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나를 찾는 과정 속에 존재하던 '꿈'

현재에 최선을 다한다면 꿈이 바뀌어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글 입력 2021.06.22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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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선수 - 의사 - 교사 - 크리에이터 - 프로게이머 - 경찰관 - 조리사 - 가수 - 만화가 - 제빵사'

 

교육부가 조사한 2020년 초등학생 장래 희망 TOP 10 이다. 순위에 들어온 직업들을 보니 익숙한 직업도 보이고 그렇지 않은 직업도 보인다. 최근에 아이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한다는 크리에이터가 단연 눈에 뜨인다. 또 내가 초등학생 시절일 때 주변 아이들이 품었던 꿈과 비슷한 직업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직업들도 있다. 조금 낯설은 직업이 있다면 크리에이터와 프로게이머, 만화가, 제빵사, 조리사 정도? 크레이이터는 최근 유튜브 열풍으로 인한 것이겠고, 프로게이머는 게임을 좋아하는 많은 학생들의 염원이 담긴 꿈 일 테며, 만화가는 웹툰의 영향, 제빵사나 조리사는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받은 결과이려나.

 

나머지 직업들은 내가 초등학생 시절일 때 유행했던 꿈들과 비슷하다. 운동 선수, 의사, 교사, 경찰관, 가수 등은 한결같이 초등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시대가 변해도 꾸준히 TOP 10에 자리할 직업들이다. 가장 흔하게 생각할 수 있는 직업이고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직업이다. 또 누구나 꿈꾸기 쉬운 직업이고 한번쯤은 가슴에 품어볼 수 있는 그런 직업이다.

 

여기에 몇개를 더해 과학자, 대통령, 소방관 같은 직업들이 내가 초등생 시절일 때 주류를 이루곤 했다. 그때 당시의 우리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그러한 꿈들을 염원했던 것 같다. '미래의 나는 그런 멋진 모습을 가지고 있겠지?', '우리나라를 빛내는 멋진 사람이 되어야지'하면서.

 

 

 

첫 번째 꿈, 소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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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freepik)

 

 

나의 첫 번째 꿈은 현재 TOP 10에는 없지만 내가 초등학생 일때는 있었던 소방관이다. 그때는 단순한 끌림으로 장래 희망을 정하곤 했는데 내가 소방관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히 '물 뿌리는 모습이 멋있어보여서'였다. 당시에는 기다란 호수로 물을 뿌리는 소방관들이 마치 세상을 구하는 멋진 영웅 같아 보였다. 아, 물론 그들은 영웅이 맞다. 사람을 구하고 지키는 소방관들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지.

 

하지만 그때의 내가 생각한 영웅은, 판타지 영화에 나오는 영웅들처럼,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다른 직업들을 예를 들어보자면, 경찰관은 순식간에 움직이는 빠른 다리가 있고, 의사는 환자의 아픈 부위를 만지면 금방 낫게 하는 마법의 손이 있었으며, 군인은 총탄에 맞아도 끄떡없는 건장한 몸과 적들을 벌벌 떨게 하는 강력한 힘으로 선량한 시민들을 지키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 중에서도 소방관은 물을 뿜어내어 불로부터 사람들을 지키는 최고의 영웅이라 생각했으니 내가 매료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두 번째 꿈,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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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freepik)

 

 

소방관이 그저 바라만 보는, 다가가기 어려운 이상에 가까운 꿈이었다면 과학자는 내가 환상에서 깨어나 제대로 품은, 나의 진짜 꿈이라 할 수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수록 나는 과학에 점차 빠져들었는데, 과학은 내가 궁금했던 이 세계의 근본 원인을 알려주는 유일한 과목이었기 때문이다. 이 세계가 어떤 힘에 의해 움직이고, 무엇으로 인해 지금과 같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지, 자연 현상은 어떻게 발생하고 왜 발생하는지, 저 우주에는 무엇이 있고 우리는 지금 왜 여기 있는지, 왜 지구에서 살아야만 하는지, 우리가 볼 수 없는 세상은 어떤 모습인지 같은 세상 전체에 대한 질문이 끝없이 솟아나던 당시의 나에게 과학은, 빠르고 친절한 해결사같은 존재였다.

 

더불어 당시의 나에겐 과학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었다. 다른 친구들이 밖에 나가 공 차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놀때, 나는 학교 도서관에 있는 과학 책과 잡지들을 찾아보며 이런저런 공상에 빠져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다. 과학 기술이 발전한 미래 세상을 꿈꾸고 환경에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공간에서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그리며 말이다.

 

그 당시 내가 과학에 미쳐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예로 다음과 같은 사례를 든다. 우리 학교에서는 방학이 시작될 때마다 과학 캠프 같은 것을 열어 아이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다양한 실험들과 만들기 수업을 진행했는데 단 한버도 그런 캠프에 빠진 적이 없다. 한번은 심한 감기에 걸려 과학 캠프에 나갈 수 없던 적이 있었는데, 친구에게 부탁해 내 몫 만큼의 준비물을 챙겨나와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빠진다고 손해 있는 것은 절대 아니었는데 말이다.

