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제n의 나를 브랜딩하라, 부캐 대란! [문화 전반]

제n의 캐릭터, 멀티 페르소나, 콘텐츠계의 오아시스
글 입력 2021.07.13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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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7개월 전,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B대면데이트’라는 영상 콘텐츠에서 코미디언 김해준이 ‘최준’이라는 부캐를 내세워 2021년 대박의 운을 띄웠다.

 

익살스러움으로 온몸을 무장하고 굉장한 콧소리와 어마 무시한 쉼표 머리를 보여준 김해준의 부캐 ‘최준.’ 그의 등장은 가히 충격적이었지만 동시에 치명적으로 대중들의 심장에 스며들어 끝내 그 매력을 인정받고야 말았다. 최준이란 마치, 꼴 보기 싫지만 묘하게 미워할 수 없는 악당 캐릭터들과 같다고나 할까. 누구나 처음에는 최준의 콧소리와 앞머리에 ‘무슨 콘셉트야 저게’라고 생각하기에 충분하지만, SNS 피드를 넘길 때마다 눈앞을 서성거리는 그의 모습은 곧 유튜브 검색창에 ‘최준의 니곡내곡’을 타이핑하도록 만든다.


그런데 이러한 부캐는 언제부터, 어쩌다가 이렇게 핫한 콘텐츠 요소가 되었을까? 130만 유튜버 ‘꽈뚜룹’이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으로 온 가상의 유학생 캐릭터로 급격히 인기를 얻기 시작했을 때부터?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이 ‘풍계리 리민철’이라는 가상의 탈북자 캐릭터로 ASMR 먹방, 남한의 직업 및 문화 체험 콘텐츠를 선보였을 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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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꽈뚜룹, 피식대학 유튜브 채널

 

 

 

1. 제n의 캐릭터, 부캐



사실 부캐는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코미디언들의 주된 ‘웃음 필살기’였다. 그들의 무대는 언제나 뛰어나고 천연덕스러운 연기로 새로운 캐릭터가 되어, 재미있는 소재나 이야기를 더 재미있게 풀어낼 때 비로소 완성되어왔다. ‘슈퍼차 부부,’ ‘봉숭아 학당,’ ‘분장실의 강 선생님,’ ‘대화가 필요해’ 등 코미디 프로그램의 지난 인기 코너들만 연상해보아도 그들이 지금까지 얼마나 새롭고 다양한 제n의 캐릭터들을 만들어왔는지 금방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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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KBS 드라마 클래식 유튜브 채널

 

 

무엇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배우들이 연기하는 캐릭터와 코미디언들의 캐릭터는 우리에게 어딘가 분명히 다른 느낌을 준다. 이는 캐릭터를 생성하는 주체와 과정의 근본이 스스로에 있느냐 아니냐에 대한 여부가, ‘부캐’라 규정지을만한 콘텐츠를 쥐어주는 핵심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연극 무대에 근간을 두고 그중에서도 희극을 선보여야 했던 코미디언들은 거의 항상 충분하지 못한 인프라와 수입으로 활동해왔을 터. 그런 환경이 그들 스스로에게 캐릭터와 이야기를 직접 만들어낼 수밖에 없도록 했을 것인데, 바로 이것이 코미디언들에게 고생 끝의 엄청난 필살기로 돌아간 것이다.


하지만 노력 대비 본래 코미디언들의 부캐는 대게 코미디 프로그램 내에서만 살아 숨 쉬는 편이었다. 기껏해야 캐릭터를 살린 광고, A코너 캐릭터의 B코너 방문 정도가 관객들의 마음속에서 그것들이 조금 더 호흡할 수 있는 생명력의 마지노선이었던 것이다. 이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가 코미디 공연 현장에 더 이상 관객들을 앉혀 놓을 수 없게 만들었고, 마침 코미디 프로그램의 인기도 점점 사그라지고 있던 참이었다. 그들은 언제까지 화상채팅으로 관객들을 봐야 하고, 동료들끼리 서로의 관객이 되어주기만 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것이 과연 앞으로도 존속될 수 있을 만한 무대란 말인가?


가만히 있을 성미가 못 되는 코미디언들은 자신들의 부캐를 내놓을 수 있을 만한 새로운 공간을 찾았다. 그리고 매드클라운이 유튜브를 통해 ‘나 아님’을 외치며 등장시켰던 ‘마미손’과 앞서 언급한 크리에이터 꽈뚜룹, 캐릭터 리민철 같은 케이스는 그들에게 ‘유튜브와 코미디 필살기의 결합’이라는 지표를 선물했을 것이다. 그렇게 코미디언들은 무대를 무대 밖으로 꺼내 온라인으로, 유튜브로 가져다 놓게 되었다. 그들의 전략은 정말 성공적이었고, ‘최준’은 물론 ‘한사랑 산악회,’ ‘매드몬스터,’ ‘다비이모’ 등의 부캐들이 뒤이어 큰 사랑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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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엠뚜루마뚜루 유튜브 채널


