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생명의 나무에서 돋아난 한 뼘의 가지 - 우리 인간의 아주 깊은 역사

글 입력 2021.06.06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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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정말 쩔어주는 책이다.


이 한 줄로 글을 시작하지 않으면 내가 이 책에서 느낀 흥분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어떤 책이 독자에게 일분일초라도 길거리를 다른 감상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그 책은 그 사람에게 최고의 책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이 책은 나한테 그런 책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쩔어준다`는 것은 두 가지 관점이 섞인 감상이다. 하나는 한 명의 현대인으로서 감탄이고, 또 하나는 개인으로서의 감탄이다. 전자는 이 책이 현대인에게 갖는 의미와 관련된 감상이고, 후자는 개인적인 고민의 끝에서 이 책의 메시지를 마주한 감상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두 감탄이 구분되는 것도 아니고, 결과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기 때문에 이 리뷰에서도 두 가지를 하나로 통합하여 기술하고자 한다.

 

 

 

인간이 뭐길래



한 이년 전에 영화 `미드소마`를 본 적 있다. 아마 많은 사람이 나의 주관적인 감상에 학을 뗄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구태여 이 이야기를 먼저 꺼내보려고 한다. 왜냐면 그 영화가 나에게 처음 `생물로서의 인간`의 존재를 자각시킨 영화기 때문이다.


영화 `미드소마`에서 등장하는 마을에는 80살 이상의 노인은 자살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다. 또 일정한 주기에 따라 그들이 살아가는 자연을 위해 마을 사람과 외지인들을 바친다. 여기까지만 읽어도 충분히 눈치챘겠지만, 이 영화는 공포 영화다. 미드소마에서 보여주는 마을은 겉으로 보기에는 화사하다. 하지만 그건 껍데기일 뿐, 관객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문화라는 미명 아래에 무차별하게 살해당하거나 자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감상하게 된다. 여기서 말하면 좀 미친놈같이 느껴질 수 있지만, 이 미드소마의 마을에서 기묘한 방법으로 지키고 있는 문화는 무언가 심금을 울리는 부분이 있다.


오늘날 인간은 `먹고 먹히는` 자연계에서 `먹히는`에서 벗어났다. 평균적인 도시인이라면 매서운 추위와 뜨거운 열기를 피할 장소가 있고, 체계적인 복지시스템으로 인해 아사하지 않는다. 멀리 가서 음식을 구할 필요도 없이, 동네 시장에 가면 1,000원에 거대한 양배추를 살 수 있다. 발달한 첨단 기술은 순식간에 전염병 백신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우리는 다른 생물을 먹는 만큼 포식자에게 고기를 제공했지만, 이제는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지 않아도 괜찮다.


미드소마에서는 자신들의 문화를 통해 의도적으로 `먹히는` 관계를 일부 복원한다. 그 형태가 인신공양이라는 점이 이 영화를 공포영화로 만들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원초적인 공포의 소재가 될 정도로, 인류는 이제 자연의 법칙을 무시할 수 있을 만큼 발달했으며, 더는 그 자신을 자연의 생물로 정의하지 않는다. 나는 문화적 전통이나 미신으로 인해 잔인한 학살에 공감한다는 게 아니다. 내 부족한 표현 능력으로 인해 아래에 쓰인 감상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면 참 유감이지만, 우리가 본질적으로 생존을 목표로 한 자연의 생물체였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현대인의 대부분은 밭에서 양배추를 수확하지 않는다. 냉장고에서 꺼낼 뿐이다. 그리고 그 양배추를 삶으면서, 취업 뭐시기와 열등감 뭐시기를 떠올린다.


문명인들은 더는 `생물체로서의 인간`을 고민하지 않는다. 심지어 우리는 동물권이나 채식주의와 같은 `인간의` 새로운 윤리적 도리를 고민하고 있다. 우리의 인간중심주의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강아지의 마음에 공감하고, 행복한 쿼카와 함께 사진을 찍는다. 그들의 감정을 이해하려고 하면서 인간의 고리에 모든 것을 밀어 넣는다. 하지만 뭔가 기묘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인간은 뭐가 되었길래 마치 자연의 조정자 내지는 지배자처럼 행세하고 있는 걸까? 인간의 의미가 대체 무엇이길래, 다른 생물이 가진 인간적 권리와 감정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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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로서의 인간



