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음악으로 기억되는 공간들 - 음악을 틀면 이곳은, 도쿄

글 입력 2021.07.20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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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공간을 기억한 경험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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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부산으로 여행을 떠났다. 하필 잠시만 바깥을 걸어도 귀와 코가 시린 겨울이었다. 나와 동생은 잠시 몸도 녹이고, 아픈 다리도 쉬어 줄 겸 카페에 들어갔다. 경성대 근처 문화 골목 안에 있는 카페였다. 오래된 주택 건물 같은 곳이었다. 안에는 반들반들한 나무 테이블과 부드러운 조명이 인상적이었다. 크게 난 창으로 바깥의 추위를 바라보면서, 따뜻한 음료를 시켜 먹었다. 음료를 거의 다 마시고 컵을 내려놓을 무렵 노래가 들렸다. 우효의 꿀차라는 노래였다.

 

그 당시에는 모르는 노래였다. 단지 당시의 포근하고 따뜻한 공간과 음악이 너무 잘 어울려서 저절로 귀에 들어왔다. 급히 들리는 대로 가사를 검색해 노래 제목을 찾았다. 그 이후로, 나에게 겨울의 부산은 꿀차이고 꿀차는 겨울의 부산이었다. 어떤 공간은 음악으로 기억된다. 또한 음악은 공간을 기억하게 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음악과 공간이 가지는 시너지를 느껴본 경험이 있었던 나였기 때문에 이 책의 주제에 관심이 갔다. 지금부터 소개하려는 책 <음악을 틀면 이곳은, 도쿄>는 도쿄의 여러 공간, 그리고 그곳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음악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우리가 무심결에 지나칠지도 모르는 BGM이나 골목들을 짚어준다. 마치 도쿄에서 오래 산 멋진 지인이 안내하는 도쿄 투어를 경험하는 듯한 책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공간을 소개해주는 듯한 애정과 정성스러움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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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한 두 마디로 정의하긴 어렵다. 정확히는 이 책을 어디에 써먹을 것인가를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

 

어떻게 보면 브랜딩에 관한 책이다. 공간과 브랜드의 브랜딩을 음악을 통해서 어떻게 매력적으로 해내는지를 소개한다. 어떻게 보면 여행안내서 같기도 하다. 검색창에 열심히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숨은 명소들을 일러주는 친절한 에어비앤비 호스트를 연상시킨다.

 

어떤 식으로 이용해도 재밌는 책인 것 같다. 나에게는 언젠가 도쿄를 방문할 일이 있을 때 챙겨가 숙소에서 읽고 싶을 것 같은 책이긴 하다.

 

 

 

음악과 단골 가게들


 

 

카페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단순하게 카페인을 충전하거나, 잠시 자리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이용하는 공간일 것입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스피커를 통해 흐르는 음악을 듣거나, 진열된 레코드를 바라보거나, 가지런히 놓인 책을 보면서 취향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면 비로소 그 카페는 평범한 공간에서 나만의 특별한 장소로 변하게 되는 것 같아요.

 

p.231-232

 


책에서 저자는 이렇게 얻은 자신의 소중한 공간들을 독자인 우리에게 소개한다. 도쿄 사람들의 불안을 위로하는 보사노바 레코드가 있는 바 보사, 이곳의 와인만큼이나 독특하지만 편안한 음악이 함께하는 와인스탠드 왈츠, 2000년대 초반의 도쿄 카페를 느끼게 해주는 다채로운 동네 카페 카쿠루루 같은 공간이다.

 

내가 이 책을 여행안내서 같다고 이야기하거나, 도쿄에 가져가고 싶은 책이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행의 즐거움은 새로움과 익숙함이 적절한 균형을 이룰 때 극대화되리라 생각한다. 내내 스타벅스와 맥도날드만 전전하고 싶은 여행자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운명처럼 마음에 쏙 드는 나의 공간이 여행지 길목에 서 있기를, 그곳을 발견할 안목이 자신에게 있기를 바라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결국은 SNS와 포털 사이트를 힘껏 뒤져서 나와 비슷한 관광객 가득한 음식점을 찾아 헤맨다.

