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죽지 마, 살아야 해, 힘내 - 두더지 [영화]

글 입력 2021.06.27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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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순간이 혼란스럽다. 사소한 것 하나 무난한 구석이 없다.

 

공감할 여지조차 주지 않고 앞서가는 인물들의 감정선은 내내 들쑥날쑥이다. 동급생, 부자지간, 모녀지간, 나와 타인, 타인과 타인 사이에서 끝없이 거듭되는 폭력은 당위를 찾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맥락이 없고, 장소도 대상도 가리지 않기에 무엇 하나 용납하기 어렵다.

 

아마도 누군가 영화를 추천해달라 할 때, 내 입에서 <두더지>라는 제목이 나올 일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이 영화는 지독하게 불편하고, 여러모로 보는 이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누군가가 이 영화에 대한 감상을 묻는다면, 난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모든 면에서 불쾌하기 짝이 없지만, 응원하지 않을 수 없는 영화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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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때가 있다. 2011년 대지진이 휩쓸고 지나간 직후 몇 년간의 일본이 그랬다.

 

그곳엔 지진으로부터 비롯된 쓰나미와 원전폭발의 여파로 하루아침에 쓰레기처럼 나뒹굴게 된 이들이 있었다. 햇수로 벌써 9년이 지난 그때를 세심하게 기억하진 못하지만, 굳이 기억하려 애쓰지 않더라도 그 당시의 일본을 향해 무수한 응원 세례가 쏟아졌을 거란 사실쯤은 짐작할 수 있다.


영화 초반부, 교탁 앞에 선 중년의 교사가 애국심에 한껏 도취되어 “분발하고 힘내서 재생해나가는 것, 그것이 일본인이다!”라고 스스로 외치듯. 이에 대해 “모두가 그렇진 않은데요.”라며 토를 다는 주인공 스미다(소메타니 쇼타)의 머리를 가볍게 짓누른 뒤 필기하느라 여념이 없는 학생들을 향해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특별하다. 세상에 하나뿐인 꽃이라고. 힘내라 스미다! 꿈을 갖는거야!”하고 덧붙이듯.


물론, 그 따위 응원은 전혀 와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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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의 본질은 운 좋게도 불행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나 있던 이들이 체면을 차리듯 건네는 위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 허울뿐인 응원은 되레 세상이 그들의 불행에 무지할 뿐만 아니라 관심조차 없다는 사실만을 알려준다.

 

그 속에서 불행의 피폭자들이 얻을 수 있는 건 이 절망 속에 오직 나 혼자뿐이라는 자각이다. 그렇기에 스미다는 너는 특별한 존재니까 꿈을 갖고 더욱 힘을 내라며 응원하는 선생에게 “평범 최고!”라고 응수함으로서 선을 긋는다.


당신은 나의 (평범마저 닿을 수 없는 특별함이 되어버린)불행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런 당신의 응원 따위는 필요 없다, 라는 식으로. 그렇게 내 곁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만이 그 소년이 자신의 세상을 버티는 방식이다.

 

그러니 어설프게 다가오지 말라고, 소년은 성대가 찢어질 듯 악을 쓰고 발작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며 간신히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런 교사의 말이 영화의 끝에 이르러 되풀이된다. 하지만 이번엔 그 말을 건네는 이의 위치가 다르다. 대놓고 스미다를 짝사랑(스스로 스토킹이라고 인정할 만큼 열렬한)해온 차자와(니카이도 후미)는 자살할 것인가, 살아갈 것인가의 기로에서 겨우 돌아와 다시 한 번 살아보기로 결심한 스미다의 옆에서 함께 달리며 교사가 했던 응원을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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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것은 순간의 연민이 아니다. 스미다에게 남자와 눈이 맞아 자신을 버리고 도망가버린 엄마와 보험금을 타고 싶은 마음에 진심으로 “네가 죽었으면 좋겠어.”라고 거듭 말하는 아버지가 있듯, 차자와에게도 딸의 목을 매달기 위한 교수대를 정성껏 제작하고 있는 정신이상의 부모가 있다.


그런 차자와에게 스미다는 일종의 거울상이다. 스미다를 향한 차자와의 맹목적인 사랑은 어쩌면 부모에게조차 사랑받아본 적 없는 자기 자신을 향한 사랑일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 그런 건 어쨌든 간에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차자와가, 그 누구보다 스미다의 절망을 잘 이해하고 있는 그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한다는 것이다. “죽지 마. 죽으면 안 돼. 살아야해. 너는 특별해. 세상에 하나뿐인 꽃이야.”라고. 그러니 제발 “힘내!”라고.


그러자 스미다도 그녀를 따라 함께 외친다. 스스로를 향해. “힘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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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는 어느덧 지진으로 폐허가 된 도심지를 비춘다. 소년과 소녀의 외침은 그곳에 짙게 밴 좌절을 감싸 안듯 절박하게 울려 퍼진다.

 

이 때, 영화는 말을 거는 듯하다. 그 당시의 일본을 버티며 살아가던 모든 스미다에게. 안다. 당신의 오늘이 얼마나 지옥 같을지. 하루하루가 얼마나 무의미하게 느껴질지. 너무나 잘 안다. 하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마.” 당신들은 여전히 이 나라의 “미래”니까.


응원이란, 이렇게 하는 것이다.

 

 

[임현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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