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이런 세상에서 내 얘기를 한다는 것

글 입력 2021.08.09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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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게 무얼 하며 사느냐고 물으면 늘 곤혹스러워진다. 저도 제가 뭘 하고 사는지 잘 모르겠는데요, 그 쪽이 보기엔 제가 뭐하는 것 같으세요? 되묻고 싶은 마음을 참는다. 그러다 결국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아...그냥 가끔 글 쓰고 학교 열심히 다니려고 하죠..”정도다. 멋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주 한심하지도 않은 대답이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열의 아홉은 “와 글이요? 무슨 글 쓰세요? 글 잘 쓰시나봐요.”라고 대답하기 때문이다. 이러면 2차 곤혹스러움이 시작된다. 저도 제가 무슨 글 쓰는지 모르겠고요, 그냥 쓰는데요, 잘 쓰는지도 모르겠어요.

 

 

프로젝트당신-4.jpg
B시의 집 벽. 
Copyright (c) by 송세희 2020 All rights reserved.

 

 

“너무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 않나?”


좀 황당하지만, 프로젝트 당신에 기고할 글을 쓰기 위해 파일을 열자마자 가장 먼저 했던 생각이다.


나는 세상이 너무 좁다는 생각을 한다. 나와 스쳐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취미가 있고 사연이 있다는 것을 불현 듯 깨달을 때마다 몸을 움츠리게 된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세계가 그 사람을 감싸고 있는 둥그런 공처럼 눈에 보인다면 우린 얼마나 웃긴 모양새로 살게 될까. 사이좋게 서로에게 짓눌려 살게 되겠지. 사실 지금도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나에 대해 너무 오래 이야기해왔다. 내 얘기를 하는 것은 그나마 쉬운 일 같다가, 가장 어렵고 난감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블로그를 몇 년 동안이나 운영하면서 써왔던 것은 전부 나에 대한 글이었다. 발에 치일 정도로 이야기가 많은 이 시대에, 고작 나에 대한 좁디 좁은 이야기를 올릴 뿐인데 누군가 봐준다는 사실은 정말 경이롭게 느껴졌다.

 

실은 의아하기도 했다.


솔직히 나는 누군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듣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어쩌면 두려웠던 것일 수도 있겠다. 거칠게 말하자면, 일종의 더미나 NPC처럼 생각했던 타인들의 자아를 알게 되는 일이 무서웠던 것일 수도 있겠다는 말이다. 좀 황당해 보이겠지만 그렇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일. 너무 당연해 보이는 문장이지만 사실 이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사람 대우 한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사람도 나와 같이 인격과 자아와 사연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매 순간마다 의식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래서 누가 내 글을 봐줄 때마다 좀 붙잡고 묻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왜 읽으셨나요? 재밌으세요?라고. 당신의 소중한 시간에 실제로 본 적도 없는 사람이 자기 이야기 주절주절 늘어놓은 걸 읽으신 이유는 뭐예요? 그런 반짝거리는 마음은 어디서 나오는 건가요? 내게 없는 마음이 궁금했다. 한없이 감사하기도 하고, 영원히 믿기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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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정 어딘가의 스튜디오
Copyright (c) by 송세희 2020 All rights reserved.

 

 

글쓰기는 어렵다. 절대로 쉬워지지 않는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나로서는 그렇다. 요 며칠은 유독 어려웠다. 전시장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그 전에 나름대로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작디 작은 루틴들이 우르르 무너지면서 글을 쓰기가 아예 힘들어진 것이다. 다른 학교에 다니는 다른 전공의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전시장에서 직접 작가님들을 마주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그 기간 동안 내 정신적, 신체적 건강은 점점 깎여나갔다.


실은 프로젝트 당신에 신청한 것을 몇 번이고 후회했다. 아, 그냥 하지 말걸. 내 얘기 쓰겠다고 하지 말걸. 그냥 다른 얘기 할걸. 왜 한다고 해가지고 이렇게 지각하고 자책하고... 다른 에디터분들이 올린 프로젝트 당신은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은데 나는 대체 뭘 쓰고 뭘 할 수 있을까. 그치만 분명 나같은 사람도 있겠지. 대체 다른 사람들은 뭘 쓰나 괴로워하다가 문득 이 글을 클릭한 지금 당신일 수도.


그리고, 지금까지의 문단은 전부 다 핑계였다. 이미 나는 기고 날을 며칠이나 지각했기 때문이다. 혓바닥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이래서 어렵고, 저래서 힘들었어요. 하는 말을 길게 늘어놓아 본 것이다. 지나치게 많은 이야기들이 범람하는 이 시대에 작고 작은 나의 이야기가 정말이지... 무슨 의미를 가질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어주는 당신이 있기 때문에.

 

그러니 마저 쓰기로 한다. 솔직히 지금 이 순간도 자신이 없지만.

 

 

프로젝트당신-1.jpg
통영
Copyright (c) by 송세희 2019 All rights reserved.

