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앨리스 달튼 브라운 展

글 입력 2021.08.13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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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형 02_Poster-01.jpg

 

 

주말의 어느 날.


창문을 때리는 햇살이 속도와 세기를 줄여 곤히 자는 나의 눈 위에 포근히 내려 앉았다. 나는 기지개를 켜 몸에 있는 늦잠에너지를 날숨으로 뱉어내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침대에서 빠져나와 집을 한바퀴 크게 돌았다.


눈 앞에 반짝이는 바람, 빛, 물, 나무, 잎사귀들.

 

 

9) 창에 비친 산딸나무, Dogwood Reflected.jpg

창에 비친 산딸나무 ©Alice Dalton Brown

 

 

세포 하나하나가 동요하며 나의 의식을 깨웠다. 모든 것을 온전히 느끼려 눈을 감았다. 바람 소리, 바람의 흩날리는 잎사귀 소리, 물이 흐르는 소리…


그리고 눈을 떴다. 눈 앞엔 큰 캔버스에 담긴 한 폭의 그림이 펼쳐져 있었다. 앨리스 달튼 브라운 展은 그만큼 생동적이었고, 강렬했다.


 

 

보금자리, 안식처



위험에 빠지는 걸 즐기는 인간은 몇이나 될까.


매슬로우의 인간 욕구 5단계 이론. 인간의 수많은 욕구 중 가장 강력한 욕구를 순차적으로 세워놓은 ‘욕구 피라미드’다. 그 두번째에는 ‘안전의 욕구’가 있다.


인간이라면 안전한 삶을 추구한다.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에 속하는 세 가지인 의식주. 그중 우리는 ‘주’로 안전을 확인 받으려 한다. 형태를 갖추지 않은 ‘국가’보다 만지고 볼 수 있는 ‘집’의 존재만으로 우리는 안전하다는 확신을 가진다.



6) 늦오후의 현관, Late Entrance.jpg

늦오후의 현관 ©Alice Dalton Brown

 

 

작가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작품은 ‘집’을 빼놓고 논할 수 없다. 그는 인간의 욕구에 집중한 것일까, 온전히 자신의 관심사에 집중한 것일까.


1960년대 후반 작품활동을 시작한 작가 앨리스 달튼 브라운. 그는 집 근처 농장의 헛간과 곡식을 저장하는 ‘사일로’를 소재로 작업을 시작했다.

 

육아의 부담에서 벗어난 1979년부터는 주택이라는 소재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1990년 후반까지 한 주택을 다양한 구도로 살피며 빛이 이동하는 방향에 따라 캔버스 속에 담아내는 구도를 바꿔갔다.


그의 작품 속 ‘집’은 각 지역의 특성을 담은 서로 다른 주택 양식이 눈에 띄기도 하고 햇살에 반사되어 눈부신 하얀색, 트로피컬한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분홍색 등 저마다 다른 색을 띠고 있는 집 외관의 색이 눈에 띄기도 한다.



3) 어룽거리는 분홍빛, My Dappled Pink.jpg

어룽거리는 분홍빛 ©Alice Dalton Brown

 

 

특히 작가의 작품에는 주택과 자연이 조화롭게 녹아 있다. 집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무성한 초록잎, 봄기운을 맞아 흐드러지게 핀 꽃, 온화한 기운을 느끼게 해주는 아열대 식물들. 작가의 그림을 보고 있자면 계절의 향기까지 느껴진다.

 

 

5) 수영장, My Pool.jpg

수영장 ©Alice Dalton Brown

 

 

그리고 무엇보다도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작품에는 집과 자연을 이어주는 ‘빛’이 특징이다.

 

 


빛이라는 고리



4) 봄의 첫 꽃나무, First Spring Tree.jpg

봄의 첫 꽃나무 ©Alice Dalton Brown

 

 

빛이 없었다면 하나가 될 수 없었을 거야.


빛은 외부의 자연풍경과 실내를 이어주는 통로, 즉 매개체가 된다. 빛이 비치며 집 벽면에 나무 그림자라는 자국이 생기고 물 위에 나무의 형체가 녹아 든다.


특히 ‘빛’은 작가의 대표적인 소재인 커튼에서 진가를 발한다.



10) 정적인 순간, In the Quiet Moment.jpg

정적인 순간 ©Alice Dalton Brown

 

 

커튼은 컨버스를 풍성하게 하는 미적인 요소로 등장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점은 작품을 감상하는 갤러리에게 빛의 존재를 알리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건물 내부에 있는 커튼이 쏟아지는 빛을 머금는다. 빛의 일관된 선율은 커튼에 머물고 빛이 커튼위에서 춤출 때, 커튼 위에 자연의 그림자가 새겨진다. 커튼 위에 빛의 발자국이 남는다.

