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글을 쓴다는 건 [문화 전반]

글 입력 2021.06.23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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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글짓기 및 독후감 대회 참가 및 수상, 영자신문부, 학생회 서기, 고교연합 신문사, 과내 교지편집부, 그리고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활동에 이르기까지.


돌이켜보면 지금까지의 내 삶을 관통하는 대표적인 키워드에는 ‘기록하고 쓰는 일’이 있었다. 자신의 온전한 선택보다는 타인의 영향력이 작용할 여지가 큰 중, 고등학교 동아리 선택의 순간에서도, 나는 언제나 망설이지 않고 무언가 쓰는 활동이 주가 되는 동아리를 택했다.

 

 

 

말도 많고, 생각도 많고, 쓰고 싶은 글도 많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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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았는지 모르겠다.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반 아이들의 일기를 검사하시는 것은 지극히 의례적인 일이며, 아이들은 그에 맞춰 적당한 내용과, 적당한 분량으로 의례적인 기록을 남기면 될 일이다. 그러나 개중에는 꼭 오버(?)하는 아이가 있는 법이고, 내가 바로 그런 아이였다. 1~2학년 때도 굳이 고학년용 줄 많은 공책에 3~4장씩 꽉꽉 채워서 일기를 썼던 나. 물론 이는 단순히 선생님의 관심을 끌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담임선생님이 바뀌고 학년이 바뀌어도, 나는 그저 꾸준히 써나갔다. 그리고 이렇게 남은 수십 권의 일기장은 그로부터 15년 이상이 흐른 지금, 아무 곳이나 펼쳐서 읽기만 해도 당시의 기억을 생생하게 떠오르게 해 주는, 그래서 어쩐지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기분을 가득 머금게 해주는, 나만의 이야기 보따리로서의 기능을 충실하게 해내는 중이다. 그 흔한 돌려막기식 문장 하나 발견할 수 없는 내 일기장을 뒤적이다보면, 느끼게 된다. 아, 나는 참 글 쓰는 걸 좋아했구나, 라고.


물론 지금도 난 지독한 수다쟁이다.

 

그것도 내 블로그의 소개말처럼 쓰고 싶은 글뿐만 아니라 생각도, 말도 많은 그야말로 종합적인 수다쟁이. 지인들과의 약속을 나갈 때마다 ‘오늘은 말 좀 적게 하자’라고 결심하지만 약속 장소에 도착해 대화를 시작하는 순간 매번 실패를 직감하고, 잠자리에 누우면 밀려드는 온갖 생각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날 역시 예사다.

 

어디 그 뿐인가. 한 번은 고등학교 국어 수업 중 읽은 책에 대한 감상을 5분 내외로 발표하는 시간에, 30분이 넘는 시간동안 교실 앞에서 혼자 떠들어대 선생님 및 반 친구들을 기함하게 한 적도 있다. (아마 그 정도 시간이 지나도록 나를 말리지 않으신 걸 보면, 얘가 과연 어디까지 할까 시험해보신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나의 글쓰기는, 이처럼 항상 끝이 정해져 있어 힘든 말과, 반대로 그 끝이 없어 나를 힘들게 하는 생각을 절충해주었다. 머리와 입이 활자에 단단히 취한 상태에서도 해소되지 못한 생각들을 분명한 언어를 통해 마저 털어놓게 해주고, 이것에 대한 명확한 증거물을 남겨주는, ‘제 3의 출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왔다.

  

 

 

글을 쓴다고 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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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난 이십 몇 년간 수없이 마주한 다양한 자기소개서 속 특기 및 취미란에, 나는 한 번도 ‘글쓰기’라고 써 본 적이 없다. 이렇게 오래, 꾸준히 글을 써 왔으면서도 정작 내가 ‘글을 쓴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어쩐지 부끄러웠다.

