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듀 블랙 위도우 [영화]

글 입력 2021.07.24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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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1일 개봉 예정이었던 <블랙 위도우>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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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처음 등장했던 <아이언맨 2>(2010)부터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까지, 10년간 마블과 함께 했던 어벤져스 원년 멤버 블랙 위도우의 첫 단독 영화가 7월 7일에 개봉했다. 다른 어벤져스 원년 멤버들의 단독 영화가 시리즈로 나올 때, 그들의 조력자 역할로만 등장했던 블랙 위도우의 첫 단독 영화라니. 이건 정말 극장에서 안 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영화관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원래라면 2020년 5월에 개봉해야 했지만 코로나로 극장 상황이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몇 번이고 미뤄진 끝에 북미에서는 7월 9일 디즈니 플러스와 극장에서 동시 개봉을 결정했다고 하는데, 왜 끝까지 극장 개봉을 포기하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전 영화들에서 자신보다 체구가 훨씬 큰 남자와 거뜬히 싸우고 유리 감옥에 갇힌 장난의 신 로키를 속여 정보를 얻어내는 등 유능한 러시아 스파이 출신 요원 블랙 위도우는 많이 볼 수 있었지만 요원이기 전 인간 나타샤 로마노프는 알 수 없었다.

 

대화 속에서 겨우 짐작할 수 있었던 과거로 어딘가 외로워 보이고 숨기는 게 많은 스파이의 특성을 아직 가지고 있는 캐릭터구나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스쳐 지나가듯 던져지는 떡밥이 계속 쌓여갈수록 실제로 존재할 것만 같은 입체적인 인물로서의 나타샤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단독 영화 <블랙 위도우>(2021)를 통해 그간 알고 싶지만 알 수 없었던 나타샤를 만날 수 있었다. 비록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2018) 사이 이야기만 담고 있지만 2시간짜리 영화 한 편에 나타샤라는 캐릭터의 삶을 이 정도까지 녹여냈다는 것에 만족스러웠다.

 

특히나 초기 블랙 위도우는 가슴골이 보일 만큼 지퍼가 내려간 의상을 입어 성적 대상화가 되거나 개봉하는 영화마다 달라지는 러브라인에 이용되곤 하는 평면적인 캐릭터였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더더욱 만족할 수밖에.

 

 

<블랙 위도우> 오프닝 크레딧

 

 

오하이오의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파랗게 물들인 부스스한 단발머리에 노란색 반팔, 빨간 캔버스를 신고 자전거를 타는 청소년기 나타샤. 영화는 처음부터 레드룸 이야기를 다뤄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로 시작할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그 나이 대 평범한 소녀 같은 나타샤의 모습과 가족들을 보여준다.

 

오히려 레드룸에서의 이야기는 본편에서 그렇게 자세히 다루지 않고 엔딩크레딧을 맨 앞으로 끌어온 듯한 오프닝 크레딧이 이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이 배경에 흐르고 어린 여자아이들이 두려움에 떨다 수술대 위에 오르는 장면, 훈련을 받는 장면 등이 지나간다.

 

앞서 언급한 스쳐 지나가듯 던져지는 떡밥 중에는 레드룸에서 블랙위도우들은 강제로 자궁을 적출한다는 소재가 있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에서는 이를 여성으로서 비극적인 요소로 여기고 나타샤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은 자궁이 없는 괴물이라 말한다.

 

하지만 <블랙 위도우>에서는 안타까움과 불쌍함을 강요하는 장면을 굳이 삽입하지 않고 오히려 아동 인신매매와 착취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블랙 위도우들과 실제 역사적 인물들이 함께 있는 사진 위주로 보여주며 몰입도를 고조시켰다는 점에서 대비됐다. 자극적일 수 있는 소재를 선정적이지 않고 현실감 있게 담아낸 블랙 위도우의 오프닝 크레딧은 이제까지 마블 영화 중 가장 강렬하지 않을까.


