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명이 끝나면 비명이 들릴 테니까 - AKMU '전쟁터' [음악]

변화하지 않으면 전쟁은 계속된다
글 입력 2021.08.05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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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4단계 격상. 백신이 등장하고 종식이 가까워졌다 싶더니, 델타변이 바이러스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타는 듯한 더위, 주르륵 흐르는 땀에 티셔츠가 금세 끈적하게 젖어드는 것은 물론이고, 습한 공기에 코와 입을 덮는 마스크까지 쓰자 턱 하고 숨이 막혀온다. 끝날 줄만 알았던 재난은 끝이 나지 않고, 오히려 그 위에 자욱한 흙먼지가 한 겹 더 덮인 것 같다. 예고도 없이 갑작스레 울려 퍼진 코로나라는 커다란 총성에 우리는 어찌할 바 모르고 두 귀를 움켜쥔다. 삐- 경고음이 길게 이어지지만, 끝이 아니다. 이명 뒤에는 총을 맞은 이들의 산발적인 비명이 이어진다. 다름 아닌 이곳은 지금, 전쟁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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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MU가 컴백했다. 신규 앨범 [NEXT EPISODE]는 2017년 발매된 [SUMMER EPISODE]에 이어 4년 만에 시작되는 새로운 에피소드로, 전곡 피처링진이 참여한 AKMU의 첫 콜라보레이션 앨범이다. 그들은 이번 앨범에서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나, 남들의 기준과 시선, 개인의 아픔 등으로부터 굴복하지 않고 내면의 단단함을 잃지 않고자 하는 의지를 이야기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함께 희망을 찾고 결국 우리가 꿈꾸는 목적지로 도달할 수 있다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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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이야기를 담담하게 전해오면 더욱 슬퍼지기 마련이다. 지하철에서 1번 트랙인 ‘전쟁터(with 이선희)’를 처음 들었다. 무덤덤하게 울려 퍼지는 보컬에 무언가 무기력하고 슬픈 기분을 느끼다가, 브릿지 파트에서는 이선희의 특유의 한이 서린 음색에 눈물이 고이고야 말았다. ‘그땐 마스크를 아무도 쓰지 않았고’ 처음엔 가사를 언뜻 보고는, 펜데믹으로 침체된 현 시대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건가 싶었다. 물론 시류를 읽는 능력이 탁월한 악뮤기에 그 가능성도 범주에 넣어두었겠지만, 다시 음악을 들어보고 뮤직비디오를 시청하고 나니 핵심은 조금 다른 이야기였다.

 

 

 

이명 뒤의 비명


 

 

화약 연기 뒤덮인 하늘 봐 / 몇 십 년 후쯤이 되어야 우리는 전설이 될까

슝 폭탄과 총알 날아가는 모양 /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이들이 폭죽이 될까

피가 나는 줄도 모르고 걸음을 빨리 재촉하는 당신은

어떤 것을 그토록 사랑하길래 몇 번을 살아났나요

Hey kid, Close your eyes/ 답답해도 조금만 참아

여기 전쟁터에선/ 이명이 끝나면 비명이 들릴 테니까

내 어깨 위로 팔을 감아/ 저들이 가면 부축해 줄 테니 서둘러 가자

쿵 건물과 동상 쓰러지는 모양/ 돈보다 사랑이 필요한 걸 우린 왜 몰랐을까

숨이 죄는 줄도 모르고 / 헐레벌떡 산 위를 오르는 당신은

흙먼지투성이로 덮이기 전엔/ 어떤 사람이었나요

Hey kid, Close your eyes/ 답답해도 조금만 참아

여기 전쟁터에선/ 이명이 끝나면 비명이 들릴 테니까

그때 하늘색은 파란색이고/ 그때 바닷가는 해수욕

그땐 마스크를 아무도 쓰지 않았고/ 그땐 다 그땐 당연한

Hey kid, Close your eyes/ 답답해도 조금만 참아

여기 전쟁터에선/ 이명이 끝나면 비명이 들릴 테니까

 

- AKMU (with 이선희), 전쟁터

 

 

피와 총탄이 등장해야 전쟁일까. 비극적이게도 우리는 전쟁터의 뼈 더미 위에 조성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총칼을 휘두르며 승리하는 법을 배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잃고 나서야 아는 것처럼, 이명 뒤에 기다리는 비명을 우리는 모르고 전진하는 것처럼, 무엇에 쫓기며 급히 가는가. 또는 어디로 가는가. 아, 생각보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나 그럼에도 이 전쟁과 같은 삶은 끝이 나지 않는다.