 

가장 큰 이유는 나에게 글쓰기란, 곧 창작과 동의어였기 때문이다. ‘창작의 고통’이라는 말이 많은 이들에게 보편적으로 쓰이는 단어인 만큼, 창작은 필연적으로 고통이 따르는 일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에 공감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느끼는 고통조차 이것을 해낼 능력이 있는 사람들만의 특권이라고 느낄 정도로, 애초에 나에게 있어 창작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그리고 절대 해낼 수 없는 일에 가까웠다.


사실 거창하게 창작까지 갈 것도 없었다. 좋아하는 공연의 리뷰를 쓸 때도, ‘좋았다’라는 표현 이상의 감정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내가 야속해지기도 했다. 같은 공연, 또는 전시를 관람한 후, 나는 미처 떠올리지도 못했던 유려한 표현들을 통해 누가 봐도 ‘잘 썼다’라고 생각할 만할 글들을 뽑아내는 다른 사람들이 부러웠다. 여태껏 스스로의 강점으로 꼽아왔던 현실 감각이나 판단 능력은 정작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는 개인 일기장이나 블로그 등, 나만의 사적인 공간에만 조금씩 글을 끄적일 뿐, 이것을 세상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 있다고는 꽤 오랫동안 생각하지 못했었다.

 

*

 

그러던 중 바로 여기, ‘아트인사이트’를 만났다.

 

처음에는 과한 욕심인가 싶었다. 당시 내가 처한 개인적인 상황이 그랬고, 공식 사이트, 네이버 포스트, 인스타그램, 그리고 뉴스란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글이 노출이 되는 이 플랫폼의 성격이 그랬다. ‘창작을 하지 못 하는’ 나를 인정하는 것은 그다지 힘들지 않았지만, 이 능력의 결여로 인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은 조금 힘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저질러보기로 했다.

 

그래, 애초에 누가 나한테 ‘넌 글 쓸 능력이 없어.’라고 한 것도 아니잖아. 만약 운이 좀 좋아서 기회를 잡게 된다면, 그 때 다른 사람들에게 제대로 검증을 받아볼 일이었다.

 

 

 

4개월 동안 얻은 것들


 

이렇게 시작한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활동이 어느덧 다음 주를 끝으로 마무리된다.

 

내 모든 것이 담긴 글이 다른 이들에게 보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 내가 끊임없이 저울질했던 이 양가적인 감정들은 약간은 허무하게도 후자의 완벽한 승리로 끝이 났다. 얼마나 많이 읽히느냐와 그 글의 가치가 반드시 비례한다고 보지도 않고, 내 이름이 걸린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진다는 건 그만큼 많은 노력과 책임감을 요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동시에 언제나 즐겁고 설레는 일이기도 하다. 내 다이어리에만, 매일 쓰는 노트북 일기로만, 또는 블로그를 통해서 혼자 머금을 때와는 또 다른 큰 매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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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예상대로, 매주 하나의 완성된 글을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에 기고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글 쓰는 걸 좋아한다고 해도, 나에게도 꽤 여러 번 힘겨웠던 순간이 있었다. 예컨대, 개인적으로는 글의 소재가 정해지지 않는 상황이 제일 견디기 힘들었다. 가장 바빴던 4월 한 달간은 이전에 생각해뒀던 글감을 바탕으로 글 한 편을 휘리릭 만들어내고는 했는데, 오히려 조금 한가해지고 난 5월 중순 이후에는 하루 종일 소재를 생각하다 정작 글의 첫머리조차 작성하지 못하고 잠자리에 드는 일이 많았다.

