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아는 만큼 보인다 - 처음 보는 비밀 미술관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방법
글 입력 2021.07.20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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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아는 만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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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수업 교재로 루이스 자네티의 <영화의 이해>를 읽은 적이 있다. 학생의 얇은 지갑으로는 부담스러운 가격 때문에 후배가 쓰던 책을 빌렸다(그리고 아직 돌려주지 않았다. 빨리 돌려줘야 하는데). 돈이 굳었다는 안도감도 잠시, 흉악스러운 두께와 분량 때문에 한숨을 푹 내쉬면서 ‘그냥 드랍할까’ 하고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수업은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웠고 <영화의 이해>는 나에게 유익한 교재였다. <영화의 이해>는 영화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작품을 예시로 영화의 표현 기법을 영화학도가 아닌 나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캐주얼하게 설명 해놨다.

 

촬영 구도와 깊이, 미장센을 읽는 법, 감독이 숨겨놓은 의도를 캐치하는 방법까지, 영화를 ‘읽는 방법’을 기를 수 있었다. 영화를 볼 때 <영화의 이해>가 소개한 모든 영화적 기법을 고려하며 관람한다고 호언장담할 순 없지만, 영화를 즐기는 방법이 늘어났다.

   

책 얘기는 안 하고 대뜸 루이스 자네티가 어쩌고, <영화의 이해>가 저쩌고 하는 얘기로 시작해 ‘그래서 책 얘기는 언제쯤 하는데’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겠다. 지지부진한 영화 얘기로 이 글을 시작한 이유는 <처음 보는 비밀 미술관>의 책장을 덮었을 때 <영화의 이해>를 읽었을 때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 아, 예술은 이렇게 보는 거구나 ’ 하는 깨달음 말이다.

 

 

 

The Secrets Of Arts



 

우리는 착시효과를 풀고 숨겨진 정체를 밝혀낼 수 있다.

검열의 결과를 생각하고

숨겨진 상징을 읽어내고

인불의 복장에 얽힌 이야기를 발견할 것이다

또한

미완의, 혹은 훼손되고 사라진 작품들을 살펴보며

작품 일부가 들려주는 전체의 이야기를 알아볼 것이다

 

 

복무 신조 같은 서문이다. 탐정이 된 기분으로 ‘그래. 한 번 밝혀보자 ’하는 마음이 든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겸손해진다. 예술을 읽는 방법은 방대한 지식과 철학적 사유를 필요로 하는구나. 탐정에서 한 명의 독자로 돌아가 저자의 설명을 경청하게 된다. 저자는 친절하게도 예술을 보는 방법을 8개로 나누어 설명해준다. 예술을 읽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8가지를 말이다. 그리고 작품을 충분히 즐길만한 배경지식도 전달한다.

 

물감 속을 꿰뚫어 보다, 정체를 숨기다, 표면 아래와 같은 목차는 조금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저자의 설명을 읽다 보면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창작자는 의도 없이 작품을 그리지 않는다. 하찮고 사소해 보이는 요소라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 목차 하나를 마칠 때마다 작가주의 영화를 본다는 생각으로 작품들을 유심히 보게 된다.

 

 

 

과학, 감춰진 사실을 들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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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발전으로 우린 시간과 역사가 작품에 새긴 상흔을 살펴볼 수 있게 됐다. 감춰진 작가의 의도는 작품 속에서 반 천년의 시간을 견디며 21세기 우리에게 전달된다. 현대 과학의 기술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과학기술이 없었다면 토머스 게인즈버러의 <푸른 옷의 소년> 속 소년의 옆에 잉글리쉬 워터 스패니얼이 있었다는 사실은 200년 전 인물들만 알았을 것 아닌가?

 

때로는 작가가 숨기고 싶었던 사실이 알려지기도 한다. 고집스럽고 자신의 신념에 확실했던 귀스타브 구르베의 <가죽 벨트를 한 남자> 아래에는 그가 열심히 모사한 티치아노 베첼리오의 <장갑을 든 남자>의 그림이 있었다. 그것이 치부라기 보단 흥미로운 변주곡처럼 다가왔다.

 

귀스타브 쿠르베의 그림은 <장갑을 든 남자>의 유쾌한 오마주였다. 특권층인 귀족의 우아함을 노동하는 인간의 강인함으로 전복시킨다. 귀스타브 구르베는 숨기고 싶었겠지만 <장갑을 든 남자>의 그림이 나타남으로써 그의 작품이 가진 힘이 배가 됐다.

 

 

 

감상은 창작자의 마음을 읽는 것



 

『예술가 열전』에서 작가 조반니 피에트로 벨로리는 ‘목 잘린 골리앗의 머리카락을 잡은 다윗의 반신상’에서 골리앗이 “카라바조의 자화상”이라고 밝혔다. ... 카라바조는 사형집행 영장 때문에 로마를 떠나 계속 떠돌았지만,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을 로마의 후원자에게 보내고 싶어 했다.

