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내가 사랑한 공간과 시간, 그리고 빛 - 앨리스 달튼 브라운

빛이 머무는 자리
글 입력 2021.08.11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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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 Dalton Brown



이번 전시회를 방문하게 된 계기는 단순히 끌려서다. 이런저런 이유도 없이, 살짝 부는 바람에 나부끼는 커튼과 커튼 밑으로 자연스럽게 그늘진 그림자. 그리고 창문 밖으로 드넓게 펼쳐져 있는 바다를 보니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이런 전시회라면 너도나도 방문해 사진찍기 용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아 소비적인 감성을 느껴 꺼리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런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전시회에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단순히 바다를 바라보는 감성을 좋아하는 취향도 있고, 작품이 주는 커다란 공간감에 빠져든 이유도 있다.

 

 

 

앨리스 달튼 브라운

(Alice Dalton Brown,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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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 Dalton Brown

 

 

그녀는 1939년에 태어나 지금까지 활발히 작품 생활을 이어오는 미국 화가이자, 세 아이의 엄마로 아이들의 장난감의 그림자를 아크릴 물감으로 처음 그려보며 작품을 시작했다. 첫 작품과 이후 작품을 비교하면 작가의 엄청난 성장과 그림에 대한 열정의 크기를 느낄 수 있다. 손바닥만 한 습작에서 느껴지는 완성도와 추가로 연구한 구도를 캔버스에 옮긴 작품까지 보게 된다면, 유화로 이렇게 섬세한 터치가 가능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녀는 작품 활동을 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그림을 놓지 않았고 이번 해외 전시를 위한 작품으로, 세 점을 완성하는 등(마지막 관에 있으며, 세 작품만 유일하게 촬영할 수 있다), 작품명은 <정적인 순간>,<설렘>,<차오르는 빛>'으로 커다란 대형 캔버스에 담았다. 이는 2020년부터 이 전시회를 위해 작업한 결과물로, 처음 구상했던 습작과 함께 전시됐다. 가장 큰 공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작가는 그림을 통해 마지막까지 관객에게 풍요로운 감상을 선사한다.

 

<앨리스 달튼 브라운, 빛이 머무는 자리>는 작가 인생 최초로 열리는 회고전으로, 마이아트 뮤지엄에서 2021년 7월 24일부터 10월 24일까지 개최한다. 청소년 시절 지냈던 뉴욕주 이타카(Ithaca, NY)부터 지금까지 받은 모든 영감을 작품 속에 담았다. 전시회는 총 4부로 구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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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그림자와 계단(Tree Shadow with Stairs, 1977) ©Alice Dalton B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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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룽거리는 분홍빛(My Dappled Pink, 1992) ©Alice Dalton B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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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바람(Summer Breeze,1995) ©Alice Dalton B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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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드리운 아카데미(Night Over the Academy,2018) ©Alice Dalton Brown

 

 

1부 빛과 그림자(Light and Shadow), 2부 집으로의 초대(Invitation to the House), 3부 여름 바람 (Summer Breeze), 4부 이탈리아의 정취(Impression of ltay)로 작가가 다녀간 모든 공간에 대한 기억을 작품으로 남긴 그녀의 사실주의 화풍에 입각한 작품은 캔버스에 그려진 아크릴 물감이란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현실 같은 착각을 준다. 소개를 보지 않고 지나가며 보게 된다면 마치 사진을 찍은 것과 다름없다.

 

인위적이지만 자연스럽고 사실과 같다. 작품 자체를 그린 기능적인 감상은 그렇다. 사실주의에 입각한 화풍을 자랑하지만, 그것보다 더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바로 작품이 주는 '여유'다. 작품 감상 마지막에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도심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여유가 나를 끌어당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점이 그녀의 작품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매력이라 생각한다. 그 매력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아래와 같이 글로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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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 Dalton Brown

 

                             

그림은 단순하다. 눈에 보이는 풍경을 그렸고, 작가가 사랑에 빠진 순간을 담았다. 그녀는 리얼리즘 화법의 화가로 자신이 지냈던 공간을 기반해 작품활동을 이어갔고 습작을 통한 첫 작업에 이어 커다란 캔버스에 옮겨 담아 우리에게 마치 그 자리에 있는 듯한 착각을 준다.

 

작품 내에 사람 한 명 없는 것도 한몫한다. 더욱이 장소에 혼자 덩그러니 놓여있는 기분이 들어 빛이 주는 따스함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기분이다. 그녀가 담은 풍경은 우리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별다른 것 없는 소재인데도 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난 '빛'이라는 소재에서 답을 찾았다. 작가는 빛을 이용한 소재로 '커튼'이나 '시간'이 주는 요소를 그림에 활용했다. 그리고 아크릴 재질이 줄 수 있는 쨍한 느낌과 예쁜 순간을 여러 색과 섞어 표현했다.

 

작가는 자연적인 소개와 인공적인 소재를 적절히 배치해 사람이 머무는 공간에 들어온 빛이 머문 자리를 표현했으며, 이를 통해 확실한 경계를 그린다. 이 경계는 내부와 외부의 차이로 이어지며, 우리가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시선 처리로 마무리할 수 있게 한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빛이 나가는 자리와 머무는 자리를 응시하게 된다.