 

한편, 그러면서 저절로 내 글쓰기 스타일을 파악하는 소득도 있었다. 다름 아닌 그 어떤 것이든 주제만 정해지면, 아무리 오래 걸려도 3시간 안에는 A4 3~4장 분량의 글 한편을 써낸다는 점이었다. 사실 지금까지 기고한 스물 몇 편의 모든 글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쓰였다. 처음에는 수요일 마감 이후 다음날인 목요일부터 그 다음 주 수요일까지, 일주일동안 조금씩 쓰고 매일 층층이 쌓이는 사유 과정을 통해 좀 더 깊은 글을 완성해 나가자, 라고 결심했으나, 정작 단 한 번도 이런 방식으로 글을 완성한 적은 없다. 나에게 맞는 글쓰기 방법과 루틴을 알게 됐다는 점에서, 역시 나름의 소득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내 글쓰기의 장점을 새로이 발견하기도 했다. 다름 아닌 모든 내 이야기와 경험들을 망설임 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솔직함’이다. 활자만 봐도 느껴지는 감정의 고저, 글을 풍부하게 해주는 문학적, 시적인 표현들은 여전히 내 글쓰기와 거리가 멀다. 이러한 글들에 비하면 내 글은 투박하고, 단순하고, 딱딱하다. 그러나 이 빈 자리를, 마치 말 많은 친구가 옆에서 ‘썰’을 푸는 것과 같은, 내 온갖 TMI가 담긴 개인적인 경험과 일화가 채워준다. 지금까지 지켜온 ‘수다쟁이’로서의 자아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낯선 사람 앞에서든 친한 지인들 앞에서든, 아무런 두려움 없이 자기노출을 감행하고 이를 글 속에 녹여내는 것은, 글 쓰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능력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소득은 글쓰기가 곧 거대한 창작 활동이라고 여겨왔던 내 맹목적인 믿음이 마침내 깨졌다는 점이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활동을 하는 4개월 동안 이 곳 외에도 공개적으로 글을 쓸 수 있는 다른 플랫폼들을 굳이 개척했을 리가 없다. 이처럼 새롭게 접한 다양한 플랫폼들에서 일상적인 글쓰기를 통해 글 쓰는 자아를 지켜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 글을 쓰는데 무언가 거창한 자격이 있어야만 했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내가 부끄러워진다.

 

아, 빼놓을 뻔한 이야기가 있다. '문화로 소통한다'라는 아트인사이트의 모토처럼, 굳이 면대면 대화를 통하지 않고서도 다른 에디터분들의 글들을 접하고, 그 글을 쓰신 분들과 (마음속으로나마) 소통할 수 있는 기회 역시 에디터 활동을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한 때 글을 좋아하는 만큼 ‘글을 그래도 못 쓰지는 않을걸?’이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 곳에는 이런 생각을 부끄럽게 만드는 좋은 글들이 너무 많았다. 소재도 참 다양했다. ‘사람의 관심사란 참 다양한 것이구나.’ 싶기도 하고, 내가 그냥 넘겨버렸던 것에 대해 이만큼이나 깊이 사유하는 것이 정녕 가능한가,라고 감탄해 마지않았던 글들도 있었다. 굳이 내 글이 기고되는 요일이 아니어도, 거의 매일 홈페이지에 들어가 새로 쓰인 글들을 읽고, 또 다시 감탄하고, 또 다시 배우고. 최근 4개월은 이런 날들의 연속이었다. 사실 이제는 어떤 글을 읽으면, 어떤 에디터님이 썼는지 알 것 같은 경지에 다다랐다. 이 분들 입장에서는 조금 무서운 일일 수도 있지만, 여하튼 글이라는 것이 얼마나 한 사람을 잘 드러내주는지를 활동을 하는 동안 직접 경험했다고나 할까.

 

*


이제 나는 자기소개서의 특기와 취미란에 ‘글쓰기’를 자연스럽게 적어 넣을 수 있는 사람이 됐다. 오랫동안 글을 써 왔는데, 이런 변화는 다소 짧은 시간 안에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다는 것이 아직까지도 조금 낯설기는 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에게 2021년은 이것 하나만으로도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을 조그맣게나마 이룬, 꽤 기뻤던 해로 기억에 남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앞으로도 계속 써나갈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훗날 이것을 읽는 나 자신과 사람들에게 문득 기억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더없이 기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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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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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울따뜻한 말씀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써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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