내가 앞서 써내려간 것들은 의문은 지구의 환경을 파괴하는 일원 중 하나로서의 윤리적 죄책감을 상기시키려는 의도나,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급진적인 사상과는 거리가 멀다. 다만 분명히, 현대인들이 현대 문명 속에서 점차 생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상태로 인본주의나 자기애로 팽배한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점은 양날의 칼처럼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는 더는 아무것도 자연에 돌려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우리와 분리하고 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지독한 자기애는 환경을 파괴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쟁을 선포하는 잔혹성으로 이어졌다. 인류가 꽃피워낸 문명은 자기애에 기반을 두지만, 자기애는 결국 개인적이고 이기적이며, 가장 힘들 때에도 자기애적이다. 이럴때야 말로 우리는 자기주지적인 의식을 벗어나야 한다. 그것이 인류의 유일한 희망이지만, 이조차도 우리의 특별한 성취를 기반으로 한 가치판단이다.


오늘 소개할 책, <우리 인간의 아주 깊은 역사>가 이 창대한 서사시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위의 두 문단이다. 저자는 감상적인 언어를 통해 인간의 자기애를 꼬집지 않고, 장대한 진화적 역사 앞에서 인간이 숭배하는 것들이 특별하지 않다는 진중한 설득을 통해 현대 사회의 단면을 꼬집는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 책은 인간을 그 어떤 존재보다 특별하게 두려는 사람들에게 아주 급진적인 책이다. 저자의 서문과 에필로그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처럼, 과학적 발견에 따르면 우리는 특별하기보단, 특수하게 진화해온 유기체 중 하나일 뿐이다. 우리가 숭배하는 인간의 감정은 그 유구한 역사 속에서 찰나와 다름없고, 하물며 온전히 인간의 `숭고한 의식`에 의해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 책이 지향하는 메시지가 얼마 전에 리뷰한 `세계를 창조하는 뇌, 뇌를 창조하는 세계`처럼 일부 심리학이나 인간 감정에 대한 도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자는 현상을 명료하게 정의하고 측정하여 가설을 검증한다. 마찬가지로, 이 책은 특수한 분야를 공격하고 인간의 감정을 부정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다만 현재 명료하지 않은 의미 묶음의 단어를 남발하는 일부 학자들의 태도가 학문의 발전을 막고 있다고 분석한다. 나는 이러한 관점에 동의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갖춰야 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대니얼 카너먼이 말했듯, 두루뭉술한 직관은 치명적인 오류로 이어지기 쉽다.


그리고 솔직히, 정말로 이제는 우리가 모두 생물의 한 종으로서 스스로 돌아볼 때가 되지 않았는가? 어린아이는 모두 자아 중심성을 벗어난 후에야 세상의 다른 것들과 상호작용하며 성장할 수 있다. 우리의 문명도 그러할 때가 아닐까? 우리 현대인들은 이제 하나의 생물로 바라보는 관점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나, `인류`가 아닌 전체 생물 속에서의 우리를, `도시`가 아니라 `땅의 일부`로서의 세계를 말이다. 40억 년을 통해 함께 진화해온 우리의 너무나 다른-하지만 서로 경쟁하며 먹고 먹혀온- 형제들을 함께 떠올리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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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큰 인간 다루기



이 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져 있다. 전반부에서는 전체적으로 인지를 발달시켜온 우리 생물의 진화 과정을 짚는다. 후반부에서는 저자의 전공에 맞게 인지가 발달해오고, 어떻게 내적 표상을 만들어내고 숙고를 발달시켜왔는지, 그러한 관점에서 감정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반부가 창대한 창조 서사시 속 뻗어나온 작은 가지로서의 인간을, 후반부는 고도화된 생체기계로서의 인간을 다룬다. 정말 멋진 전개다. 가장 작은 인간부터, 가장 거대한 인간까지 자유롭게 시점을 이동하여 인간이라는 유기체를 훑어보지만, 고유한 인지적 특성을 모두 기술한 후에도 인간을 진화의 끝에 놓지 않는다. 따라서 책에서는 자유롭게 읽고 싶은 내용에 따라 목차를 오가라고 하였으나, 개인적으로 연속성을 가지고 읽는 것을 권한다. 책의 흐름이 잘 정리되었을 뿐만 아니라, 연속성을 가지고 읽을 때에 이 책의 매력이 배가 된다.


이처럼 많은 매력이 있는 책이지만, 책의 난이도가 쉽다고는 이야기하기 힘들다. 정보가 집약되어있는 탓에 관련 사전 지식이 없다면 이 책을 읽는 데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한다. 나 역시 생물학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 중 하나로써, 전반부에서 많은 시도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이 책의 재미가 반감된 것은 아니다. 생물적 진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로 새로운 충격을 안겨주었다.