- 전쟁터(with 이선희) 뮤직비디오 소개글

 


 

 

뮤직비디오는 어린 소녀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전쟁의 주체가 아이들이라는 뜻이다. 아이들은 총을 어딘가로 겨누고, 머리를 맞대고 전략을 짠다. 그런 도중 아이들은 천장을 계속해서 쳐다보고, 카메라는 조용히 공중에서 쏟아지는 시험지들을 비춘다. 아, 이 전쟁은 ‘피와 총탄이 등장하지 않는’, 학창 시절부터 강요되는 경쟁이 만연한 현대사회를 뜻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뮤직비디오의 초반에는 전쟁에 소극적으로 임했던 소녀는 곧이어 이 전쟁이 결코 피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싸워야만 한다. 소녀는 총으로 아이들을 쏘고, 승리의 보상으로 교복을 수여받는다. 혹은 이 경쟁 사회를 대물림 받는 것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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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서는 더 이상 용이 나지 않고, 능력주의의 신화는 신뢰감을 잃은 지 오래다. 우리의 능력, 즉 시험성적은 개인의 가치와 1대 1 로 대응하는 구조에 있으며,  능력주의는 우리의 경제적, 사회적 가치와 계층을 만들어낸다. 어떠한 능력을 얻기까지, 그 성공 뒤에는 사실 수많은 요소가 있다. 가족과 선생님, 교육 혜택과 문화적 기회 등, 그들의 노력 이상의 요소들이 사실 성공의 발판이다. 그러나 능력주의는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승자들의 오만한 태도를 야기 시킨다. 그것은 세습이 되며, 불평등한 계급 구조와 불공정함을 정당화시킨다.

 

학교는 전인격적인 발달보다는 국영수 위주의 교육에 집중하며, 치열한 명문대 경쟁과 학벌주의는 경쟁을 심화시킨다. 이러한 현대 사회에서, 아이들은 전쟁터의 뼈 더미 위에 조성된 어린 시절을 보내고, 그렇게 교복을 물려받은 아이는 기득권층이 된다.

 

‘이명이 끝나면 비명이 들릴 테니까’

 

‘전쟁터’라는 곡에서 선명하게, 반복되어 들리는 구절이다. 처음 듣고 중의적 표현에 감탄을 한 기억이 있는데, 계속해서 음악을 듣다 보니 필자에게는 이 의미가 두 가지 의미 이상으로 느껴졌다.

 

첫 번째로, 냉정하기 그지없는 현실을 차갑게 직시하며 비관적인 태도를 보이는 표현으로 느껴졌다. 무한경쟁시대 속, 총성과 굉음이 발생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싸워야 하며, 이명 뒤에는 비명이 이어지는 것은 늘상 전쟁터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로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그렇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어떠한 낙관이나 위로도 없이, 이 끔찍한 상황을 관조하고, 마치 ‘A는 B이다’라는 명제를 제시하듯 담담하게 ‘어차피 이명이 끝나도 비명이 이어질 거야’라며 자조한다.

 

사실, 처음에 들었을 때는 그동안의 악뮤를 떠올렸을 때와 대비되는, 염세적이고 차가운 태도라 놀라긴 했다. 그러나 세상이 변화하지 않으면 이명 뒤의 비명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악뮤의 메시지는 과열된 경쟁으로 진정 중요한 것을 잊어버린 이 시대에 경종을 울린다. 변화를 꿈꾸는 이들의 어투는 차가울 지 몰라도, 속내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짓밟아야 하는 경쟁사회를 의미한다. 이명이 왔다는 것은 누군가 포탄을 던지고 총을 쏘았다는 것, 비명이 들렸다는 것은 그것에 맞은 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명 또한 자기 내부의 고통이다. 계속해서 귀 속에서 잡음이 울리는 상황을 마주하는 것은 고역이다. 그러나 그 이명이 반복되고, 자신의 내부의 고통이 끝나면 비명을 지르는 타인의 고통과 마주해야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끊임없는 악의 순환 고리에 현대의 경쟁사회는 존재한다. 승리자만이 정당성을 얻을 수 있기에, 나아가기 위해서 누군가를 밟고 일어나야 하는 상황. 그렇다면 이 과도하게 불붙은 경쟁을, 전쟁을, 굳이 해야만 할까.

 

마지막으로, ‘이명이 끝나면 비명이 들릴 테니까’는 중의적 표현이다. 이 명을 목숨이라는 의미로 해석한다면, 자신의 명이 끝나면 그제야 주위에서 비명소리가 들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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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열되는 입시경쟁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드라마 ‘스카이캐슬’.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나서야 주위에선 그 심각성을 깨닫고 비명을 지르며 통탄한다. 드라마는 개과천선한 인물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이 났지만, 일부에서는 그 문제점들을 수용하고 입시 코디네이터까지 찾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유튜브에서 떠도는 스카이캐슬 클립에 ‘코리아 하이틴’이라는 댓글이 가장 많은 추천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이 과열된 입시경쟁과 기형적인 사교육 현장을 유머로만 소비할 수 없는 이유다.

 

더불어, 이 이야기는 비단 경쟁 사회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악뮤의 소속사가 밝힌 바로 이번 전쟁터라는 곡은 전쟁처럼 복잡 미묘하고 치열한 상황들에 대해 어른이 아이에게 이야기하는 형태를 가졌다고 밝혔다.


 

‘모든 안전법들은 유가족이 만든 거야.’


- 정세랑, 피프티피플

 

 

현대사회는 전쟁터다. 누군가의 명이 다하고, 곧이어 국민들의 분노와 비명과 외침이 들리기 전에는 무언가가 바뀌지 않는다. 아니, 그렇다 해서 좀처럼 바뀌지 않는 것들도 있다.

