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를 버린 세상을 저버린다는 것 [사람]

신에게 도전장을 내민 작가, 장 주네
글 입력 2021.06.16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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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에 관심이 있다면 ‘장 주네’라는 이름을 한 번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도 장 주네가 쓴 희곡을 여럿 읽어본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 작품이 가진 특유의 잔인하고 폭력적인 세계관이 이해가 되질 않았고, 장 주네의 희곡은 누가 시키지 않는 이상 다시는 읽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 아닌 다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 장의 사진을 보고 그 다짐은 순식간에 무너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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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한 흑인 소년이 주네의 머리에 손을 얹고 장난을 치고 있는 사진이었다.

 

1910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한 백인 노인이 자기보다 훨씬 나이가 적은 흑인 아이의 장난을 온화한 표정으로 받아주고 있는 이 사진. 사생아로 태어나 평생을 부랑하며 남창, 도둑, 운동가로 살았던 주네의 사진 한장을 통해 그가 가지고 있는 의연함과 위계 없음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그때 느꼈던 감정을 되새기며, 평생 버림받은 채로 살며 자신을 저버린 세상을 자발적으로 배신하고, 스스로를 신으로 섬겼던 작가 주네에 대해 소개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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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작가 장 주네는 대표작 『하녀들』을 비롯하여 『엄중한 감시』, 『흑인들』 등 폭력과 살인, 욕설과 추잡함이 난무하는 작품을 발표하며 큰 충격을 불러일으킨 작가다.

 

그는 1910년 12월 19일 파리 빈민구제국 소속의 작은 의료원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를 모르는 사생아였고, 어머니는 22세의 나이에 그를 낳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주네가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그를 빈민구제국에 넘기고, 주네는 위탁 양육되었다.

 

어린 시절의 주네는 여자아이들과 주로 어울리며 인형놀이나 소꿉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주네는 학창 시절 총명하고 우수한 아이로, 다른 아이들보다 글을 일찍 깨우쳤을 뿐 아니라, 항상 책 속에 빠져 살다시피 했다. 주네는 알리니의 세 학교를 통틀어 다섯 명밖에 치르지 못하는 졸업시험에 위탁아로는 유일하게 시험에 응시했고, 졸업시험에 1등으로 합격했다.

 

하지만 주네는 어린 시절부터 도벽 증세를 보였는데, 훔친 돈으로 친구들과 함께 군것질을 하거나, 훔친 학용품을 같은 반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는 등 도둑질한 행위를 전혀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위탁아들에 대한 어른들의 편견과 부당한 취급 등을 말하며 오히려 도둑질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자잘한 도둑질을 제외하면 그의 어린 시절은 전반적으로 순탄했다.

 

학교를 졸업한 주네는 1924년 14살의 나이로 직업 훈련 학교로 가지만, 2주일 후 그곳을 탈출한다. 일주일 만에 붙잡힌 주네는 한 작곡가의 집에 들어가 비서로 일하는데, 화장을 하고 밤새 돌아다니거나 보들레르의 시집을 찢어서 보관하는 등의 행동으로 집에서 6개월 만에 쫓겨난다. 이 일로 인해 빈민구제국은 그의 정신 감정을 의뢰하고, 보호 관찰이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주네를 문제아 치료 감호 시설에 수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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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네는 그곳에서도 두 달 만에 탈출하고,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지 않아 파리에서 철도 무임승차 및 부랑죄로 체포되어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다시 빈민구제국으로 인도된다. 빈민구제국과 감화원, 농장을 전전하던 그는 매번 탈출을 감행하며 방랑한다.

 

1929년 주네는 군에 지원 입대하고, 6년 2개월을 군에서 보내지만 군 생활 또한 탈영으로 마감한다. 탈영병이 된 주네는 약 1년간 유럽 각지를 전전한다. 체코, 폴란드, 독일, 벨기에를 거쳐 프랑스 파리로 돌아온 주네는 여러 건의 절도 혐의로 체포되고, 절도 성공 일화를 마치 무용담처럼 과장해서 떠벌리고 다니기도 한다.

 

이 시기에 그는 대형 서점에서 책 서너 권을 훔쳐다 중고 서적상에 팔곤 했는데, 이 과정에서 기자나 문학 애호가 등 여러 지식인과 사귀게 되고, 그들을 통해 문학적 재능이 뛰어난 주네에 대한 소문이 퍼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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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네는 1942년 모리스 필로르주라는 사형수에게 헌정하는 시집 『사형수』를 자비 출판하고, 살인죄로 사형을 당하는 죄수에게 바치는 시라는 파격적 내용에 대한 소문이 퍼져 이는 프랑스의 작가 장 콕토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시를 읽은 장 콕토가 주네를 문단에 소개했고, 주네의 사회적 경력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 이후 콕토는 주네의 후원자가 되어 선정적이고 충격적인 내용이 담긴 주네의 여러 소설들을 비밀 출판하는 것을 돕는다. 이 일로 주네는 파리에서 도둑 시인으로 유명해진다. 하지만 또다시 절도 현행범으로 체포된 주네는 독일 점령 하에서 새로 제정된 법에 의해, 정치범들과 함께 수용소에 갇힌다.