사전 지식이 조금이라도 갖춰진 경우, 혹은 관련된 내용에 대한 많은 관심이 있는 경우 이 책은 아주 재미있게 읽힐 수 있다. 인지에 대한 관심이 많은 독자 중 하나로서는 인지를 다룬 부분에서는 정말 콘서트장에 온 느낌까지 들었다. 사실 인간의 인지발달은 본 책의 저자 전공 지식과 관련된 부분이기도 해서, 다른 장들과 비교해 좀 더 매끄럽고 구체적으로 기술된 감도 있다.


독자로서의 소감을 더 밝히자면, 코딱지만 한 교육심리학 지식이 있는 처지에서 이 부분은 정말 특별했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인지기능에 대한 발견과 이해는 교육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일반적으로 교육심리학에서는 학업적 능력의 향상뿐만 아니라 학습과 관련된 정의적 태도 역시 중요하게 다루는데, -책에서 지적하듯- 이러한 변인들이 그의 말대로 명료하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따라서 좀 더 실증적이고 구체적인 변인을 다룰 필요가 있겠다는 스스로 다짐을 하는 기회가 되었다. 아마 다른 전공의 사람에게도 이 책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메시지는 분명 유의미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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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에서 뻗어나온 생명의 나무 일부이자



전반부는 생물의 공통 조상이 생존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선택하고, 생물이라는 전체 집단에서 인간이 어떻게 진화해왔는지를 기술한다. 본 리뷰에서는 아주 간략하게 전반부 내용을 요약한다. 책은 모든 생명의 조상인 LUCA에서 시작해 다세포 유기체로 진화하고, 다세포 유기체가 좌우 대칭 동물이 등장하고, 캄브리아기 폭발 이후 척추 동물이 등장한 후 인류가 등장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중요한 것은 진화는 한 걸음, 한 걸음씩 아주 천천히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본 리뷰는 전체적인 줄거리를 요약하려는 것이 목적이므로 이 중 깃 편모충류, 자포동물과 같은 몇몇 진화 과정은 생략하였다.


현존하는 모든 생명의 조상은 LUCA로부터 시작한다. LUCA는 지구 상 모든 생명의 가장 최근 공통조상으로서, 생존과 관련된 형질을 후손에게 물려주었다. 개 중 자손 중 일부인 박테리아와 고세균은 살아남아 오늘까지 생존하게 되었다. 박테리아 이후 단세포 미생물인 진핵생물이 나타났다. 진핵생물은 DNA를 포함하는 핵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따라 박테리아와 고세균은 원핵생물로 분류되었다. 원핵생물에서 진핵생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세포핵의 등장하게 된다. 이는 고세균 세포에서 세포막이 함입되면서 나타난 것으로 추정된다.


핵은 유전물질 대부분을 보관하는 능력을 하며, 또 다른 기관인 미토콘드리아는 에너지 공장의 역할을 했다. 이에 따라 진핵세포는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거시적인 다세포 유기체(식물, 균류, 동물)를 발달시킬 수 있도록 진화한 것이다. 앞서 기술했듯 고세균이 박테리아를 잡아먹으면서 세포핵이 등장했다. 이 과정에서 두 가지 종류의 진핵생물을 출현했다. 하나는 산소를 흡수해 유기화합물을 분해하여 화학적 에너지를 얻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광합성에 사용함으로써 화학적 에너지를 얻었다. 산소 의존 박테리아를 삼킨 고세균 세포는 미토콘드리아를, 광합성 의존 박테리아를 삼킨 고세균 세포 중 일부는 엽록체를 얻었다. 이에 따라 거시적인 생명형태(식물, 균류, 동물)이 탄생한 것이다.


원핵세포는 단순한 세포분열을 통해 번식하지만, 진핵 세포는 유성생식을 통해 번식할 수 있게 되었다. 무성생식은 완전한 유전자 세트를 물려받지만, 유성생식은 서로 다른 교배형 사이에서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유전적 다양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 즉, 본질적으로 단세포 원생생물 때부터 성은 존재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유성생식만으로 다세포 생물로 진화할 수 없었다. `집락`현상은 새로운 진화의 길을 열었다.


집락 생활을 통해 모든 세포는 협동하고, 결과적으로 모든 세포가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협동을 가로막는 것은 유전적 다양성으로 인해 생리적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 집락에도 두 가지 유형이 있었다. 하나는 유전적으로 불균질적인 개별 세포의 집합이며, 서로 다른 세포들이 세포 분열한 결과로 생긴 세포들이 어느 시점에 응집된 것이다. 이와 달리 클론형 집락은 유전적으로 동일한 세포들로 구성되었다. 세포분열 후 서로 달라붙어 집락을 구성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생리적 갈등과 세포 결함이 최소화되었다. 이 클론형 집락의 단계를 거친 단세포 원생생물이 다세포 유기체로 도약할 기회를 얻었다.


