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Are you alone? - 나의 잠 못 이루는 잠 with 10CM

글 입력 2021.06.29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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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또 찾아온 밤이다. 이번에 나온 10CM의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은 몇 번을 들어도 좋은 것 같다. 스피커로 이 노래를 틀고 다시 책상 앞에 앉는다. 컴퓨터를 켜고 타자를 두드린다. 생각해 보니 내일이 벌써 마감이다. 미루기만 하다 또 여기까지 내몰릴 걸 알면서도 이놈의 게으름은 도무지 고쳐지지 않는다.

 

가만히 달력을 넘겨보다가 벌써 퇴사한지도 두 달 남짓한 시간이 흘렀다는 걸 깨달았다. 잠시 놀리던 손가락을 멈추고 그동안 내가 무얼 했는지 생각해 본다. 기말고사를 봤고, 토익 점수를 갱신했다. 그리고 음… 이런, 놀았던 기억밖에 없다. 혼자 놀거나, 같이 놀거나. 혹은 안에서 놀거나, 밖에서 놀거나. 정말이지 잉여로운 삶이다. 이제 나도 졸업생인데, 다시 또 취준생인데. 이것 참 곤란한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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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의 두 달이 영 의미 없던 건 아니다.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만났고, 여기저기 삐걱거리던 몸은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갔다. 잠도 많이 잤고, 책과 영화도 원 없이 봤다. 글도 많이 썼다.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한 글만 하더라도 요 두 달 간 7편에 달한다. 지금 쓰고 있는 것까지 합하면 8편 째다. 한 주에 한 편씩은 쓴 셈이다. 돌이켜보니 어쩌자고 이렇게 많이 썼는지 모르겠다.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언가를 쏟아내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사실 어릴 때만 해도 내가 글을 쓰는 걸 좋아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 흔한 일기조차 제대로 쓴 적이 거의 없었으니까(나는 일기 쓰는 숙제가 세상에서 제일 싫었다). 그런 내가 글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아주 우연한 계기였다. 즐겨 듣던 인터넷 강의 사이트에 학생들이 자기가 쓴 소설을 올릴 수 있는 코너가 있었는데 거기에 심심풀이로 썼던 소설들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로도 종종 그곳에 내가 쓴 소설들을 올렸다.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어쩔 땐 인터넷 강의를 듣는 것보다 더 열심히 소설을 쓰기도 했다.

 

말하자면 당시 내게 글쓰기는 일종의 오락이었던 셈이다. 내가 쓸 이야기를 구상하고, 그것을 타자로 옮겨 적는 건 나의 가장 큰 줄거움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건 어른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비록 직장을 다니는 동안 남의 입맛에 맞는 글을 쓰며 잠시 싫증이 나기도 했지만 여전히 글을 쓴다는 건 내게 최고의 오락이다. 그리고 그 재미를 앞으로도 계속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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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요즘 나에겐 취미가 하나 생겼다. 바로 ‘밤 산책’이다. 처음 목적은 운동이었다. 매일 1~2시간씩 발이 닿는 대로 무작정 걸었다. 하지만 요즘은 운동 말고 다른 재미가 더 크다. 시원한 밤공기를 쐬는 것도 좋고, 무엇보다 홀로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겨서 좋다. 돌이켜 보면 이렇게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져본 것도 언제인가 싶다.

 

산책 코스는 매번 달라지지만 마지막 목적지는 언제나 동일하다. 바로 나의 학교. 학교 근처에 자취방이 있어 누릴 수 있는 혜택 중 하나다. 밤의 학교는 때론 고요하고, 때론 소란스럽다. 요 며칠은 비교적 소란스러운 편에 속했다. 날씨가 더워지다 보니 아무래도 다들 비교적 시원한 밤에 움직이나 보다. 여하튼 밤의 학교를 걷다 보면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게 된다. 이를테면 내가 이곳에서 보낸 추억 같은? 동기들, 축제, 잔막, 여자친구 등등. 그러다 문득 마주한 풍경의 한 조각은 내게 어느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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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는대로 짐을 가방에 욱여넣고 밖으로 나왔다.

벌써 자정이 넘은 시간이다. 까만 밤이다.

