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국 유학생의 최애 플레이스, 케틀스 야드(Kettle's Yard) [미술]

일상과 예술이 조화롭게 스며든 곳
글 입력 2021.08.06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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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이번 여름, 3년간의 영국 대학생활을 마치고 갓 졸업한 ex-유학생이다.

 

영국에서 예술사를 공부하면서 여러 박물관, 미술관, 갤러리를 알게 되었고, 또 많은 곳을 다녔다. 런던 시내와 근교, 에든버러, 요크와 리즈 곳곳의 힙하고, 아기자기하고, 클래식하고, 압도적인 공간들을 만나면서, 그리 유명하거나 대단하진 않지만 마음을 이끄는 매력 있는 곳들, 즉 필자의 취향을 저격한 곳을 하나 둘 발견했다.

 

그렇게 늘어난 영국 최애 플레이스 목록 중 이번 글에서 특히 소개하고 싶은 곳은 바로 케임브리지의 케틀스 야드(Kettle's Yard)다. 영국 미술관 하면 떠오르는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The National Gallery)와 영국 박물관(The British Museum),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을 제치고 최애 플레이스 중 하나가 된 케틀스 야드를 소개하고 필자가 이곳에 반한 이유를 적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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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틀스 야드 위치 (출처: kettlesy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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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틀스 야드 (출처: kettlesyard)

 

 

케틀스 야드(Kettle’s Yard)는 케임브리지의 가장 중심으로부터 북서쪽에 위치해 있다. 케임브리지 대학 중 가장 유명한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에서 10분 조금 넘게 걸으면 작은 집들(cottages)이 나오는데, 전형적인 영국 집처럼 생긴 이 아기자기한 벽돌 건물이 바로 케틀스 야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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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틀스 야드 내부 (출처: kettlesyard)

 

 

티켓을 구매하고 다른 방문객들과 함께 기다리다 보면 케틀스 야드의 가이드가 우리를 현관문 앞으로 안내한다. 그러고는 벨을 누르는데 마치 영국인 아저씨 아주머니가 나와 손님을 맞이할 것만 같다.

 

그렇게 문을 통해 거실에 들어서면 영국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볼 법한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진다. 광경이라고 하기엔 그 공간이 넓지 않지만, 그곳에 놓인 가구부터 소품까지 예쁘게 놓인 물건들과 예술 작품들이 눈을 사로잡는다.

 

화이트의 모던한 벽과 시간의 흔적이 느껴지는 벽돌 벽난로, 그림과 조각 작품, 나무 책상과 수납장, 카펫이 어우러져 따뜻하고 정겨운 동시에 "예술적이다!"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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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Jim)과 헬렌(Helen) 부부 (출처: kettlesyard)

 

 

이 아름다운 공간은 원래 짐(Jim)과 헬렌(Helen) 부부의 집이었다. 1895년생 짐 에드(Jim Ede)는 영국 카디프(Cardiff) 부근에서 태어났고 미술 교사인 헬렌과는 1921년 결혼했다.

 

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테이트 갤러리에서 큐레이터로 근무하면서 벤 니콜슨(Ben Nicholson), 데이비드 존스(David Jones)를 포함한 여러 예술가들과 친해졌고, 스스로를 "예술가들의 친구"라 불렀을 정도로 그들과 비즈니스 관계를 넘어선 깊은 우정을 나눴다.

 

예술가들, 예술과 가까운 이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많은 작품들을 소장하게 되었고, 그 규모가 점점 커져 앞서 언급된 예술가들의 작품 외 후안 미로(Juan Miró), 알프레드 월리스(Alfred Wallis), 크리스토퍼 우드(Christopher Wood)의 그림과 헨리 무어(Henri Moore), 앙리 고디에-브르제스카(Henri Gaudier-Brzeska), 콘스탄틴 브랑쿠시(Constantin Brancusi), 바바라 헵워스(Barbara Hepworth)의 조각을 포함한 방대한 양의 컬렉션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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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니콜슨(Ben Nicholson), Head, c.1933


 

그 컬렉션을 바탕으로, 그리고 두 부부의 예술적 소양과 안목을 바탕으로 이토록 멋진 공간을 구현했다. 그들이 직접 배치한 예술 작품들과 여러 가구, 소품, 식물, 일상 오브제는 제 자리를 찾은 듯 안정적이다.

