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새벽 - 나를 보는 순간

글 입력 2021.08.14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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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답장 한 번 받으려면 한세월을 기다려야 하는 친구들이 더러 있다. 오랜 시간 관찰한 결과 이들의 공통점을 두 가지 정도 발견했다. 첫 번째, 출근하거나 일하는 중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답장이 빠르다. 두 번째, 새벽 1시부터 3시 사이에 SNS에 들어가 보면 지금 활동 중이라는 표시에 초록 불이 들어와 있다. 정말 활동 중인지 그냥 켜두고 잠든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그 시간에 답장은 오지 않는다.

 

그러다 가끔 보면 ‘나도 일찍 좀 잠들고 싶다’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온다. 나 혹은 내 주변 친구들만 그런가 싶었는데 대한민국 20대들의 공통적인 현상인 것으로 판명됐다.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우리는 왜 새벽만 되면 잠들지 못하고 뒤척일까.

 

 

 

새벽; 감성 타는 시간



새벽이라는 시간은 묘하다. 아침, 낮, 저녁, 밤 어느 때와 비교해도 유달리 독특한 느낌을 자아낸다. 사방이 조용하고 공기마저 달라진다. 내 귀를 시끄럽게 하는 소음도 없고, 귀찮게 오라 가라 하는 사람도 없고, 불빛 아래 오로지 나 혼자 남는다.

 

물결조차 사라진 고요한 호수가 된다. 덕분에 아주 작은 돌 하나만 던져도 물결이 사방으로 퍼지며 수면을 뒤흔들어 놓는다. 아무것도 날아오지 않으면 다행이겠지만 이 시간대만 되면 이상하리만치 많은 것들이 날아온다. 그 크고 작은 돌멩이에는 하나같이 ‘감성’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콩알만 한 작은놈부터 거대한 바위 같은 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크기의 감성이 날아와 잔잔하던 내 마음에 거친 물결을 쉴 새 없이 만들어낸다. 어디 사는 누군지도 모를 이의 이야기에 슬퍼하고 공감하며 맞장구칠 때도 있다. 좋은 일이 있었던 날이면 그 기억을 곱씹으며 닳아버린 마음을 조금 메꿔놓는다. 나쁜 일이 있었던 날이면 상처를 치료할 기력도 없어 그대로 널브러진다. 여기서 끝나면 좋으련만 불행히도 당신의 침대 옆에는 스마트폰이라는 현대 사회의 걸작이 놓여있다. 손을 뻗어 스마트폰을 집는 순간 악몽은 시작된다.


분명히 자려고 누웠지만 내 눈은 또렷하고, 정신은 맑으며, 손에는 스마트폰을 쥐고 있음과 더불어 나는 내 SNS 계정에 들어 온 상태다. 아무것도 없는 검은 화면이나 대충 주변에 보이는 예쁜 것을 찍어 스토리에 올린다. 화면 상단 중앙에 보이는 ‘A’를 누르고 거친 물보라를 일으키는 내 감성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적는다. 다 적고 난 뒤에는 간신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줄여 스토리 어딘가에 처박아 놓는다.

 

이제 내 스토리는 올라갔고 팔로워들은 이것을 볼 것이며 아침에 일어난 나는 감성팔이 한다는 놀림을 받으며 그 행동을 후회한다. 부끄러움을 느끼면서도 나와 당신은 다음 날이면 이 짓을 다시 반복한다는 걸 무척이나 잘 알고 있다.

 

 

 

새벽; 나를 보는 시간



자기 계발이나 심리학 관련 책을 보면 늘 하는 말이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는 것인데, 살다 보면 “그래, 맞는 말이야”보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라고 생각할 때가 더 많다. 작품은 보통 주인공 위주의 서사로 흘러가며 비중도 주인공이 가장 많이 차지한다.

 

하지만 오늘 나의 하루라는 24시간짜리 작품에서 주인공인 내가 차지하는 건 대략 오전 1시에서 오전 4시까지의 새벽밖에 없다. 나라는 사람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은 이때가 유일하다. 그 외의 시간은 일과 사람에 치이기 바쁘다. 학생은 학교에서 공부하느라 바쁘고, 아르바이트생은 손님 상대하기 바쁘고, 직장인은 회사에서 업무 처리하느라 바쁘다. 퇴근하고 나면 잔업, 수업, 인간관계가 남아있다. 나를 위한 시간은 주어지지 않는다.


새벽만 되면 SNS 스토리에 올라오는 무수한 감성 뻘글을 보면서 도대체 왜 이러나 싶었다. 일어나서 놀림당하면 후회할 걸 뻔히 알면서 왜 그러나 싶었다. 새벽에 잠도 안 자고 핸드폰 붙들고 뜬 눈으로 버티는 나도 왜 이러나 싶었다.

 

이제는 그 낯 뜨거워지는 행동을 반복하는 사람의 심정을 이해한다. 지친 몸을 이끌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와 다음 날 다시 출근하기 전까지 침대에 누워있는 그 잠깐의 시간이 ‘나’라는 사람에게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의 전부이기에 너무도 아까운 탓이다. 일찍 잠들면 잠들수록 나를 위한 시간이 줄어든다. 그러니 얼마나 아깝겠는가. 조금이라도 더 오래 깨어있고 싶다. 일어나면 좀 더 피곤할지라도 기꺼이 그 기회비용을 지급할 만큼 나를 위한 시간이 빈약한 하루를 살아가는 삶이 슬퍼진다.


인생의 주인공이 나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남이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어떻게 사는가는 온전히 나에게 달린 게 내 인생이다. 그렇다고 남들 싹 다 무시하고 나만 챙길 수는 없다. 그건 나를 희생하는 삶과 별다를 게 없다. 양극단은 어느 쪽으로 가도 낭떠러지밖에 없다. 그 중간에 선 채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좌우 이동을 반복하며 나라는 중심을 놓치지 않는 삶을 사는 게 나의 인생을 살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24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누구와 무엇을 하건 그 일과 사람에게 조금씩 나눠주면서도 가장 충분한 양은 나에게 주는 삶을 살아갔으면 한다. 쉬운 일은 아니다. 어렵지만 참고 견디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일찍 자는 일이 더는 아깝게 느껴지지 않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때부터 진짜 나를 위한 나의 인생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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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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