또한, 이중에서도 세포들의 협동을 유지하기 위해 두 단계의 선택과정이 필요했다. 하나는 단세포 병목을 통해 유전적 균질성을 확보하여 적합도를 정렬한다. 이때 다세포 유기체를 구성하는 세포들은 기능이 다른 특정 조직에 속해 개별 세포의 생존은 물론 유기체 전체생존을 위해 조직 사이들 노동 분업이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식물, 균류, 동물은 각각 원생생물 조상을 가지게 되었다.


동물은 식물이나 균류가 아닌 다세포 유기체다. 세포 분화를 통해 조직, 기관, 체계를 형성하는 대부분 동물은 후생생물에 속한다. 다양한 유형의 세포들이 계통을 구성하기 시작하면서 자기보존의 문제가 대두되었다. 이때 뉴런이 등장한다. 뉴런의 등장에는 두 가지 변화과정 가설이 있다. 첫 번째 변화에서 인접한 세포와 운동 세포끼리 서로 뭉쳐 덩어리를 형성한다. 감각세포 덩어리가 분비한 화학물질은 운동 세포 덩어리의 세포체로 확산하여 운동을 제어할 수 있다. 단거리에 적합한 의사소통 방식이다. 다음으로는 감각세포의 한 부분이 바깥 방향으로 길게 자라난다. 이에 따라 먼 거리에 있는 운동 세포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고, 이후 더 신속한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전기신호의 소통을 할 수 있는 뉴런과 시냅스가 발달하였다는 것이다.


척추동물의 등장은 비교적 최근에 이루어졌다. 한 동물의 바우플란은 조직, 장기, 계통을 구성하는 하위 바우플란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신경계는 특히 개체의 생존 방식에 크게 이바지했다. 신경계는 다양한 반응 시스템을 조정하였다. 척추 동물 신경계는 중추신경계와 말초신경계로 구성되었다. 이를 기반으로 전화를 거듭하여 후반부를 이끌어갈 인간의 뇌가 드디어 출연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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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한 정신세계를 구축한 나무의 가지 중 하나



후반부에서는 인간이 생존 수단으로 삼은 인지능력에 대해 자세히 기술한다. 이 부분은 생물학적 진화를 다루기보다는 다른 생물의 뇌와 달리 작동하는 부분을 중심으로 기술된다. 본 리뷰에서는 숙고능력, 스키마 형성, 고차인식을 중심으로 요약한다. 본 리뷰에서는 생략하였으나 이 부분에서는 일부 심리학 교양 강의에서 떠돌고 있는 뇌과학 정보에 대한 과학적 비판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최근 소개되고 있는 새로운 이론들을 소개하고 있다.


인지능력의 발달은 인간 생존의 기반이 되었다. 저자는 인지를 신경계로 인해 가능해진 생물학적 프로세스의 산물로 바라본다. 인지 기능은 동물에서만 진화했고, 일부 동물만이 인지기능을 가지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신경계를 가지고, 내적 표상을 형성하고 저장하며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흔히 파블로프의 개 실험으로 알려진 고전적 조건형성은 많은 동물에게서 관측되는 데 반해, 변화하는 환경에서 반응하여 내적 표상을 사용하는 능력은 제한적으로 나타나며, 일부 조류와 포유류만이 이러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나아가 저자는 인간은 행동적 유연성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의 숙고 능력이 이바지한다고 분석한다. 즉, 인간은 학습 과정에서 과거의 경험에서 목표가 가진 가치를 저장하고 이를 미래에 더 효과적인 방식으로 행동하기 위해 사용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숙고적 인지 과정은 작업기억에 의존한다. 집행기능은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미래에 주변 세계는 어떤 상태가 될지 숙고를 통해 예측한다. 그러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 범위가 필연적으로 확장된다. 따라서 작업 기억에서는 정보를 선택, 통합하고 목표 진행 상황에 따라 어떤 과정이 처리되고 있는지 지속해서 갱신하여 예기치 못한 장애물로 인해 조정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하지만 작업기억에는 용량의 제한이 있다. 이에 따라 스키마(도식)의 구축과 활용이 요구된다. 인간은 세상에 대한 이해를 종합하고 이를 처리 시키는 능력을 발달시키기 위해 경험을 기억의 형태로 축적하고, 이를 동화시키거나 수정하여 재해석하는 스키마 조절과정을 거친다. 이처럼 패턴 처리 능력을 확대하는 것이 언어의 역할이다. 언어는 단순한 지각적 사고를 넘어 개념적, 도식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대폭 향상시킨다. 이에 따라 계층적 관계 추론 능력이 발달하고, 사회적 요인을 발달시켰다. 이를 통해 인간은 찬란한 문명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우리의 의식이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의식이 우리 뇌를 온전히 통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예를 들어 우리 앞에 어린아이만 한 거대 꼽등이가 나타났다고 가정해보자. 우리는 공포를 느끼고 도망가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도망 행동을 제어하는 것은 공포라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까지 공포를 느끼는 경우 도망을 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존 행동을 제어하는 뇌 시스템과 의식적 느낌을 관장하는 뇌 시스템은 별개다. 이러한 관점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아주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아주 오랜 역사부터 우리의 뇌는 행동과 관련된 시스템을 먼저 발달시켰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정서는 비교적 최근에 발달한 시스템이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학자들의 임의적인 용어 사용을 비판한다. 공포라는 단어는 다양한 기제를 포함한 모호한 단어로서 많은 연구자 본인뿐만 아니라 그 결과를 해석하는 사람들에게 큰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공포 회로 대신 생존 회로라는 단어 사용을 권장한다. 주관적 느낌은 피질 인지 회로에서 처리되는 반면, 행동은 생존자극- 생존 회로-생존 반응 메커니즘을 따른다.


