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은 복이 많은 사람인가요?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김초희 감독, 2020
글 입력 2021.07.10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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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정체기가 찾아올 때


 

좀처럼 꺾이지 않는 코로나 19의 확산세로 마스크를 써야 할 기한이 연장되고 있다. 그리고 이 기한에 비례해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어려움도 커지고만 있다.

 

며칠 전 보도된 기사에 따르면, OECD 회원국에서 무려 2,2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한다. 실업자는 코로나 이전보다 800만 명 이상 많으며, 적극적으로 일을 구하지 않는 이들도 1,4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여기서 특히 후자의 사실은 더 씁쓸하게 다가온다.


2020년에 개봉된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주인공 이찬실 역시 갑자기 직장을 잃게 되면서 본인의 일을 ‘더 열심히’ 구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찬실이는 본래 영화 프로듀서였다. 그런데 줄곧 함께 일하던 감독이 개봉을 위한 술자리에서 사망하면서 영화는 접히게 된다. 그리고 동시에 찬실의 PD 일도 중단된다.

 

이후 찬실이는 달동네에 있는 할머니의 집에서 머물게 되는데, 이 집에 동료들과 함께 힘겹게 올라오면서, “아 망했다”라고 내뱉는다. 솔직한 찬실이 자신의 심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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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찬실은 돈을 벌기 위해 친한 여배우의 ‘소피’의 집에서 가사 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처지를 감독은 ‘클로즈업’을 통해 연출한다. 초반부에서 찬실은 모과나무를 바라보게 되는데, 영화는 찬실을 보여주고 그가 보는 모과나무, 개봉을 위한 제사 음식이었던 감, 사과, 배, 돼지머리까지 차례대로 보여준다.

 

아마 행복하게 웃고 있는 제사상 위의 돼지가 자신의 빈궁한 처지를 의미하게 됨을 찬실이는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이렇게 감독은 도입부에서 관객의 주의를 집중 시켜 연출의 흐름에 빠져들게 하는 “서술적 클로즈업”을 사용한다.

 

 

 

원래 별 게 아닌 게, 제일 소중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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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중반부는 감독의 죽음 이후, 찬실이의 눈에만 보이는 ‘장국영’이 등장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여기서 장국영은 찬실이가 어릴 적 좋아했던 영화의 주인공이다. 추운 겨울에도 런닝 차림으로만 돌아다니는 그는 찬실이 주위를 맴도는데, 자신을 ‘귀신’이라고 소개한다. 그는 찬실이가 힘들 때나 고민이 많을 때 나타나서 위로해주기 때문에, 수호천사나 찬실의 내면적 분신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한편 찬실이는 소피의 집에서 그의 불어 교사인 ‘김영’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종종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며 친해진다. 이때 영과의 술자리에서 나누는 대화 장면이 눈여겨 볼만하다. 찬실과 김영은 좋아하는 영화를 두고 이야기하게 되는데, 블록버스터를 좋아하는 영은 찬실이 좋아하는 ‘동경 이야기’가 조금 지루하다고 말한다. 너무 큰 사건이 없어서 재미없다는 말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아무 일도 안 일어난 것이냐며, 찬실은 억울함을 토로한다.


실제로 생각해보면, 찬실의 말이 구구절절 맞다. 가족의 죽음과 해체는 현실에서는 그 자체로 큰일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는 무심코 넘어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별 게 아닌 게 가장 소중한 것이라는 이야기는 우리의 일상을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 중반부의 마지막에서 찬실은 김영과 연애를 하기 위해 주력하지만, 사랑도 쉽게 되지 않아 회의와 좌절을 느낀다. 이 좌절은 자신의 커리어에 대한 불안감에서 더 증폭되어 나온 결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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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찬실의 자존감이 제일 떨어질 때, 또 장국영은 나타나 그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찬실의 작은 방에서 옛 기억과 꿈을 상기하게 하고, 찬실이가 스스로 바로 설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찬실은 그러한 장국영에게 “사는 게 뭔지 궁금해졌어요. 그 안에 영화도 있어요”라고 말하며 다시 자신의 길을 걸어 나간다. 장국영은 먼 우주에서도 기억하겠다며 떠나가고, 찬실이가 만든 영화를 보고 손뼉 치는 그의 뒷모습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따라서 이 영화의 내러티브적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장국영’의 존재이다. 장국영은 찬실이에게 가장 힘을 줄 수 있었을 때는 실제 장국영처럼 하얀 옷을 입고 나타났고, 찬실이 곁을 떠날 때는 검은 색의 옷을 입었다. 찬실이가 살아갈 내면적 힘이 채워지면서, 장국영의 존재는 흐릿해진 것이다. 이러한 연출은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도 장국영과 같은 존재, 즉 이루고자 했던 ‘꿈’을 상기시킨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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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열매”라는 이름의 뜻을 가진 찬실이는 겉보기에는 지지리도 복 없다는 소리를 들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천진난만하게 그를 아끼는 소피와 따뜻한 말로 찬실에게 한글을 배우는 할머니가 그에겐 큰 위로가 될 것이다. 또 함께 일하자며 찾아온 스태프들 덕분에 복이 있을 것이고, 지난날을 빨리 떨쳐버리라는 아버지의 편지로 인해 분명 찬실이는 복이 많은 사람이다. 잠시 정체되었지만, 그 시간으로 인해 오히려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에 대한 확실한 방향성을 찾게 되었던 것처럼, 영화는 하강부에서 모든 과정이 찬실이에게 가득 찬 복을 선물하고 있다고 전한다.


“그대들이 어디를 가나, 주인공이 되니

자기가 있는 그곳이 모두 참된 곳이다.”


위는 소피가 그었던 구절을 찬실이가 읽는 부분이다. 속삭이듯이 읊조리는 찬실의 모습에서 관객은 따뜻한 마음을 전달받는다. 본질적인 자신의 문제를 어디서부터 해결해나가야 할지 모를 때, 우리는 찬실이의 든든한 마음가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오늘 하고 싶었던 것만 하는데, 애써서 한다는 할머니의 말처럼, 찬실은 자신의 하루하루를 소중히 살아가기 때문이다. 바쁜 틈 속에서도 조금이라도 숨통이 트이도록 자신에게 포인트를 주는 것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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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면에서 찬실은 소피와 할머니, 그의 동료들과 함께 가득 찬 보름달을 본다. 정전때문에 밖으로 나가야 할 상황에 달을 발견한 것이다. 이 장면처럼 현재 우리가 있는 위치에서는 잠시 불이 나갈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방에서 나와 다른 길로 걸어볼 때, 환한 달빛이라는 존재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는 “손전등 하나 켜고 씩씩하게 어둠을 헤쳐나가듯, 일상의 고난과 슬픔에 대처하는 찬실의 ‘말금’ 자세”에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른 이들을 위해 뒤에서 묵묵히 손전등 빛을 비추고, 산책을 통해 맑은 마음을 가지자며 공원 석문에 읽는 글귀를 또박또박 읽어나가는 장면에서 올곧은 찬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영화는 잠깐 정체된 찬실이가 점진적으로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담는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에 갈증을 느끼게 되는 지금, 현대인들의 삶에 다시 시동을 켜주는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권해본다.


 

* 참고

경향비즈, 이윤주 기자, 2021.07.08, “OECD, 코로나19로 지난해 2200만개 일자리 증발”

 

 

[심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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