 

총성이 울린다. 누군가가 죽는다. 비명이 들린다. 뒤늦게 만들어진 안전법은 피해자의 이름을 따서 이름이 지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졸속으로 만든 법에는 허점이 있을 수밖에 없는 법. 그런 법은 불쑥 삐져나온 새치 몇 개만 뽑아내는 핀셋 역할 밖에 하지 못할 것이고, 법이 완벽하지 않다면, 또 다른 피해자와 가해자가 발생할 것이다.

 

왜 모든 안전법은 유가족들이 만들어야 할까. 이명 뒤의 비명이 들리기 전에 이 모든 일이 반복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악뮤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직시하게 한다.

 

 

 

얼음들이 녹아지면 따뜻한 노래가 나올텐데


 

몽골에서 홈스쿨링을 하다가 한국에 혜성처럼 등장한 남매 둘. ‘K팝스타’라는 TV프로그램에서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한국의 경쟁사회를 맛본 악뮤가 부르는 노래가 ‘전쟁터’였기에 그 무게감이 남달랐다. 전쟁터는 뼈 더미 위에 올라앉은 아이들에게 어른이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 이전, 악뮤가 AKMU가 아니라 악동뮤지션이었던 시절. 그들이 아이들이었던 시절에, 어른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먼저 존재했다.


 

얼음들이 녹아지면

조금 더 따뜻한 노래가 나올텐데

얼음들은 왜 그렇게 차가울까

차가울까요


- AKMU, 얼음들

 

 

‘얼음들’을 ‘어른들’에 빗대어 표현한 노래이다. 악뮤의 이찬혁은 이 곡이 차갑다는 사람들의 말에, 얼음들이 녹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 곡이기에 따뜻한 노래라고 답한다. 그리고 꼭 어른을 빗대지 않고서도, 여러 의미에서 얼음이 녹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 곡이라고 한다. 40, 50대가 되어서도 이 노래를 들으면서 따뜻한 노래를 부르기로 약속했던 자신의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약속하는 곡이기도 했다고. 이번 앨범을 들으면서 느꼈다. 그는 약속을 지킨 것이 틀림없다고.

 

‘전쟁터’를 듣고 이어서 바로 ‘얼음들’을 듣자, 이 노래가 어른이 된 나를 깨우치게 하는 아이들의 가르침 같아서 왠지 부끄러워졌다. 아이들에게 불붙은 경쟁 사회를, 배금주의적인 욕망을, 대물림할 필요는 없다. ‘돈보다 사랑이 필요하단 걸’ 우리는 알려줄 필요가 있다. 이명이 끝나도 비명이 계속되는 현대 사회에서,어른으로서 보여줘야 할 태도엔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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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노동이 존엄하다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 인식하고 그에 걸맞은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돈과 능력 그 이면에 존재하는 가치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삶에서 몸소 실천하는 것이다. ‘숨이 죄는 줄도 모르고 헐레벌떡 산 위를 오르는’ 것이 답이 아니며, 실패해도 다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능력이 아니라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믿어주는 것이다. 다양한 가능성을 품은 아이들의 실패에 관대하게 포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부정하고 싶지만 현대사회는 이미 전쟁터이고, 살아남기 위해선 어차피 싸워야한다. 무엇을 위해 싸우는 지 의미조차 잊으며 계속 이렇게 이어질 전쟁이라면, 이 투쟁의 방향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도 되지 않을까. 서로를 밟고 일어서야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그런 거 말고, 진짜 ‘공정’을 위한, 이 사회에 대한 투쟁 말이다.


 

‘우리’라는 말은 ‘그들’을 전제로 할 때 배타적인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혹시, 하나의 폐쇄된 집단으로서의 ‘우리들’이 아닌, 수많은 우리‘들’이 교차하고 만나는 연대의 관계로서 ‘우리들’이 가능하진 않을까?


-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전쟁터’의 뮤직비디오에서는 나를 제외한 상대는 모두 다 그들이다. 내가 아닌 모든 것은 제거해야 할 기능이며, 연대는 전략을 짤 때, 그 순간만 일시적으로 기능한다. 외롭게 전쟁에서 승리한 아이는 보상으로 교복을 물려받지만, 또 그 교복을 입고 혼자 새로운 전쟁터에 뛰어들어야 한다.

 

홀로 하는 싸움은 외로운 법이다. 이왕 하는 싸움이라면, ‘나 혼자’서가 아닌, 수많은 우리‘들’이 교차하고 만나는 연대의 관계로서 얼어붙은 사회에 대항하는 ‘우리들’의 투쟁이 더욱 유의미하지 않을까. 그럴 때 비로소 얼음들은 녹아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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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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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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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 탁월한글 잘보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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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반
    • 와,, 좋은 글이네요.. 이렇게 해석이 되는구나.. 감사합니다^^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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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야
    • 정말 속이 뻥 뚫리는 글이네요.
      이래 저래 이해가 잘 가는 글입니다.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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