 소재로, 겉보기에는 정적인 듯 하지만 가장 동적으로 느껴진다. 4부의 작품들은 빛이 있더라도 다른 작품에 비해 채도가 낮은 편이다. 이 때문에 가장 담담한 기분이나,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빛은 그 안의 각기 다른 삶을 말하는 것 같다. 우리들의 삶은 정적일 수 없기에, 다 같을 수 없기에, 그러니 가장 동적으로 느껴진다.


환상적인 만남이 될 듯하였던 전의 작품과 달리, 주위에 맴도는 사람의 이야기처럼 담소하다. 어쩌면 소담한 이야기에 가치를 둔, 풍경 작가로 불리기를 거부한다는 작가의 말이 깊이 공감되는 순간이다. 창문과 문은 집의 요소이고, 주거지에는 사람의 모습이 녹아들어 있다. 작가는 삶을 은연중에 드러내어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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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에 방문하기 전, 작가의 작품을 그리는 동적인 모습을 보고 전시에 방문하고 싶었다. 멋진 풍경을 그려내는 모습이 찍힌 사진이 용감하고 당당해 보였다. 전시 감상 후, 그의 열정도 느낄 수 있었고, 풍경은 눈부시게 황홀했다. 그리고 빛과 그림자를 절대 어느 쪽에 치우치지 않고 모두 소중하게 다룬 마음이 나에게 전해졌다.


풍경에 담아내려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결국, 우리의 아름다움이다. 빛과 그림자 모두 따듯하게 다뤘듯이, 문과 창문을 알맞게 배치하여 조합해 그려냈듯이, 아름다움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본다. 아름다움은 얼마나 무수했는지, 또 얼마나 찬란했는가를 느낀다.


이제는 아름다움을 한 글자씩 또박또박 되뇌기며 마음을 담아 불러본다.

 

 

[임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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