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유월이 좋아

글 입력 2021.06.14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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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에 글을 기고하기 시작하면서 새로 생긴 습관이 있다. 언제 어디서나 시도 때도 없이 글의 소재가 될 수 있는지 곰곰이 생각하고 찾는 것이다. 처음 4개월 에디터 활동을 할 때는 소재를 떠올리자마자 글을 써야 하는 스케줄이었기 때문에(매주 글 쓰는 에디터 여러분이 정말 멋집니다!) '소재 저장'이라는 개념은 사치처럼 느껴졌지만, 시간적 여유가 생기니 확실히 더 나에게 맞는 소재를 생각할 수 있다.


요즘은 미리 떠올린 소재들 중에 어떤 시점에 쓰는 게 좋을지 고민한 후 미리(늘 그러지는 못하지만...) 캘린더에 적어두기도 한다. 냉장고에 무엇이든 곧바로 요리할 수 있는 재료를 챙겨둔 요리사의 심정이 이와 같을까? 한 달 치 계획이 캘린더에 적혀있을 때는 글을 다 쓰지도 않았는데 벌써 든든한 기분이 든다. 이번 주도 사실 다른 소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언젠가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할 내용이기 때문에 미리 공개하지 않을 것이지만 지금 이 주제랑은 달랐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잊고 있었다. 벌써 유월이 돌아왔다는 것을. 시험 기간이 되고 대학생에게 한 줄기의 빛과 같은 종강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만 인지하고, 시험 날짜로 '6월 모일'을 이야기하다 보니,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그렇다 벌써 유월이다. 내가 좋아하는 유월. 짙푸른 청춘의 계절 유월. 전국 이곳저곳 초록빛 잎이 가득히 우거진 풍경이 상상되는 유월. 나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내 친구도 좋아한다고 해서 더 좋아진 유월. 내 생일이 있는 달도 아닌데(좋아하는 사람 생일은 있지만) 돌아오면 반갑고 기쁜 유월.


이쯤 되면 내가 유월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분명히 전달되었을 것 같다. 그렇다면 궁금증이 생길 것이다. '왜 유월을 좋아하는가?' 이 글은 일 년 중에 유독 유월이 나에게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에 대한 것이다. 알고 싶을 수도 혹은 관심이 없을 수도 있지만, 당신이 글을 끝까지 읽는다면 하나는 장담할 수 있다. '유월이 당신에게도 지금보다 조금 더 특별한 의미를 가진 달이 될 것이다.' 아닐 수도 있지만.

 

 

질문 : 유월이 왜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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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발음이 마음에 든다는 이유



먼저 고백할 게 있다. 사실 나는 짝수보다 홀수가 좋고, 홀수 중에서도 소수(prime number)를 좋아한다. 소수를 좋아하는 이유는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소수를 볼 때 더 안정감을 느끼는 편이다. 이런 나의 취향에 따르면 나는 6월보다는 소수 달인 3월, 5월, 7월, 11월을 좋아해야 한다. 하지만 난 유월을 더 좋아한다. 아마 이미 눈치챈 사람도 있을 것이다. '유월[유월]'이라는 '발음'을 좋아한다. 부드럽게 진행되는 발음. '유'하면 떠오르는 한자가 '부드러울 유' '흐를 유'인 것도 역할을 하는 듯하다.


생각해 보면 특이한 경우이다. '월' 앞에 받침이 있는 다른 '일월[이뤌]' '이월[이:월]' '삼월[사뭘]'은(이하 생략) 받침을 생략하지 않고 발음하면서, '유월'은 [유월], '시월'은 [시월]로 받침이 사라지는 차이를 보인다. 학창 시절 국어 시간에 배운 유음화처럼 음운 현상인가 싶어 찾아보니, 놀랍게도 2018년에 작성된 국립국어원 답변에 따르면 '그렇게 쓰는 표현이 관례적으로 이미 굳어졌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명확히 있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한다.


지금의 발음이 '관례로 굳어진'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간단히 생각해 보면 발음하기 더 쉽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마 '육월' '십월'이 보편화되었다면 발음하기 더 힘들었을 것이다. 아무튼 숫자 그대로가 아닌 월 이름이 되면서 발음/표기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에 난 유월을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시월이 아닌 유월을 좋아하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② 햇살 가득 초록빛으로 물든 건강한 초여름



처음 만난 사람들과 편하게 나눌 수 있는 질문 중에 '좋아하는 계절'이 있다. 사계절이 각각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한정적으로 선택해야 할 것만 같은 이 질문은 나를 늘 어렵게 한다. 계절마다 내가 좋아하는 장면이 존재한다. 여름은 나에게 긍정적인 공기가 흐르는 계절로 무더운 더위로 녹아내리지 않는 한(여름에 뜨거운 한여름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뜨거운 해로 땅이 물결치는 한여름은 나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기분 좋은 에너지가 느껴진다.


여름이 덥기 때문에 일조량이 가장 많은 달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한국의 계절별 일조량은 평균적으로 사계절이 비슷하고, 비교하자면 봄에 가장 많다. 여름에는 일조량이 감소하는 장마철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름은 우리가 '하지(양력 6월 21일경으로, 북반구에서는 낮이 가장 길고 밤이 가장 짧다)'로 알다시피 낮이 가장 긴 계절이다. 이런 이유로 계절별 일조량이 비슷하더라도 여름 해가 더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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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은 건강과 깊은 관계가 있다. 따사롭게 사물을 비추는 해를 보고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햇빛을 많이 쬔 사람들은 기분을 좋게 만드는 ‘세로토닌’ 호르몬의 농도가 높다고 한다. 햇빛은 뇌 건강뿐만 아니라 체내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비타민 D의 대부분을 형성하며, 면역력을 높이고, 혈압을 낮추고, 심혈관질환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햇빛의 중요성은 일조량이 여름에 비해 적어지는 가을에 증가하는 '계절성 우울증' 사례로 더 느낄 수 있다.