 

더불어 대중들은 이전보다 더 재밌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그들의 반전 ‘본캐(부캐를 지니고 있는 특정인의 본래 모습)’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코미디언들은 이제 본캐와 부캐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코미디 외 다수의 유튜브 및 TV 프로그램에 활발히 출연하게 되었다. 그들의 부캐가 드디어 어디에서나 살아 숨쉬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써 대중들 사이에서는 한 사람이 자기 정체성이라는 테두리 밖으로 유쾌하게 넘어와 새로운 제n의 캐릭터로서 활동하는 문화가 빠르게 조성되기 시작했고, 이러한 점에서 부캐대란이 콘텐츠계의 오아시스와도 다름이 없다는 사실은 이미 분명하다.



 

2. 부캐와 브랜딩


 

그런데 부캐대란은 사실 ‘브랜딩’이라는 키워드와도 연관성이 깊다. 김신영은 자신의 이모라며 76세의 트로트 가수 ‘김다비’라는 캐릭터를 등장시켰는데, 사실 그녀는 누가 봐도 김신영 본인이다. 한사랑 산악회의 ‘이택조’와 B대면데이트의 ‘이호창,’ 매드몬스터의 ‘제이호’는 누가 봐도 이창호 한 명이 세 명의 캐릭터를 내세운 것이다.

 

‘유산슬,’ ‘유두래곤,’ ‘지미 유,’ ‘유반장,’ ‘유야호’는 모두 대놓고 유재석이며, <찐한 친구>에 등장하는 김해준과 동대문 밀레오레에서 의류매장을 하는 ‘쿨제이’는 ‘최준’과 더불어 스타일만 다른 동일 인물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부캐에 구체적인 인격과 설정을 불어넣고 대중들에게 그 모습을 꾸준하고 다양하게 내비침으로써 대중들이 해당 캐릭터의 존재를 결국 인정해버리게끔 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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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빵송국 유튜브 채널

 

 

가령 이창호는 ‘이호창’이라는 대기업의 논리적이고 엘리트스러운 고위직 회사원 부캐를 만들어내기 위해 ‘김갑생할머니김’이라는 회사명과 함께 ‘미래전략실’이라는 그의 업무 파트를 섬세하게 설정했다. 이후 부캐 이호창은 괴한을 진압한 시민 영웅으로서 가상 뉴스의 주인공이 되어 등장하기도, 대기업 신년사를 패러디하기도, 자사의 제품 생산 과정을 공개하는 영상을 연출해내기도 하며 점점 더 그 이미지를 분명히 다졌다. 심지어 이창호는 실제 성경김과 함께 ‘김갑생할머니’ 조미김을 하나의 굿즈로서 출시한 바도 있다. 톺아보면 볼수록 궁금해지지 않는가? 이렇게나 섬세한 캐릭터 빌드업 작업이 이어지다 보니, 대중들이 이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충분히 이해 가능한 일.

 

그리고 앞서 예시 든 바와 같이 스토리텔링 콘텐츠를 통해 꾸준히 이미지 홍보 작업을 진행하며, 종국에는 자신이 가진 제n의 캐릭터를 가벼운 분장이나 의상 변화만으로도 대중들에게 인지시키고야 마는 과정, 이러한 작업을 바로 일종의 ‘브랜딩’이라 볼 수 있다. 멀티 페르소나 브랜딩이라고나 할까. 더욱 긍정적으로 볼만한 것은, 그들이 유튜브를 기가 막힌 캐릭터 빌드업의 주된 장으로써 골랐다는 점이다. 각 영상이 곧 해당 채널의 콘텐츠 유입구로서 기능하기 쉬운 유튜브. 이곳에서 부캐들은 각자 다른 채널에 소속되어 있음에도 종종 만남을 가지고, 또 다른 에피소드들을 만들어나가며 서로의 콘텐츠 유입구를 확장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각자의 캐릭터가 섬세하고 단단해지는 것은 덤이다. 어디 이뿐일까?

 

부캐 ‘이호창’은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에서 주관한 B대면데이트의 다섯 기둥 중 하나로, 본래 연애 예능 영상 콘텐츠에 속한 캐릭터였다. 그런데 대중들이 그의 매력에 강력히 빠져들기 시작하자 다른 채널인 ‘빵송국’은 이내 이호창의 일상적(인 것 같은 연출의) 영상들과 그가 누구인지 실존 인물을 다루는 것처럼 설명하는 영상 등을 공개하며 그를 그 자체로 독립적인 하나의 캐릭터, 하나의 아이템으로서 살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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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빵송국 유튜브 채널

 

 

더불어 2인조 아이돌 그룹 부캐인 ‘매드몬스터’나 트로트 가수 부캐인 ‘김다비’는 실제 가수처럼 음반과 뮤직비디오를 발매 및 공개하고, 정규 TV 및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고, 타 유튜브 예능에도 등장하며 해당 캐릭터의 세계관과 이야기 조각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맞춰나가고 있다. 부캐들은 일종의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까지도 탁월하게 소화시킬 수 있는 좋은 아이템인 것이다.


