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자신의 언어를 포기하는 사람은 없기에
-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말이 없는 아이였다. 얼마냐 없었냐면 말을 하도 안 해서 엄마는 진지하게 내가 자폐증을 앓고 있는지 걱정할 정도였다. 그때 말을 하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말을 하진 않았지만 끊임없이 말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머릿속에서.
그 모든 억울함과 서러움과 왜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연유를 알 수 없는 혼란함 속에서 입은 떨어지지 않았다. 말 대신 울음이 새어나갔다. 답답함에 나를 다그치는 엄마의 모습은 내 입을 더 꾹 다물게 했다. 뭐라도 말을 해야 한다는 초조함 속에서 나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엄마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보다 못한 엄마는 가족일기장을 만들었다. 말로 못하겠다면 일기로 적어달라며 내게 분홍색 캐릭터가 그려진 공책을 건넸다.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던 말들은 종이 위에 고스란히 옮겨졌다. 누군가와 말하는 대신 글로 쓰는 게 편했다. 어떤 반응이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에 놓여 바보 같은 말을 하는 대신 천천히 나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으니까. 엄마와 아빠, 언니와 나의 일기로 공책이 다 채워질 즈음엔 내 입도 조금씩 열렸다. 여전히 말수는 적었지만 심각하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글쓰기가 내 삶에 깊숙이 자리하기 시작한 것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서부터였다. 무심하다가도 가끔 다정해지는 그 애의 태도 때문에 요동치는 마음을 어디에라도 적어놓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그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아무도 못 보는 곳에, 솔직한 마음을 담아서. 노트 귀퉁이에 조그만 글씨로 복잡한 머릿속 생각을 그대로 적어나가다 보면 후련해졌다. 감정에 휩싸여 이성적인 판단이 안될 때마다 글을 쓰고 그걸 다시 읽었다.
내 눈으로 글씨로 적힌 생각을 바라보는 건 머릿속에서만 생각할 때와 많이 달랐다. 제 3자가 된 듯 좀더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뚝딱거리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일기 덕에 자기 전 이불을 차게 되는 날들이 훨씬 줄었으리라 생각한다.
좋아하는 누군가에 대해 쓰던 기록은 차츰 나 자신에 대한 것으로 변해갔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하루의 일과에 대해서, 문득 떠오른 생각에 대해서, 흘러가는 순간이 온몸으로 느껴질 때마다,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글을 썼다. 쉽게 흐려지고 왜곡되는 순간을 조금이나마 잡아둘 수 있는 것이 좋았다.
그렇지만 글을 쓰는 것 자체를 좋아했다고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그저 내게 가장 익숙한 것이 글쓰기였다.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는 글을 통해 생각을 가장 직관적이고 빠르게 표현할 수 있었다. 우리가 너무 자연스럽게 언어를 사용하듯이 글쓰기는 내게 또 다른 언어였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에게 보여지기 위한 글을 쓰기 시작한 뒤부터 글쓰기가 버거워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곳에 내 이름을 걸고 글을 쓴다니. 자기 의심과 완벽주의, 나의 무지가 탄로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부끄러움, 허공에 흩어지는 말 대신 어딘가에 박제되어버리는 글의 무게감 때문에 괴로웠다.
게다가 세상에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에 비하면 내 글은 너무 보잘것없어 보였다. 이 글이 과연 읽힐 가치가 있을까, 내 세계에 갇혀서 의미 없는 문장을 토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쏟아져서 한 문장을 쓰는 것도 어려웠다.
그래서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예전의 쓴 글을 보는 것도 괴로웠다. 지질한 문장을 쓴 과거의 내가 부끄러워서. 일부러 다른 글을 읽지 않기도 하고 소설만 주구장창 읽으며 현실에서 도망치기도 했다. 몇 번이고 무언가를 써 보려 워드를 켰지만 머릿속을 부유하는 문장들은 여전히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을 쓰는 사람이 아닌 읽는 사람으로 살았다.
하루는 핸드폰 메모장을 정리하려고 예전에 쓴 기록들을 다시 읽었는데 그 중 이런 게 있었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그렇게 되기까지 쏟아 부은 시간을 기억해. 절망에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나를 잘 다독이고 더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걸 잊지 않는 것,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
글쓰기는 진입장벽이 낮다. 캔버스나 물감이 필요하지도 않고, 피아노나 기타, 각종 음향장비가 필요하지도 않다. 오직 펜과 종이, 혹은 컴퓨터의 워드 프로그램만 있다면 누구든지 쓸 수 있다. 누구든 시작할 수 있기에 글쓰기라는 장르는 그래서 어렵다. 엄청나게 양산되는 글의 무덤 속에서 나는 언제나 내 글의 가치를 가늠하고 구리고 실패한 문장을 쓰진 않을까 안절부절 한다.