 

또한 교내에서 열리던 과학 관련 대회는 모두 참석했으며 과학 선생님에게 관심을 받으려 별의별 방법을 다 쓰기도 했다. 위의 과학 캠프에 빠지기 싫었던 것도 과학 선생님에게 관심 받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다. '나 이만큼 과학 좋아해요'라는 사인을 던져주어 선생님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었달까?

 

이런 내 노력이 통한 것인지, 내 모습을 좋게 봐주신 과학 선생님 덕분에 매년마다 한명씩 준다는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 상을 받고나서 정말 얼떨떨하고 벙찔 수밖에 없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내 주변엔 쟁쟁한 경쟁자들이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전교 1등을 하며 선생님들의 관심을 독차지한 친구도 있었고 도내 과학경시대회에 나가 은상을 수상한 친구도 있었기에 내가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래서 전혀 기대하지 않고 있었는데 전교생이 다 보는 앞에서, 거기다 어린이날 기념으로 열린 운동회였으니 학부모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교장선생님께 직접 상을 받으니 날아갈 듯 기뻤고 행복했다. 내 진심을 알아준 과학 선생님이 너무 고마웠다.

 

상을 수상하고 나서 내 꿈은 천성 과학자구나! 싶어서 더욱더 과학에 정진하게 되었다. 그리고 좀 더 구체적인 꿈으로 물리학자를 정하게 되었다. 이런 내 마음가짐은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지속되었다. 과학 고등학교 가는 것을 목표로 잡았을만큼 나는 과학에 열과 성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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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freepik)

 

 

그러나 그러한 마음은 오래 가지 않았다. 과학 고등학교를 목표로 공부했지만 나는 결국 과학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았다. 과학에 대한 열정이 식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생각했던 이상과 너무 다른 과학 교육에 지친 것이기도 했다. 그와 함께 과학을 좋아한다고 자부하던 내가 과학 시험에서는 그리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면서 큰 괴리감에 휩싸이고 말았다. '내가 정말 과학을 좋아하는 게 맞나?' 하는 고민을 이때 많이 했다. 단순히 과거의 향수에 젖어 현실을 분간하지 못하는 것인지, 내 마음이 이끄는 곳이 정말 '과학자'의 길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이 내게는 시급한 과제였다.

 

'진짜 원하는 것' 이라는 내적인 고민에 환경적인 외부 요인이 더해져 나는 혼란의 정점을 경험했다. 중학교 때 창문은 바로 눈 앞에 있어 평화로운 바깥 풍경을 실컷 볼 수 있었지만 고등학교 창문들은 하나같이 높이 위치해 있어 바깥 풍경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답답했고 먹먹했다. 벽은 또 왜 그리 하얗던지, 정신 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이런 기분일까, 싶기도 했다. 여기가 어디지? 하는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나는 고등학교 시설들이 적응되지 않았다.

 

시설만 그랬더라면 그런 낯섦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을텐데, 친구들마저 낯설다는 것이 진짜 문제였다. 착하고 순진했던 중학교 친구들은 어디가고 내 옆자리에는 불량하고 예의없는 외부 학생들이 들어찼다. 살갑고 친절했던 선생님들도 저 멀리 떠나고 무뚝뚝하고 무표정한 선생님들이 반을 지휘했다.

 

중학교 시절이 너무 그리웠고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의 나는 너무나 우울했고 행복하지 않았다.

 

그런 암담한 상황 속에서 꿈을 확신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꿈이 희미해졌다. 내 손에서 꿈이 사라지는 게 눈에 보였다. 내가 오랫동안 품어왔던 꿈이 허무하게 떠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대학 입학을 위한 내신 따기용 공부, 성적과 점수를 위한 공부 등을 하게 되며 과학자의 꿈을 완전히 잃었다. 나에겐 꿈이 아니라 어떤 대학, 어떤 학과에 가느냐가 더 중요했고 날 기대하고 있을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것이 내 꿈보다 더 우선된 일이었다.

 

결국 나는 꿈이 없는 채로 대학교에 진학했다. 한창 과학자의 꿈을 품고 있을 때는 꿈이 없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좋아하는 것이 없어요,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어요, 라는 말은 다 핑계 같아 보였다. 그런 경우가 있을 수 있냐면서 말이다. 그런데 내가 그런 상황에 처해보고 나서야 꿈이 없다는 것이, 좋아하는 게 없다는 것, 내 마음이 어느 쪽도 향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처절히 알게 되었다. 좋아하는 게 없는 일은 실제하는 일이었다. 내가 무엇을 해야 좋을지 방황하는 시간이, 한가지에 집중하고 나아가는 시간보다 더 길다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오래도록 나는 꿈과 멀어진 채로 대학 생활을 하고 군 생활을 했다.

