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람을 제대로 알기 위한 노력의 총제 - 직업으로서의 예술가: 열정과 통찰

한 사람의 여러 모습을 비추는 인터뷰가 매력적인 이유
글 입력 2021.06.2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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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집을 읽어본 것은 처음이다. 잡지나 매거진에 나오는 인터뷰는 많이 봤지만(주로 그런 매체로 인터뷰를 접하니까) 책 한 권이 통째로 인터뷰로만 꾸며진 책은 처음 접해본다. 낯선 느낌이었지만 오히려 그 점 때문에 책에 애정이 갔다. 오로지 인터뷰를 위해 만들어진 책이라는 점, 그게 좋았다. 잡지나 매거진이 종합 선물 세트 같은 느낌이라면 인터뷰집은 내가 좋아하는 맛만 가득 들어있는 과자 상자를 받은 느낌?

 

나는 이러한 인터뷰가 참 좋다. 누군가를 인터뷰한 글을 볼 때면 공간적, 시간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을지라도, 인터뷰를 보는 순간 만큼은 그 사람과 내가 함께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설령 그 사람이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라 할지라도, 내적으로 품어왔던 것들을 조심스레 말로 꺼내놓는 모습을 보면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친근감을 느낀다. 무엇이 날 그렇게 느끼도록 만드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람 냄새'가 가장 주요하지 않았나 싶다.

 

정적인 문체에 묻어나는 따뜻한 마음, 사랑하는 것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개성, 그리고 인간과 세상을 대하는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 그런 것들 모두가 내게 감응할 수 있는 소재를 던져주고 '이 사람이 이런 신념을 갖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고통을 겪었던 것일까?', '나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 했을까?'하는 고민을 떠올리게 만들며, 그에 따라 이 사람을 온전히(완벽히는 아니지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인터뷰이에게 몰입할 수 있게 된다. 그 어디에서도 쉽게 느낄 수 없는,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환경이다.

 

사실 우리가 삶을 살아감에 있어, 나의 가치관이나 인생관 같은 것을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기회가 그리 흔한건 아니지 않던가. 그런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지루하다'거나 '분위기 흐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꽤 있고.

 

하지만 인터뷰를 통해서만큼은 그런 것들에 신경쓰지 않고 과감히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 오래 묵혀두었던 자신만의 이야기, 하고 싶은데 주변 시선에 주눅들어 꺼내지 못한 이야기들이 인터뷰를 통해서 표출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터뷰이의 진심을 느낄 수 있고 내면을 제대로 응시할 수 있다. 이것이 인터뷰가 매력적인 이유이다.

 

그런 각종 인터뷰를 통해서 이상적으로 바라보던 사람, 완벽하다고 느꼈던 사람도 사실은 나와 비슷한 고민을 겪었던 연약한 한 인간이었음을 알게 되고, 겉모습은 냉정하고 차가워보이지만 알고보니 속은 따뜻한 사람도 무수히 많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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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26명의 예술가가 인터뷰이로 참가한다. 배우, 음악가, 소설가, 연출가, 시인 등 각자의 자리를 꾸준히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많은 사람들의 인터뷰가 나오기 때문에 잡지나 매거진의 인터뷰를 읽을 때와는 다른 방식을 적용해야 했다.

 

잡지나 매거진은 한 사람을 깊게, 오랫동안 들여다본다. 그래서 누군가의 인터뷰를 읽고 나면 한동안은 멍한 상태를 유지한다. 여운이 남아 쉽게 다른 페이지로 넘길 수 없다. 인상 깊었던 대화를 다시 보기도 하고 '왜 이런 말을 했을까?'하는 궁금증을 오래 곱씹어보기도 한다. 물론 이런 과정은 시간이 오래 걸리기에 비효율적인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빨리빨리 다른 쪽으로 넘겨보라는 유혹에 시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겪지 않으면 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텍스트로만 받아들이는 과정에 머물게 된다면 인터뷰이의 생각을 '확인'하는 정도에 그칠 뿐이지 '이해'로 나아갈 수는 없다. 텍스트를 읽고 나와 연관지어보는 과정이 없다면 그 사람을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더불어 그 사람만의 경험으로인해 내가 배울 수 있는 부분들도 놓치게 될 것이다. 이것은 결코 '내가 바라는 읽는 활동'이 아니다.

 

내가 바라는 '제대로 된 읽기'란 대상과의 소통이 가미된 읽기이다. 소설이든, 에세이든 모든 종류의 글은 독자와 소통할 수 있게끔 구성되어 있다. 인터뷰도 마찬가지이다. 인터뷰는 하나의 거대한 세상을 담고 있다. 그것도 '실제로 존재하는' 세상을. 그렇기에 그것을 이해하는 데에는 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인터뷰를 읽을 때 많은 시간을 할애하곤 했다.