 

 

이름은 송세희다. 빠른 년생이지만 빠른 년생을 신경써가며 나이를 말해야 하는 사람보다는 내가 몇 살이든 신경쓰지 않고 친구가 되어주는 사람이 좋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려고 한다. 서울에서 태어나 바다가 있는 준-시골 동네(아주 시골이라기엔 좀 애매하다)인 B시에서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누가 고향을 물으면 난감해진다. 태어난 곳은 서울이지만 마음 속으로 고향은 B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린 나의 8할은 B시가 키웠다. 바다가 있고 골목길이 있고 숲 속에 길이 있는 그곳이.


어떻게든 나이를 먹은 나는 대학교에서 미디어디자인과 큐레이팅을 복수 전공하고 있다. 복수 전공을 느즈막히 시작하는 바람에 추가 학기는 확정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렸고, 주변 어른과 가족과 친구 중 내가 미술을 하는 사람이 될 거라는 사실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지만, 아쉽게도 나는 창작자는 아니었다. 중학생 때 그 사실을 온 몸으로 깨닫고 그 뒤로 만드는 일은 넘보지 않는다.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초등학생 때 다녔던 동네 화방의 선생님께서 내 그림을 찬찬히 보시곤 툭 뱉은 “너는 미술을 해야겠다.”라는 말로 어떻게든 예술의 길을 아슬아슬하게 걸어왔다.


창작자는 ‘그리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그리고 싶은 게 있는’ 사람만이 될 수 있다. 이 사실을 늦게 깨달을수록 괴롭다. 다행히도 나는 상당히 일찍 깨달은 편이다. 워낙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린데다 다섯 살 터울의 언니가 있어 일찍이 다양한 커뮤니티에 접한 덕이다. 난 없던 걸 만드는 사람보다는 다른 이가 만든 것을 읽고 보고 짚어보고 공부하는 일이 더 맞는 것 같다. -것 같다, 로 끝내는 이유는, 막상 이 일도 해보면 싫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학과 미술사가 매력적이었지만 아는 게 없었다. 아는 게 없는 상태가 지겨워서 큐레이팅 복수 전공을 시작했다.


큐레이팅을 복수 전공한다는 말은 언뜻 멋지게 보인다. 워낙 특수학과라 그런 것도 있겠다. 하지만 디자인과 큐레이팅을 복수 전공하는 것은 누가 봐도 추천할 만한 길은 아니다. 특히 이미 각 과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은 뜯어 말릴 선택이다. 두 학과 모두 살인적인 과제 양과 졸업 전시, 시험 준비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할 사람은 한다’와 ‘안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 후회하는 게 낫다’는 말을 굳게 믿고 있기에 복전을 감행했다. 하다가 너무 힘들면 그냥 때려칠 생각으로 시작했는데(언니와 엄마가 이렇게 말해줬다. “하다가 힘들면 그냥 때려쳐!”라고. 도움이 많이 되었다), 부디 미래의 세희가 버텨주길 바랄 뿐이다.


최근의 근황은, 졸업 작품 준비를 코 앞에 두고 있다. 틈틈이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그 밖의 일들은 전부 조급해 하되 열중은 하지 않는 나날을 보낸다. 스스로를 굉장히 약하다고 생각했는데 주변에서 곧고 강하다는-적어도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보인다는-말을 자주 듣다보니 그런가보다 하며 산다. 사람 만나는 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최근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양한 분야에 아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노력 중이다. 사진 찍기와 찍히기도 좋아하고 또 오래 해왔으나 최근에는 몸과 마음에 여유가 없어 도통 못하고 있다. 독립 영화에 출연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고등학생 때부터 가졌는데, 과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스스로 많이 무뎌졌다는 생각을 한다. 싫지 않다. 제발 감정이 내게서 떠나가기만을 바랐던 날들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 모든 시간을 지나올 수 있었던 건, 내가 이런 일을 겪은 사람이기 때문에, 나중에 내가 지나온 시간을 지나가고 있는 중에 있는 사람을 마주치면 그 때는 안아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내 생각보다도 더 치졸하고 좁은 사람이어서 안아주는 일이 쉽지 않았다. 밀어내기에 바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날을 지나올 때 곁에 있어주었던 사람들에게 감사하다. 너무 많은 사람들을 어쩔 줄 모르게 만들었던 어린 내가 밉지만 그 때의 내게는 최선이었으리라 여기려고 한다.

 

 

프로젝트당신-2.jpg
망원 한강공원
Copyright (c) by 송세희 2019 All rights reserved.

 

 

나는 ‘우리 엄마 아빠 언니도 다 알아들을 수 있고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돈이 많은 것도 친구가 많은 것도 바라지 않고, 단지 서울에 살지 않아도 괜찮은 직업을 가지는 게 꿈이다. 가까운 곳에 바다가 있으면 좋겠다. 꿈이 뭐냐는 질문 앞에서 서글퍼지지만 앉아있지만은 않으려고 한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것 먹는 일이 가장 행복한 송세희는, 오래오래 살아서 많은 사람들의 늙은 친구로 있고 싶다.

  

줄곧 가지고 지낸 시를 소개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룸비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 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 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산산조각, 정호승

 

 

[송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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