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슬기로운 요리생활

글 입력 2021.08.13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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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 사태가 길어지면서 내 일상에는 여러 변화가 생겼다.

 

먼저 일주일에 두세 번은 카페로 향하던 발걸음을 줄였다. 급격한 늘어난 체중을 줄이기 위해 최근에는 홈트레이닝도 시작했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하루에 한 번씩이라도 꾸준히 요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약속을 잡아 외식하거나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았던 탓에 직접 요리할 기회가 적었다. 어떤 음식이든 배만 채우면 된다는 그만이라는 생각도 더해져서 딱히 요리에 흥미도 없었다. 만약 이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볼 수 있다면 소스라치게 놀랄 것이다.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맛있는 음식을 찾아 헤매고 있으니 말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막 시작했을 때는 배달 음식을 많이 찾았다. 김치찜, 초밥, 닭꼬치에 떡볶이까지 다양한 음식을 먹었다. 손가락 몇 번이면 맛있는 음식이 문 앞으로 도착하니 이보다 편리할 수 없었다.

 

그렇게 배달을 시키면 시킬수록 이전에는 쉽게 넘겼던 것들에 점점 신경이 쓰였다. 한 끼로 끝나지 않을 만큼 많은 양에다 비싼 배달 비용, 무엇보다 한 번의 배달에도 잔뜩 생기는 플라스틱 용기가 나의 양심을 찔렀다. 자극적인 맛에 지친 혀도 담백한 맛을 원하고 있었다.

 

*


때마침 나는 요리를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살고 있었다. 평소에는 친구가 요리하고, 나는 단순한 보조나 설거지를 담당했다. 덕분에 어떤 식재료가 필요한지, 어떤 순서로 해야 효율적일지 대략 감을 잡았다.

 

혼자였다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음식을 뚝딱 만들어내는 친구를 보며 요리가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는 친구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가끔 불 앞에 섰던 것이, 어느덧 친구와의 동거 생활이 끝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요즘은 일주일에 한 번씩 꼭 마트로 간다. 봐두었던 음식의 재료를 장바구니에 담고 궁금했던 것도 담는다. 그렇게 담아온 재료는 집에 오자마자 차곡차곡 정리해준다. 미리 사놓았던 재료의 상태도 확인하면서 머릿속에 다음 날의 식단표를 짠다.


최근에는 마파두부, 크림 리조또, 콩불, 샤브샤브, 소고기버섯덮밥, 게살수프 등을 만들었다. 그중 내가 가장 즐겨 하는 음식은 샤브샤브다. 좋아하는 샤브샤브 가게의 맛과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어 보았다. 간을 잘 맞춘 육수에 먹기 좋은 크기로 손질한 미나리, 버섯, 배추와 고기를 넣는다.

 

충분히 익은 고기를 소스에 찍어 먹는 맛이란. 가게에 갈 필요가 없을 정도로 행복한 기분이 든다.

 


샤브샤브.jpg

 

 

최근에는 디저트에도 손을 뻗고 있다.

 

평소에도 차나 커피를 좋아해 집에 여러 티백과 커피 머신을 두고 종종 내려 먹는다. 몇 주 전에는 흑임자 라떼에 도전했다. 생크림에 흑임자 가루를 섞어 만든 흑임자 크림을 라떼 위에 올리면 완성이다.

 

첫 시도는 처참하게 실패했다. 크림을 휘핑하면서 흑임자 가루를 언제 넣어야 하는지를 몰라 크림이 층으로 분리되고 말았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확실한 타이밍을 알았다. 세 번의 시도 끝에 상상한 모습대로의 커피를 만들었다.

 

꿀맛이었다.

 


흑임자라떼.jpg

 

 

복숭아잼도 만들어보았다. 엄마도 사고, 여기서 받고, 저기서 받고. 그렇게 받은 복숭아가 올 여름 안에 먹지도 못할 만큼 쌓이자 엄마께서 잼을 만들어보자고 하셨다.

 

생애 두 번째 잼 만들기였다. 첫 번째는 사과잼이었다. TV에서 물을 넣으면 그만큼 부드러운 잼이 된다고 소개해서 충실히 레시피를 따랐는데 처참하게 실패하고 말았다. 레시피보다도 물을 많이 넣었는지 잼이 뭉치지 않았다.


이번에는 절대 실패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재료를 준비했다. 복숭아를 다지고, 설탕을 넣고 물은 절대 넣지 않았다. 불 앞에서 한 시간 정도 뭉근하게 저어주었다. 사과잼과 다르게 저어줄수록 잼이 뭉치는 게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저리는 팔로 불을 끄고 확인해보니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복숭아의 향도 잘 남아있어 기쁜 마음으로 공병에 담았다.

 


복숭아잼.jpg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어느덧 요리는 내 일상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장보기가 조금 귀찮을 때도 있지만, 직접 재료를 손질하게 타이밍에 맞게 끓이고, 볶고, 삶는 과정이 즐겁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직접 시간과 노력을 들인 음식은 그 어떤 것보다도 나를 대접하는 느낌이 든다. 아껴둔 그릇에 정갈히 담아낸 상차림은 뿌듯한 마음마저 들게 한다.

 

요리는 즐겁다고 이제 확실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최예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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