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선포하라, 작전명 청-춘!

글 입력 2021.06.30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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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 오늘 내게 세상이란 곳, 어릴 적 그리던 꿈속 전쟁터구나. 그 속에서 나는 다시 영웅이   되려, 선포한다. 작전명 청-춘!”

 

언제부턴가 밴드 잔나비는 <작전명 청-춘!>이라는 이 노래를 부르지 않기 시작했다고 한다. 신인 시절, 다소 우격다짐 식의 청춘을 노래한 곡이라 괜히 세련되어 보이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그러나 후에 이 노래가 크게 힘이 되었다던 사람들 덕분에 그들은 소곡집의 마지막 곡으로 이 곡을 선정한다.

 

과거 자신들이 노래한 청춘이 세련되지 못한 것 같아 한동안 부르지 않았다는 말이 나는 왜 그리도 반가웠을까. 쓰기도 전에 지레 겁을 먹고 점쳐본 이 글의 운명이 그것과 비슷할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청춘 이야기는 아니지만, ‘꿈’이라는 주제를 받아든 순간부터 훗날 이 글이 내게 어떤 의미로 읽히게 될지 걱정이 앞서 있었다. 귀 언저리까지 후끈하게 달아오를 정도의 솔직함으로 점철된 문장들과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감정들이 널뛰는 장면을 보며 민망함을 감추지 못할 미래의 내 모습이 눈앞에 형형했다. 대학교 4학년, 취업에 대한 부담감을 안은 시점에 스스로가 티끌보다도 작게 느껴지는 요즘이기에 더더욱 그랬다.

 

꿈이란 것은 가슴에 품고 진정으로 소망하는 그 무언가다. ‘진지충’, ‘설명충’과 같은 합성어들마저 등장하는 현대 사회에서, 진심은 어쩐지 촌스러워지기가 쉽다. 그리고 아마도 나는 그런 것을 두려워했던 것 같다. 지금은 진심이었던 이 마음이 혹여 나중에는 세련되지 못한 노래가 될까 봐. 그러나 촌스럽다는 것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 가공되지 않았기에 그야말로 본질에 더 가까워지는 일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꿈은 진심의 집합체이고, 세련되지 않더라도 그만큼 소중한 것임은 분명하다.

 

<작전명 청-춘!>은 투박한 진심을 담은 노래에 위안을 얻었다던 팬들 덕분에 훗날 앨범에 수록된다. 지금의 내 꿈도 그렇지 않을까. 미성숙하기에 빛나는 이날의 패기와 열정, 젊음을 나중에는 그리워할 수도 있겠다는 사실에 기대어 글을 써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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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나는 그 나이 애들이 으레 그렇듯 꿈이 참 많은 아이였다. 천문대를 견학 간 날에는 반짝이는 별들을 관측하는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고, 오리아나 팔라치 위인전을 읽고서는 용맹한 종군기자가 되고 싶었다. 미술학원에서 사과를 그리며 화가가 되고 싶었고, 해리포터를 읽으며 판타지 소설작가를 꿈꿨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꿈이 바뀌던 나는, 꿈은 없고 그냥 놀고만 싶었던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되고 나서야 당연한 깨달음을 하나 얻는다. 나는 노스트라다무스도, 오리아나 팔라치도, 폴 세잔도, 조엔 K.롤링도 결코 될 수 없다는 것. 천문학자인 나, 종군기자인 나,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는 나는 있어도. 그러니까, 애써봐야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의 내가 되기 위해 우리들은 이렇게 고군분투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대단한 것을 꿈꾸지 않게 되었다. 스스로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나로 성장하는 것이 꿈이 되었다. 생기있는 두 눈을 빛내며 멋있게 나이 드는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다. 라인 홀트 니부어의 말처럼 그들에게는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가 있었고, 그 둘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있었다. 쉽게 안주하지 않았고 달관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내면에 반짝이는 꿈을 안고 나아갔다. 타인의 슬픔을 제멋대로 재단하지 않았고 가벼운 약속을 하지 않았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다름을 수용하며, 남들과 다른 의견을 무작정 내세우지 않는 여유와 표명해야 할 순간을 구분할 줄 아는 현명함을 가졌다. 자신을 믿고 성취로부터 오는 기쁨과 자족감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견고하게 쌓아 올린 자신의 세계에서 흐르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변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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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의 음악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문득 생각했다. 그녀의 음악은 내가 생각하는 멋진 어른이라는 모든 조건에 부합 했다. 어제의 일들은 잊으라며, 완벽한 사람은 없고 자신조차 실수투성이라며 든든한 언니가 되어 위로를 건넸고,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른다며, 바꿀 수 없는 지나간 시간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줬다. 지금 몰입해서 사는 것이 최고의 경지라며 경직되는 마음을 경계하고 흐르는 삶을 살자고 했다.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마음을 따라 충실하게 새로운 음악 스타일을 계속해서 찾아 나섰다.