예전에는 실제로 어딘가에 존재할 것만 같은 현실감 있던 히어로들이 갑자기 마법을 쓴다거나 활동 무대를 우주로 넓히면서 스케일이 커지자 버거운 느낌에 마블 영화에 권태를 겪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간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던 나타샤의 개인사를 중심으로 히어로 영화다운 시원한 액션까지 잡은 <블랙 위도우>는 내가 가장 사랑했던 시절의 마블 페이즈 1, 2를 보는 것 같았다.

 

레드룸의 수장인 드레이코프의 페로몬이 블랙 위도우들의 신경을 컨트롤해서 자신을 해치지 못하게 한다는 설정, 알렉세이의 시도 때도 없는 재미도 감동도 없는 개그 등이 집중력을 흩뜨리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후반부에 옐레나가 헬기 모터에 봉을 꽂아 넣으며 튕겨 나가는 장면에서 유독 티가 나던 CG 등 허술한 부분이 몇 군데 보였다. 또 개인사를 다룰 때 생각보다 비중을 많이 차지했던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중간중간 개그 요소를 넣어 웃음을 주긴 했지만, 솔직히 좀 늘어진다고 생각했다. 20년 만에 재회해서 서로가 유일한 가족임을 깨닫는 위장 가족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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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곱씹어 볼수록 레드룸이라는 과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던 나타샤가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지만, 레드룸이라는 공통점을 함께 공유하고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이라는 존재가 필요했던 것처럼 느껴졌다. 특히 가족들과 함께 레드룸을 없애고 디딘 땅에서 나타샤가 옐레나를 끌어안고 미안함, 고마움 등 여러 감정이 담긴 채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나타샤에게 가족이 어떤 존재인지 보여주는 것 같았다.

 

옐레나가 처음 사본 옷이라며 자랑하던 조끼를 이상하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의 또 다른 가족인 어벤져스 멤버들을 구하러 갈 때 몸에 딱 맞게 걸치고 퀸젯을 타러 가는 나타샤의 뒷모습은 나타샤의 결말을 아는 입장에서 씁쓸하게 다가왔다. 나타샤에 대해 이제 막 알게 됐는데 이별이라니.


마블의 화려한 엔딩 크레딧을 기대했지만 예상 못 한 까만 배경에 밋밋한 글자들이 다 올라오길 기다린 후 본 쿠키 영상은 옐레나가 나타샤의 비석에 이마를 맞대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을 극장에서 봤을 때, 모두를 위해 희생했지만 추모하는 장면도, 언급도 없이 마땅한 일처럼 지나가서 가족도 없는 나타샤는 누가 기억해 주는 걸까, 나타샤의 인생이 안타깝게 느껴졌었다. 하지만 <블랙 위도우> 쿠키를 통해 뒤늦게나마 나타샤를 챙겨주는구나, 나타샤에게도 자신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고 기억해 주는 가족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딱 여기까지만 하면 좋았을 텐데, ‘언니이자 딸이자 어벤져’라는 글귀가 적힌 비석을 바라보며 옐레나가 어릴 적 나타샤와 함께 부르던 휘파람을 부르는데 앵글 밖으로 코를 푸는 소리가 들린다. 애도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코를 풀던 요원이 옐레나에게 호크아이 사진을 건네며 디즈니 플러스에서 공개될 호크아이 드라마를 예고한다. 블랙 위도우의 마지막 영화임에도 온전히 블랙위도우에 집중하는 게 아닌 후속 드라마 홍보를 하다니, 블랙 위도우 단독 영화를 오랫동안 기다려온 팬들에 대한 배려를 느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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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었던 <블랙 위도우> 네이버 관람평

 

 

그럼에도 유일한 여성 히어로로서 어벤져스의 시작을 함께하며 다른 여성 히어로들의 등장 기틀을 마련해 준 블랙 위도우와 그런 블랙 위도우를 10년간 연기해온 스칼렛 요한슨에게만큼은 찬사를 보내고 싶다.

 

 

[신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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