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축하해주세요! 무려 100번째 글이거든요!

글 입력 2021.08.14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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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글 쓰는 일을 과소평가할 때가 있다. 남들이 가진 전문성에 비하면 글 쓰는 건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그 글마저 잘 쓰지도 않는 것 같다. 이런 나에게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기운을 독려해주는 사람들이 많다. 내 글을 꼼꼼히 읽어주고 좋은 점을 찾아주고 진심 어린 감상을 남기는 독자들 덕분에 자책과 검열이 일상인 내가 지금까지 꿋꿋이 글을 쓰고 있다.

 

갑자기 이런 낯 뜨거운 감상을 남기는 이유가 있다. 바로 지금 내가 쓰는 글이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하는 무려 100번째 글이기 때문이다. 여느 날과 같이 글을 올리다가 문득 여태 아트인사이트에 쓴 글이 90개가 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속으로 카운트다운을 세며 100번째로 기고하게 되면 꼭 기념하는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로부터 몇 개월 뒤, 차곡차곡 쌓인 글은 99개가 되었고 드디어 100번째 글을 쓸 차례가 되었다.

 

자고로 전문가의 멋이란 남들 눈엔 대단해 보이는 능력을 일상적으로 구사할 때 나온다. 그러니 작가라면 아무리 남들이 글 쓰는 게 대단하다고 말해도 글쓰기 따위 숨 쉬는 것보다 쉽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해야 진정 멋있는 모습 아닐까. 굳이 몇 번째 글인지 세보고 기념하는 건 촌스러운 아마추어나 하는 짓이다. 그리고 나는 촌스러운 아마추어니까 굳이 기념할 것이다. 지난날의 내가 써온 99개의 글들을.

 

 

 

오피니언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합격 연락을 받은 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세상엔 글 잘 쓰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내가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합격하다니! 아트인사이트 에디터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남에게 내가 쓴 글을 보여주는 게 힘들었다. 분명 머릿속에 있을 때는 흥미로웠는데 막상 타이핑을 하고 세상 밖에 꺼내놓으면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가 없었다. 이런 나와 달리 남들이 쓰는 글은 완벽하기만 해 글을 포기할까 싶기도 했다.

 

그렇게 포기가 쉬웠으면 시작하지도 않았을 고민이었다. 아무리 자책해도 내가 돌아갈 곳은 글밖에 없었고, 자책보다 강한 의무감으로나마 글쓰기 위해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활동에 지원했다. 그 결과 일주일에 한 편의 오피니언을 기고해야 하는 운명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글을 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오피니언을 기고하는 일이 부담스럽거나 귀찮지가 않았다. 처음으로 글 앞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이었다.

 

아트인사이트를 만나기 전까지 글 쓰는 게 재밌었던 적은 없었다.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건 재밌었지만, 소설이든 대본이든 어떤 형태로든 글로써 꺼내놓기만 하면 형편없는 문장 하나하나에 좌절하기 일쑤였다. 나에게 글은 즐거운 취미가 아니라 정복해야 할 산이었다. 그때 내 생각으로는 오로지 잘 쓴 글만이 의미 있는 글이었다. 따라서 내가 쓰는 글은 모두 쓸모없게만 느껴졌다.

 

아트인사이트는 이렇게 주인인 나조차 외면해버린 나의 글을 향해 관심과 애정을 쏟아주었다. 어떤 주제를 선택하든, 어떤 문체를 구사하든 평가 대신 존중의 태도로 바라봐주었다. 아무리 내가 나 자신을 깎아내려도 이 공간에서만큼은 나도 어엿한 에디터였다.

 

이전까지 내가 써왔던 글은 주로 소설이었고, 대부분 주제도 무거웠다. 어두운 작품을 좋아하는 것과 더불어 무겁고 진지한 이야기를 해야 의미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고삼아 본 아트인사이트에 올라온 글들에는 주제에 대한 압박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진지하게 문제의식을 제시하는 글도 많았지만, 그만큼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친한 친구에게 말하듯이 편하게 소개하는 글도 많았다.

