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를 위한 용서를 하다 - 그 여름, 가장 차가웠던

뜨겁도록 차가운 그들의 이야기
글 입력 2021.06.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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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엉망이 된 소녀 자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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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엄마가 살해당했다.

 

급격하게 안 좋아진 형편 때문에 살던 곳을 떠나 이사를 갔다. 화장실 바닥에 물이 가득 차서 바구니로 퍼내야 할 때도 있다. 아빠는 금방 도축된 소고기를 배달하는 일을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학교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한다.

 

중학교 2학년 '자허'의 이야기다. 그녀의 유일한 가족인 아빠는 매일 술을 마시고 자허에게 무관심하다. 딸이 계란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아이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대화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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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허는 문득문득 엄마와 행복했던 추억을 회상한다.

 

자허의 엄마는 딸을 따뜻하게 감싸주고 따끔한 야단도 치면서 올바른 길로 인도하려 했던 사람이었다. 행복했던 과거와 상실감에 빠져있는 현재가 밝고 어두운 프레임으로 대비되어 그녀의 심리를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자허는 잊을 수 없는 3년을 보냈다.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부터 그녀의 인생은 엉망이 되었다.

 

그런데 엄마를 죽인 범인이 선고받은 형을 다 채우지도 않은 채 나왔다.

 

 

 

소녀 앞에 나타난 소년 유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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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할 수 없는 죄를 저지른 사람을 눈앞에서 마주쳤다. 자허는 조용히 그를 미행하기로 한다. 슬픔에 빠져있는 자신과 달리 친구들과 즐겁게 어울려 노는 유레이를 지켜보며 살인 충동을 느끼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의도치 않게 유레이 무리와 게임을 하고 술도 먹게 되며 그와 친해진다. 범죄자이기 전에 유레이는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 속에는 어떤 슬픔이 있었는지 알아가게 된다. 갑부 부모님과 좋은 집에서 살 것 같았던 유레이는 누추한 집에 혼자 살고 있었다. 재혼한 엄마의 남편이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원하지도 않는 진수성찬을 차려주는 것보다 물 한 잔이 필요했다고 유레이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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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유레이가 자주 찾아가던 아저씨가 입원한 병원을 찾아간 자허는 유레이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그 아저씨는 자허에게 용서하고 용서받기란 어려운 일이라는 말을 한다.

 

 

 

선택의 기로에서


 

자허는 유레이의 sns 프로필 사진의 의미를 물어본다. 폴란드 영화였고 내용은 이렇다.

 

 

한 청년이 기차를 타게 되는데 세 가지 경우를 보여줘. 첫째, 청년이 기차를 탔고 한 당원을 만나서 정부에 취직한다. 둘째, 청년이 기차를 놓쳤고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다 감옥에 들어간다. 셋째, 청년이 기차를 놓치는 바람에 동창과 재회하게 됐고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내 생각에는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선택이 주사위 굴리기 같아.

 

 

용납할 수 없는 선택을 한 유레이의 의견은 온전히 동의할 순 없었지만, 선택에 따라 다른 결말을 가져오는 순간의 선택의 무게에 대해 느낄 수 있었다.

 

이젠 선택의 기로 앞에 자허가 서있다. 자허는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다. 그녀는 유레이와 지내며 몇 번이나 엄마에 대한 복수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허는 그때마다 내적 갈등을 하다 그만두곤 했다. 강물에 함께 빠졌을 땐 유레이를 정말 물속으로 밀어 넣어 죽이려고 했지만 결국 그를 놓아준다.

 

유레이는 자허에게 좀만 더 버텨서 엄마에 대한 복수를 하지 그랬냐고 물어보았다. 자허는 대답한다. "나는 또 다른 네가 되기 싫어."

 

 

 

나를 위한 용서를 하다


 

자허는 유레이를 용서했다. 확실히 말하면 자신을 위해 유레이를 용서했다. <사티어 빙산의사소통>에서는 용서라는 감정을 이렇게 해석한다.

 

 

우리는 상대방에게 화가 날 때 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상대방을 위한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용서는 상대방을 위해서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 두 사람이 분노를 해결하는 것이 화해라면, 용서는 상대와 상관없이 내 안에 맺혀있는 것을 풀어놓는 것이다.

 

용서란 단지 과거 사건에 걸려있는 강한 정서를 흘려보내는 것이다. 상처를 준 대상에게 화를 내고, 억울해하고, 증오하고, 자기 연민에 매달려 나의 귀한 생명의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에서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지난 3년간 자허는 엄마를 자주 회상하고 과거에서 행복의 감정에 갇혀있었다. 그러나 용서를 한 자허는 지나가다 보이는 엄마와 딸을 보고도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나 분노의 감정을 갖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현재에서 행복을 찾기로 한다. 과거에 잡혀 있던 강한 정서를, 놓지 못하던 엄마를 보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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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정화식물은 안 좋은 환경에서 정화 능력이 더 좋아진다고 한다. 그래도 식물에게는 물과 햇빛이 필요하다. 자허는 후반부 유레이의 방구석에 있던 식물을 양지바른 곳에 놔주고 물을 준다.

 

자허는 과거를 용서하고 아빠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고, 유레이는 좋아하는 일을 찾아 떠난다. 자허의 인생도, 유레이의 인생도 탁한 환경에서 햇빛이 드는 곳으로 옮겨지는 과정이다. 공기정화식물의 정화 능력이 좋아진 것처럼 그들도 성장을 했다.

 

자허와 유레이는 당시 사건 현장에 다시 찾아갔다. 사건 현장에서 길 끝의 길이는 고작 200미터. 그때 자허의 엄마를 죽이지 않고 이 200미터를 뛰어 도망갔다면 내 인생은 달라졌을까. 유레이는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고 반성한다.


자허는 엄마와 함께 놀러 갔었던 놀이공원에서 무서워서 타지 못했던 놀이기구로 향한다. 그녀는 이제 혼자서 담담하게 그 놀이기구를 탄다. 자허는 마음의 문을 열고 아빠와 대화한다. 스스로를 지킬 힘을 기르고 싶다며 아빠에게 레슬링을 배우고 두 부녀는 함께 땀을 흘린다.

 

아빠는 자허에게 인생은 레슬링과도 같다고 말한다. "서있는 사람이 있다면 넘어지는 사람도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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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링은 KO패를 제외하고 종이 울리기 전까지 넘어졌다 일어섰다를 반복한다. 한 번 넘어졌다고 해서 평생 넘어져 있지 않고 일어나 있다고 해서 넘어지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지금 잠시 넘어져있는 자허와 그의 아빠, 나는 이 부녀의 미래를 기대한다. 그들은 긴 암흑의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정화했고 그들에게서 다시 일어날 힘을 보았으니까.


용서를 통해 독립적인 자신만의 삶을 살게 된 청춘들의 여름이야기, 인물들의 끓어오르는 감정을 담담하게 표현하는 영화, <그 여름, 가장 차가웠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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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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