낮에는 사람들로 가득하던 캠퍼스는 밤이 오자 텅 빈 우주가 되어 고요하기만 하다.

이따금씩 밤을 잊고 돌아다니는 얇은 차림의 방랑객들이 있을 뿐이다.

 

바람이 불었다. 요 며칠 사이에 급격하게 쌀쌀해졌다.

입고 있는 후드의 지퍼를 올렸다.

코앞에 들이닥친 시험과 밀려오는 과제와 일들로 고단했다.

멀리서 빛나고 있는 기숙사를 향해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위로 별이 빛나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별이다.

늦은 밤이고 맑은 날이라 도시의 조명에도 불구하고,

한 줌의 별빛들은 기어코 우리의 눈에 도달했다.

어렸을 때 보았던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가 떠올랐다.

<한국편>에서 70년대 있었던 '새마을 운동'을 다뤘던 대목이다.

 

"새벽별을 보며 출근해, 저녁별을 보며 퇴근한다."

 

물론 새마을 운동에 대해 마냥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적어도 그 시대의 사람들에겐 더 나은 내일이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을 거라는.

하지만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그런 미래에 대한 기대가 남아있긴 한가 하는.

 

아시다시피 세상은 우리를 역사상 최초로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로 규정했으니까.

 

지난 10월 3일, 발매된 김진호의 '노래샘' 앨범에는 <폭죽과 별>이라는 노래가 있다.

그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외롭거나 누군가 그리운 날들이 오면

 그제서야 가끔씩 별들을 바라본다고.

 환호 속에 반짝이는 커다란 폭죽보다

 침묵으로 빚어진 외로운 빛일 뿐이야, 별은."

 

과거세대와 다르게, 현재를 살아가는 세대에게 '별'은 무슨 의미일까.

내일을 향한 기대일까, 가닿을 수 없는 희망일까.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않고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별'들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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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진 않지만 아마도 2년 전, 가을쯤에 썼던 글로 기억한다. 쓰여진 글로 보아, 그때의 난 많이 우울하고 외로웠나 보다. 뭐, 그럴 수도 있다. 밤이 되면 사람은 말랑해지기 십상이니까. 특히 그때의 나라면 더더욱.

 

여하튼, 그때를 생각하자 내가 보냈던 숱한 밤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2015년 가을, 대학교 신입생이었던 나의 밤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였다. 첫 번째 연애가 가져다주는 설렘 때문이었을까. 그 무렵, 나의 밤엔 언제나 불빛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그런 것들은 아무래도 좋을 정도로 우리의 밤은 환희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2017년 가을, 군인이었던 나의 밤은 그리움으로 가득했다. 가족들과 친구들과 그녀가 보고 싶었다. 당시 나는 소방서에서 근무했는데 종종 야간 출동을 나가기도 했다. 환자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면 몸은 언제나 녹초가 되어 있었다. 자다 깨다를 너무 많이 반복하다 보니 머리가 멍할 정도였다. 결국 그러다 새벽 4~5시쯤 되면 잠드는 걸 포기하고 식당에서 믹스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그때마다 나는 내가 밖에 두고 온 것들을 생각했다. 남들은 평안히 잠든 이 밤에 나만 이렇게 잠들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2019년 가을, 복학생이던 나의 밤은 우울하고 외로웠다. 그녀와 헤어졌기 때문이다. 늦은 밤, 집에 돌아가면 항상 내 전화를 기다리던 사람이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은 나를 쓸쓸하게 만들었다. 헤어진 계절도 한몫했다. 그녀는 바싹 마른 낙엽을 밟는 걸 좋아했다. 그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이별 후의 내겐 듣기 괴로웠다. 내년이면 4학년이 된다는 사실도 나를 짓눌렀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이렇게 떠밀리듯 학교를 떠나 사회로 나가야 한다니. 불안하고 막막했다. 나만 홀로 세상에서 뒤처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자주 불면증에 시달렸다.