 

처음엔 잔뜩 무게를 잡고 진지하고 잘 쓴 글을 선보이고 싶었다. 다른 에디터의 글처럼 멋있는 글로 보이고 싶었다. 그러다 점점 이 공간에 ‘내 글’이라고 불릴 만한 것들이 쌓이면서 글을 올리는 게 편해지고 다른 사람과의 비교도 줄어들었다. 그제야 나는 아주 당연한 진리를 깨우쳤다. 재밌게 쓴 글이 좋은 글이었다.

 

매주 기고할 오피니언의 주제를 생각해내는 게 재밌었다. 좋아하는 책, 음악, 영화, 웹툰까지 친구들 사이에서 유별나다고 평가 받았던 나의 취향을 공개적으로 소개하는 일, 혼자 곱씹기만 했을 땐 단순했던 작품이 글을 쓰면서 끝도 없이 의미가 확장되는 걸 느끼는 일은 몹시 짜릿한 경험이었다. 처음 활동을 시작하고 2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 꾸역꾸역 글쓰기를 지속하고 있는 건 이 시기 처음 느꼈던 그 짜릿한 감각 덕분일 것이다.

 

 

 

문화초대


 

아트인사이트 에디터의 혜택 중에는 문화초대라는 게 있다. 아트인사이트와 연계된 문화 예술을 향유하고 이에 대한 감상을 글로 쓰는 활동이다. 시골에서 자라 문화 활동의 기회가 적었던 나는 열심히 문화초대에 응해 다양한 예술 작품을 접했다. 의무로 오피니언을 기고하는 기간이 끝나고 에세이 연재를 쉬는 동안에는 문화초대와 관련된 글만 작성했다. 내가 무려 99개의 글을 기고할 수 있었던 것도 문화초대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초반엔 흥미로운 작품들이 많아 향유하는 게 즐거울 뿐 리뷰는 부수적인 것이었다. 경험이 쌓이면서 예술을 향유하는 행위만큼이나 기록하는 행위도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취미로 예술을 접하는 것과 글로 쓸 것을 전제로 접하는 것은 다르다. 의무적으로 해당 예술에 대해 써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것을 느끼려 노력하게 된다. 이 노력은 나중에 글의 형태로 정제되어 빛을 발한다.

 

한 작품에 대한 여러 명의 글이 동시에 올라와서 그런지 처음엔 문화초대 리뷰가 온전히 나의 글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다 다른 에디터의 글을 보고 같은 작품을 봐도 그 감상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럴 듯하게 분석하려 하기 보다는 솔직한 감상을 적는 편이 편했다. 나는 어떤 예술 작품을 봐도 나의 경험과 연관 지어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문화초대 리뷰에는 이런 나의 성향을 적극적으로 반영돼 나의 경험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처음엔 내 글의 이러한 특징이 창피했다. 나도 남들처럼 전문성을 내세워서 멋지게 보이고 싶은데 떠오르는 건 경험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초라한 나 자신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아트인사이트를 시작으로 여러 글을 써보며 느낀 건 누구든 꼭 꺼내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오피니언과 마찬가지로 다른 에디터와의 비교는 내려놓고 떠오르는 상념들에만 집중하니 더 수월하게 리뷰를 쓸 수 있었다.

 

리뷰를 다 쓰고 나면 어떤 작품이든 전보다 풍부한 의미로 다가왔고 내면의 세계도 더욱 넓어졌다. 문화초대를 위해 연극 공연장으로 향하던 길에서 경험하고 생각하고 기록하는 문화초대의 과정이 나란 사람이 끊임없이 반복해야 할 성장의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나는 문화초대로 받은 책을 읽으며 나의 세계를 넓히고 있다.

 

 

 

나의 사적인 폭력


 

‘나의 사적인 폭력’은 2019년 7월부터 2020년 5월까지 연재했던 에세이다. ‘경험과 폭력’이라는 소재는 에세이의 주제를 고민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아이디어였다. 생각은 금방 떠올랐지만 망설이는 시간이 길었다. 나의 솔직함이 누군가한텐 부담으로 다가갈 것 같아서였다.

 

최근 1년 반 만에 다시 ‘나의 사적인 폭력’을 쓰고자 예전에 썼던 글들을 읽었다. 예전에 쓴 글이 낯선 건 당연하지만, ‘나의 사적인 폭력’은 유독 강하게 낯설었다. 그 어느 글보다 가치관이 가장 뚜렷하게 반영되는 글이기 때문이다.