 

“우리가 꿈도 목적도 잃은 재미없는 월급쟁이가 되면 어떡하지?”

 

며칠 전, 덜컹거리는 지하철 안에서 친구에게 물었다. 삶의 목적을 찾는 것보다도 삶이 목적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원하는 일을 할 수 없다면…. 일상의 순간에서도 이런 의문이 툭툭 튀어나올 만큼 취업에 대한 부담감은 상당했다. 항공서비스학과 4학년, 실습 도중에 코로나19가 국내에 상륙했고, 근 3년간은 관련 업계 취업은 어려울 것 같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들에도 꽤 익숙해지고 있었다. 4년 동안, 아니, 입시를 준비하던 수험생이던 시절부터 항공사만을 바라봤기에 진로 탐색의 시간은 부족했지만, 취업준비의 시간이 눈앞에 다가온 것은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취업에 대한 부담감보다도, 사회초년생의 퍽퍽한 앞날보다도 두려웠던 것은 내가 퀭한 눈의 어른이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주어진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고, 직장 내 인간관계에 지치다 보면 반짝반짝 빛나는 젊은 날들을 도둑맞을 것 같았다. 본문은 본 척도 하지 않고 주석부터 읽는 격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것들이 나는 두려웠다. 버킷리스트라고 해야 할까. 꿈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많고 난잡해서 뭐라 부를지도 모르겠는 것들이지만, 나는 하고 싶은 것들이 아직 많았다. 세계여행을 하며 세상의 아름다운 구석들을 찾아내고 싶었고,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내고 싶었다. 내가 작사한 노래가 거리에서 울려 퍼지기 바랐고, 주름이 멋진 할머니가 되어서는 사진전을 열고 싶었다. 하고 싶은 것에 계속해서 도전하며 고여있지 않고 현재진행형인 삶을 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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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소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단순히 아는 것과 꿈으로 삼고 생생하게 그려보는 것은 다르다. ‘이상은의 음악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는 명쾌한 하나의 문장은 스스로 했던 종합적인 질문들에 답을 내려 주었고 나를 흐르게 했다. 현실을 받아들이되 안주하지 않게 했다. 꿈을 잃지 않고 사는 것이 어쩌면 꿈일 수도 있겠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그 어느 때도 늦지 않았다며 나를 고무시켰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꿈을 선명하게 그려보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취업을 준비하는 우리 중 누구도 꿈에 관해 묻지 않았고 진로의 방향을 잡기 위해서 전전긍긍했다. 근 몇 달간 내일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잠이 든 적이 별로 없었는데, 꿈 이야기만 나오면 위축되던 내가 이 글을 완성한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내일이 기대되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이 된 오늘, 전쟁터 같은 세상에서 꿈을 간직하고 지켜내는 일은 꽤 품이 드는 일이 아닐까. 그래서 글을 쓰며 한껏 고양된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선포한다. 이상은의 음악 같은 사람이 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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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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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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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정민
    • 잔나비 작전명 청춘 은 우리 시대의 젊은이 들이 들어도 공감되지만 청춘을 살아왔던 시대의 사람들도 이 노래로 힘을 얻고 있담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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