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까마귀

1화
글 입력 2021.07.31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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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내 별명은 까마귀였다. 온갖 반짝거리고 쓸모없는 것들은 지나치게 좋아했기 때문이다. 하굣길에 내가 너무 늦게 들어와 걱정하던 엄마는 늘 예쁘다고 골라온 돌들로 주머니가 불룩해진 작은 나를 마주해야 했다. 엄마와 손을 잡고 지나가던 상점에 반짝거리는 무언가가 보이기라도 하면 나는 그 앞에서 떠나지를 못했다. 떼쓰는 성격도 아니었고 호락호락하게 원하는 걸 사주는 부모님도 아니었어서 우뚝 서있는 것 외에 별다른 행동은 없었지만 그 앞에서 반짝이는 것들을 눈 안에 담고 있다 보면 그냥 그대로 박제가 되어버려도 행복할 것 같았다.

 

쓰레기통으로 향하기 직전인 보라색 사탕 껍질 같은 것들도 나는 몰래 구출해서 방으로 가져오곤 했다. 반짝이고, 무언가 내 맘속을 간지럽히는 것이면 그것이 얼마나 무가치하든지 상관이 없었다. 덕분에 엄마의 눈에는 쓰레기로 가득한 내 방을 당신께서 열심히 치워주고 난 날이면 난 여지없이 울상이 되어 작고 소중한 쓰레기들을 잃은 상실감과 땀을 뻘뻘 흘리고 뿌듯한 표정으로 서있는 엄마에 대한 미안함 사이에서 이도 저도 못하곤 했다.

 

달리는 차창을 밖의 반짝거리는 나뭇잎을 보며 어린 날의 까마귀 시절의 기억들을 되새기다 보니 어느덧 버스에서 내릴 때가 되었다. 전형적인 5월의 초여름 날씨였다. 버스에서 내린 나는 방향감각을 잃고 잠시 뱅글뱅글 돌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고향 같았던 곳이라 지도 없이도 잘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한참을 헤매다 마주하게 된 곳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홈페이지에서 볼 땐 어딘가 상가 밖으로 환하게 툭 튀어나온 곳에 있는 작고 신비한 가게일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오피스텔 4층의 간판도 없는 일반 가정집 같은 곳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가게를 잘못 찾아온 줄 알고 몇 번이나 건물을 오르락내리락 했다.

 
스릴러 무비에 나올 것 같은 어두컴컴하고 폐쇄된 집들이 가득한 복도를 지나 411호 앞에서 전화를 걸었다.

-저 지금 도착했는데 411호가 맞나요?


문 너머로 전화받는 소리가 들렸다. 아 네 맞는데요! 문 열어드릴게요.
 
*
 
문을 열자 전연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크게 뚫린 창문으론 쭉쭉 뻗은 나뭇가지가 초록의 이파리들을 잔뜩 매단 채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었고 아무렇게나 어질러진 수많은 작업물의 잔해들이 책상 위며 바닥을 어지러이 굴러다니고 있었는데 그 불규칙들은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있는 듯 정갈해 보였다. 불을 일체 켜지 않아 날씨 좋은 4월 오후 5시의 햇살만이 자연스럽게 모든 사물을 비추고 있었다. 고양이 용품들도 보였다.

-와, 고양이가 있나 봐요!

-네~ 맞아요. 아마 위층에서 자고 있을 거예요.
 
대화가 끝나기가 무섭게 복층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리더니 치즈색 고양이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작고 어리고 말괄량이처럼 생긴 고양이였다. 귀여움에 내적 비명을 지르고 조심히 쓰다듬었다. 손을 안 타는 앤데 내게 가만히 있는 것이 신기하다고 주인은 말했다. 길에서 구조한 그 아이의 이름은 ‘티니’였는데 운명의 데스‘티니’라는 뜻이라고 했다. 티니는 꽤 심심해 보였다. 이런저런 소품들이 저 어린 고양이가 가지고 놀기엔 위험해 보여 주제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소품 가게 사장님은 내 또래 정도로 보이는 분이셨는데 마스크 위로 드러난 반짝이는 눈이 꼭 누군가를 닮아 한참을 골똘히 생각했다. 누구더라. 기억을 더듬어보니 날 곤경에 처하게 했던 6년 전 동기 언니와 똑 닮은 눈이었다. 그 언니는 꽤 사납고 학과에서 구설수에 자주 오르는 사람이었는데 지금 내 눈앞에 있는 하얗고 순한 이 사람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하지만 마스크 위로 반짝이는 눈만큼은 너무도 닮아있어 같은 배우가 전혀 다른 역을 연기하는 듯 아니면 온전히 다른 세계관에 와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내향적이고 섬세해 보이는 그 사람은 수줍게 준비된 자리로 날 안내했다.
 