 

이 책은 저자가 보고 마시고 겪은 장소에 대한 정보를 기꺼이 우리와 나눈다. 좋은 점은 그곳의 음악을 함께 소개하면서, 우리가 가보지 않은 공간에 대해 상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곳의 메인 메뉴가 어떻고, 가격은 어떻고, 근처 관광지는 어디이고 하는 정보는 덜어냈다. 대신에 어떤 음식과 음악이 주인에 의해서 어떻게 선별되고 있는지, 이에 대한 저자의 감상은 어땠는지를 세심하게 다뤘다.

 

 

‘한 공간에 흐르는 음악은 그 공간의 분위기를 지배한다’라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이 내용도 하야시 씨에게 들은 후에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에요. 그 당시 생활에 대한 불안함을 느낀 도쿄 사람들은 오쿠시부야의 조용한 골목에 있는 작은 보사노바 바에서 리우데자네이루의 밝은 햇살과 따스한 바람 그리고 아름다운 해변이 펼쳐진 풍경을 느끼면서 마음에 위안을 받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p.157

 


공간의 이야기는 음악과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다시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곳에서 같은 음악과 같은 감상을 느낄 수 있다면 짜릿한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음악과 브랜딩


  

 

블루노트 도쿄는 음악을 통해 사람들이 모이고, 그곳을 찾은 사람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음악을 통해 감동과 기쁨을 마주할 수 있는 자리로서 일본을 대표하는 재즈클럽으로 사랑받아왔습니다. 빔스의 기업 이념 중에는 ‘제품을 구입했을 때의 만족감에 앞서 그 제품이 태어난 배경과 시대성이 담긴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물질적 만족 이상의 가치를 제공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블루노트와 빔스 모두 멋진 음악과 제품으로 세상을 두근거리게 하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공통의 사상이 존재합니다.

 

p.72

 


작년에 기업의 브랜딩 방향에 대한 제안서를 작성할 일이 있었다. 고백하자면 당시의 나는 브랜딩에 관해 나름의 탐구를 했지만, 결국은 ‘파는 일’에 꽂혀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그런 관점을 가지고 사람들을 공감하게 만드는 무언가를 기획하기란 어려웠다. 덕분에 다소 우악스러운 아이디어를 내내 내면서 회의를 마쳤다.

 

그렇게 마쳤던 브랜딩에 관한 생각을 다시 하게 하는 책이었다. 음악은 공간이나 기업을 브랜딩 하는데 있어서 어쩌면 아주 작은 부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카페에서, 매장에서 흘러나오는 BGM에 특별히 귀 기울이는 고객이 얼마나 되겠는가? 무언가를 팔고자 하는 생각만으론, 아르바이트생 재량으로 넘겨버리고 말 일이다. 그러나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뚜렷한 기업에게는 틀어야 할 음악 역시 명확하다. 그렇게 튼 음악은 브랜드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오래된 브라질 음악으로 가구와 인테리어의 편안함과 따뜻함을 전달하는 카페앳이데, 평온한 휴식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시간대별로 BGM을 구성한 프랜차이즈 도토루가 좋은 사례를 보여준다. 이들이 BGM과 함께 전달한 편안함은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공간을 넘어 브랜드의 이미지로 기억될 것이다.

 

도쿄의 많은 공간이 상당히 뚜렷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과, 이를 전달하기 위한 세심한 노력이 인상 깊었다. 진정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이윤과 판매에 관한 생각 이전에, 무언가를 전달하겠다는 마음으로 공간을 여는 것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플레이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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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장소마다 저자가 플레이리스트를 달아 두었다.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공간에 대한 플레이리스트로 구성된 꼭지도 있다. 책의 마지막에 저자가 플레이리스트를 얼마나 신중하게 만들었는지, 그 구성과 순서에서도 얼마나 신경을 기울였는지를 읽고 나니 더더욱 지나칠 수 없는 요소가 되었다.

 

길어진 코로나19의 여파로 여행은커녕 집 밖의 분위기를 느끼기도 힘든 상황이다. 지금은 가지 못하는 공간과 우리를 연결할 수 있는 중요한 매개체가 음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당장 책 안에 소개된 공간으로 넘어가서, 같은 음식과 풍경, 분위기를 경험하지 못한다고 해도, 섬세하게 고른 음악이 전달하는 이야기는 공유할 수 있다.

 

이 지루한 시절에 놓칠 수 없는 재미이다. 책을 읽으며 듣는 음악은 이 지루한 공간을 바꾸어 주고, 지금의 독서를 기억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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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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