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떤 동네, 그곳은 사람을 닮았다 [공간]

내가 사는 작은 동네 이야기
글 입력 2021.07.12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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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 둘러싸인 동네


 

내가 사는 곳, 수원 장안구 율전동에는 청동기 유적이 있다.

 

청동기 시대는 구석기와 신석기를 지나 정착 생활이 본격화된 시기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런 유적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예로부터 사람이 모여 살기 좋은 지역이라는 증표이기도 하다. 이곳은 현재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운 아파트 놀이터에는 방과 후 초등학교 아이들이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뛰어놀고, 분식집에서는 중학생이 수다를 떨며 떡볶이와 튀김, 어묵 등을 먹느라 분주함이 가득하다. 그러한 아이들을 안전하게 집으로 데려가려는 부모님들의 오가는 발길도 항상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내 집 주방에는 항상 정갈한 피아노 소리로 가득하고, 베란다에는 아침에 등교하는 아이들의 발걸음 소리와 학교 운동장에 울려 퍼지는 노래가 우렁차다. 지금 나의 일상과 그 속에서 향유하고 있는 삶은 내가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이러한 '사람들'의 다채로움에 둘러싸여 항상 함께하고 있다.

 

 

 

'사람'을 닮은 동네


 

이 동네는 수원에서 사람 살기 좋기로 소문난 곳 중 하나이다.

 

이러한 동네도 저녁 시간만 되면 사방이 분주해지고 이내 오토바이 굉음이 끊이지 않는다. 배달대행 라이더들의 습격이다. 좁은 골목이 많아 크고 작은 충돌 사고가 나기 딱 쉬운 환경으로 변한다.

 

제법 큰 마트가 여럿 많지만 젊은 사람들은 편리성을 이유로 대부분 나가지 않고 집 안에서 휴대전화로 배달 음식을 주문하곤 한다. "문 앞에 두시고 벨 눌러주세요." 이마저도 코로나 19로 인하여 비대면 형식이다.

 

날이 지나 해가 다시 뜨면 동네는 사람들이 밤새워 먹고 남은 음식 찌꺼기와 각종 일회용 용기들로 넘쳐난다. 사람이 너무 살기 좋아서 오히려 몸살을 앓는 것이다. '사람 속 동네'의 또 다른 이면이다.

 

그런 이곳이 과연 사람 살기에 좋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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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동네 한쪽에는 경사가 어마어마한 언덕이 하나 있다. 이곳을 아무런 의식 없이 오르내리는 동안에는 자연스레 생활 근육이 된다. 별도의 근력 운동을 하지 않아도 좋다. 마치 이 동네의 주민임을 증명하는 표시인 것처럼 나의 몸을 건강하게 유지해주는 환경이다.

 

나는 외부 일정을 위해 근처 역으로 이동할 때 이 언덕을 거친다. 그리고 평소에도 음식 재료를 포함한 각종 생필품을 구매할 수 있는 마트, 잡화점 등으로 가기 위해 항상 거치는 일상적인 경로이기도 하다.

 

얼마 전 이 언덕을 오르다 도로 포장재로 흔히 사용되는 아스콘이 깨진 것을 발견해 곧바로 '안전신문고' 앱으로 신고한 적이 있었다. 한 달 정도 지나고 나서 며칠 전 새로 포장된 언덕을 보니 내 마음이 뭉클했다.

 

쏜살같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오토바이를 피해 언덕을 힘겹게 오르시는 동네 어르신들이 생각났다. 한 번에 쉽게 오르지 못하는 지형이기에 두 개의 의자 또한 언제나 머무는 이곳은 그 자체로도 '사람'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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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기억하는 동네


 

그래서 나는 이 언덕이 정말 좋다. 나의 일상이 함께 머무르고 있기에 사랑스럽다. 비록 새로운 포장재로 재정비가 되지만, 언덕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기존의 동네 사람들, 그리고 몇 개월 전의 내 모습처럼 이곳을 새로이 찾는 사람들의 셀 수 없는 발끝 흔적을 말이다.

 

더 나아가 그 사람들이 머물다 간 각각의 흔적 또한 함께할 것이다. 비록 저마다의 다양한 삶의 계획과 이유로 인해 이곳에 잠시 잠깐 머무를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건강하고 아름다운 삶의 모습으로 이 마을에서 함께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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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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