 

이미 문인 사회에서 이름이 널리 퍼졌던 주네를 구하기 위해 콕토, 사르트르를 비롯한 당시 저명했던 문인과 예술가들이 대거 나서 주네의 사면을 촉구하여 그는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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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에 대한 엄청난 애정을 보이던 주네는 돌연 희곡 발표를 중단하고, 현실 참여자로 변신한다. 1968년부터 본격적으로 「레닌의 애인」이라는 글을 발표해 사회 혁명에 관해 논하고, 미국의 월남전 수행을 비난하며 반전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한다. 또한, 아랍 노동자들을 차별하는 프랑스 사회와 정부에 대해 항의 시위를 펼치기도 한다.

 

주네는 1970년 경 자신의 아랍 체류 과정 중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함께 했던 생활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사랑에 빠진 포로」라는 제목의 글을 쓰다 파리의 작은 호텔 방에서 홀로 죽는다.

 

장 주네는 사생아로 태어나 위탁아로 성장했고, 탈영과 10여 차례의 절도 전과를 가진 범법자였으며, 공공연한 동성애자로서, 가족은 물론 일정한 주소 없이 일생을 여러 나라를 떠돌다가 호텔 방에서 혼자 죽음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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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네의 시, 소설들은 모두 감옥에서 시작되었고, 수형자들의 얘기가 대부분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여러 범죄를 상상하며 이를 자신의 글에 녹여냈다. 주네는 범죄, 에로티시즘, 폭력, 배반 등을 소재로 선을 추구하는 세상을 전도시켜 작품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펼친다.

 

주네에게 도덕주의자란 인간을 도덕적으로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윤리를 해석하고 창조하는 자이며, 따라서 주네에게 단순한 법적, 도덕적 정의의 기준에서 죄악은 무의미하다.

 

주네 작품에서 드러나는 사회에 대한 증오심은 개인적 특성을 넘어 보편적 영역으로 나아간다. 이러한 증오는 주네 자신의 경험을 통해 축적된 경험적 추론의 결과물로 글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고, 작품으로 구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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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주네는 사회가 주변부로 이동시키고 가장 비루하고 무가치한 존재들이라고 규정한 자들, 감옥이나 다리 밑, 뒷골목에서 생활하는 인간들의 대변자를 자처하였다. 이러한 사람들을 통해 주네가 묘사한 폭력이나 추악한 면모는 도덕적, 이성적, 모범적인 사람들이 은폐하려는 것들로서 드러난다.

 

주네가 살아생전 나누었던 인터뷰 중 가장 ‘주네다웠다’고 평가되는 인터뷰와 그의 인생을 축약한 인용구를 끝으로 주네에 대한 소개를 마쳐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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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주소도 없고 집도 없다. 그러면 아무래도 친구들하고 우정을 나누기가 좀 어렵지 않을까요? 초대도 못하고, 음식 대접도...

 

A: 뭐 어떻습니까? 물론 곤란한 점도 있긴 하죠. 하지만 그냥 해결되는 문제예요. 도대체가 책임질 일이 없거든요. 사회적으로 아무 책임이 없단 말씀입니다. 게다가 어떤 일에도 금방 참여할 수 있어요. 즉각적인 가담이 가능하죠.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짧은 글짓기를 시켰는데, 각자 자기 집에 대해 쓰는 거였어요. 그래서 저도 우리 집 얘기를 썼죠. 그런데 선생님이 보시기에 제 글이 제일 잘 됐던지 큰 소리로 읽어 주시더군요. 그러자 애들이 저를 놀렸어요. “그건 걔네 집이 아니에요. 걘 고아예요.” 바로 그때 그런 공허를 느꼈죠. 굴욕감과 함께 말이에요.

 

전 순식간에 이방인이, 아니, 너무 약해요, 프랑스를 증오하는, 그것도 아녜요, 증오 이상의, 그러니까 프랑스에 대해 구역질이 났어요. 그래서 전 색깔 때문에 억압받는 사람들, 억압을 받으면서 백색에 대해 반항하는 사람들 안에 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아마 전 흑인일 거예요. 피부색이 하얗거나, 아니면 불그스레한, 하지만 어쨌든 흑인이에요.

 

 

주네는 태어날 때부터 세상에서 버림받았다. 그러므로 그 역시 세상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이후 그의 반항과 거부는 존재론적 특성이 되었다.

 

 

[조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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