 

*

 

집 안 곳곳에 집주인이 숨겨놓은 귀여운 장난이 있는데, 그걸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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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선형 기둥과 후안 미로 그림 (출처: kettlesy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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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호수에 조약돌 하나를 던져 생긴 파문처럼 동그란 조약돌들이 나선형을 이루며 퍼져나가는 모양새를 띤다. 조약돌들이 놓인 책상 왼쪽으로 그것을 닮은 나선형 기둥이 서 있다. 기둥 위에 걸려있는 후안미로의 그림은 그 파란 바탕이 방 안에 청량감을 더하고, 그 바탕 위 톡톡 튀는 노란색 동그라미는 둥그스름한 다른 소품들과 관계를 맺는다.

 

후안 미로 작품 곁으로 눈을 돌리면 회색 접시 위에 샛노란 레몬이 놓여있다. 그림 속 납작한 원이 만질 수 있는 과일로 변신하고, 다시 그림을 올려다보면 그림 속 원이 새콤한 레몬으로 보이는 사랑스러운 마법을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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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렉터의 생가이면서 소장품 미술관인 케틀스 야드는 큰 재단의 미술관이나 기증자의 소장품관과는 결을 달리한다. '관'으로 따로 마련된 곳이 아니라 컬렉터가 오랜 시간 꾸려 나갔던 집을 작품과 일상 소품이 놓여있던 그대로 유지하면서 방문자들에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물론 작품의 역사적 가치, 미술사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여기 있는 그림과 조각들이 말끔한 미술관에 죽 나열되어 있었다면 짐(Jim)과 헬렌(Helen)의 예술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관객들에게 와닿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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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ettlesy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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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내셔널갤러리처럼 신전을 닮은 신고전주의 건축물을 고개가 빠질 듯 올려다보며 들어서서, 덩치가 큰 경비원의 보안검사를 통과하며 시작되는 예술 기행은 이미 조금 위압적이다.

 

다른 한편, 현대 미술관의 백색 공간, 구두 소리 조차 소음이 되는 그 조용한 내부를 숨죽이며 들어가면 내가 그림을 보는 건지 불특정인에 의해 내가 감시당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마음이 편치 않다. 양쪽 모두 현실과 참 동떨어져있는 것 같다. 발을 들이면서부터 그 공기마저 다른 듯하니 말이다.

 

생각해 보면 예술작품이라는 것도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 사람은 또 다른 많은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으로 형성되는데, 왜 그 결과물은 '성스러운 신전'(신고전주의적 건축물)이나 '진공상태의 우주'(화이트큐브)에서 보여질까?

 

반면 케틀스 야드는 그야말로 인간적, 현실적이다. 사람 냄새가 배어있고 숨결이 스며있다. 이곳에서는 그림이 신성한 어떤 것이 아니라 의식하지 않아도 매일 곁에서 함께하는, 일상에 활기와 위로를 주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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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로 발렌티(Italo Valenti)의 작품 Nr.145; Laguna; Lagune (1968)과 Nr.121; Olanda (1968)


 

구경을 하면 할수록 '집'이라는 공간 특성상 다양한 물건들이 있을 수 밖에 없는데도 그것들이 이토록 잘 어우러질 수 있나 싶다. 비슷하거나 대조되는 색과 모양, 질감을 가진 것들을 찾아내 어떻게 배치할까 고민했을 짐과 헬렌 부부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동시 그들의 영리함과 감각, 위트가 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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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재미있었던 건 위의 사진에서 보이는 창문이다. 창문 유리를 흰색의 짧은 선들을 그어 채워 넣었다. 이 선들로 인해 바깥 풍경이 마치 한 폭의 인상주의 그림처럼 아른아른하다. 그림을 거는 대신 창밖 경치를 그림으로 바꿔 놓은 것이다. 계절과 날씨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자연이 그 자체로 예술 작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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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ettlesyard)


 

이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 이렇게 일상과 예술이 조화롭게 함께하는 곳을 알게되어 참 기뻤다. 좋아하는 공간을 소개하기 위해 다시 사진을 들춰보고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추억에 잠길 수 있어서 또 한번 즐거웠다.

 

독자들에게도 필자가 이곳을 애정 하는 마음이 전달되었길, 매력적인 공간을 구경하는 힐링의 시간이었길 바란다. 여행이 어려운 요즘 시기에 타지의 아름다운 공간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다시 떠나게 될 그날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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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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