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색이 차분하면서도 신비롭다는 게 바순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울룩불룩하지만 기품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지만 바순은 지나치게 느긋하고 여유를 부리는 악기였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선 그랬다. 그동안 음원이나 영상을 통해 접해왔던 바순에 대한 이미지는 여타의 목관악기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선입견은 이번 리사이틀을 통해서 어느 정도 깨지게 되었다. 바순은 실로 다양한 표현이 가능한 악기였으며, 독주 악기로서의 면모를 갖춘 악기였다. 협주 혹은 반주용으로 출발하게 된 악기이지만, 바순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개발을 통해 독주 악기로서의 가능성이 제기되어왔다고 한다.
바로크와 고전주의 시대의 작곡가들이 실제로 바순을 위한 협주곡이나 소나타에 대한 작품들을 여럿 발표했던 것을 보면, 그들이 바순이라는 악기에 대해 애정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비발디, 모차르트 등이 독주 악기로서의 가능성을 제시했으며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영역은 점차 확장되어 왔다.
예술의전당 리사이틀 홀은 첫 방문이었다. 오랜만에 클래식 공연장을 방문해서 그런지 괜히 긴장이 됐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약간의 긴장감이 오히려 음악에 더욱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도움을 줬던 것 같다. 공연은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었고, 피아노와 바순 2중주의 바순 리사이틀로 진행이 되었다.
<프로그램>
프랑수아 드비엔느 / 바순과 통주저음을 위한 소나타 사단조, 작품24-5
요한 세바스찬 바흐 / 비올라 다 감바를 위한 소나타 사장조, 작품1027
-Intermisson-
하인츠 홀리거 / 바순 솔로를 위한 세 개의 작품 중 3악장
카미유 생상스 / 바순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사장조, 작품168
마르셀 비쉬 / 바순과 피아노를 위한 소협주곡
하인츠 홀리거의 <바순 솔로를 위한 세 개의 작품 중 3악장>
나는 2부의 첫 번째 곡인 하인츠 홀리거의 <바순 솔로를 위한 세 개의 작품 중 3악장>과 마지막 곡에 해당하는 마르셀 비쉬의 <바순과 피아노를 위한 소협주곡>을 인상 깊게 들었다.
2부의 첫 번째 곡인 하인츠 홀리거의 <바순 솔로를 위한 세 개의 작품 중 3악장>은 리사이틀에 연주를 들으러 온 사람들 대다수가 인상 깊게 들었으리라 생각한다. 심미적으로 아름다워서라거나 작품성이 더할 나위 없이 뛰어나서라기보다는 작품 자체가 생소하고 놀라웠다.
바순이라는 악기가 가진 처음과 끝을 보는 듯했다. 바순이 가진 표현 기법의 다양성은 무궁무진해보였다. 그로 인해 다소 거부감이 들 만한 그로테스크한 사운드나 과격한 소음 등도 있었다. 예컨대 휘파람 소리, 방귀 소리, 칠판 긁는 소리, 입 맞추는 소리 등이 섞여 들렸다.
그러나 아름답지만 다소 지루하고 예상 가능하게 흘러갔던 1부의 음악들보다 집중해서 들을 수 있었다. 잠이 오는 음악은 단조롭게 진행되어 평화롭지만 쉽게 싫증이 날 수도 있다. 그런데 하인츠 홀리거의 <바순 솔로를 위한 세 개의 작품 중 3악장>은 절대로 그렇지 않았다.
아방가르드 예술을 처음 접할 때와 비슷했다. 익숙하게 들어왔던 음악을 들을 때보다 정신이 퍼뜩 들게 되는 작품이었다. 들으면서는 곡의 전개 과정을 예측하며 상상하게 되었고, 곡이 끝나고 나서는 작품에 내재된 의미와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여러모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아가 바순이라는 악기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바순은 주로 보조용, 조연의 역할로 오케스트라에서 쓰이곤 한다. 하지만 바순이 독주 악기로서도 훌륭하게 활용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고, 연주자의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주연으로 거듭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마르셀 비쉬의 <바순과 피아노를 위한 소협주곡>
리사이틀 2부의 마지막 곡인 마르셀 비쉬의 <바순과 피아노를 위한 소협주곡>은 공연의 피날레를 장식하기에 충분했다. 피아노와 바순의 호흡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내가 바순이라는 악기에 기대하는 최대치를 이끌어낸 작품이었던 것 같다. 신비한 음색과 부드러운 선율.
이 소협주곡은 내가 좋아하는 인상주의 음악가인 라벨을 연상시켰다. 드라마틱한 주제의 반복은 매력적이었으며, 솔로 파트까지는 아니더라도 연주자끼리 음을 주고받는 후반부는 재즈를 떠올리게 하였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진행되는 곡이 끝으로 갈수록 절정에 치달았다.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과 같은 몽환적인 분위기도 곡의 초중반부에서 느낄 수 있었다. 1948년에 작곡된 곡이라 그런지 현대적인 색채를 많이 담고 있는 곡이었다. 앞서 언급한 드뷔시나 라벨과 같은 인상주의 작곡가의 영향을 느낄 수 있는 마지막 이중주곡이었다.
작곡가는 프랑스인이었으며 1921년에 태어나 2011년에 세상을 떠났다. 나는 프랑스 예술가들만이 가지고 있는 예술성을 좋아한다. 낭만이라든가 자유라든가, 그 무엇이 되었든 문학과 미술, 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프랑스 예술은 예전부터 내게 특별한 감흥을 가져다 주었다.
나는 복잡한 기교를 별로 안 좋아하는줄 알았는데 이번에 바순 리사이틀을 듣고 실제로 가장 인상 깊었던 두 곡을 뽑아보니, 기교가 어려운 곡들로만 뽑혀 있었다. 현란함과 화려한 음악은 내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악기나 연주자에 따라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