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적당히의 미학

글 입력 2021.07.05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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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대표 최종.jpg



나같이 요리를 잘하지 못 하는 사람들이 늘 멈춰서서 좌절하는 구간이 ‘적당히’다. 간장을 적당히 간 될 때까지 넣고, 야채가 적당히 익을 때까지 볶으며, 고기를 적당한 크기로 썰어 넣는다. 대체 그게 뭔데, 내 안 적당한 실력으로 어떻게 적당히 하는데. 죄 없는 음식의 멱살을 잡을 수도 없으니 한숨이나 푹 내쉬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사실 말이 쉽지, ‘적당히’만큼 지키기 어려운 게 또 있을까.


적당한 삶을 살고 있는 것같지만 돌이켜보면 그 순간만큼은 치열하게 노력했다. 평균 타수 475타면 그렇게 빠른 것도 아니고 인문계 대학생이 살아가는데 불편함이 없을 정도의 적당한 타자 실력이다. 이런 적당한 타자 실력을 갖지 위해 ‘메밀꽃 필 무렵’을 얼마나 연습했던가. (아들인지 딸인지, 왼손잡이인지 오른손잡이인지는 기억나지 않더라도, 나와 동시대를 산 많은 사람들이 ‘여름장이란 애시당초에 글러서’라는 문장을 보면 아, 하고 생각나는 바가 있으리라 확신한다.)


지금 와서야 적당히, 하고 쉽게 넘겨버리지만 사실 그걸 습득하게 되기까지의 노력을 등한시하고 있다. 나는 이제 적당히 옷을 골라 입고, 적당히 얼굴에 이것저것 바르며 화장을 할 수 있고, 적당히 책을 읽을 수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들은 달성과 동시에 무시되기 십상이다.


이렇게 훌륭한 적당히들 사이에서, 아직도 영 감을 못 잡겠는 적당함이 많다.


*


사람 사이에 적당한 거리는 어디쯤일까? 우리는 어디까지 적당히 멀어지고, 적당히 가까워지며, 적당히 선을 지키고, 적당히 속을 털어놔야할까? 얼마나 적당히 기대야 서운해하지도 않고 부담스러워하지도 않을까?


적당히, 라는 단어는 참 적당치 못하다. 이렇게 어려울 수가 없다. 사람의 마음이 눈에 보이면 얼마나 좋을까. 내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 적당하게 닿았는지 직접 들여다보고 싶은 심정이다. 내 딴에는 배려였는데, 그 사람에게 그 마음이 온전히 배려로 갔는지는 미지수다. 애초에 나와 타인은 다르니까, 우리의 적당함은 같을 수가 없다.


나는 지금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과거를 곱씹게 된다. 내가 한 말이 친구를 상처주거나 아프게 하지는 않았는지, 가족이란 이유로 너무 성큼 다가간 것은 아닌지, 가족인데도 너무 뒷짐을 진채 멀찍이서 지켜만 보고 있던건 아닌지, 친구가 부담이 될 정도로 너무 일방적으로 퍼주고 있는건지, 친구가 서운할 정도로 냉담하고 차갑게 굴고 있는건지, 하나도 모르겠다.


*


이렇게 구질구질하고 질척거리는 글을 쓰다보면 고등학교 때, 학원에서 국어 선생님이 현대 시를 가르쳐주며 해줬던 말이 생각난다.


“너네 생각을 해봐. 시험에 떨어져서 우울해 죽겠는 사람이랑, 시험에 붙어서 신나 죽겠는 사람이랑 누가 방에 틀어박혀서 시를 쓰고 있겠어.”


회한의 정서따위를 배우며 지나가듯 했던 농담인데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러니 적당한 글같은 건 없다. 글을 적당히 쓰는 건 어렵다. (물론 글이 신성불가침한 영역도 아니고 당연히 가능하겠지만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는 뜻이다.) 모든 게 적당히 잘 굴러가면 글을 쓸 이유가 없다.


적당히 시간이 흐르면, 적당히 영리활동을 하고, 적당히 자리를 잡고 살게 되는 걸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고등학생 때 대학에 간다고 그렇게 힘들었으면서 지금 적당히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지금은 진로 선택이 큰 산이고 멀고 무겁고 두렵고 막연하고 힘들게만 느껴져도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니게 될까?


사실 적당히란 삶에 있어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고 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


사람과 부딪치고 나면 갈등을 곰곰이 되짚어보며 그런 생각을 한다. ‘그냥 적당히 넘어갈걸 그랬나.’ 참다 참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한 마디를 하고 나서도 그 말이 못내 신경쓰이고 자꾸 생각난다. 할 말은 해야지, 싶다가도 그냥 한 번 더 참을걸, 하는 마음이 뒤죽박죽이다.


그러다 마음을 굳힌다. ‘상대도 상황도 적당하지 않았는데 나 혼자 적당해서 뭐해.’ 물론 이런다고 깔끔하게 잊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말이나 그렇게 해보는 거다. 언어로 정리되면 그러지 않은 것보다는 깔끔하게 마무리지을 수 있으니까.


이 글이 ‘적당히’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바치는 적당한 글인지는 모르겠다. 우리 모두 적당히 잘 살 수 있기를 바라며 이만 글을 적당히 끝맺어야겠다.

 

 

 

컬쳐리스트 명함.jpg

 

 

[안우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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