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이 늘 깨어 있었으면 좋겠어요 [음악]

이물질 같은 마음이 노래가 될 때
글 입력 2021.07.26 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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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의 가을을 회상한다. 축축하고 복잡한 생각들이 따라오던 날 나는 지갑을 잃어버렸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유독 징그러웠고 단 한 가지 소식만이 반가웠다. 정우의 첫 정규 앨범 발매 소식이었다.


[여섯 번째 토요일]이 발매되었던 날 전곡을 추가해 놓고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반복 재생을 하다가 이번 가을은 전부 정우에게 반납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 맘을 복잡다단하게 만들었다는 말이다.


‘기쁨과 우울을 불현듯 오가는 그는, 이번 앨범이 그런 스스로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말한다.’ 앨범 소개에 등장하는 이 문장은 정우의 음악 세계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기쁘거나 우울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기쁨 속에 우울이, 우울 속에 기쁨이 있는 그런 음악들.

 

기쁨과 우울을 양팔에 걸고 전진하는 정우의 노래들을 소개해 보려 한다.

 

 

 

뭐든 될 수 있을 거야

작지만 큰 바람 - [여섯 번째 토요일]


 

  

 

나는 가까운 데서

당신을 잃어도 봤구요

아주 먼 데서 안아도 봤어요


당신이 늘 깨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럼 나는 걱정 없이

뭐든 될 수 있을 거야

  

 

<뭐든 될 수 있을 거야>에서 정우는 남다른 방식으로 위로를 건넨다. 듣는 이들에게 ‘너는’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거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뭐든 될 수 있을 거라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우가 고백하는 솔직한 마음은 우리가 갖는 바람들과 다를 바 없다는 데서 위로로 다가온다.


가깝다는 것은 무엇이고, 멀다는 것은 무엇일까. 가볍고 단순해지면 좋으련만 세상에는 가깝고도 먼, 멀고도 가까운 그런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아주 먼 거리에서도 서로를 안아 줄 수 있고 눈앞에 있어도 등질 수 있다. 무겁고 복잡해질 때가 많다.


노랫말 속 화자가 갖는 바람은 그런 것이다. 나에게 무겁고 복잡한 당신이 늘 깨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 낮이든 밤이든 잠드는 것이 깨어 있는 것보다 어려운 나와 함께 깨어 있어 주면 안 되겠냐는 바람. 이 바람이 이루어지면 나는 걱정 없이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솔직해서 민망한 마음마저 드는 이 노랫말들에 유독 애정이 가는 이유는 정우의 목소리에 있다. 목소리는 맑고 깨끗하게만 들리는 듯 싶으면서도 미세한 떨림과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단단함을 함께 갖고 있기 때문이다.

 

목소리가 전하는 떨림과 단단함 사이에서 노랫말은 더욱 빛을 발한다.

 

 

 

연가

당신에게 보내는 너른 품과 마음 - [연가]



  

 

이제 널 안고 그 무렵을 내려놓고

어깨에 힘을 풀고 숨 들이마시고

눈 감지 말고


넝마 같은 당신을 붙입니다

떨어진 마음도 줍습니다


당신 좋은 사람이 아니래도

나 멋대로 실망하지 않아요

 

 

정우의 노래를 듣을 때면 막막하고 조급했던 마음 사이에도 너른 공간이 생기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마음이 넉넉하지 못해서 숨이 가빠질 때 상비약처럼 꺼내 듣고 싶은 노래가 바로 이 <연가>다.


이 곡을 들을 때면 화자가 넝마 같은 당신에게 멋대로 실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숙고의 시간을 보냈을지 생각한다. 아마 몸에 힘을 풀고 숨을 들이마시며 정면을 응시하는 과정의 반복이었을 것이다. 비좁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공을 들이는 모습이 안쓰러웠다가 이내 사랑스러워 보이기 시작한다.


‘넝마 같은 당신을 붙입니다, 떨어진 마음도 줍습니다.’ 이 노랫말이 들려오는 동안에는 기타 반주가 이어지지 않는다. <연가>에서의 기타 반주는 마치 화자의 숨결 같다. 덕분에 반주가 이어지지 않는 부분은 숙고의 시간을 멈춘 화자가 용기를 내기 위해 숨을 참는 순간처럼 느껴진다.

 

넝마 같은 우리를 다시 여미려 하는 화자는 정우가 전하는 사랑 그 자체다.

 

 


시퍼런 노랫말과 샛노란 목소리 - [미발매]




  

 

나 당신의 어린 양이 되어

슬픔의 배를 가르고

어리석은 사랑을 꺼내 보이겠어요

 

다 잘못했어요

여기 두고 가지 말아요

 

 

‘내가 잘못했어요.’ 잘못을 자백하며 살아만 달라는 노랫말로 문을 여는 <양>은 차분하고도 암울한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정우 특유의 음색은 그 분위기 속에서도 실낱 같은 희망을 발견할 수 있게끔 유도한다. 한없이 밑으로 떨어지다가도 또다시 희망인 것이다.


슬픔의 정도라는 것은 재고 따질 수 없는 것이란 사실을 안다. 그럼에도 굳이 정도를 따져 보자면 <양>은 이미 충분히 슬픈 사람이 더 슬픈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말들을 늘어 놓고 있는 듯한 곡이다.


화자는 살아만 달라는 말을 하기 위해 어린 양이 아님에도 어린 양을 자처한다. 슬픔을 알고 죽음을 알고, 잘못을 아는 이는 더 이상 어린 양이 될 수 없지만 당신이 용서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만큼은 어린 양의 것이다. 어린 양은 자신보다 더 슬픈 사람에게 숨을 불어 넣으며 말한다. 여기 두고 가지 말아요. 살아만 주어요.

 

 


 

<종말>을 부르기 전 토크에서 정우는 말한다. ‘인류애가 바닥이 났을 때 차라리 세상이 멸망해 버렸으면 하는 생각을 해요.’

 

그러나 으레 그러하듯 멸망을 입 밖으로 내뱉은 이들의 마음 속에는 생에 대한 미련이 뚝뚝 떨어지기 마련이다. 정우는 잘 살아 보고 싶다는 마음이 작은 이물질 같다 말했고 우리는 이물질을 어찌하지 못해 이 생에서 맴돌았다 겉돌았다 한다.

 

겉돌고 맴도는 삶. 지난한 생이 버거워질 때마다 결국 찾게 되는 것은 비슷한 결을 지닌 이야기꾼들이다. 기쁨과 우울, 희망과 냉소, 우직함과 연약함. 정우의 음악에는 이 모든 것들이 공존한다. 평화롭고도 치열하게 공존한다는 데서 또다시 모순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의 노래는 어떤 모습이든 될 수 있다.

 

정면을 응시하며 덤덤한 얼굴로 노래하는 정우의 노랫말, 목소리, 기타 선율에는 종말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

 

 

[박이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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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김수지
    • 이 글을 읽고 나면 누구라도 정우에게 사랑에 빠질 거 같아요. 모순과 떨림 사이에서 공존하는 희망과 그 단단함을 잊지 않고 살아갈게요!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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