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제5도살장 혹은 소년 십자군 죽음과 억지로 춘 춤 [도서]

커트 보니것 『제5도살장』
글 입력 2021.06.28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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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보니것의 <제5도살장>은 흔히 반전(反戰)소설로 소개된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소설이 반전소설이라고 설명하기엔 뭔가 찝찝한 구석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과 드레스덴 폭격이 배경인 이 책에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간다. 그리고 사람들이 죽어갈 때마다 ‘뭐 그런 거지’ (so it goes)라는 말을 붙이며, 죽음은 어떤 영구적인 인생의 비극이 아닌 그저 일어날 수 있는 한 사건으로 여긴다. (이것은 주인공 ‘빌리’가 ‘트랄파마도어’라는 외계인에게 납치되어서 그들의 시간 감각을 체득했기 때문인데, 트랄파마도어인은 과거-현재-미래를 뒤섞어서 보기 때문에, 한 사람의 죽음은 영구적인 삭제가 아니라, 비선형적 시간 속의 하나의 비극일 뿐으로 여긴다.)

 

 
트랄 파마도어에서 내가 배운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 죽을 때 그는 죽는 것처럼 보일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과거 속에서 펄펄 살아있고, 그러므로 장례를 치르는 사람들이 우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러니까 ‘반전’ 소설로 생각될 만한 부분을 읽기가 힘들다. 제2차 대전 때 독일 포로수용소에 끌려가고 드레스덴 폭격의 생존자인 작가의 태도는 모호하다. 드레스덴 폭격이라는 시대적 비극과 2차 세계 대전이라는 전시 상황 속에서도 주인공 빌리는 애국심과 영웅심으로 무장해 상황을 어떻게든 타개해 보려는 영웅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그는 그 반대의 인물이다. 대개 모든 일에 의지가 없고, 오히려 세상이 자신을 죽게 내버려 두길 원한다. 어렸을 적 죽을 뻔한 사건에서 자신을 구해준 것을 귀찮아한 것으로 보아 이것은 빌리의 태생적 특질이기도 하다. 작가 또한 전쟁에 관해 진단하고 어느 한쪽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 오히려 독일군들보다 미군들을 더 한심한 인물들로 묘사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단지 ‘반전소설’이라고 하는 것 이외의 무언가가 있다.

 

 

 

이해할 수 없는 폭력을 대응하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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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2006)


 

그러니까 폭력을 다루는 많은 매체들에서는 여과 없이 그 폭력을 사실적으로 그려냄으로써, 그리고 그걸 겪는 주인공의 시점을 사용함으로서 비극적 상황에 몰입하게 한다. 독자는 주인공을 통해 고통스러운 사건을 함께 통과한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비극적 사건을 인간의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의 세계를 통해 이야기한다. 그런 류의 다른 예술작품은 <판의 미로>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배경으로, 주인공 오필리아는 힘없는 어린아이가 어찌할 수 없는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신비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그 속에서 동생을 구출하고 (현실에서 죽음으로써) 영원히 상상의 세계에서 머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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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책에서 잔혹한 사건에 대한 언급은 아주 많다. 하지만 그 잔혹한 장면마다 마치 그것을 무화하는 듯한 ‘뭐 그런 거지’라는 빌리의 태도는 비극의 참상에 대한 심리적 고통을 어떤 커다란 세계 속 하나의 사건으로 축소시켜 버린다.

 

그러니까 트랄파마도어인적 시각으로 해석하자면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끔찍한 사건은 무시해라 그저 좋은 시간에 집중하라’라고. 그렇지만 작가는 소금기둥이 된 롯의 부인이다. 타락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를 빠져나오며 불 바다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 설령 그런 형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라도, 그들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 계속 뒤돌아보는 사람이 커트 보니것이다.

 

그에게 독일에서 벌어진 ‘드레스덴 폭격’은 몇십 년 동안 그의 안에서 계속 같이 살아온 절대 지워지지 않는 어떤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제5도살장을 써야만 했다.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고들 한다. 나도 물론 앞으로는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이제 나는 전쟁 책을 끝냈다. 다음에 쓰는 책은 재미있을 것이다. 이번 것은 실패작이고, 실패작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소금 기둥이 쓴 것이니까. 그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들어보라: 빌리 필그림은 시간에서 풀려났다.

 

 

하지만, 그의 친구 메리 오헤어에게 멋진 배우들이 출연하는 전쟁영화처럼 사람들이 전쟁에 열광하게 만들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했듯이, 그는 전쟁 상황을 위대하게 그리지도 않고 그 속의 어떤 인물도 영웅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심지어 가장 주인공 자격을 갖춘 것처럼 보이는 가엾은 에드거 더비는 (그의 신체는 이상적으로 잘 관리되어 있으며, 올곧은 생각과 착한 심성을 가졌으며 자진해서 군입대를 한 전직 교사이다.) 지하에서 죽은 이들의 찻주전자를 훔쳤다는 이유로 어이없게도 처형을 당한다.

 

 

 

커트 보니것식 유머


 

인간은 왜 유머를 발명했을까? 유머가 없다면 우리 인생은 시종일관 너무 심각할 것이다. 물론 매 순간 진지함이 없다면 그것대로 세상은 끔찍할 것이다. 동물과 큰 인간의 차이 중 하나는 유머를 구사할 수 있다는 것 아닐까? 먹고 자는 욕망을 충족 이외에 인간은 아무런 생산성이 없는 유머를 즐기는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한다. 유머는 회피와 다르다, 상황을 정면 대응하지 않는 부드러운 우회의 방식이다. 그것은 관계없는 것들을 끌어와 세상을 더 재밌게 보는 방식이다.

 

실없어 보이는 농담에서 더 큰 감정의 파동을 느낀다면, 그것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자가 그럼에도 인생에 대고 웃고야 마는, 인생의 어떤 사실을 깨닫고 뛰어넘은 자만이 주는 진한 페이소스와 고귀함 때문일것이다. 자신이 한 모든 이야기를 헛소리라고, ‘지지배배뱃’ 하는 아무 의미 없는 새소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이 작가의 블랙코미디를 좋아한다. 이런 문학이 필요하다.

 

 

핵무장 해제의 옹호자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면 전쟁이 견딜 만하고 품위 있는 것이 되리라 믿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이 책을 읽고 드레스덴의 운명을 생각해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재래무기를 이용한 공중 공격의 결과로 135,000명이 죽었다.

 

1945년 3월 9일 밤에는 고성능 하이탄을 이용한 미국 중폭격기의 도쿄 공중 공격으로 83,793명이 죽었다.

 

히로시마에 투하한 원자탄은 71,379명을 죽였다.

 

뭐 그런 거지.

 

  

[박정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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