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계모의 정확한 뜻을 아시나요? [드라마/예능]

새로운 계모, 새로운 가족 이야기
글 입력 2021.08.05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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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나는 ‘계모’의 뜻이 ‘아이들을 학대하는 나쁜 엄마’인 줄 알았다. 신데렐라나 백설 공주 같은 동화부터 장화홍련이나 콩쥐 팥쥐 같은 전래동화까지 계모는 항상 악독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를 구박하거나 괴롭히는 엄마는 계모라 부르는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습득했던 것 같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계모의 뜻이 ‘아버지가 재혼함으로써 생긴 어머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많은 계모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결국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일 것이다. 사회는 엄마와 아빠가 모두 존재하고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가 있는 핵가족의 형태를 정상이라 보고, 그 이외의 이혼 가족, 입양 가족, 동거 가족 등은 비정상이라 치부한다. 계모 이야기는 이혼 가족, 재혼 가족이 행복할 수 없다는 편견을 주입한다. 또한 이는 모성이 친모에게만 존재한다는 편견을 강화한다. 이러한 편견은 사회에서 일하는 여성에게 모성을 강요해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억압으로도 이어진다.

 

오랜 시간 동안 소비되며 쌓여온 정상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어떻게 균열을 낼 수 있을까. 내가 계모라는 단어의 뜻 자체를 잘못 알았을 만큼 이야기 혹은 문화에는 힘이 있다. 이제는 정상 가족의 이데올로기를 깨는 이야기,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보여주는 이야기들을 생산하고 소비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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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종영한 tvN 드라마 <마인>은 새로운 계모 이야기를 그렸다. ‘효원’이라는 재벌가에서 가장 행복해 보이는 가정 ‘서희수’와 ‘한지용’ 부부에게는 아들 ‘하준’이 있다. 하준은 한지용이 결혼 전 ‘이혜진’이라는 여자와 낳은 자식으로, 서희수와는 3살 때 처음 만났다. 새엄마, 즉 계모라고 할 수 있는 서희수는 아들 하준을 끔찍하게 아껴 사람들은 모두 희수가 하준의 친모인 줄 안다.

 

다정다감한 남편과 아내, 그리고 아들의 모습은 모두의 부러움을 산다. 그러나 이 가정에 ‘한자경’이라는 입주 튜터가 들어오고 한지용의 이면이 드러나면서 균열이 일어난다. 자경은 하준에게 집착하고 엄마인 희수의 역할을 넘보며 희수를 불안하게 만든다. 결국 자경은 사망한 줄 알았던 하준의 친모 이혜진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친모와 계모가 하준을 함께 키운다면 자신의 아들이 더 완벽해질 수 있다며 강자경을 들인 한지용은 자경이 통제를 벗어나자 다시 그를 내쫓으려 한다.

 

하준을 낳고 효원에서 내쫓겼던 자경은 아들을 자신의 것이라 여기고 되찾고자 한다. 희수는 한지용의 실체를 깨닫고는 하준을 데리고 효원가에서 나올 것을 다짐한다. 하준을 지키고자 각고의 노력을 하는 희수를 보고 자경은 희수가 정말 하준의 엄마임을 깨닫고, 그를 도와 한지용을 무너뜨린다.

 

10회에서는 자경이 하준의 양육권을 주장하는 재판 장면이 등장한다. 이 재판은 사실 한지용에게 아버지로서의 자격이 없으며, 양육의 자격은 희수에게 있음을 증명하고자 자경과 희수, 그리고 효원의 큰 며느리 서현이 계획한 것이었다. 재판이 끝난 후 세 사람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그들 사이의 연대감이 돋보인다. 이는 전형적인 계모 이야기를 벗어나 아이를 지키고자 하는 친모와 계모, 여성들의 연대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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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방영되었던 SBS 드라마 <질투의 화신>에서도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등장한다. 고등학생 ‘이빨강’은 아빠인 ‘이중신’과 단둘이 산다. 친모인 ‘계성숙’은 빨강이 어릴 적 중신과 이혼했고, 그 후 중신과 재혼한 계모 ‘방자영’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중신이 사망하게 되고, 성숙과 자영은 혼자 남은 빨강을 키우겠다며 나서지만 빨강은 두 사람을 모두 거부한다.

 

서로 자신이 빨강의 진짜 엄마라며 싸우던 성숙과 자영은 결국 경쟁적으로 빨강의 집에 자신의 살림을 들여 버리고, 이상한 조합의 동거가 시작된다. 방송국 입사 동기로서 직장에서도 경쟁하던 성숙과 자영은 함께 방을 쓰고 부딪치면서 결국 정이 들고 친구가 된다.

 

이러한 관계가 일상이 될 때 즈음, 중신의 유언이 뒤늦게 전해진다. 빨강이가 ‘빨강이는 방자영이 키운다’는 중신의 유언을 따르겠다고 말하자, 성숙과 자영의 관계는 다시 냉랭해지고 크게 싸운다. 하지만 친구가 되어버린 두 사람은 예전처럼 싸우기만 하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며 화해한다.

 

마지막 회, 세 사람이 함께 모여 차를 마시던 자리에서 자영은 “우리, 우리 셋이 같이 살자. 반대하는 사람?”이라 묻고, 성숙은 “나는 찬성”이라 답한다. 빨강은 “생각 좀 해보고”라고 답하지만, 빨강의 입가에 어린 미소를 발견한 성숙과 자영은 가볍게 건배하며 웃는다.

 

친모와 계모, 그리고 딸, 세 명의 여성으로 구성된 가정의 형태가 어쩌면 매우 이상해 보이겠지만, 드라마의 전개를 첫 회부터 따라가다 보면 조금의 이질감도 없이 이들을 응원하게 된다. 누구보다 빨강이를 위하는 두 엄마 밑에서 전보다 더 행복하게 살아갈 빨강의 모습을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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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성의 동거 경험을 담아 큰 화제가 되었던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에서 저자들은 자신의 가족 분자식을 ‘W2C4’(여자 둘 고양이 넷)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이 외에도 여자와 남자의 결합을 벗어난 무수히 많은 형태의 분자식이 태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들이 책을 낸 이유 또한 결혼해서 꾸린 가정 또는 혼자 사는 1인 가구 외에도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있음을, 그 사례를 보여주고자 함이었다고 한다.

 

계모의 뜻은 ‘아이들을 학대하는 나쁜 엄마’가 아니며, 각자의 삶이 모두 다르듯이 계모의 이미지도 하나로 표현되어선 안 된다. 계모와 마찬가지로 가정의 모습도 ‘남자+여자’ 혹은 1인 가구의 양자택일이 되어선 안 된다. 양자택일의 틀을 벗어난 다양한 삶의 형태를 계속해서 접한다면 우리는 더 많은 삶의 형태를 상상하고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정다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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