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토끼는 무엇을 위해 비효율적인 자살을 택했을까 [만화]

당신에게는 외면할 권리가 있지만 슬퍼할 자격은 없다
글 입력 2021.06.22 07:3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드디어 네 죽음의 이유가 궁금해지기 시작했어


 

01.jpg



'고어(Gore)'란 잔인한 장면에 의해 느끼는 공포 및 혐오감을 뜻한다. 아마 우리가 최초로 접하게 된 고어 작품은 '자살 토끼'가 아닐까 싶다. 어렸을 때 도서관에 가면 하도 돌려봐서 너덜너덜해진 표지와 한자리에 모여 나눠 읽기 바빴던 추억의 그림책.


내 기억 속 '자살 토끼'는 '귀여운 토끼가 창의적인 방법으로 죽음을 시도하지만 결국은 죽지 못했다'로 요약되는, '톰과 제리' 같이 가벼운 내용이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갑자기 자살 토끼가 떠올라 주문 후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나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초등학생의 내가 '토끼가 어떤 방법으로 죽으려고 할까?'를 궁금해했다면, 이제 어른이 된 나는 '토끼가 왜 죽으려고 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 당시에는 몰랐다. 처음 접하게 된 고어함이라는 장르의 매력에 빠져 다수의 초등학생이 그러하듯이 재미로 읽고 끝냈을 뿐이었다.

 

 

 

그 평온한 얼굴 뒤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03.jpg


 

다시 보게 된 자살 토끼는 창의적이어서 더욱 가슴 아팠다. 편한 죽음이 아니라 이렇게 어려운 자살 방법을 선택한 것은 자신이 편하게 죽을 자격도 없다고 생각해서였을까. 무엇이 이 토끼를 죽음으로 내몰았으며 그 마지막까지 어렵게 만들었는가.

 

토끼는 작품 내내 죽으려고만 할 뿐 단 한 번도 '내가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진 않을까?'라고 질문하지 않는다. 성인이 되어버린 나는 수많은 이유가 떠오른다. 생활고, 인간 관계, 질병, 정신적인 아픔, 공허함 등등...

 

무시무시한 도구 앞에서도 변함없는 토끼의 표정에는 얼마나 많은 고통이 응집되어 있을까.

 

 

 

타인에 의한 자살


 

토끼는 대부분 '타인'의 손을 빌려 자살을 시도한다.

 

사지를 달리는 무언가에 고정해 놓고, 자동문에 머리를 집어넣거나, 펀치 기계에 누워 누군가 자식을 죽여주기를 기다린다. 누군가는 토끼가 스스로 칼끝을 겨눌 만큼 용감하지 않아서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토끼의 죽음이 자발적이라기보다 세상에 의한 것임을 암시하는 도구'였다고 생각한다.

 

 

04.jpg


 

토끼가 자살에 실패할 때마다 그 장면을 목격한 타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무관심이 토끼가 자살에 중독되게 만든 하나의 요인일지도 모른다. 자살 방법을 모의할 때만은 자신이 진짜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서, 유일하게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분야가 나의 마지막을 생각해보는 것이어서.

 

자살을 시도하는 동안 토끼는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단 한 명이라도 '얘, 그 묶은 손 좀 풀지 않겠니?', '조금만 뒤로 비켜주겠니?'라는 말을 건네주었다면, 토끼는 당장 이 비효율적인 행동을 관뒀을지도 모른다.


어린 왕자가 나이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것처럼, 자살 토끼 또한 그렇다. 나는 이제 토끼가 죽고 싶었던 이유와 그에 손을 내밀어주지 않았던 '이웃의 사정'을 생각하고 있다.

 

 

 

당신은 외면할 권리가 있지만 슬퍼할 자격은 없다


 

사람이 죽음을 결심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다만, 이를 시도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의 고통이 덜한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타인의 우울에 자의적인 마지노선을 정해 놓고 '이 정도면 저 사람은 좀 힘들었다고 할 수 있겠네'라는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죽기 직전까지 그 사람이 토로하는 아픔을 외면하다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당신의 아름다움을 추모하겠다며 눈물을 흘리는 이들을 나는 수없이 보았다.

 

 

06.jpg



그렇다면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은 토끼의 이웃들은 비난받아야 할까.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나도 충분한 고민을 해보았지만, 옳다고 할 만한 결론이 나오지는 않았다.

 

다만 내 생각을 서술하자면, 나는 이들에게 '방치할 자유가 있는 동시에 슬퍼할 권리가 주어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만약 당신이 괜찮냐는 말 한마디 건넬 만큼의 애정과 용기가 없었다면, 왜 갑자기 떠나가서 나를 가슴 아프게 하냐고 그이를 탓할 자격조차 없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있다. 나의 바운더리 안의 사람들에게는 애정을 주지만 그 바깥의 사람들은 외면하는 유형, 본인 이외에는 전부 나와 관련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유형, 아는 사이든 모르는 사이든 달려가서 일으켜 세워주는 유형.

 

누군가는 매정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오지랖이 넓다고 하겠지만 이것은 그들이 선택하는 삶의 방식이며, 그에 따른 감정의 결과 또한 그들이 감내해야 한다.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기에 대답하지 않았다


 

05.jpg


 

어렸을 때 읽은 자살 토끼가 이제는 성인이 된 나의 가슴을 울린다. 토끼의 모습에서 나, 혹은 타인의 모습을 비추어보게 만든다. 우리는 끝내 토끼가 왜 죽음을 선택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끝까지 현실적이다.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기에, 토끼는 대답하지 않았을 뿐이다.

 

 

 

허향기.jpg


 

[허향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12.02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