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귀 기울인 순간, 비로소 보이는 가치 - 워스 [영화]

글 입력 2021.08.04 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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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 전문 변호사 '켄'(마이클 키튼)은 9/11 테러 피해자들을 위한 보상금 기금 운용의 총책임자로 임명된다. 석면, 고엽제 등 여러 산업재해 관련 보상금 협상 과정들을 수차례 밟아온 '켄'은 그러나, 자신의 생각을 넘어설 정도로 차원이 다른 유족들의 피해 규모로 뜻하지 않은 난관들에 봉착한다.

 

유족들의 80% 이상의 서명을 받아야지만 보상금 지급이 가능한 상황 속에서, 날이 갈수록 기금을 향한 유족들의 불신은 커져만 간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고서 진심으로 피해자들을 위한 보상금 기금 운용에 박차를 가한 '켄'은 이전까지 고수해온 모든 방식들을 버리기 시작한다.


2001년 9월 11일에 발생한 테러 직후 피해 유족들을 위해 설립된 보상 기금을 둘러싼 실화가 배경인 영화 <워스>는 시작부터 묵직한 질문을 제기한다.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켄'은 학생들에게 일종의 역할극을 통해서 기업과 산업 피해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협상 테이블 과정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변호사 역할의 학생에게 기업에 제시할 피해 액수를 물어본 '켄'은 액수 책정 단계에서 철학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설파한다. 그로부터 얼마 안 되는 시간 사이에 '켄'은 자신이 강단에서 설파한 이론을 직접 실천하는 임무를 떠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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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사태로 국가적 위기에 봉착한 미국 정부는 피해 가족들을 위한 보상금 기금을 마련한다. 하지만, 보상금 기금 마련에는 사고 피해자들이 항공사 측으로부터 요청할 막대한 피해 보상금으로부터 회피하기 위한 면피성 의도가 기저에 깔려있다. 이면에는 불손한 취지가 내포돼있으면서도 다양한 피해자 계층을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는 보상금 기금의 존재론적 딜레마는 영화가 제시하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수차례 '켄'의 발목을 잡는 난관으로 작용한다.


극 전체를 이끌어가는 '켄'은 다소 입체적인 캐릭터다. 변호사로서 기본적인 직업윤리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잇 속 또한 충분히 챙길 줄 아는 인물이다("판사 자리 하나가 공석 아니던가요?"). 전시에 가까운 비상사태에 어떤 식으로든 국가에 기여하고픈 그의 투철한 신념 덕분에 '켄'은 누가 봐도 골치 꽤나 썩을 기금 운용자 자리를 받아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 공직에 몸담았던 자신의 과거를 다시 구현할 수 있는 철호의 찬스라는 생각 또한 암암리에 가지고 있는 이중적인 캐릭터다. 영화는 '켄'의 다층적인 면모를 통해서 공감과 존중을 기반으로 한 정의가 실현되는 과정을 부각시킨다.


변호사로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직업윤리를 가지고 있는 '켄'이지만, 보상금 운영 과정에서 지극히 객관성을 추구한 나머지 9/11 사태 피해자들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패착을 밟는다. 사상자들의 과거 직업, 가족관계 등을 세부적으로 따져서 만든 그의 보상금 산출 공식은 피해자가 누구냐에 따라 보상금이 차등 지급된다는 사실과 함께 피해자들의 외면만 받는다.

 

보다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해야만 하는 상황 속에서, 자신이 성립한 보상금 산출 공식의 오류를 지적한 사회활동가 '찰스 울프'(스탠리 투치)의 조언을 되새긴 그는 애초부터 기금 운용과 관련한 자신의 접근 방식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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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운용 방식을 자각한 '켄'의 변화는 영화가 지향하는 형태로서의 정의가 구현되는 과정을 가리킨다. 과거, 9/11 테러로 희생당한 소방관의 아내를 면담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아픔을 위로하기는커녕, 녹취용 녹음기도 제대로 작동할 줄 모를 만큼 피해자들과의 공감을 시도조차 하지 않은 티가 역력했다.

 

그러나, 자신의 과오를 실감한 직후, 다른 팀원들이 진행하는 피해자와의 면담 시간을 함께 가지며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귀담아듣는다.

 

한때, 테러 발생 직후 열차 안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뒤늦게 눈치챌 만큼 오페라를 즐겨 들었던 켄의 귓가에는 피해자를 향한 유족들의 그리움으로 가득 찬 사연들이 연이어 재생된다.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 '켄'이 그토록 찾아 헤맸던 진정한 의미의 가치가 눈앞에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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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연출한 '사라 코랑겔로' 감독은 전작(<나의 작은 시인에게>)을 통해서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 구축 및 인물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포착하는데 탁월함을 입증했다. 이번 작품 역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켄'의 점진적 태도 변화에 주목하며 실제 사건이 촉발시킨 화두를 심도 깊게 조망한 드라마로 완성시켰다.

 

더불어, 다층적 면모가 돋보이는 '켄'의 입체감을 섬세하게 구현한 마이클 키튼의 호연은 영화가 제기한 질문 앞에서 진심으로 답을 구하려는 한 인간의 절실함을 드러내는 감동을 선사한다.


영화 <워스>는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와 이를 입증하는 태도의 올바름을 역설한다. 모든 피해 유족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보상금 산출의 객관적 기준 만을 바라본 '켄'은 저마다의 드라마를 직접 듣기 시작함으로써 문제가 된 차등 지급과 관련한 중요한 선택과 결심을 이행한다.

 

다른 유족들보다 더 많은 피해 보상금을 요구하는 몇몇 상류 기업의 법적 강요를 감내하면서까지 새롭게 형성된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는 '켄'의 태도는 영화가 서두에 제기한 질문의 해답에 다름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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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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