 

*

 

성인이 되어서야 돌이켜보니 이타카는 도시 자체로서 의미가 있었다. 이타카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항상 흐리다. 그래서 이따금 비치는 따사로운 햇살이 더욱 소중하고 특별하다. 이타카의 태양은 구름 사이로 오후에야 가장 밝게 빛나는데, 그 금빛 햇살로 긴 그림자가 드리울 때가 가장 아름답다.


이타카에는 빅토리아 양식의 집과 드넓은 현관이 즐비했다. 나는 그런 집에서 산 적은 없지만, 내가 자라면서 매일 마주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현관과 건축물의 파사드는 늦오후에 비치는 태양 아래 강렬했다.

 

- 앨리스 달튼 브라운

 



환상동화



눈이 부시다. 찬란하다. 잔인하리만큼 아름답다.

 

 

11) 느지막이 부는 바람, Late Breeze.jpg

느지막이 부는 바람 ©Alice Dalton Brown

 

 

앨리스 달튼 브라운은 ‘환상’을 컨버스에 옮겨 담았다.


시원하게 탁 트인 통창, 반짝이는 호수와 바다, 정갈하게 지어진 호화로운 집들.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이국적인 색채. 컨버스 안에는 결점이라고는 없는 완전무결한 세상이 담겨있다.


그도 그럴 것이, 작가는 실제로 본 ‘자연’과 ‘집’에 자신의 상상력을 더했다. 이타카, 롱 아일랜드, 오번, 이탈리아 등 전세계 각지에서 본 소재를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완벽한 조합’으로 배치했다.

 

 

저무는 태양은 들과 운하와 도시를 온통 보랏빛과 금빛으로 물들이고, 뜨거운 빛 속에서 세상은 잠든다.


그곳엔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고 아름다움, 호화와 고요, 그리고 쾌락만이 있었을 뿐.


- 샤를 보들레르 <여행으로의 초대>

 

 

앨리스 달튼 브라운은 상상력을 동원하여 MCU 못지 않은 ‘앨리스 달튼 브라운 유니버스’를 창조해냈다.

 

 


‘이 시국’의 앨리스 달튼 브라운



따뜻한 보금자리. 이국적 색채와 무결한 아름다움.


‘이 시국’이라 불리는 현재, 앨리스 달튼 브라운은 자신의 시대를 맞이했다.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르네상스라 해도 다름없다.

 

 

1) 나무 그림자와 계단, Tree Shadow with Stairs.jpg

나무 그림자와 계단 ©Alice Dalton Brown

 

 

작가는 본능에 끌리듯 집과 자연 그리고 빛을 좇았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바이러스에 지치고 안식처에 끌리는 현대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완벽했다. 그의 작품은 사람들을 전시장으로 이끌었고,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필자 또한 그의 작품에 몰입할 수 밖에 없었다.


가장 가까운 도피처, 가장 쉽게 갈 수 있는 여름 휴가와 해외여행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가장 찬란히 빛나는 작품을 볼 수 있는 전시, 앨리스 달튼 브라운 전이다.

 

++

앨리스 달튼 브라운

(Alice Dalton Brown)
 
앨리스 달튼 브라운은 뉴욕을 기반으로, 사실주의 기법에 가까운 세밀화 작업을 해온 화가이다. 그녀의 주로 인공적인 소재와 자연적인 소재의 관계에 관심을 두며, 두 요소가 만나는 지점의 빛을 탐구한다. 지난 50년간 작가는 건물의 외부와 실내의 경계, 그리고 실내를 옮겨와 빛이 머무는 자리를 그려냈다. 특히 작가가 예순에 접어든 시기부터 친구의 집에서 본 창가의 풍경은 그녀의 인생의 하나의 전환점으로, 작가가 커튼이 있는 물가의 풍경을 그리게 되는 계기가 된다.
 
여름 바람(Summer Breeze) 시리즈라 불리는 이 시리즈들은, 현재 앨리스 달튼 브라운을 대표하는 작품들로 알려져 있다. 여동생의 집 베란다에 뒷배경으로는 이타카에 위치한 카유가 호수 풍경을 합쳐 새로운 장소로 재해석한 [Long Golden Day]를 비롯하여 아예 작가가 새로이 창조해낸 물가의 커튼 한 자락이 휘날리는 [Late Breeze]등은 현재 우리나라에 아트 프린트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작가는 여든인 지금에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작품을 제작할 때마다 여러 차례의 습작을 그리면서 본 작품에 제작에 몰두하곤 한다. 사진과 같은 섬세한 붓 터치를 한 땀 한 땀 캔버스에 수놓는 앨리스의 화풍은 많은 이들에게 커다란 매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세로형 01_Poster-01.jpg

 


[신재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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