그런데 이 고민이 비단 나만 겪는 것일까. 아마 글을 쓰는 모든 사람들은 다 이 과정을 겪었고 겪고 있을 것이다.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유명한 작가들까지도 여전히 같은 괴로움을 안고 사는 것을 보면 이건 글을 쓰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숙명 같은 고민인 것이다. 다른 게 있다면 그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썼다는 것. 그러니 글 쓰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구린 문장을 참아내고 덜 구린 문장을 써나갈 인내심과 용기다.
*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달라진 건 없다. 부끄러움과 낮아지는 자신감에 이걸 세상에 내보여도 괜찮을지 의심한다. 내가 글을 쓸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일지 자문한다. 그럼에도 달라진 게 있다면 괴롭고 두려운 건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는 용기와 계속 써 나가겠다는 다짐이다.
지지부진하고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더라도 멀리서 보면 글을 쓰면서 분명 많은 게 변했다. 말이 나오지 않을 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건 글이었고 감정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 글을 썼다. 잊고 싶지 않은 것들을 적어두었고 그게 미래의 나에게 어떤 위로를 주기도 했다. 그리고 글쓰기들 위에 지금의 내가 있다.
그러니 글을 쓰는 것을 정말로 포기하지 않을 나를 안다. 글은 내가 가장 오래 지속해온, 말보다 더 익숙한 언어니까. 괴로움에 지는 날들이 더 많지만 자신의 언어를 포기하는 사람은 없기에, 그 모든 괴로움을 끌어안고 계속 쓴다.
[신소연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저는 말하는 것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지만 "글을 쓰면 어떤 반응이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에 놓여 바보 같은 말을 하는 대신 천천히 나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는 글쓴분의 말씀에는 정말 동의합니다. 글 대신 말을 주 언어로 선택하게 되면 실수하는 경우가 잦아집니다. 글은 나의 언어가 눈으로 보이기에 문제가 생기기 전에 미리 주워담을 수 있어도 말은 흘러가 버리기 때문에 주워담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저도 중요한 내용을 전달해야 할 때에는 글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특히 화가 난 상황일수록 장문 메시지를 선호하는 것 같아요. 물론 얼굴을 보고 전달해야 하는 감정도 분명 존재하지만(ex. 미안함)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으면 그라데이션 분노가 치밀어오를 때가 많기에 글로 순화해야만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글은 정말 좋은 언어 같아요. 한 단어를 적어 놓고 가만히 보면서 이게 적절한 표현인지, 상대와 나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워 담을 수 있는지"를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이렇듯 '글'의 가치를 높게 사시는 분이 저 말고도 또 있다니 반가운 마음입니다. 다만 사족으로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것은 '예전의 글을 보기가 부끄럽다'는 것이 꼭 부정적이고 숨겨야 하는 감정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어렸을 적에 키를 쟀던 눈금을 보면서 "정말 작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지금 나의 키가 그 당시보다 훨씬 크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과거의 나의 행동, 말, 글을 떠올렸을 때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은 그 자체로 내가 성장했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옛 글이 잘 못 쓴 글이라고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지금은 그 글보다는 잘 쓴다는 의미를, 적어도 이제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는 눈치챌 수 있는 능력이 생겼음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몇 년 전의 나와 몇 년 후의 나가 발전 없이 똑같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문제이지 않을까요? 생각할 거리가 많은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
부끄러움에 대한 나경님의 의견에 저도 동감해요.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괴롭다가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상태를 경계하거든요. 그래서 차라리 마음은 불편할지 몰라도 이 부끄러움을 잃고 싶지 않아요. 다만 저라는 사람 성향상 그게 지나칠 때도 있어서 너무 그 감정에 매몰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나경님의 글 덕에 부끄러움에 대한 감정을 한 발 떨어져서 다시 볼 수 있었네요.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은 그 자체로 내가 성장했음을 의미한다". 스스로가 너무 작아질 때마다 이 문장을 기억할게요. 따뜻한 말 감사합니다 :)
소연님의 글을 읽으면서 비슷하면서도 다른 부분을 발견하게 되어 뜻깊었습니다. 저는 소연님과 달리 어렸을 때부터 말이 너무 많아서, 어머니께서 때로 지치실 정도였거든요. 입 밖으로 꺼내고 싶은 말은 많은데, 그걸 다 이야기할 수 없으니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초등학교 숙제로 내주는 '일기장'을 꼬박꼬박 썼던 것,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소설을 썼던 것이 계기가 되었네요.