추운 겨울을 견딘 싹이 움트기 시작한 봄을 지나 유월이 되면, 주변 경관이 푸릇푸릇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자연에서 볼 수 있는 초록색(녹색)은 신호등에서 건너도 된다는 의미를 지닌 초록 불과 친환경 제품을 나타내는 아이콘의 색처럼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를 자주 발견한다. 실제로 초록은 건강과 환경, 자연의 이미지를 담고 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나는 유독 유월에서 초록빛 분위기를 느끼는데 열대 칵테일 준벅(June Bug)의 색이 싱그러운 녹색인 것을 보면 나만이 가진 인상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기분만큼 밝은 태양과

시원한 바람들이 내게 다가와

나는 이렇게 행복을 느껴


여름 안에서(1994) - 듀스

 

 

 

③ 일 년의 반을 보내고 중간정리하는 시점



초등학생 때 알게 된 친구가 자신의 생일이 6월 15일이라며, 일 년의 정중앙에 위치하니까(정확히 계산해보면 아니지만 12월의 반, 30일의 반이라고 간단히 생각해 보자) 잊지 말고 축하해달라고 말한 게 기억난다. 친구의 말처럼 기억하기 쉬운 날짜이기 때문에 매년 그날에 그 친구가 잠시 떠오르지만,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연락을 이어오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친구의 말은 여전히 내 마음에 살아서 유월을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1월 1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빙 한 바퀴 돌아준 덕분에 새해가 시작되고, 새로운 다짐과 각오로 반년을 살아온 우리가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6월이라고 생각한다. 6개월 동안 두 번의 계절 변화를 느끼면서 어떻게 지냈는지, 작년에 입고 싶었으나 입지 못했던 옷은 모두 입었는지, 연초에는 예상 못 했던 변화가 있었는지, 건강하게 잘 살았는지 등을 확인해보는 시간이다.


각자마다 정리할 영역은 다양할 것이다. 올해 치를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이라면 앞으로 남은 시간에 쓸 에너지 잔량을 점검할 것이고,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다음 회사 공채 일정에 맞춰 자신에게 필요한 역량이 얼마나 준비되었는지 확인할 것이고, 대학생이라면 한 학기 동안 어떤 내용을 학습했고 앞으로 어떻게 활용할지 생각할 것이다. 이 중에서 난 세 번째에 속한다. 대학생으로 이번 학기를 끝마치는 중이다. 교수님들께서는 4개월간 배운 내용에 대해 나를 시험으로 평가하셨고 음... 자주 진 것 같다.


내가 현재 학생 신분이라 공부와 성적이 중요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시험에서 지면 햇빛을 보지 못한 해바라기처럼 축 늘어지곤 하지만,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나 나름의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하지는 않는다. 이번 학기를 보내면서 어느 부분에서 아쉬움을 느꼈고 아쉬운 부분을 채울 방법을 고민했기 때문에, 다음 학기는 더 괜찮은 모습으로 마무리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품어본다. 또 사실 아직 시험이 남았기 때문에 다 끝난 것처럼 우울함을 느끼기엔 이르다.


일 년을 네 구간으로 나누어 살아가는 것은 좋은 것 같다. 앞만 보고 살다가 잠시 멈춰서 지난날을 뒤돌아보며 정리하고 점검하는 시간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기반을 탄탄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유월은 나에게 소중한 시간이다. 여름까지 달려온 나의 모습을 확인하고 다음 경로는 무엇으로 할지 선택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한다. 시험이 모두 끝나면 유월까지 부족했던 내 삶의 영역을 다시 채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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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월이 지나면 진짜 여름이 시작되는 것 같다. 뜨거운 태양과 나무의 초록빛이 더 진해지고, 장마라는 눅눅한 변수로 인해 밖보다는 집을 더 선호하게 되는 계절. 생각해 보니 내가 좋아하는 여름의 이미지는 유월까지인 것 같다. 유월이 지난여름은 나에게 애증의 시간이다. 눅눅하지만 여전히 가끔은 햇빛 가득 초록색이기 때문이다. 가장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애매하지만 싫다고 말하기에는 막상 떠나면 그리워지는 계절. 그런 계절이 시작된다.


힘든 일이 많았던 시절도 시간이 지나면 좋은 기억만 남는 것처럼, 여름은 해가 무척 뜨겁고 비가 많이 내리면서 나의 감정에 이런저런 영향을 많이 준 계절이기 때문에, 지나고 보면 떠올리고 싶은 추억이 많은 계절이다. 소리도(매미 울음소리) 냄새도(젖은 풀잎의 향) 온도도(작열하는 태양) 강렬한 여름이 올해도 나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기를 바란다. 그리고 여름 중에는 누가 뭐래도 유월이 가장 좋다.

 

 

말없이 바라

보아주시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합니다


때때로 옆에 와

서 주시는 것만으로도 나는

따뜻합니다


산에 들에 하이얀 무찔레꽃

울타리에 넝쿨장미

어우러져 피어나는 유월에


그대 눈길에

스치는 것만으로도 나는

황홀합니다


그대 생각 가슴속에

안개 되어 피어오름만으로도

나는 이렇게 가득합니다.


유월에 - 나태주

 


[정서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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