 

 

 

시간과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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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 Dalton Brown

 

 

빛이 주는 감각을 제외하면 어떤 점이 가장 와닿을까? 나는 '시간과 공간'이라 답하고 싶다. <앨리스 달튼 브라운, 빛이 머무는 자리>는 섬세한 붓 터치로 아크릴 물감이라 생각하지 못할 만큼 디테일이 담긴 풍경을 그린다. 색이 섞이지 않는 아크릴의 장점을 살려 그녀는 석양이 지는 시간대와 빛에 의해 그늘진 일상을 또렷하게 표현했다.

 

또한 건축물과 자연물을 같은 화폭에 담는 그녀는 인공적인 소재와 자연적인 소재가 시간 대비, 어떤 시간을 담는지 차이점도 보여준다. 더더욱 도심 속에서 우리는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발견한다. 이를 통해 나는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80여 점 그림 속에서 잠시나마 여유를 느끼고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힐 수 있었다.

 

이런 모든 소재가 합쳐 그녀의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한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편안한 청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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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 Dalton Brown

 

 

전시회 입구부터 느낄 수 있다. 무더운 여름날, 시원하고 청량한 기운이 공간을 메운다. 시기가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인파가 몰렸고, 공간이 그렇게 넉넉하지 않은데도 시원한 색감이 주는 느낌에 불편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강렬한 색감을 자랑하는 아크릴 물감과 빛을 이용한 자연스러운 작품은 눈을 편안하게 만들어주고 존재감 있는 색 조합은 집중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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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 Dalton Brown

 


작품을 보았을 때 떠올랐던 영화가 있었다. 누구나 알법한 유명한 작품인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 2017>로 1983년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삼았다. 젊은 배우와 청량한 바다가 주는 느낌이 약간 와닿지 않을 수 있는데, 내가 말하고자 하는 느낌은 영화 인물들이 피아노를 치고, 소파에 기대어 누워 시간을 보내거나 가끔 정원에서 평화롭게 가든파티를 하는 그런 소소한 일상이다.

 

또 직접 가보진 않았지만, 사진으로 자주 접한 <그라운드시소 서촌 - 요시고 사진전>도 떠오른다. 더운 여름날, 어딜 가지도 못하는 지금, 투명한 에메랄드빛 바다를 찍어낸 요시고 사진전이 주는 빛이 부시는 젊음은 20대의 뜨거운 지난날을 보여준다면, 이번 <엘리스 달튼 브라운 전>은 일상을 보내던 중 맞이한 평화로운 시간을 말해준다. 분명 따뜻한 온도와 빛을 그렸지만, 청량감을 빼놓지 않는다. 보람찬 하루를 보내는 와중, 잠시 마주한 여유 혹은 휴식을 취하는 도중에 포착한 평화로운 순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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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 Dalton Brown

 


막연히 저런 순간을 느끼며 살고 싶다. 지금은 내게 사치일지 몰라도 나이가 든 어느 날에는 저 그림 속에 내가 있기를 바라는 소망이 생긴다. 색감과 미술적인 기술로 감명받았던 부문은 3부의 여름 바람이고, 가장 내가 좋아하는 시간과 취향을 담은 것은 4부 이탈리아의 정취다. 그리고 내가 살아가고 싶은 시간은 2부인 집으로의 초대였고 1부는 작가가 그리고자 하는 그림의 방향과 그 과정을 볼 수 있었다. 한 공간을 여러 각도로 연구하여 여러 가지 그림자를 그려낸 작품을 보며 그녀의 열의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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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 Dalton Brown


 

마이아트뮤지엄에서는 대표작으로 3부 여름 바람을 추천한다. 이는 2000년대부터 그려온 작품 테마로, 친구 집에 놀러 가 보았던 풍경에 사로잡혀 시작했다고 한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푸르름을 닮은 구간이기도 하고, 가장 대중적으로 알리기 좋은 요소가 많다. 풍경만 있기에, 지나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맹하지도 않은 것이 모두의 취향으로 알맞다. 전시회 입구도 마찬가지로 3부를 주제를 잡고 꾸며져 있다. 커튼과 물가가 있는 풍경이 주는 멋이 현재 시기와도 알맞게 떨어진다.

 

코로나 19로 인해 휴가철임에도 불구하고 이동하기 어려운 시점에서 잠시라도 기분 전환이 될 수 있는 전시회였다. 보통 전시회와 다를 바 없는 전형적인 구성일 수도 있다. 하지만 추천하고 싶다. 작품 자체가 주는 긍정적인 환기는 지쳐있는 나를 돋구기에 충분했다.

 

앨리스 달튼 브라운, 빛이 머무는 자리 (Alice Dalton Brown, Where the Light Breathes)는 삼성역 인근에 있는 마이아트뮤지엄에서 7월 24일부터 10월 24일(추석 당일 휴관)까지. 총 90일 동안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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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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