 

마지막으로 2021년 여름, 졸업을 앞둔 나의 밤은 이력서로 가득하다. 오늘만 해도 무려 여섯 군데에 지원을 했다. 방금 쓴 이력서의 자기소개서 문항에는 이런 질문이 있었다. ‘당신의 5년 후 미래를 생각해 보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현재 무슨 노력을 하고 있는지 설명해보시오.’

 

아, 정말이지 가장 싫은 질문 유형이다. 왜들 그리 남의 꿈에 관심이 많은 건지. 꿈을 꿀 권리가 있다면 꿈을 꾸지 않을 권리도 있는 거 아닌가. 꿈이 없는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살라는 건지. 그리고 애초에 그들이 말하는 꿈에는 뻔히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나? 해당 직무에서 전문가가 된 나의 모습을 상상해보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건지 그 포부를 밝히라는 게 이 문항의 숨은 의도니까 말이다. 정작 내가 진짜 나의 꿈을 말하면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넘겨버릴 거면서. 꿈에도 정답과 오답을 매기는 꼴이라니. 우스우면서 동시에 스스로가 너무 애처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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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 you alone? 우린 지금 연락해야 해. 서로의 안부를 챙겨주며 복잡한 얘기를 들어주면 돼. 어떻게든 우린 지금 연결되어야 해. 누가 먼저라고 못하게 똑같이 잠이 들게 돼 are you still alone? -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 中”

 

 

귓가로 흘러들어오는 노래의 가사를 가만히 흥얼거렸다. 우린 지금 연락해야 해. 서로의 안부를 챙겨주며 복잡한 얘기를 들어주면 돼. 정말이지 감동적인 가사다. 다만 문제는 그러기가 쉽지 않다는 것뿐…….

 

우리 엄마는 나와 통화할 때마다 항상 안부를 물으신다. 나는 그때마다 별일 없으니 걱정 말라고 퉁명스레 대꾸한다. 하지만 그 말이 매번 진실이었던 건 아니다. 때론 가까운 사이에서도 말하지 못할 별일이 있는 법이니까. 그리고 그때마다 나누지 못한 별일의 무게는 결국 오롯이 나 혼자서만 짊어져야 한다.

 

그렇기에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에게라도 안부를 묻고 챙겨주며 복잡한 얘기를 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라도 과거의 나를 위로하고, 현재의 나에게 너는 그 모든 걸 이겨낸 사람이라며 응원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말을 건넨다. 2015년의 나에겐 지금 네 곁에 찾아온 행운을 소중히 여겨 달라고. 2017년의 나에겐 내가 잠 못 드는 사이 지켜낼 수 있었던 다른 이들의 평온한 밤에 대해 생각해 주기를. 2019년의 나에겐 너는 결코 누구에게도 뒤쳐져 있지 않으며, 미래엔 그 긴 터널을 멋지게 통과하게 될 거라는 걸 말해주고 싶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저기 앞에 과거의 ‘나’가 저만치서 걷고 있는 것만 같은 환상이 보인다. 그들은 서로의 뒷모습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어쩌면 내 뒤에선 2023년의 ‘나’가 지켜봐 주고 있는 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렇게 스스로를 바라보는 스스로의 시선으로 ‘나’는 수많은 밤들과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내게 무슨 말을 해줄지 알기 위해서라도 현재를 충실하게 버텨줘야 하지 않을까.

 

 

“Are you alone? 우린 매일 연락해야 해. 이 밤은 점점 더 우리에게 차갑고 주눅들게 하는데. 어떻게든 우린 서로 안아줘야 해. 조금 더 귀찮게 굴어도 돼. 가깝게 볼 순 없어도 are you still alone? -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 中”

 

(정말이지 몇 번을 들어도 좋은 노래다...)

 

 

PS. 요즘은 소설을 하나 구상하고 있다(그런 와중에 아트인사이트에서 소설가 그룹을 모집한다며 메일을 보내온 건 꽤 재밌는 우연이었다). 12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온라인 채팅에서 만난 두 사람의 이야기를 그려볼까 한다. 분량은 대략 단편 소설 정도? 물론 아직은 다듬고 손봐야 할 부분이 많다. 아이디어도 계속 덧붙여야 한다. 다만 어쩌면 오늘 내가 쓴 이 글이 그 이야기의 서론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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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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