 

 

3. 이대로도 괜찮나?


 

물론 이러한 부캐대란에 대해서는 우려되는 부분도 몇 가지 존재한다. 첫째는 장르 침입에 대한 부분이다. 직전에 언급한 매드몬스터만 보아도 그렇다. 오토튠과 보정필터로 음색과 미모를 한껏 장식해놓은 그들이 정식으로 음악을 하는 가수들 사이에 함께 서 ‘엠카운트다운,’ ‘유희열의 스케치북’ 등 음악 방송에 등장하는 것은 정말 신선하기만 한 일일까? 심지어 그들은 캐릭터 설정 하나만으로 2017년에 데뷔한 5년차 아이돌이 되었고, 어떤 가수들은 역으로 매드몬스터의 음악과 보정필터를 패러디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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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엠넷 케이팝 유튜브 채널

 

 

그들의 재미 포인트 중 하나가 ‘절대 진짜가 아니지만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하는’ 부분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정말 맞다. 그런데 혹독한 육성 산업과 훌륭한 실력 따위에도 아직 빛을 발하지 못하는 여러 연습생 또는 무명의 아이돌이나, 연예인들에게는 꽤 중요한 요소라 볼 수 있는 데뷔 연차 같은 부분들을 미루어 보자. 이러한 바탕에서 매드몬스터가 앞으로도 진짜 아이돌들의 플랫폼에서 모든 활동들을 진짜처럼 이어간다면 어떤 비판의 목소리가 등장할까? 이를 고려한다면 부캐들은 앞으로의 활동에 조금 더 배려가 담긴 행보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선을 지키지 못한 캐릭터 설정 또는 부캐 콘텐츠에 대한 이해 오류이다. 한사랑 산악회 멤버들은 하이퍼리얼리즘적인 50대 아저씨들의 모습 가운데에서 종종 향수와 따듯한 휴머니즘을 발휘하는 부캐들이다. 하지만 과도한 연출과 함께 특정 장애를 하나의 캐릭터 콘텐츠 요소로써 허위 부각시키고 수익 창출을 위해 대중들의 감정을 악용한 사례도 있다. 실제로 유튜브에는 용기를 내 편견에 맞서거나 소수자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크리에이터들이 많다. 하지만 해당 사례가 밝혀지자 좋은 취지와 목표를 가지고 활동하던 이들에게 고스란히 왜곡된 피해가 돌아갔다. 이 경우는 부캐에 대한 이해가 완벽히 잘못 이루어졌을 때의 예시이다. 콘텐츠를 위해(또는 그를 통한 수익 창출을 위해) 불특정 타인에게 피해가 갈 것이 분명한, 또는 자극적인 요소를 부각시킨 가상의 캐릭터를 무리하게 탄생시키는 것은 ‘부캐’라기 보단 소위 말하는 ‘주작’에 가깝다.

 

셋째는 부캐에 대한 대중들의 피로감과 캐릭터의 소비 한도 초과이다. 부캐는 확실히 요즘 콘텐츠의 핫 아이템이고, 그만큼 이에 반응하는 코미디언 및 크리에이터들이 단연 증가했다. 지금은 그들 모두가 신선하고 대체로 긍정적인 활동 방향을 보여주고 있는데, 앞으로는 부캐에 대한 대중들의 소비도 및 피로감에 조금 더 신경을 기울이면 좋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해준이 최준의 출연에 제한을 두기 시작한 것처럼, 특정 부캐가 대중들의 피로감 자극을 할 만큼 소비 한도를 초과하지는 않았는지 그 여부를 검토해보며 활용의 수위를 조절하는 것이다.

 

*

 

제n의 나를 브랜딩하는 영상 미디어계의 활동가들은 확실히 존경할만하다. 가끔은 ‘어떻게 저런 캐릭터를 몸소 구현해낼 수가 있지?’에 대한 궁금증도, ‘어떻게 이렇게 콘셉트에 충실할 수 있지?’에 대한 경이로움도 샘솟는다. 바이러스가 아무리 서로 간의 거리를 넓혀 놓아도, 겨우 눈 한번 깜빡할 사이에 새로운 것들이 무수히 창출되는 세상. 어쩌면 부캐 정도는 그리 커다란 것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향유하고 요리조리 분해해보며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이렇게나 많다는 것은 정말이지 앞으로가 기대되는 사실이다. 멈추지 않고 격변하는 유튜브 세계, 다음은 어떤 행보를 보여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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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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