 

 

카라바조의 참수 그림들은 잔혹함과 강렬함으로 유명하다. 빛과 명암을 탁월하게 활용하여 목을 자르는 인물의 감정을 생생하게 그린다.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속 다윗의 표정은 피를 쏟고 있는 골리앗의 머리를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본다. 잘린 골리앗의 머리는 참수의 순간에 정지되어 경직된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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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리앗의 머리가 카라바조는 그의 말년의 모습과 닮아있다. 로마에서 불같은 성격을 참지 못하고 사람을 죽인 뒤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도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을 로마의 후원자에게 보내고자 한 카라바조. 이러한 사연을 알고 그림을 보면 골리앗의 참혹한 모습에서 어떻게든 자신의 죄를 사면받고자 한 카라바조의 구차하면서도 절실한 마음이 보인다.

 

 

 

그림에도 미장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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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장센은 영화, 연극과 같은 시각 예술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이다. 미장센은 화면이나 무대 위에 감독이 시각적 요소들을 배열하여 연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제한된 프레임 내에서 감독의 의도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저자는 예술 작품 속 미장센을 읽는 방법을 차근차근 알려준다.

 

한스 홀바인의 <장 드댕트빌과 조르주 드셀브>는 놀라우리만큼 섬세한 의복 묘사와 선반 위 사물의 모습에 매료되어 자칫 배치된 함의를 놓칠 수 있다. 섬세한 명암 묘사로 진짜 선반 위에 실재하는 것 같은 천구, 다면체 해시계는 과학적 욕망을, 그 아래 선반에 놓인 류트와 산술책들은 예술과 학문을 의미한다.

 

평면의 페이지 속에 갇힌 작품을 관람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칫 놓칠 수 있는 ‘애너모픽’ 해골은, 저자의 흥미로운 추측으로 우리에게 그림에 새로운 시각을 불어넣게 해준다.

 

 

 

아는 만큼 보인다



예술을 읽는 방법에 정도는 없다. 더욱이 대중의 문화 향유능력이 높아짐에 따라 다양한 관점이 출현했기 때문에 예술적 사유에 제약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음 보는 비밀 미술관>을 읽으면서, 정지된 프레임 속에 담긴 시각 예술은 예술가의 통제 하에 정밀하게 인물이 새겨져 있기 때문에 예술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도 필요하다 느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작품, <라스 메니나스>를 처음 봤을 때, 불쾌감이 들었다. 작품 속 인물들이 관람자인 나를 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자신들이 있는 방에 들어와서는 안되는 불청객을 본 것처럼. 심지어 거울에 비치는 왕과 왕비 역시 나를 응시하고 있다. 시녀의 흘겨보는 표정, 난쟁이의 굳게 다문 입술, 뒤에서 목소리를 낮추어 얘기를 나누는 호위기사들까지. 모든 인물들의 행동과 표정이, 외부인인 나의 시선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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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고 벨라스케스는 궁정 화가로 왕의 배려와 총애를 받으며 알사카르 궁전에서 살았다고 한다. 의전관으로 지낼 정도로 왕정에 충실했던 인물인데 ‘불안감’을 조정할 목적으로 <라스 메니나스>를 그렸을 턱이 없다. ‘라스 메니나스’는 명예로운 시녀들이란 뜻으로 내가 느낀 감정과는 거리가 멀다. 거울 속 왕과 왕비의 표정이 명확하지 않아 무슨 상황인지 추측하기 어려우나 적어도 사랑스러운 어린 공주가 있는 공간을, 음습한 분위기로 채우려고자 하진 않았을 것이다.

 

감상은 개인의 영역이다. 나처럼 <라스 매니나스>를 보고 불쾌감, 불안감을 느낀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그릇된 감상인가? 예술작품의 감상에 대한 견해는 많지만, 예술사조를 떠나 앞서 밝혔듯 개인의 감상도 존중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음 보는 비밀 미술관>은 시각예술을 보는 눈을 길러준다. 미술뿐만 아니라 행위 예술, 설치 예술, 조각품까지. 개인의 감상을 중요시하는 분들에겐 불필요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명작’이라 불리는 작품들은 각자의 사연을 지니고 있다. 작품 속에 예술의 문법으로 은밀하게 숨어 놓은 이야기들이 있다. 작가의 사생활 일수도, 시대사상 혹은 정치적 이념일 수도 있다. 책 뒷 표지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소설처럼 흥미진진한 미술 이야기. 

 

 

감상은 의중에 숨긴 비밀을 읽어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예술의 문법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는 아닐지라도 작품을 풍부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임에는 틀림없다. 내가 <영화의 이해>를 읽고 영화의 문법을 이해한 뒤 영화를 보는 시야가 트인 것처럼 말이다. <처음 보는 비밀 미술관>은 예술을 감상하는 재미를 더 해주는 흥미로운 책이다.

 

편리한 시대에 사는 덕에 저명한 작가의 작품을 인터넷으로 볼 수 있다. 구글에서 카라바조의 작품들을 볼까 한다, 프로파일러가 현장에 있는 단서들을 보고 범인을 특정 짓는 것처럼, 작품을 천천히 읽으면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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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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