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모멸감과 예민함으로 웅크리고 있을 도심 속 고슴도치들에게 - 소설 '고슴도치'

글 입력 2021.06.28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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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인공 헌제는 지쳐있다. 그리고 일상에 치여 닳을대로 닳아버린 상태다.

 

일상을 살다보면 스스로 지쳤다고 느끼는 순간이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그러한 감정의 순간을 주인공 헌제에게서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작가가 주인공 헌제에게 현대인들의 지쳐가는 면모를 좀 더 극화시켜 투영한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책장을 넘겨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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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화실에서 작업을 하는 화가이자, 이혼하고 딸을 혼자 키우는 남자인 헌제는 매사 예민하고 때로는 지나치게 염세적이다. 다만 그의 예민한 면모를 보여주는 에피소드들이 하나 둘씩 펼쳐질 때 마다 왜 저렇게 예민할까. 하기 보다는 공감되는 부분들이 많았다. 그렇게 큰 일도 아닌데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던가, 평소 자기 자신처럼 말하는 것뿐인 친구에게 짜증이 확 치솟는다던가 하는 것들. 도시 속 지친 현대인들이 보였다.

 

소설 초반, 썩은 이빨을 참고 참다 볼이 퉁퉁 부을 지경이 되어서야 치과에 가는 장면은 그의 성격을 대충 짐작케 했다. 보통 사람들이 사는 게 힘들다보면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이 커지고, 그 외에 모든 것에는 될대로 되라는 식의 태도를 취한다. 헌제의 태도가 딱 그러했다. 헌제 옆에 있는 ‘세진’이라는 친구의 성격이 더더욱 헌제의 성격을 돋보이게 했다. 수려한 외모에 에너지 넘치는 언변을 가진 친구. 함께 치과를 같이 간 상황에서도 세진은 치과 간호사에게 쓸데없는 말들을 건넨다.

 

세진과 헌제를 보고 있자면 도시 속 현대인을 두 분류로 극단적이게 나눌 수도 있겠다 싶었다. 바쁜 현실에서도 끊임없이 활력을 스스로에게 불어넣으며 에너지 넘치게 사는 사람. 그리고 바쁜 현실에 치여 길러온 예민함과 지침으로 방어 기제를 만들고 자신의 일 외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사람. 그리고 스스로 후자에 조금 더 가까운 듯 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헌제에게 묘한 응원의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그렇게 헌제는 일상을 살아가다 우연히 자신이 3년전 사귀었던 후배 연화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연화라는 인물의 말투와 태도를 보니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연화가 헌제의 고슴도치 가시 같은 것들을 제거해 줄 인물이란 것을.

 

헌제라는 인물은 한 번의 이혼을 겪고 나서 사랑이란 것에 더 회의감을 느끼고, 그것도 모자라 거부반응을 보인다. 그런 상황에서 연화가 우연히 만나자고 걸어온 전화에도 거절의 말 없이 묵묵히 나간 것을 보니, 드디어 주인공 헌제에게 변화의 시점이 찾아오겠구나,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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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무언의 걱정 어린 생각도 들었다. 자신의 삶이 얼마나 힘들던 간에, 결국 그 상태는 본인 스스로만이 구원할 수 있다 믿는다. 누군가에게 의지하며 일어선 자리는 불안정하다. 그 누군가가 사라진다면, 다시 무너지는 모래성 같은 위치가 될 것이다. 연화를 통해 자신의 방어기제를 걷어내되, 자신만의 아픔과 고통을 묻어두는 게 아닌 직시하고 스스로 일어나길 바라며 소설을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내가 예상한 전개와는 소설이 다르게 흘러간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연화가 아닌 다른 사람이 헌제에게 다가온다. 수영장 강사인 명신이라는 사람의 에너지가 헌제를 변화시키는 이야기임을 알 수 있었다. 명신이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 또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다만 앞서 말했듯, 헌제가 명신과의 사랑 하나만으로 삶을 변화시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랑은 사랑이고, 본인의 인생은 본인의 인생이니까. 사랑이 자신을 구원하기보다는 아픔을 직시하고 생각을 달리하는 본인 스스로만이 자신을 구원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헌제와 세진, 명신, 연화 등 여러 뚜렷한 개성을 지닌 인물들을 만나보며 비록 책 속의 인물들이지만, 주변인들도 한번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현대인들은 바쁜 현실 속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고 살아가는지. 나는 어떠한지. 앞으로는 어떤 태도로 살아갈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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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는 이런 고슴도치 같은 인물들이 뜻밖에도 많았다”

 

10년도 넘게 쓴 소설을 2000년에 첫 출간하여 근 20여년 동안 꾸준히 독자들에게 사랑받은 위기철 소설 《고슴도치》를 현북스에서 새롭게 출간했다.

 

대인기피증, 피해의식, 자폐증, 자기혐오감 따위에 사로잡힌 인물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슴도치 같은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가시를 곤두세운 채 자신만의 울타리 속에서 음침하게 살아가는 인물들. 그들은 때로 사교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심지어 외향적으로 보이기까지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사교성과 외향성 또한 교묘하게 위장된 가시임을 느낄 수 있다. 어쩌면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이런 고슴도치 같은 속성이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기술적으로 발전해도(아니, 그럴수록 더), 개인으로는 무력하기 짝이 없는 시대이니까.

 

가시를 곤두세운 채 잔뜩 웅크리고 있는 한 남자와 못 말리는 수다쟁이 여자. 위기철 작가는 물과 기름처럼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두 남녀의 줄다리기를 통해 시종 웃음과 감동을 선사한다. 재치와 유머가 넘치는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어느덧 삶에 대한 작가의 깊이 있는 통찰에 감탄하게 되고, 진실은 먼곳에 있지 않음을 불현듯 깨닫게 된다.

 

이 소설의 또하나의 매력은 통쾌함과 잔잔함이 어우러져 유머가 넘쳐나는데 있다. 글로도 이렇게 재미있게 입가에 미소를 번질 수 있게 하는 작가의 재치와 일상을 들여다보는 눈에 감탄하게 된다. 또한 주인공뿐만 아니라 인물들의 개성을 살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비슷하도록 묘사하는데 공을 들인 작가의 노력이 돋보인다.


 

[이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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