그렇다면 감정은 무엇일까?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감정은 자기주의적 의식이다. 고차 전전두 피질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의식적 감정상태에는 유발 자극에 대한 주지적 인식, 즉 개념 기억, 의미기억, 지각상태뿐만 아니라 자아에 대한 자기주지적 인식인 이로하기억 상태와 자아 스키마 상태, 자기주지적 감정인식인 감정 스키마 상태, 생존 회로 상태, 동기부여 상태, 뇌 각성, 신체 피드백 상태가 이바지한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우리의 감정은 지각 시스템, 생물학적 진화의 결과인 생존 시스템과 오랜 경험을 통해 형성한 자기주지적 의식이 기여한 복합적인 산출물이다. 이러한 서술은 분명 기존의 마음 과학과 비추어 새로운 영감을 준다.


이러한 자기주지적 의식을 가진 인간들은 인간이 아닌 동물들에게도 의인화하는 경향이 있다. 마음이론은 다른 사람의 심적 상태에 생각하는 특별한 종류의 인지작용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때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인식을 통해 다른 사람의 행동을 예측한다. 저자는 동물들이 의식적 경험을 한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지만, 그 형태가 인간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는 것과 같은 형태는 아닐 것으로 예측한다. 사실 그것을 측정하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다. 제인 구달과 같은 의인화 옹호론자들은 밀접하게 연관된 종들이 같은 행동을 보인다고 심적 과정이 동일할 것으로 예측한다. 하지만 행동과 인간의 주관적 의식을 연결하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 행동은 의식적으로 제어되지 않으며, 비의식적인 행동도 있기 때문이다.

 

 

 

나가며



책을 읽는 내내(특히 후반부), 발달 심리학의 몇 가지 실험이 계속해서 생각났다. 우리는 다른 인간과 소통하기 위해 자기 중심성을 벗어나고, 언어를 사용하여 도식을 형성하는 데 몰두한다. 생명이 아닌 장난감에도 영혼을 불어넣으며, 그것들이 실제로 살아 움직인다고 믿는다. 성인이 되면 인지발달이 끝날 것으로 생각하고 여러 실험을 통해 밝혀진 것도 그러하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발달은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류라는 하나의 정신체, 인류의 정신은 우리는 아직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기분이 드는 것은 나라는 독자뿐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우리의 마음을 기반으로 해석하려 한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기반으로 모든 현상을 해석하며, 자연계의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으로 분석한다. 그 기반에는 기묘한 자기애가 자리 앉아있다. 한 인간이 만들어내는 세계가 무궁무진함을 고려하면, 모든 우주의 중심에 자신을 놓는 것은 꼬집을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술이 발달하고, 인류의 지식이 놀라운 속도로 팽창하고 있는 오늘날에도 그러한 관점을 유지하는 것은 정말 옳은 일일까? 지극히 자기주지적 의식에 기반하여 말하건대, 오랜 진화 역사가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인지적 특성을 이해해나가며 한 발자국씩 자신을 스스로 진화시킬 필요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모두 고유하지만 본질적으로 생물의 한 가지에 불과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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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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