 


 

세 번째 꿈, 다큐멘터리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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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freepik)

 

 

군대를 전역하고 나의 꿈을 찾기 위해 대학 교양을 적극적으로 찾아 들었다. 진로를 탐색하는 과목, 창업자들을 초청해 강연을 듣는 과목,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과목들을 들으며 나 자신을 제대로 알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진로 탐색 교양의 기말 대체 시험으로 '꿈'에 관한 레포트를 작성하면서 다시금 나의 꿈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오랜 생각 끝에 내 마음이 크게 움직였던 과거의 한 순간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다큐 3일 - 141.2km의 선물'이라는 다큐를 보고 나서였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나는 이 다큐로 다큐멘터리 제작자라는 꿈을 새롭게 품을 수 있었다. 사람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는 행위가 너무 숭고해보였고 아름다워보였다. 누군가의 삶을 재조명하고, 그들의 삶에 고유의 숨겨진 가치가 존재함을, 모든 사람들의 삶이 각자 나름대로 빛나고 있음을 알려주는 다큐멘터리라는 영상 매체가 나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그런 생각이 들자 바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려면 무엇부터 해야하는지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결국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서 현재 다큐멘터리업에 종사하고 있는 한 제작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열정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다큐멘터리를 찍는 일에 자신을 내던지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돈과 시간은 다큐멘터리보다 소중한 것이 아니었다. 영상 하나를 찍기 위해서라면 그게 얼마나 큰 비용이 드는지 상관없이 몸이 부서져라 일해서 돈을 마련했고 시간 날때마다 촬영 연습을 하는 굉장한 노력파였다.

 

그런 그의 모습에 감탄을 하고 있을 무렵, 그는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뭔지 아냐고.

 

나는 구도를 잘 잡는 센스와 카메라를 잘 다루는 능력, 그리고 주제를 잘 선정할 수 있는 탁 트인 시야가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는 내 대답이 영 못 미더웠는지, 한참 말이 없다가 '사랑'이라는 모호한 대답만을 던졌다.

 

아니, 사랑..?

 

도대체 그게 왜 중요하다는거야?

 

알 수 없는 답변에 어리둥절 하던 와중에, 여러가지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았다. 나는 인간의 따스한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는가? 나는 사람들 사이에 정이 존재하는 이유를, 우리 세상에 선이 존재하는 이유를 아는가? 왜 사람들은 본성을 이겨내고 타인을 위해 몸을 던지는가? 왜 의인들은 생판 모르는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는가? 타인을 위한 봉사활동이란 무엇이며 '나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도대체 왜 사람들은 함께 살아가는가? 왜 그들은 혼자이기를 거부하는가? 무엇이 우리 세상을 온전히 유지하도록 하는가? 우리는 왜 누군가를 사랑하는가? 왜 사랑해야 하는가??

 

... 왜 사랑이란 말인가?

 

 

 

네 번째 꿈, 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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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freepik)

 

 

나는 그러한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날 보며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간과한 것들이 눈에 보였다. 애써 모른척 하던 것, 보지 않으려 애쓰던 것들이 그제서야 시야에 들어왔다.

 

난 조금씩 철학과 예술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내가 감춰두었고 묻어두었던 것들을 다시보기 위해서였다. 나의 내면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그것을 위한 도구가 필요했다. 철학과 예술이 아주 적합한 도구였다.

 

예술과 철학을 접하고 책을 읽으며 나는 조금씩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를 이해하기 시작하니 다른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니 비로소 '사랑'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알게 된 것을 바탕으로 글을 썼다. 이전부터도 글을 쓰긴 했지만 조금더 깊은 마음을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그런 글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앞으로 나를 만들어나갈 최적의 도구임을 점점 확신하게 되었다.

 

만약 이것이 오래도록 이어질 수 있다면 난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 컬럼니스트가 있었으면 했다.

 

그렇게 난 네 번째 꿈인 컬럼니스트를 내 안에 품었다.

 

*

 

여러가지 꿈을 꾸면서 꿈이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란 걸 알게 되었다. 변하지 않고 온전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랴. 상황에 따라, 환경에 따라 카멜레온 처럼 자신에게 맞는 꿈을 품게 되는 것이겠지. 지금 꾸고 있는 꿈인 컬럼리스트도 언젠가는 바뀔지도 모른다. 내가 과학자를 꿈꾸던 당시만 해도, 다큐멘터리 제작자를 꿈꿀 때만 해도 이렇게 바뀔지는 전혀 몰랐으니까.

 

하지만 바뀐다고 해서 스스로에게 실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당시의 내가 최선을 다했다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부던한 노력을 했더라면, 후회는 없을 것이다. 꿈을 위해 한 걸음 내딛는 용기를 표출했더라면 그 꿈을 이루지 못해도 만족할 것이다.

 

인간이 아름다운 것은 완벽하기 때문이 아니라, 완벽에 다가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이유이자 삶이 축복인 이유이지 않을까?

 

나는 지금의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볼 것이다. 미래의 내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후회하는 삶? 그건 죽어도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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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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