 

위와 같은 관점을 적용시켜 본다면 나는 이 책을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읽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다. 짧은 시간 안에 한쪽 세계에서 다른쪽 세계로 넘어가야 했기에 진중한 자세를 취했다면 그 넘어가는 과정이 꽤나 힘겨웠을 것이다. 가볍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대충 이해하는 일은 없게끔 신경을 쓰며 책을 읽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터뷰를 읽어볼 때마다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 최대한 그들의 마음을 느껴보고 싶어 집중해서 읽었다. 허나 한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면 가능한 한 빨리 머릿속을 비우고 다음 페이지로 넘겼다. 각자가 이야기하는 예술성의 방향이 다르고 품고 있는 이상도 달랐기에 전 사람의 흔적이 남아있으면 상충되는 지점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해당 인터뷰이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 역할을 했다. 이 책을 읽은 초반에 그런 경험을 많이 했다. 조금 혼란스러웠고 '나 지금 제대로 이해하고 있나?'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책을 읽는 나조차도 그런데, 책을 쓰고 인터뷰를 한 당사자인 박희아 저널리스트는 오죽했을까 싶었다. 무려 52명(직업으로서의 예술가는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을 인터뷰 한다는 게 정말 쉽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책 뒷부분 에필로그에 그와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체력적인 문제가 아니라 감정적인 문제가 컸다면서 자신의 최대 강점인 공감 능력의 양면성을 명확히 보았다고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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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고생 끝에 만들어진 책이라 그런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인터뷰이들의 업이 예술을 기반으로 한 것이니만큼 관련 얘기들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데 그 중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이 눈에 들어왔다.

 

 

예술이란 뭐라고 생각하세요?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데 필요한 게 예술 아닐까요? - 배우 나하나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을 필터로 삼아서 세계의 정보를 걸러낸 결과물이요. '나는 지금까지 내가 만들어온 내 삶으로 이렇게 걸러냈다'를 보여주는 게 예술인 거죠. - 소설가 정세랑

 

개인적인 걸 모두가 느낄 수 있게, 모두가 느끼는 걸 지극히 개인적이게. 이런 식으로 계속 번안할 수 있는 능력이 예술성의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 음악가 넉살

 

사랑의 선물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사랑의 덩어리 그 자체. 예술이라는 약을 먹어야 저도 치유를 받고, 치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요. - 배우 최정원

 

저는 예술이라는 게 사람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예술로 인해서 우리는 사람들의 다른 모습들을 배척하고 비판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 있고, 만약에 좋지 않은 모습을 지닌 소재나 캐릭터가 있다면 그걸 타산지석 삼아서 교훈을 얻을 수도 있어요. - 배우 양지원

 

단 하나의 단어로 예술을 얘기하라고 하면 저는 망설임 없이 '희망'이라고 할 거예요. 비극적인 작품에서도 우리는 희망을 찾을 수 있거든요. 그리고 희망을 찾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또 계속 질문을 던지겠죠. - 배우 이예은

 

평범함이 특별함으로 다가가는 순간. 사실 이런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건 예술가들의 능력이죠. 평범한 걸 보더라도 특별하고 의미 있는 존재로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게 예술가의 역할이자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 음악감독 김문정

 

 

각자에게서 다양한 대답이 나온다. 난 이런 질문이 정말 재밌다. 모든 사람에게서 다른 대답이 나오는 질문들. 원론적인 질문이라며 진부하다 느낄 수 있지만, 그렇기에 항상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들. 박희아 저널리스트는 이런 질문을 스스럼 없이 인터뷰이에게 던진다. 그리고 인터뷰이가 대답을 하면 그 대답에 고개를 끄덕일 줄 안다. 건성으로 끄덕이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 말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에만 나오는 고갯짓이다.

 

이것은 그녀가 공감 능력이 뛰어나서이기도 하겠지만, 인터뷰이에 대한 사전 지식 자체가 상당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터뷰들을 보면 알겠지만 박희아 저널리스트는 인터뷰이가 무슨 활동을 했는지, 그 작품에서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는지, 무슨 느낌으로 표현해내는지를 빠삭하게 꿰고 있었다. 책 중간을 보면 그런 모습에 깜짝 놀란 인터뷰이의 감탄도 나온다. 그렇게까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런 준비를 한 사람도 아니고 52명이나 했다니, 새삼 감탄이 튀어나왔다.


그런 힘듦의 연속인 인터뷰를 계속하는 이유에 대해 그녀는 '한 사람의 여러 모습을 비출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인터뷰이기 때문'이라 말한다. 우리도 사실 그렇지 않은가. 밖에서 보여지는 내 모습이 있고, 나만 알고 있는 내 모습이 있듯이 우리는 한 가지 면만을 가지고 있지 않다. 여러 모습을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꺼내는 것 뿐이다. 그것이 우리가 삶을 사는 방식이기도 할 테고.

 

예술가들이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 이를테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음악가, 배우, 연출가, 소설가, 시인의 모습 말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 사람의 가치관이나 인생관 같은 것은 쉽사리 잘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는 오로지 밖으로 노출되는 모습을 보며 그 사람을 판단한다. '저 모습이 저 예술가의 본 모습이야'라면서. 그리고 그러한 관점을 일상생활에 적용시켜 주변 사람들의 모습에 대해서도 '저 모습이 저 사람의 본 모습이겠지'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대충 판단하고 말아버린다. 그게 편하기 때문에.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지나친 편견 일지도 모른다. 그 사람을 자세히 알기가 귀찮아서, 혹은 더 알기 위한 노력을 하기 힘들어서 그런 안일한 생각을 합리화 하는 것이다. 이 책을 쓴 박희아 저널리스트가 예술가들을 만나서 깊은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듯, 우리 또한 내 주변 사람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섣불리 누군가를 판단하기가 쉬워진 세상이다. 겉으로 노출되는 양만 증가하고 내재된 가치들이 잠식되는 현대 사회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그 사람의 진심을 알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온전히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까?

 

박희아 저널리스트의 모습을 보며 그 대답의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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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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