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

글 입력 2021.07.17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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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은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의 한 구절을 빌려왔다.

 

최근 몇 달은 황정은 작가의 <연년세세>를 읽으면서, 또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를 읽으면서 나보다 앞선 세대를 살아간 어른들의 삶을 어렴풋이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역사 교과서에나 실렸던 굵직한 현대사를 몸소 겪고 살아간 어른들의 어지러웠던 시기를 전해 듣고 되물으며, 현재를 살아가는 그들의 과거를 계속해서 복기하고, 존경심을 고취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고, 감히 꿈꿀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다. 내가 피아노를 했던 것도, 내 고집으로 전공을 선택했던 것도 그럴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학교조차 제대로 다니기도 힘들었던 시절이 불과 40년 전에 있었다. 돈이 없어서, 산골이라 가기가 힘들어서, 집안일을 해야 해서. 갖가지 이유로 교육받지 못했고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되지 못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들은 자라 누군가의 부모가 되었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가정을 보살필 책임을 졌다. 숨돌릴 틈도 없이 자식을 양육하고, 교육시키고, 생활비를 충당했던 우리 부모님을, 이모를, 삼촌들을 보며 그들이 얻은 것은, 그리고 동시에 잃은 것은 무엇인지 계속해서 곱씹어 보는 요즘이다.

 

그러고는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우리 엄마를 키웠던 할머니와 할아버지에 대해. 세대가 올라갈수록 더 어려웠던 사회적 환경을 복기하며, 자연히 조부모의 생애를 떠올리게 되었다.

 

어렸을 적부터 내게 남은 조부모는 외할머니뿐이셨다. 흐린 기억 속에 어렴풋이 남아있는 장면들은 먼 시골길로 떠나 친척들과 오란 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일, 할머니가 혼자 사시던 집에 방문했던 설날, 아주 잠깐 같이 살았던 유년기. 이 정도가 끝이다. 마지막으로 뵈었던 게 언제였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주 어렸을 적 할머니와 함께 살았을 때를 생각해보면, 할머니는 뙤약볕을 피해 마을 입구 간이 의자에 앉아 동네 할머니들과 함께 담소를 나누며 나를 기다리고 계셨고, 나는 할머니가 나를 기다리는 것이 불편해 괜히 툴툴대고는 했다. 이제는 없어져 버린 간이 의자들이 있던 곳을 지나칠 때면 나를 기다리셨던 할머니가 자연히 떠오르고는 한다.

  

당연하지 않은 존재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하고 넘어가는 것이 어렸을 때는 가능했다. 흔히들 말하는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지 말자'라는 문구를 익히 보아도 그 범위에 우리 할머니를 포함하진 않았던 것 같다. 할머니만 보면 툴툴댔던 못된 여덟 살은 이제 자라 스물 중반이 되었고, 그때는 당연했던 할머니의 존재가 이제는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아는 어른이 되었다.

 

할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초조해하는 엄마의 모습이 느껴졌다. 이모들의 전화를 받으면서 가끔 엄마는 어찌할 줄 몰라했고, 미리 짐가방을 싸두시기도 했다. 나는 그것이 엄마답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게 제일 엄마다운 모습을 보여줬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엄마도 엄마 앞에서는 한없이 어린 아이였다. 내가 우리 엄마를 보면 칭얼대는 것처럼, 엄마도 할머니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아이였다는 것을.

 

얼마 전에 할머니께서 숨을 거두셨다. 입관을 앞둔 할머니에게 엄마는 미안하다는 말만 전했다. 그 말이 왜 이렇게 가슴을 울렸는지 모르겠다. 이모들은 크게 울부짖고 있었고, 할머니와 오랜 시간 살았던 친척 동생들도 하염없이 울기만 했던 것 같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더라. 어느 시대였던 간에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아쉬움으로 시작해 아쉬움으로 끝난다는 것을 실감했던 것 같다. 우리 엄마랑 나의 관계가 현재 그러하듯, 우리 이모들과 할머니가, 우리 엄마와 할머니가 그러했듯. 부모와 자식의 관계란 그렇게 열 가지를 잘 해줘도 한 가지 아쉬움만 남는 관계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할머니의 부고가 그저 슬픔만을 남겨두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생의 끝으로 인해 우리는 많이도 슬퍼했지만, 이로 인해 왕래가 잦지 않았던 외가 친척들이 모두 모여 각자의 일상을 공유하고 서로의 앞날을 응원해주는 따스한 시간을 가졌다. 이것이 할머니가 남겨주고 가신 선물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렸을 때는 친했던 친척들과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따스함을 가득 안겨주는 이 모든 상황을 위에서 지켜보실 할머니는 어떤 표정을 짓고 계실까.

 

이 글은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내가 20세기를 살아내고, 21세기를 버텨낸 할머니에게 드리는 연서다. 이 빽빽하게 적은 활자들이 할머니에게 가닿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글을 써서 올리는 마음의 온기가 조금이라도 느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평생 궂은일만 하시다가 숨을 거두신 우리 할머니에게 다음 생이 있다면 덜 어지러운 세상에서 더 많은 꿈을 꿀 수 있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우리 어머니를 낳아주셔서 감사드린다는 말씀과, 그곳에서는 마음 다칠 일 없이 푹 쉬시기를 기도드린다.

 

 

[이보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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