아트인사이트에서 활동하기 전까지는 개인 계정(블로그, 브런치)에서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곤 했습니다. 누가 봐주는 사람이 있어도 극소수이기 때문에 크게 신경쓰진 않았어요. 그러나 이곳에서는 불특정 다수가 저의 글을 읽기에 전과는 다른 부담감이 생기기곤 했습니다. 그 부담감을 힘껏 안고 글을 쓰면 혼자 쓸 때보다는 더 좋은 글이 나온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상하게 다시 혼자만의 글을 쓰러 가면 글쓰기가 귀찮아지기도 해요. 아무래도 어깨에 힘을 조금은 더 빼고 글을 써야하나 봅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소연님을 알게 되었고, 소연님이 '글쓰기'에 대해 얼마나 진지한 고민을 해오셨는지 새로이 깨달아 좋았습니다. 글을 쓰는 쾌감과 괴로움을 동시에 아는 사람으로서, 앞으로 종종 소연님의 글을 직접 찾아 읽으러 올게요 ! 충분히 잘하고 계시고, 앞으로도 잘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말이 너무 많아 글을 쓰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저와는 정반대라 신기하고 또 어린 지예님의 모습이 그려져 귀엽게 느껴지네요! 저도 여기서 글을 쓰기 전까지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썼어요. 그것 나름의 장점이 있지만 또 이런 공적인 공간에 글을 쓰며 얻게 되는 것도 많으니 그 두 가지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잘 써보려고요. 지예님도 부담을 내려놓고 쓸 수 있는, 쓰고 싶은 글들을 자유롭게 펼쳐나가시길 바랄게요. 그 공간이 어디든지 말이에요.
저도 이번 기회를 통해 지예님을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언제나 풍요롭게 존재하시길 바라며, 앞으로 지예님의 글도 기대할게요! 응원 감사합니다 :)
글을 계속 써내려가는 것에 대해 적은 글들은 마주하게 될 때마다 진지한 자세로 읽게 되는 것 같아요. 소연 님 글은 특히 제가 글을 쓸 때를 떠올리게 만들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네요.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글 쓰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을 보면 입으로 말하기보다 무언가 적어내려가는 것이 더 편하다는 이유인 경우가 많더라고요. 저도 말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든지 입 밖으로 내는 것이 어려운 상황을 자주 겪기 시작하면서 메모장을 자주 찾게 되었던 경우라 소연 님의 글에 공감이 많이 되었어요.
그리고 소연 님의 글을 읽으면서 언젠가 김연수 소설가의 말을 읽었을 때가 떠올랐어요. ‘매일 뭔가 쓰기는 썼다. 물론 어떻게 쓰면 좋을까 고민만 하다가 끝나는 날이 있기는 했지만 그런 날에도 나는 고민에 대해서 썼다.’ 라는 내용이었어요. 이 내용을 보곤 저는 글쓰기에 대한 부담감을 덜 수 있었던 기억이 있어서 공유해 봅니다.
글이라는 건 변덕이 심해서 써야지 하고 마음먹으면 잘 써지지 않고 소연 님 말씀처럼 ‘익숙한 언어’라고 생각해야 술술 써지게 되는 것 같아요. 소연 님 말씀처럼 쓰기를 언어처럼 친근하게 여기지만 불쑥불쑥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글을 쓰는 모두의 고충인 것이 맞나 봐요.
글을 쓰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는, 글에 대한 진지한 글 잘 읽었습니다. 내 글에 대한 의심을 걷고 용기내어 계속 글을 쓰실 소연 님을 응원합니다. :)
저도 글쓰기에 대한 글을 읽을 땐 좀더 집중해서 읽게 되더라고요. 공감할 수 있는 게 많아서 일까요. 나의 생각과 고민과 비슷한 이야기를 읽으며 마음의 위안을 받을 때도 많았어요. 그리고 이렇게 제 글에 대한 피드백을 받으면서도 온기를 얻고 가네요.
제가 글을 '익숙한 언어'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술술 써지는 날은 많지 않더라고요. 그저 글쓰기를 놓지 않겠다는 다짐이랄까요. 모두가 겪는 고충이란 걸 생각해보면 어려움의 정도가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어요. 글쓰기가 막막해질 때마다 공유해주신 문장을 떠올릴게요. 이빈님의 응원에 더 용기내어 써 보겠습니다. 응원 감사해요! 이빈님이 써 내려가실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