 

내 경험에 사회의 폭력성이 가득하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이젠 일방적인 피해자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또 다른 피해자는 얼마든지 존재하며 어떤 상황에선 가해자였을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상처받은 마음을 남들에게 이해받고 싶어 글을 썼다면 이제는 조금 더 거시적인 마음가짐으로 또 다른 피해자를 이해하는 글을 쓰고 싶다.

 

작년 번아웃 증후군으로 심신이 모두 너덜너덜해졌을 때 제일 먼저 포기한 것이 이 에세이였다. 눈앞에 닥친 현실을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부정적인 경험을 소환하는 게 버거워서였다. 그렇지만 완결만은 절대 내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 이 세상에는 내가 미처 글로 풀어내지 못한 폭력들이 가득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왠지 겁이 나 선뜻 다시 이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폭력의 외연을 넓힐수록 옳은 것’이라는 한 에디터님의 댓글이 큰 힘이 되었다. 내게 감히 사회를 논할 자격이 있는지는 아직도 확신하긴 어렵지만, 내 글로 한 사람이라도 생각을 전환하게 된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

 

아주 잠시 나의 철없던 과거까지 그대로 담긴 글이 아트인사이트에 남아있는 게 부끄럽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99개의 글을 보니 부끄러움 대신 뿌듯함이 더 강하게 밀려왔다. 내가 아트인사이트에 남긴 족적은 부끄러움의 기록이 아니라 성장의 기록이었다. 예전의 내 글 실력이, 예전의 내 가치관이 부끄럽다는 것 자체가 성장의 증거다.

 

그래서 아주 요란하게 100번째 흔적을 기록했다. 지금의 내가 어리고 철없다고 느껴질 때까지, 100이라는 숫자가 한없이 초라해 보일만큼의 글을 쓸 때까지 아트인사이트와 함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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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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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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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세나
    • 100번째 글이라니! 글을 쓴 지 오래 되지도 않았지만 글태기가 꽤 길게 찾아오는 바람에, 100번째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한 마음으로 글을 클릭했어요. 촌스러운 아마추어니까 굳이 기념한다는 앞 문단에 웃으면서 읽어 내려가다가, '경험과 연관 지어 받아들이는 경향' 이 부분에서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공감했습니다. 저도 어떤 글을 쓰든 제 삶과 맞닿는 지점을 찾아내려는 습관이 있고 그게 조금 부끄러웠거든요. 그러지 않고자 다양한 시도도 해보며 노력하고 있었는데, 쉽지 않더라구요. 글 쓰는 행위 자체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익숙하다고 느껴지는 금미님께서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는 사실과, 그것을 이겨내고 내면의 세계에 집중하며 그 세계를 확장시켰다는 말이 괜시리 위안이 되었어요. 덕분에 저를 드러내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지는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행착오와 극복의 경험까지 아낌없이 나열하며 '굳이 굳이' ,'요란한 흔적을' 기록해주셔서 고맙습니다. 100번째 글 축하드려요!
      +)그리고 에세이에 관한 제 댓글을 언급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실 누군가의 글에 거의 처음 달게 된 댓글이었는데, 힘이 되셨다니 너무너무 기뻐요. 앞으로도 누군가의 글에 대해 감사의 말씀을 남기는 것에 주저하지 말자는 다짐을 해봅니다. 제가 되려 말로 받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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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금미
    • 박세나안녕하세요, 세나 님. 정성스러운 댓글 달아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세나 님의 댓글을 봤을 때가 '나의 사적인 폭력'을 휴재한 지 꽤 지난 시점이었는데 기억해 주시고 의미 있는 감상까지 남겨주셔서 큰 힘이 되었어요.

      저도 처음에는 경험이 배제된 글을 쓰고자 했지만 오히려 그걸 의식하니까 더 쉽지 않더라고요. 다른 에디터 분들의 글에 비해 내 글만 너무 개인적인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나 고민했는데 저와 비슷한 고민을 나누는 에디터 님이 계시다는 사실이 많은 위로가 되네요. 지극히 개인적인 글을 정성껏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세나님의 글도 애독자의 마음으로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사유하고 써보자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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