나는 이곳에서 이벤트성으로 진행 중인 네일아트를 위해 온 것이었는데 고백하자면 살면서 처음 받는 네일아트이기도 했다. 평소에 손톱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았지만 찍어낸 듯 똑같거나 유행하는 디자인의 ‘평범한 치장’처럼 보이는 것에 선뜻 용기를 낼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이 소품샵의 주인이, 매번 떠오르는 영감대로 각기 다른 특이한 그림을 손톱에 그려준다는 소식을 듣고 덜컥 예약했던 것이다.
 
마주 앉아 도착하자마자 비누로 씻은 물기 있는 손을 내밀었다. 상대편의 손은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 사람답지 않게 비현실적으로 희고 보드랍고 폭신했다. 상처 받기 쉬워 보였고 실제로 한 번도 햇살이라든가 고통 같은 어떤 자극도 느껴본 적 없는 듯했다. 그 사람이 맞잡은 나의 손은 반면 가늘긴 했지만 조금 기름지고 건강하게 그을린 색에 주름과 땀구멍과 왜인지 굳은살이 가득했다.
 
상대는 아이스브레이킹을 깰 의도였는지 조용히 몇 가지 질문을 했고 낯을 가리지 않는 나는 그에게 답하며 동시에 이런저런 말을 걸었다. 나는 사실 일산에 살다가 이제는 수원에 살게 되었는데 어제는 인천에 사는 부모님 댁에 들렸다가 바로 와서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혹시 당신 사주를 봐줬던 사람이 있지 않았느냐, 그의 소개로 이곳에 오게 되었다, 고양이가 정말 예쁘다, 등…. 그는 손톱을 칠할 때는 숨을 참는 듯 숨죽이며 손 빼고는 모든 것이 일시정지된 상태로 말을 듣기만 하다가 손톱 위 그림 하나가 끝나면 숨을 내쉬는 듯 대답을 토해냈다.
 
그녀는 나를 본 첫인상을 떠오르는 대로 손톱에 표현해주겠다고 했다.
 
-네일계의 칸딘스키네요.
 
넌지시 던진 농담에 그녀는 웃음을 참으며 그림을 다 그리고는 또 숨을 내쉬듯 빵 웃으며 ‘칸딘스키’를 계속 외치다가 다시 정색을 하고 그림을 그렸다.
 
꼭 어린아이가 자유롭게 그리는 듯한 도안들은 사실 굉장한 섬세함을 요하는 작업이었다. 한 획을 긋고 골똘히 생각을 하고 전체적인 조화를 맞춰보고 재료를 보기를 반복하다가 또 한 획을 긋는 식이었다.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그녀는 사실 32살이었고(왜 충격적이었냐면 당연히 내 또래인 줄로만 알았기 때문이다.) 경영학과 출신에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종국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이 작은 가게를 열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당연히 그녀가 미술 관련 전공을 택했었고 나와 나이가 비슷하거나 어린 줄로만 알았다. 그리고 어린 나이부터 자신과 잘 맞는 일을 선택한 것이 부럽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 솔직하게는 내 동생과 같이 보편적인 미의 기준을 가진 이들에게는 약간 엉망진창으로 보일지도 모르는 이런 제품들을 꽤 쏠쏠하게 판매한다는 것에 속으로 약간의 질투와 조소를 보내고 있었다. 동시에 그렇게 자기 객관화가 결핍된 종류의 용기가 때로는 명료한 자기 객관화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허송세월을 보내는 비관론자들보다 훨씬 힘이 있다는 것을 명백히 알고 있는 나라고 자신했는데, 그와 같은 조소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에 흠칫 놀라기도 했다. 짧은 순간에 오만과 반성과 깨달음과 수백 가지의 감정들이 어지럽게 나를 스쳤다.
 
 
다음화에 계속

 

 
[이강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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