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무이네에서의 브런치, 로마에서의 저녁 산책 - 앨리스 달튼 브라운, 빛이 머무는 자리

따스한 공간으로의 신비한 마법과 같은 초대
글 입력 2021.08.12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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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네에서의 브런치


 

[포맷변환][크기변환]5) 수영장, My Pool.jpg

수영장(My Pool), 111.8 X 195.6cm, Oil on Canvas, 1990

@Alice Dalton B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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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네 백패커스 게스트하우스(Mui Ne Backpacker Village)

@이정욱

 

 

아침에는 보사노바를 틀어주고 낮에는 레게를 틀어준다. 지치지도 않는지 주구장창 흘러나온다.

 

그렇다고 듣기 싫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평화롭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긴장감 없고 지루한 공기 속에서, 나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르는 채 수영장에 다이빙하는 외국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무이네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수영장’이라는 작품을 보면서 기시감이 든 건 우연이 아니었다. 나는 재작년 베트남 무이네를 방문했을 당시 한 숙소에서 브런치를 먹으며 달콤한 기운에 젖어 멍하니 수영장을 바라보던 때를 기억한다. 야자수에 둘러싸인 수영장은 숙소의 한가운데 위치해 다양한 형상의 물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낯선 여행객, 널브러진 빈백, 야자수 이파리.


특히 야자수의 물그림자가 가져다주는 묘한 안정감이 나를 사로잡았었다. 축 늘어뜨린 야자수의 머리가 잔잔히 흔들리는 모습이 강가에 비친 버드나무를 연상케 했다. 앨리스 달튼 브라운은 빛을 주제로 세밀화 작업을 해온 화가답게 이런 순간을 잘 포착하여 표현했다.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그림엔 등장인물이 없어 정적인 느낌이 든다. 하지만 등장인물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그림 속의 공간으로 온전히 초대받을 수 있다. 그 공간은 따뜻하면서도 프라이빗하며 목가적인 정취가 배어있다. 그녀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시공간을 넘나드는 신비로운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무이네에서의 추억이 소환당한 것은 분명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로마에서의 저녁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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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드리운 아카데미(Night Over the Academy), 127 X 76.2cm, Oil on Canvas, 2018

@Alice Dalton B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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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숙소의 저녁 하늘(Sunset in Rome)

@이정욱

 

 

포로 로마노에서 시간의 세례를 받은 로마 제국 건축물들과 카타콤베에서 수많은 기독교 순교자들의 유해를 보고 숙소로 돌아온 때는 벌써 늦은 오후였다.

 

무거운 잔상들을 덜어내고자 가볍게 나선 산책길에 마주친 하늘은 아름다웠다. 여행지의 하늘에는 늘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하늘길을 지나와서 그런지, 일상생활을 하던 때보다 더 자주 하늘을 올려다보게 된다.


그러다 보니 평상시보다 더 특별한 무언가를 하늘에서 찾아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 머리 위에 떠있는 건 언제나 같은 하늘이지만, 다른 곳에 떠있는 건 엄연히 다른 하늘이다. 로마에서의 하늘도 마찬가지였다. ‘밤이 드리운 아카데미’라는 작품을 보면서 한 장면이 떠올랐는데, 그건 바로 내가 로마에 머무를 당시 한 숙소에서 저녁 산책을 하며 촬영한 낙일 사진이었다.

 

실제로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밤이 드리운 아카데미’라는 작품의 배경이 되는 지역은 로마였다. 그 사실을 알고 나는 놀라게 되었다. 왜냐하면 작품과, 작품을 보자마자 내 머릿속에 떠오른 사진이 같은 지역일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촬영을 한 장소나 시간도 다른데 여행을 하면서 찍은 많은 사진들 중 하필 그 이미지가 떠올랐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아마도 종을 알 수 없는 푸석한 나무와 이탈리아식 건축물, 비슷한 구도에서의 그림이라는 점이 합쳐져 내가 로마에서 촬영했던 사진을 연상시켰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지역만의 분위기가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힘들 것 같다.

 

나는 앨리스 달튼 브라운이 로마에 머물면서, 단순히 묘사를 잘하는 것을 떠나 로마라는 지역의 아우라를 옮겨놨다고 생각했다.

 

 

[포맷변환][크기변환]3) 어룽거리는 분홍빛, My Dappled Pink.jpg

어룽거리는 분홍빛 (My Dappled Pink), 198.1 X 154.9cm, Oil on Canvas, 1992

@Alice Dalton Brown


 

분홍색 벽면에 비친 그림자의 어룽거림이 눈앞에 있는 듯 선하다. 자칫 일그러진 모양으로 보일 수 있는 부분을 정교하게 묘사해냈다는 생각이 든다.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다. 캔버스 안에 투명하게 빛을 담아내어 입체감을 더했다는 사실이 놀랍고 신기하게만 느껴진다.

 

이 그림이 좋은 이유는 역시 벽면의 그림자에 있다. 내가 좋아하는 바닷속 모습을 닮아있기 때문이다. 강력한 햇빛에 비친 바닷속의 해파리 같기도 하고 산호초 같기도 한 모습이 오래 전 기억 속의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해준다. 자연과 건물, 빛과 색의 조화가 멋지다.

 

 

[포맷변환][크기변환]8) 여름 바람, Summer Breeze.jpg

여름 바람 (Summer Breeze), 178.4 X 127cm, Oil on Canvas, 1995

@Alice Dalton Brown


 

친구의 집에서 본 창문을 시작으로 이 작품을 만들었고, 이후 <여름 바람> 연작을 이어나갔다고 한다. 앨리스 달튼 브라운이 우리에게 친숙한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하던 때가 바로 이때부터이다. 그녀는 커튼과, 바다와 같이 넓은 호수라는 소재를 활용하여 여러 청량적인 이미지들을 제작했다.

 

부드러운 흰 색 커튼을 이용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여름 바람을 시각화했다. 흰 색과 푸른 색의 조화로 시원하단 느낌이 든다. 실제 방과 사물을 참고하여 그렸지만, 작가의 의도에 맞게 일부분 설정을 변경하여 그림을 그린 것이 '여름 바람'의 분위기를 살리는 데 더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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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욱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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